더아프로 포커스

2023 ISPA 총회와 글로벌 펠로우십 프로그램 2023-03-22
 

시대의 시급성에 대응하는 예술

임현진_독립 프로듀서, 축제 프로그래머


매년 겨울이면 전 세계의 공연예술계 리더들이 뉴욕에 모인다. 공연예술계의 의사결정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국제공연예술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s, 이하 ISPA) 총회가 이곳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ISPA는 스스로를 공연예술의 현재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대화와 교류를 통해 협력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국제 네트워크라고 설명한다. 북미를 중심으로 1948년 처음 개최된 이래, 매년 1월 뉴욕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더불어 연중 회원 기관과의 주최 협력을 통해 국제총회를 이어오고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적 규모의 네트워크인만큼 공연예술계에서는 주요한 담론들을 다루어내는 자리이자, 주요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자리매김했다. 

ISPA는 공연예술분야의 전문가들 간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세계의 공연예술계 동향을 파악하며, 동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과제, 해결책에 대해서 논의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주요 미션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공연예술계의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을 비롯하여 새로운 리더십을 발굴하고, 상호 참여와 협력을 통해 공연예술계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ISPA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올해의 총회는 3년만에 비대면으로 개최되는 만큼 참여자들의 기대감도 컸다. 2022년의 총회가 주제를 ‘지금의 기회 Opportunity of now’로 정하고 공연예술계가 직면한 형평성의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에 대해 공감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면,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올해의 주제는 ‘지금의 시급성(Urgency Now)’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이후 공연예술 시장이 본격적으로 다시 열리며, 공연예술계가 마주하고 있는 도전과제와 시대적인 변화의 요구를 살피는 대화들이 시급성이라는 위기 의식과 더불어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다루어졌다. 총회의 첫 시작을 알리는 선언에서 ISPA의 회장 데이비드 베일(David Baile)은 지구 공동체와 국가, 도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시급한 문제들을 다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23 ISPA 뉴욕 총회가 개최된 Kaye Playhouse에 모인 참여자들
출처: ISPA

ISPA의 커뮤니티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끈끈해 보였다. 마치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의 명절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랫만에 만난 서로를 반기는 이들이 극장과 로비를 가득채웠고, 전 세계 60개국 500여명의 인사들이 한 곳에 모인만큼 서로를 향한 관심도 크고, 행사에 대한 기대감 역시 뜨거웠다. 모두가 서로를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아는 이들의 얼굴을 찾으며 조금씩 분위기에 적응해 나갔다. 글로벌 펠로우십(Global Fellowship) 이라는 동료 그룹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오래된 네트워크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능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ISPA는 글로벌 펠로우십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2007년 처음으로 도입된 이 프로그램은 공연예술 분야의 신진, 중견 전문가들을 공모를 통해 선정한 뒤, ISPA의 구성원 자격을 부여하고 총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항공과 숙박을 비롯한 체재비를 제공한다. 2023년에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남미, 오세아니아 등 각 도시와 국가를 대표하는 60여명의 글로벌 펠로우가 선정되었다. 

총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글로벌 펠로우들은 세미나 데이(Seminar Day)에 참여하여 스스로를 소개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발굴하며, 다가오는 총회의 주제를 심화하는 사전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공연예술계 리더로서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도전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아이디어들을 논의하는 퍼실리테이션을 통해 구체화했고, 연이어 피쉬볼 토론(Fish Bowl Discussion; 참여자들이 큰 원과 작은 원을 조성하여 둘러 앉아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로이 토론에 참여하고 참관하는 형태의 토론)을 통해 세부 주제들에 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미래 사회에서는 공연예술이 관객과 사회에 어떠한 경험을 큐레이션할 것인지, 예술의 가치와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용기를 내야하는지, 연대하여 함께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미래는 어떤 그림일지 이야기하고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글로벌 펠로우십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참여가 많지 않았다. 대만과 싱가포르, 홍콩 등의 국가에서 문화예술위원회 차원의 펠로우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 국가의 펠로우들이 현장에서 다양한 만남과 교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앞장서서 지원하는 것을 보며, 다시금 전략적인 국제교류와 장기적인 투자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2023 ISPA 뉴욕 총회의 포럼 프로그램
출처: ISPA

총 3일간 이어지는 총회는 참가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비롯하여, 총회 전체 주제에 대한 키노트 스피치, 주제 토론 세션, 멤버십 참여 지역의 동향을 전하는 발표,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고 제작 투자 및 투어링 파트너를 찾는 기능을 하는 피치 세션인 피치 뉴 웍스(Pitch New Works)와 홍보와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하는 마켓 부스 역할을 하는 프로엑스(ProEx)를 비롯하여 공식 쇼케이스 공연, 협력 쇼케이스 공연 등으로 구성되었다.

총회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는 역시나 웰컴 투 컨트리(Welcome to Country)로부터 시작했다. 영미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최근 몇년 간 공식적인 관례로 자리 잡고 있는 ‘웰컴 투 컨트리’는 행사와 모임을 알리는 첫번째 순서에서 그들의 국가, 영토, 공동체의 원주민이 어떤 이들이었는지 밝히고 인정하며, 주권이 그들에게 있음을 선언하며 존중의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다. 올해의 연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주민 극단이자, 페미니스트 극단을 표방하는 스파이더우먼 씨어터(Spiderwoman Theater)의 뮤리엘 미구엘(Muriel Miguel)이 맡았다. 여전히 공연예술 시장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백인, 남성 중심의 권력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이러한 환대의 인사들이 실제 현장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어지는 기조 발제는 우크라이나 국립문화예술박물관의 총괄 감독인 올레시아 오스트로브스카(Olesia Ostrovska)가 맡았다. 발제는 뉴욕까지 오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는 그의 첫 마디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전쟁이라는 위기의 시기에 박물관이 해야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공유하며, 그 경험을 통해 인류를 위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시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는 매체로서의 예술의 기능은 무엇인지, 나아가 예술을 하는 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에는 무엇이 있을지 질문을 던졌다. 
 

우크라이나 국립문화예술박물관 디렉터의 기조 발제
출처: ISPA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소그룹 토론(Coffee Klatch)’ 프로그램은 구성원들이 사전에 제안한 총 14개의 주제들 중에서 각자가 원하는 토론 주제를 선택하여 열명 남짓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서 라운드 테이블 형식의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하이브리드 환경에서 네트워킹을 지속하는 방식,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투어 공연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 독립 프로듀서의 역할과 가능성, 원주민 예술가들과의 협업, 공연예술의 접근성과 감각친화형 공연, 국제교류의 국경과 제약, 관객 개발과 경험 기반 알고리즘의 연관성, 예술가 친화적인 극장이 되기 위한 전략, 커뮤니티 아트와 공동체 참여, 새로운 수익 모델, 공연예술계의 다양성과 포용성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현장에서의 필요를 바탕으로 제안한 주제들인만큼 다수의 구성원들이 각각의 주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며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주제어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공연예술계의 현안을 구조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그룹으로 진행된 주제별 토론 프로그램 Coffee Klatch
출처: ISPA
 

패널 중심의 포럼 프로그램은 각각 ‘공연예술의 디지털’,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제안’, ‘리더십의 재구성’, ‘예술과 국경’ 등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소그룹 토론이 열띤 분위기로 이어졌던 것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던 포럼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기 보다는 각 패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담론이 이어졌다. 이중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은 ‘예술과 국경’에 대한 토론이었는데, 싱가포르, 팔레스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패널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가장 다양한 구성의 테이블이기도 했다. 이들은 주제와 연관하여 ISPA 커뮤니티 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특정 국가와 권역의 우월주의에 대해 비판했고, 이 네트워크 안에 참여하는 것이 어려운 지역의 예술 생태계에 대해서도 포용과 관심을 넘어선 실제적인 행동 역시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상호호혜를 이야기하며 환대와 협력을 논하고 있으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이들의 솔직한 대화가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피치 뉴 웍스(Pitch New Works)’ 프로그램에서는 유난히 아시아 권역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장애예술 등 다양한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들을 비롯하여,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투어링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작품들 역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서커스를 표현의 도구로 장애예술의 확장을 돕는 공연 ‘와이어드(Wired, Kinetic Light)’는 장애중심(Disability-centric)이라는 언어로 작업을 설명하며, 에어리얼 서커스가 가진 특성을 장애를 넘어서는 상상의 가능성으로 제안했다. 다수의 작품들이 극장, 축제, 뮤지엄 등과의 공동제작 및 커미셔닝의 형태로 작품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단계에 있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창작과 유통이 주로 지원금과 지원제도에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공연예술의 창작에 다양한 파트너십이 장기적으로 관여하고 협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국제적인 규모의 아트마켓에서 한국의 작품이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작품 고유의 우수성을 넘어서 유통과 확산을 위한 여러 파트너들의 전략적인 협업과 구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체감했다.
 

패널 토크 프로그램 중 ‘Art & Borders’를 주제로 한 세션
출처: ISPA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대화, 토론, 네트워킹과 미팅들을 마무리하며 총회는 2023년 6월 영국 맨체스터에서의 국제총회를 예고했다. 맨체스터에 새로 개관한 예술공간 팩토리 인터네셔널(Factory International)과 맨체스터 인터네셔널 페스티벌(Manchester International Festival)이 주최기관이 된다. 

행사의 끝으로 기조 발제에서 이야기를 열었던 올레시아 오스트로브스카(Olesia Ostrovska)가 맺는 대화를 맡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을 비추어 우리의 지금을 돌아보며, 예술이 위기의 시기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청중들에게 물었고, 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는 예술가들과 협업하기, 대화를 이어나가기, 지치지 않고 필요한 담론을 만들어가기 등의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들이 방안으로 언급되었다. 객석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평화로운 곳에서 잠시 좀 걷고 싶다는 것, 평화를 함께 걷고 싶다는 것이었다. 

ISPA 총회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획자로서 예술의 가치와 역할, 책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며, 세계 예술 시장의 조류를 이해하는 디딤돌을 마련해주었다. 알게된 것이 많아진 만큼 더 많은 과제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ISPA라는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규모와 시선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과 함께 섞여서 생각의 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획자로서의 큰 기회였다. 이제 이번 총회 참석에서 얻은 것들을 현장으로 이어가며, 비로소 사고와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을 이어가야 할 시간이다. 듣고 배운만큼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3년 ISPA 글로벌 펠로우십 구성원들
출처: ISPA


 * 참고자료: ISPA 홈페이지 www.ispa.org

임현진
독립 프로듀서이자, 축제 프로그래머, 국제교류 코디네이터. 거리예술 장르에 집중하며 축제와 아트마켓에서 일해왔다. 극단 몸꼴, 아이모멘트, 화이트큐브프로젝트, 그린피그 등 다수의 예술단체와 프로듀서로 협업하며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며, 작품의 해외 투어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연구와 실험을 위한 장 <창작랩 프로젝트 이야기北>, 예술계 노동을 기록한 아카이빙 프로젝트 <티셔츠전>, 한국-호주 공동창작 프로젝트 <비오는 날이면, (파전이 생각나)> 등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의 이슈를 예술과 연결시키는 매개자로서의 기획자의 가능성에도 몰두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myunz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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