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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영상의 진화; 영국을 중심으로 2020-11-04

공연예술 영상의 진화; 영국을 중심으로
-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회차 -

필자/김수현
SBS 보도본부 정책문화부 선임기자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된 ‘공연예술 영상화’에 대하여 전문가 분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SBS <커튼콜>과 함께 마련하였습니다. 지난 8월 5일 수요일부터 총 5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팟캐스트를 특집 편성하였으며, 오디오와 영상을 위 링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원고와 함께 매 회를 정리하는 기획 원고가 순차적으로 등재되었으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기획원고 시리즈
1. ‘코로나19 시대의 공연예술 영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바로가기]
2. ‘공연예술 영상의 소비와 향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바로가기]
3. ‘공연예술 영상의 제작’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바로가기] 
4. 공연영상물의 저작권과 온라인공연의 수익화 [바로가기] 
5-1. 공연과 영상, 공연과 기술을 이야기하다 (1부) [바로가기] 
5-2. 공연예술 영상의 진화; 영국을 중심으로 (2부) 

2부: 공연예술 영상의 진화-영국을 중심으로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회차 사전녹화 ©예술경영지원센터

영국 공연의 영상화와 디지털화는 2000년대 초부터 움직임이 있었지만, 2007년에 BBC에서 디지털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모바일 앱 ‘아이플레이어’을 개발한 게 계기가 되어, 2010년 전후 영상화와 수익모델 모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2010년은 런던 올림픽 개최가 발표된 해이다. 당시 예술 분야 지원 예산이 다 스포츠 분야로 집중되면서, 공연계에 새로운 수익 모델이 필요했다.

그래서 2009년에 세계 최초로 ‘Digital Theatre’ 라는 온라인 공연 구독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BBC 아이플레이어를 개발했던 사람들이 창업한 회사다. 2009년에는 영국 국립극장의 NT 라이브도 시작되었다. 영국 국립극장의 미션은 ‘즐겁고 도전적이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서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산재한 영화관이다. NT라이브는 점점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자리잡았다. 1년 동안 영국 국내 700개 상영관에서 1만 1천회 이상, 해외에서는 2천 5백회 이상 상영된다.


©Digital Theatre

영국 정부는 공연예술의 영상화와 디지털화에서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자금과 인력 부족이라고 판단하고, 2012년에 BBC와 영국 예술위원회 공동으로 더 스페이스(The Space) 재단을 설립한다. 영국 공연예술의 영상화와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핵심 기관이다. 이후 2015년부터 영상화 다음 단계를 실험하는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AR, VR, 이머시브(Immersive)을 접목해 나오는 ‘하이브리드’ 장르다.

 더 스페이스(The Space)와 인카운터(The Encounter)

더 스페이스는 영국 예술 디지털화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재단으로 1년에 800여개 단체가 혜택을 받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영국의 예술에 접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작품과 그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창작과 아카이빙 지원 뿐 아니라, 마케팅이나 유통 방면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예를 들면, 멀티미디어 이해가 부족한 예술가들에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 전략을 교육한다든지, 온라인 공연의 관객을 파악하고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툴킷’을 만들어 보급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더 스페이스의 지원으로 탄생한 작품들 중 ‘인카운터’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국 극단 ‘콤플리시테’(Complicité)의 예술감독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가 아마존 정글 속에서 겪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만들 계획이었다. 시각보다는 청각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하고, 비는 부분은 관객 스스로 상상해 채워 넣도록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사이먼 맥버니는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지, 온라인 스트리밍과 유통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더 스페이스의 도움을 청했다.

더 스페이스는 극단의 니즈를 파악하고, 제일 먼저 입체 음향 시스템을 찾아냈다. 그래서 BBC가 2012년 개발한 입체 음향 시스템의 더미 마이크(Dummy Microphone)를 공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사람 얼굴처럼 생긴 이 마이크는 ‘에디(Eddie)’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또 객석 600석에 관객이 사용할 헤드폰도 지원했다.

작가는 라이브 스트리밍 경험도, 정보도, 자금도 없었다. 더 스페이스는 BBC와 협업으로 BBC의 기술진을 ‘인카운터’의 라이브 스트리밍에 참여하게 했다. BBC와 협업한 것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창작진에게 상당한 교육적 효과를 가져왔다. 사이먼 맥버니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플랫폼과 어떤 기술을 접목하면 좋을지 분명히 파악하게 되었다.

온라인 스트리밍을 시작한 첫 주에 접속 건수가 6만 7천에 이르렀다. 2015년에는 에든버러 축제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사이먼 맥버니의 지명도는 수직 상승했고, 이 작품은 2018년까지 전세계 투어를 했다. 사이먼 맥버니는 코로나19 이후 이 작품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한시적으로 무료 공개했다. 지금까지도 온라인 공연의 혁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카렌(Karen)

<카렌>이라는 작품은 드라마와 퀴즈, 게임을 접목한 모바일 앱이다. 영국의 예술가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Blast Theory)가 웨일즈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Wales)과 협력해 2915년 처음 내놓았다. 가상 인물인 ‘카렌’은 이 모바일 앱의 이름이면서 앱 속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운로드를 받고 본인의 이름을 입력하고 나면 카렌이 매일 이것 저것 질문을 해온다. 답변을 남기면 그 정보가 계속 서버에 저장이 되고, 카렌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인지, 점점 파악하게 된다.

이후에는 하루 두 번 정도 진짜 카렌 역의 배우가 전화를 걸어온다. 친절하기도 하고 유머도 있는 카렌과 게임인 듯 현실인 듯 대화를 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까지도 받게 된다. 여기서부턴 카렌과 관객 사이에 묘한 인간적 관계가 설정된다. 카렌이 질문들은 인간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되었다.

게임의 끝에는 두 가지 선물이 있다. 하나는 영국의 지정된 장소에서 딱 하루, 딱 한 시간 카렌이 관객을 초대해서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이 관객 한 사람과 관련해 수집한 빅데이터를 구매할 수도 있다. 값은 오천 원 정도다.
 ‘카렌’을 만든 블라스트 씨어리는 정부나 신용카드사,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성향을 비밀스럽게 파악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카렌’은 그래서 예술가들이 이런 빅데이터를 이용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빅 데이터 사회의 낯선 경험을 개인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직접 겪도록 하는 것이다.


©Blast Theory

 라이브 공연 VS 온라인 공연-2016년 조사

2016년에 영국 예술위원회는 ‘공연 디지털 콘텐츠 개발이 관객과 제작, 유통에 미치는 영향’을 전국적으로 조사했다. (From Live to Digital: Understanding the Impact of Digital Developments in Theatre on Audience, Production and Distribution[LINK]) 이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우선 공연 영상 콘텐츠 개발이 라이브 공연 관객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NT 라이브가 영국 전역 700개의 영화관에서 상영되지만, 지방 투어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

또 온라인 공연 관객들은 실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과는 다르다. 더 연령대가 어리고 스펙트럼이 넓다. 온라인 공연 관객들은 공연 관객들이 중시하는 ‘현장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경제성이나 편의성을 중시한다. 관객들도 공연 영상이 라이브 공연을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별개의 ‘장르’로 인식을 하고 있다.

2016년의 이 조사 이후, 영국 공연계에서는 라이브 공연의 디지털화, 영상화가 공연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더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다.

Marquee TV

Marquee TV는 2018년 창업한 온라인 공연 영상 플랫폼. 창업주는 BBC 아이플레이어를 만들었던 사이먼 워커(Simon Walker).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시작해 2019년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개시했다. 관객층을 16~24세 젊은 관객층을 타겟으로 한다. 이 세대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거의 가지 않고 처음부터 온라인 스트리밍을 즐겨온 세대로, 가격에 민감하다. 연간 12만원 정도 회비를 내면 플랫폼의 모든 작품들을 제한 없이 볼 수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와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의 세계 중계권을 확보했고, 이밖에도 16개 단체 공연 콘텐츠를 서비스한다. 오페라와 무용 장르가 강세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공연이 늘어나면서 Marquee TV도 마케팅을 강화했다.


 ©Marquee TV

LIVR

LIVR는 2019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VR 시어터 플랫폼이다. 2019년 3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LIVR은 주로 소극장 연극, 에든버러 프린지 공연들, 스탠드업 코미디 등을 VR로 서비스한다. 한화 8천원 정도 회비를 내고 가입을 하면 VR 헤드셋을 무료로 보내준다. LIVR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앱을 열어 헤드셋에 핸드폰을 삽입하고 머리에 착용하면 빨간색 포인터가 입체로 보인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빨간색 포인터를 원하는 아이콘에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플레이된다. 마치 내가 극장 객석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극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에서 360도 촬영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Draw Me Close

이머시브 시어터와 VR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연극. 영국 국립극장과 캐나다 국립영화원에서 공동 제작했다. 뉴욕 영화제에도 출품했고, 영국에서는 2020년 2월 올드빅(Old Vick)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관객이 공연장으로 들어가면 무대 감독이나 스태프가 공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준다. 관객은 헤드셋을 착용한 뒤에 천천히 안내를 받으면서 무대로 들어간다.

등장인물은 암 진단을 받은 엄마와 다섯 살 아들, 단 두 명이다. 엄마의 65년간 삶을 풀어내는 1대 1 연극이다. 관객은 엄마 역할을 맡은 단 한 명의 배우와 직접 대화하고 함께 움직이고, 실제로 접촉까지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들 역할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공연들은 시각과 청각에 의존했지만, 이 작품은 촉각까지 도입했다는 점에서 연극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 혁신적인 작품이다.

이머시브 시어터는 20여 년 전에 영국의 제작사 펀치드렁크가 실험하기 시작해, 지금은 공연계에서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지지 않고 관객이 극 속에 들어가 즐기는 이머시브 연극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지금은 코로나19로 공연이 중단됐지만, 뉴욕과 상하이 등에도 상설공연장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Draw Me Close’는 이런 이머시브 시어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펀치드렁크는 최근 ‘포켓몬 Go’ 제작사 니안틱과 함께 새로운 이머시브 작품을 만들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게임, 공연이 결합된 어떤 새로운 작품이 나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종합 도표 ©김준영

영국 공연계는 지금

영국 공연 관객 수는 프리미어 리그 관객의 두 배에 이른다. 영국 경제에서 공연 산업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뮤지컬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영국 총리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을 정도로 공연계의 영향력이 크다. 영국 공연계는 일찍부터 온라인 공연, 영상과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하이브리드 작품을 내놓았고, 꾸준히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지만, 코로나19로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없는 현 상황은 공연산업 전체에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영국 공연계는 라이브 공연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철저한 방역과 관객 정보 확보, 띄어 앉기 좌석제 등 한국 사례를 참고해 자신이 소유한 공연장에서 시범적으로 공연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공연계의 반응은 ‘이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띄어 앉기’로는 공연계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연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때 감염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 정밀한 조사에 착수했다.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을 국가 경제의 동력으로 삼는 영국은, 공연에서도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 중 하나다. 예술가들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지원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2016년 영국 예술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코로나19 이후 많아진 온라인 공연에 대해 거부감과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공연계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코로나19로 전세계 공연계가 모두 위기에 빠진 상황이지만, 위기 속에 새로운 기회도 생겨난다. 5회에 걸쳐 진행된 ‘공연예술의 영상화’ 팟캐스트가 공연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어떻게 새로운 기회를 잡을지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이야기들이, 각자의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2회차 다시보기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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