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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와 마사코 _ 신국립극장 프로듀서 2011-05-03
이자와 마사코 _ 신국립극장 프로듀서

일본의 신국립극장과 한국의 예술의전당이 공동제작한 <강 건너 저편에>(2002, 2005), <야끼니꾸 드래곤>(2008, 2011)은 양국에서 관객은 물론 평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한-일 연극의 대표작이다. 이들 한일 공동제작을 담당해온 도쿄 신국립극장의 프로듀서 이자와 마사코를 만났다.

Q: 이자와 프로듀서가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학생시절부터 가부키를 좋아해, 일본예술대학 연극학과에서 가부키를 전공했습니다. 주변에는 배우를 지망하는 과 친구들도 많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제작자를 목표로 했고, 연극을 폭넓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졸업을 하면 연극과 관련된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죠. 하지만,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은,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취업난이 심각했던 시기여서 일을 구하지 못하고, 일 년 반 정도를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때, 신국립극장은 개관준비를 하던 때였는데, 지인의 소개로 신국립극장의 준비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신국립극장 직원 중에서도 가장 고참이 되어버렸죠.

Q: 이자와 프로듀서의 첫 직장이기도 한 신국립극장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A: 일본에는 노나 가부키, 분라쿠 등 일본의 전통예술을 공연하는 국립극장은 있지만, 현대연극 등 컨템포러리한 공연예술을 위한 국립 공연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국립극장 개관은 관계자들의 염원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1997년에 오페라, 발레, 현대무용, 연극을 공연하는 국가시설로서 개관했고, 오페라극장(1814석), 중극장(1038석), 소극장(최대 468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운영방식은 예술감독제입니다. 신국립극장은 국제적인 수준의 완성도 높은 공연예술을 직접 기획․제작하여, 일본의 문화를 알리는 하나의 거점이 되는 것과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극장이 되는 것이라는 사명이 있습니다. 신국립극장의 운영책임은 신국립극장 운영재단이 맡고 있지만, 공연의 예술적 측면은 오페라, 무용, 연극 각 부문의 세 예술감독이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공연과 함께 오페라연수원, 발레연수원, 연극연수원도 운영하면서 차세대를 이끌 인재를 육성하기도 합니다.

Q: 신국립극장의 미션에 처음부터 국제교류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건가요?

A: 연극의 경우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와타나베 히로코가 중국 연출가 린차오를 기용해서 중국 작가 쿠어스신의 작품인 <기인(棋人)>을 일본 배우들과 함께 공연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중국 연출가를 기용한 것은 교류를 염두에 둔 기획이었다기 보다는, 예술감독이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연출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공연을 계기로 작가 쿠어신스에게 신작을 의뢰해 2006년에는 <돌아가다>를 일본 연출가와 배우들이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과는, 2대 예술감독이었던 구리야마 타미오가 (취임 당시)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도 앞두고 있으니, 무언가 함께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 교류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 <강 건너 저편에>였죠. 일본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로 히라타 오리자, 한국에서 극작가 김명화와 연출가 이병훈, 그리고 백성희 선생님을 비롯한 양국의 배우가 참여한, 그때까지는 없었던 이색적인 방식의 공동작업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양국의 역사적 관계, 가족의 연, 재일한국인 문제, 그리고 국가관, 상이한 습관, 민족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인간관계 등, ‘이국가간 커뮤니케이션’을 테마로 사람들이 자주 모인다는 서울의 강변을 배경으로 만남과 이별을 담은 대화 속에서 ‘양국의 현재’의 단편들을 조용하게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는 아사히무대예술상 그랑프리에 빛났고 한국에서도 각종 연극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교류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없었던 굉장히 수준 높은 작품이 만들어져 감사했죠.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2008년 <야끼니꾸 드래곤>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 중국과는 2007년에 히라타 오리자와 리리우이가 공동으로 쓰고 연출한 <로스트 빌리지>를 공동제작해 도쿄, 베이징, 홍콩에서 공연한 바 있습니다.

Q: 아시아와의 교류 외에, 서구와도 교류가 있는지요.

A: 현재로서 공동제작은 아시아하고만 하고 있고, 작품도 앞서 언급한 세 작품밖에 없습니다. 그 밖에 해외초청공연으로 태양극단, 베를린 앙상블, 홍콩 극장조합 등의 작품이 공연된 바 있고, 해외의 작가가 자신의 모국어로 쓴 작품을 신국립극장에서 세계 초연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인 손진책 선생이 연출한 <디 아더 사이드>(2004)도 이 프로그램의 하나로서, 남미 칠리의 극작가 아리엘 돌프만이 쓴 작품입니다.

앞서 말했듯, 신국립극장은 예술감독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감독에 따라 예술적인 지향이나 공연 레퍼토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아시아와의 교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국제교류 관련 사업은 대부분 프로듀서를 맡는 편인가요?

A: 전부는 아닙니다만, 아시아와의 공동제작은 모두 담당했습니다. 다녔던 대학에 아시아나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많아, 친구도 생겼습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으로 왔던 것도 대학시절로, 경주를 갔었죠. 그 후에는 매년 한 번은 한국을 찾게 되었고, 지금까지 출장을 포함해 50회 이상 방문한 것 같네요. 당시는 아직 한류붐도 일어나기 전이니, 유럽이나 미국을 선호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변종이었죠. 저는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는 동질감도 느끼고,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에 가면 안도감이 듭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있어, 첫 해외 공동제작이었던 <강 건너 저편에>를 추진할 때, 예술감독이 대수롭지 않게 “한국에 자주 가는 것 같으니, 해보라”고 해서 담당하게 됐어요.

Q: 그래서 한국어도 조금은 하시는 거군요. 올해 재공연을 가진 <야끼니꾸 드래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초연 때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연일 매진은 물론 각종 연극상도 싹쓸이한 화제작이었죠.

A: 저희들도 놀랐어요. 도쿄에서 첫 공연을 하고 나서, 눈 깜짝할 사이에 입소문이 나 티켓이 팔려나갔습니다. 배우도 스태프도 아찔할 정도의 기분으로 공연을 했고, 단순히 공연이라기 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추동되는 듯한 움직임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정의신 씨에게 한일 공동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두 작품을 제안 받았어요. 정의신 연출도, 저도 재일한국인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해 <야끼니꾸 드래곤>을 선택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성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일본의 야끼니꾸 식당(한국식 고깃집)을 무대로 한 재일한국인 가족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현재, 과거, 미래를 음악과 함께 재미있고 슬프고, 애절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정의신 연출은 초연 때부터 “작은 야끼니꾸 식당이 가진 큰 역사를 그리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그 말마따나 공항 근처의 땅에 몸을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은, 분명 그 시대,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던 보편적이면서도 큰 역사로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승화되어 슬프면서도 희망을 느끼게 하는 힘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Q: <야끼니꾸 드래곤>을 보는 한국과 일본 관객의 반응에 차이가 있었나요?

A: 가장 반응이 다르다고 생각한 장면이, 테츠오라는 재일한국인 남성이 “북으로 간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 대사를 들으면 일본관객들은 조용해지는데, 한국관객들은 웃더라고요. 일본극장에는 재일한국인 관객도 많을 테니, 북으로 간 후에 어떻게 될까, 결코 낙원 같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조용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어쩌면 한국관객들이 오히려 재일한국인이라는 존재나 그들의 역사를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배우 고수희와 신철진, 두 명이 각각 요미우리연극대상에서 우수여자배우상과 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했는데, 한국의 배우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A: 희곡에 대한 분석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납니다.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장기간 연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으리라 생각하는데도, 항상 즐겁게, 연습실 분위기를 밝게 해줘서 감사했습니다. 연습실이나 공연팀의 분위기는 작품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 작품이 연극적 수준에서도 흥행 면에서도 성공한 것은 이러한 배우들이 평상시부터 다져온 앙상블이 베이스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Q: 한국과의 공동제작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A: 중국과의 작업도 마찬가지고, 외국과의 공동제작에는 어려운 일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서로 다른 시스템, 다른 사회체제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일본의 기준과 관점으로 상대를 판단해 난감한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최근에는 일본이 스탠다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한국과도, 제작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산편성부터 프로세스가 달라, 잘 모르거나, 파트너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보통 2-3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그 2-3년간의 예산집행이나 스케줄을 꼼꼼히 계획을 잡아 제안하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직적으로도 무리가 생겨요. 하지만, 상대는 지금 2-3년 후의 일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점을 이해하기까지 호흡이 맞지 않아 어려웠던 적도 있습니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인수인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거의 없는 일이지만 교과서나 독도 등 정치적인 문제로 공연 가능 여부를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점들은 서로 경험을 쌓고, 관계를 구축하면서 서로의 시스템이나 사회를 이해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한일공동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두 나라와 연극을 잘 아는 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야끼니꾸 드래곤>의 경우, 한국 극단 미추의 박현숙 프로듀서가 코디네이터로서 참여해줘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몇 년 흐르면 (담당했던) 극장의 기술스태프나 제작담당자가 바뀌는 일이야 자주 있을 테지만, 양국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있는 인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수고를 덜 수 있고, 저로서도 그만큼 다른 일을 돌볼 수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Q: 앞으로 한국과의 교류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공동제작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관련된 기획으로는 정의신이 쓰고 연출하는 <미장원 스미레>라는 작품을 2012년 3월에 공연할 예정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를 그린 <로스트 빌리지>, 만국박람회가 개최되고 고도경제성장 절정에 달하던 1970년 전후의 한 재일한국인 가족을 그린 <야끼니꾸 드래곤>, 딱 그 사이에 있는 1960년대 초, 규슈의 탄광촌에서 재일한국인 미용사와 재혼한 일본인 광부를 중심으로 20년에 걸친 탄광사고 소송을 그린 문제작입니다. 한국의 관계자분들도 꼭 봐주셨으면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이렇게 한국과 관련된 작품은 계속 무대에 올리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기회가 있으면 공동제작도 앞으로 계속하고 싶지만,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 신국립극장은 예술감독제여서 지금 단계에서는 분명하게 이야기드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고자

  • 기무라 노리코 _ 한일연극교류협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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