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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S Choice] 런던심포니와의 협연을 꿈꾸는 예술그룹 2013-09-11

런던심포니와의 협연을 꿈꾸는 예술그룹
[PAMS Choice interview] 국악그룹 앙상블 시나위 리더 신현식


부용산 오리길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부용산’ 중

충무아트홀 연습실에서 연습중인 앙상블 시나위 멤버들

시인 박기동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누이를 부용산에 묻고 돌아와 이 시를 썼다. 이 ‘제망매가(祭亡妹歌)’는 6·25전쟁을 거치면서 금지곡이 됐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안성현이 월북을 한 데다 빨치산들이 즐겨 부른 까닭이다. 창작음악그룹 ‘앙상블 시나위’는 이 시에 새로운 선율을 입혔다. 시나위에서 건반을 맡는 정송희는 “이 노래는 지금 이 시대에서도 이별과 만남, 애틋한 마음, 이산가족, 멀리 떨어진 이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이봉근의 절절한 소리에 신현식의 아쟁, 하세라의 가야금, 정송희의 피아노와 양금, 김진혁의 타악이 서로 얽혀들면서 기억 속 녹슬고 닫힌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다. 언젠가의 애잔한 시간이 고개를 내민다. 앙상블 시나위는 우리 전통음악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저 멀리 있는 옛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손을 내민다. 이것이 시나위를 시나위로 만든다.

앙상블 시나위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2013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이들은 10월 7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영혼을 위한 카덴차>를 선보인다.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고 산 사람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무당의 제례 ‘진도 씻김굿’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2010년 동명의 1집 음반에서 시나위끼리 첫 선을 보였고, 지난해 관현악 버전으로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충무아트홀 무대를 꾸몄다.

Q. 두 번째 팸스초이스 참가인데요.

신현식(이하 신) : 지난해 팸스초이스에서 네덜란드 분이었나? 쇼케이스 끝나자마자 막 뛰어와서 절 껴안고 우셨어요. 뭔가 진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셨나 봐요. 그 분이 저희를 무척 초청하고 싶어 했는데 예산 때문에 여의치가 않아서 안타까워하셨죠. 올해 욕심이 나요. 팸스초이스에 참여하는 여러 기획자들의 눈이, 우리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기획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런 논의를 통해서 시나위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조언도 들었어요. 세계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자신감도 생겼고요. 팸스초이스는 아티스트와 기획자가 교감하고 함께 즐기는 축제예요.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됩니다. 다른 팀 쇼케이스를 구경하면서 같이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자극도 받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도 되니까요.

Q. 이번 팸스초이스를 위해 시나위의 여러 레퍼토리 가운데 <영혼을 위한 카덴차>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 : 카덴차는 서양음악의 정형화된 구조 가운데서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형태가 우리 굿 음악에도 녹아 있습니다. 영혼을 위한 카덴차라고 하면 거창해보이지만(웃음), 씻김굿을 풀어 설명하면 바로 그 말인 거지요. 굿 음악은 카오스적이지만 그 안에 카타르시스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무대 양식화 시켜서 전달하려고 합니다. 이번 팸스초이스의 참가의 목적은 한국적 정서가 어떤 것인지 전달하는 것입니다. 국악, 양악 이런 구분을 떠나서 ‘우리의 정서는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려고 합니다. 각국 기획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팸스초이스를 통해 세계 곳곳으로 전파하고 싶은 마음이죠. 오케스트라라는 도구가 서양인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국악관현악단으로도 할 수는 있지만 화성이나 구조적인 측면에서 서양 오케스트라가 더 적합했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앙상블시나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앙상블시나위

Q.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확장하는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신 : 오케스트레이션은 정송희 씨가 맡았어요. 이 친구는 이력이 특이한데, 한동대 법대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작곡을, 카이스트에서 미디어인터랙티브를 전공했어요. 송희 씨가 주축이 돼서 악보 작업을 하지만, 현악기는 저와 세라 씨가, 또 다른 부분에서는 봉근 씨가 ‘이런 부분은 이렇게 조정하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각자 파트의 악보를 그리기도 합니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시나위의 모든 창작음악은 공동작업입니다.

Q. 5명이 머리를 맞대는 공동 창작 작업이라니, 지난할 것 같기도 한데요.

신 : 예를 들면, 가야금을 연주하는 세라 씨가 그래요. “오빠, 저 이런 선율이 마음에 드는 데요.” 한 8마디 정도 연주를 합니다. 그런데 멜로디가 좋아요. “거기다가 동해안 별신굿 장단을 치면 괜찮겠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만들면서 30분 정도 연주를 하고 녹음을 해서 들어봅니다. 여기서 20분으로, 또 10분으로 줄여서 엑기스에서 테마 선율을 뽑아내요. 이 테마를 기본으로 기승전결의 흐름을 구성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산을 하나 만드는 거예요. 히말라야든 백두산이든 후지산이든. 한 번 크면 한 번 작고, 한 번 빠르면 한 번 느리고. 이게 소삼대삼(小三大三)이예요. 밀고 당기는 소삼대삼이 음악에 배어나야 즉흥 연주를 잘 할 수 있어요. 박근형 연출 선생님이 농담처럼 말씀하시지요. “결혼을 해보면 그게 뭔지 안다. 아기를 낳아보면 더 잘 알게 된다. 이혼을 해보면 더 잘 안다!

Q. 시나위의 시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끼리 ‘진짜 전통음악은 무엇인지’ 공부하는 스터디 그룹이었지요. 지금도 스터디는 이어지고 있나요.

신 : 그럼요. 주제가 정해지면 아주 파고들지요. 시나위는 멤버들이 같이 호흡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해마다 1, 2월이면 전체 합숙을 하면서 일상과 생각을 공유합니다. 올해는 전남 화순군에서 보냈고, 지난해에는 인도와 네팔을 다녀왔어요.
올 겨울에는 무등산 근처 작은 집에서 판소리를 공부했어요. 지금의 판소리가 아니라, 고음반들을 들으면서 원래 판소리는 어떤 형태였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찾아봤습니다. 박근형 선생님도 함께 가셨고요. 산조에 대해 공부할 때는 음계부터 짚으면서 관련 논문을 샅샅이 찾아서 읽어요. 기존의 이론과 연주를 해체해서 분석한 뒤 우리는 산조를 어떤 식으로 만들까, 같이 고민합니다. 산조 명인들도 모셔서 심도 있는 대화도 나눴고요.

Q. 시나위는 연극, 무용 등 다른 장르와 융합을 꾀하는 무대도 잇달아 선보였는데요.

신 : 그런 통섭과 융합의 무대를 통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간혹 ‘너희들만으로 너희를 전부 보여줘야지. 그래야 힘이 생겨’라고 조언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실마리를 찾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구분할 것 없이 우리의 정서를 몸짓으로 얘기해보고자 했고, 음악으로는 한계가 있는 이야기를 연극과 어우러져 풀어내보고도 싶었습니다. 지원금을 받아서 시나위 멤버의 개런티를 남기지 않고 다 투자한 작업들입니다. 진화하는 전통을 보여줄 수 있는 혁명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Q. 지금의 국악계에서 시나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신 : 제가 늘 하는 말이 ‘국악하지 말자’ ‘국악인이 되지 말자, 예술가가 되자’는 거예요. 시나위 멤버로서의 나, 내 이름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앙상블 시나위가 한국의 정서를 얘기하는 게 바로 우리의 역할이고 목적입니다. 전 독주회가 제일 싫어요. 독주회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우리 팀은 ‘정기연주회’ 같은 거 하지 말고, 뭔가 얘기하고 싶을 때 사람들에게 나서자고 했어요. 음향이 뛰어난 좋은 공연장에서도 연주하고 싶어요. 하지만 한 번은 좋은 극장에서 하면 한 번은 길에서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이게 좋은 음악인지 나쁜 음악인지 몰라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음악, 쉴 수 있는 틈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Q. 팸스초이스 이후 시나위의 발길은 어디로 향하나요.

신 : 시나위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지는 곡으로 3집 음반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쪽 중심으로 유럽 오케스트라를 섭외하는 중이고요, 몇 군데 알아보고 있는데, 진짜 눈물나요. 돈이 너무 없어서요. <월식>, <영혼을 위한 카덴차>, <찬비가>, <황톳길> 이렇게 4곡을 수록할 거고, 악보는 다 준비해뒀습니다. 딥퍼플과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 음반도 있는데, 록과 오케스트라의 만남이 얼마나 환상적인지요. 시나위도 할 수 있어요. 오케스트라가 화성을 쫙 밀고 나오면, 우리가 그 위에서 꿈틀꿈틀. 그렇게 녹음하고 싶어요. 관심 있는 기획자 없나요?

앙상블 시나위의 멤버들
  • 기고자

  • 조이영_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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