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2023년 유럽의 무용 현장들: 몽펠리에 당스, 임풀스탄츠, 아비뇽 페스티벌 리뷰➀ 2023-08-30
 

유럽의 현대무용, 과거와 동시대를 가로지르는 교차점들
 

 

조형빈_무용비평가

 
유럽에는 수많은 공연예술 축제들이 있지만, 그중 무용에 포커스를 맞춘 몇 개의 축제들이 여름 기간에 몰려서 열린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열리는 몽펠리에 당스(Montpellier Danse), 오스트리아 빈에서 7월 초부터 8월 초까지 한 달 동안 열리는 임풀스탄츠(Impulstanz), 축제로 너무도 유명한 프랑스의 도시 아비뇽에서 7월 초부터 말까지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은 모두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한 축제들이면서, 동시대 유럽의 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한 현장들이다. 2023년 여름, 7월 한 달 동안 여러 나라들을 지나며 이들 무용 축제들을 외부인이자 관객으로서 관찰하고, 유럽의 현대무용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대부분의 몽펠리에 당스 공연이 이루어진 극장 아고라(Agora) ©조형빈

 
몽펠리에 당스, 기억과 창작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맞닿아 있는 도시 몽펠리에에서는 매년 여름 무용 축제 몽펠리에 당스가 열린다. 올해로 43번째 해를 맞는 몽펠리에 당스는 디렉터 장-폴 몬타나리(Jean-Paul Montanari)의 주관 아래 매년 여름 몽펠리에의 곳곳에 무용이 스며들도록 하고 있다. 비평가 아녜스 이즈린(Agnès Izrine)이 쓴 축제 서문 “Mémoire et création(기억과 창작)”에서 드러나듯, 올해의 몽펠리에 당스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어떤 질문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과거의 작품을 축제에 다시 올리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번 몽펠리에 당스에서는 과거의 몽펠리에 당스에서 선보였던 창작 작업들을 현재의 안무가들이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매만짐으로써 과거의 무용수, 과거의 현장과 결코 같을 수 없는 이 덧없는’ (무용)작업들이 어떻게 창작(과거, 그리고 지금에도)’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2022년 탄츠테아터 부퍼탈(Tanztheater Wuppertal)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된 안무가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의 경우,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작품 Palermo Palermo(1989)을 제외하고도 두 개의 각기 다른 작품을 이번 몽펠리에 당스에 올렸다. 특히 À bras-le-corps(1993)는 보리스 샤르마츠가 또 다른 안무가 디미트리 샹블라스(Dimitri Chamblas)와 함께 안무/출연했던 초창기의 작품이다. 두 명의 남성이 객석이 주위를 둘러싼 작은 공간에서 벌이는 접촉, 포옹, 끈적한 마주침은 관객으로 하여금 30년 전 10대 후반이었던 그들이 추구했던 몸의 지향점들을 조심스레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과거의 움직임을 현재에 가져와 30년이 흐른 몸으로 재현한 이 작품은, 폐막작으로 도미니크 바구에의 1984년 작 Déserts d’amour가 다른 안무가들에 의해 재안무되어 올려진 것과 더불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몽펠리에 당스의 주제 의식을 느끼게 해주었다.

 
À bras-le-corps커튼콜, 왼쪽부터 디미트리 샹블라스, 보리스 샤르마츠 ©조형빈
 

몽펠리에 당스는 또한 꾸준히 창작 작업을 지원하는 축제로서, 올해도 여러 작품들이 몽펠리에 당스 초연으로 무대 위에 올려졌다. 그중에서도 미카엘 필리포(Mickaël Phelippeau)Majorettes(2023)치어리딩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몸과 삶의 흔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프랑스어로 치어리더를 지칭하는 ‘Majorettes’1964년 결성되었던 몽펠리에의 치어리더들을 지금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치어리딩이라는 특정한 몸의 규칙과 몸을 쓰는 방식, 그 안무적 코드들과 지금은 60대 여성이 된 치어리더들 각각의 삶을 교차시킨다. 계속해서 지휘봉을 떨어뜨리는 실수가 반복되지만 그 안무적 허술함이 치어리딩이 가지고 있는 단단함을 끊임없이 흩뜨리고, 노년의 몸이 치어리딩이라는 몸의 규율을 재현하는 방식이 현재에 무엇을 불러일으키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많은 안무가들을 배출하면서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축제지만, 동시대적 무용의 지향점들을 다양하게 갈무리하는 축제로서 몽펠리에 당스에는 수많은 해외 작업 역시 올려져 왔다. 2019년에 이미 몽펠리에 당스에 참여했었던 캐나다 출신의 안무가 다나 미셸(Dana Michel)은 올해 신작 Mike(2023)를 몽펠리에 당스에 올렸다. 이 작업은 극장이라는 갇힌 공간을 선택하는 대신 열린 스튜디오와 그 스튜디오를 둘러싼 로비, 발코니, 정원 공간들을 포함하면서 관객들 역시 그 공간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다나 미셸은 공간 여기저기에 놓인 다양한 오브제들을 줍거나, 옮기거나, 그것들을 활용하면서 퍼포먼스와 공연 예술의 방법론에 대해 질문하고, 사적인 서사와 행위들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과정과 역할을 고민하게 했다.


임풀스탄츠, 여전히 살아있는 과거의 시간들

7월 초 몽펠리에 당스가 축제를 마무리하고 난 뒤, 나는 오스트리아로 이동했다. 올해 76일부터 86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진행되는 빈의 국제무용축제, 임풀스탄츠를 보기 위해서다. 임풀츠탄츠는 올해로 40번째를 맞는 축제로, 1984년 작은 워크숍들이 모인 것으로 시작했던 행사가 이제는 대도시 빈을 한 달 동안 뜨겁게 달구는 커다란 규모의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는 24개국에서 온 68개의 작품들이 빈 도심의 여러 극장들에서 펼쳐졌다. 임풀스탄츠의 거점이 되는 폴크스씨어터(Volkstheater)와 도심의 박물관인 무제움스크바르티에(MuseumsQuartier Wien)의 공연장과 공간들을 비롯하여, 도심의 다양한 극장들이 한 달 내내 임풀스탄츠의 공연으로 가득 찼다.
 
폴크스씨어터 ©조형빈
 

반갑게도 몽펠리에 당스에서 보았던 작품의 안무가들을 이곳 임풀스탄츠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몽펠리에 당스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였던 보리스 샤르마츠는 또 다른 솔로작인 SOMNOLE(2021)으로 이번 임풀스탄츠에 참여했다.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일한 사운드가 퍼포머 본인의 휘파람인 이 공연은, 대중적으로 익숙한 여러 개의 노래들이 휘파람을 통해 이어지는 동시에 잠과 불면 사이의 모호한 상태를 몸을 통해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보리스 샤르마츠 본인이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들었던 단체 ‘[terrain]’으로 참여한 이 공연은 몽펠리에 당스에서 볼 수 있었던 다른 공연들과는 또 다른 결의 몸을 보여주면서 몸의 현재, 현존을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올해 임풀스탄츠 전반부에서 가장 힘이 실린 공연은 아무래도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의 공연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세기 중반 미국 저드슨 댄스 씨어터(Judson Dance Theater)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루신다 차일즈는 현대무용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연출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등과도 협업하며 영역을 넓혀왔던 안무가다. 이번 임풀스탄츠에서 선보인 RELATIVE CALM(2022)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두 작가가 각자의 집에 갇혀 지내면서 과거의 작업을 새롭게 구체화한 것으로, 로버트 윌슨 고유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시각적으로 압도되는 무대 디자인과 단조롭게 반복되는 사운드와 그에 걸맞은 미니멀한 움직임들은, 관객이 두 작가의 협업에 기대할 수 있었던 탁월한 연출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또한 임풀스탄츠는 동시대적 무용이 공연의 영역에서 어떤 것들을 실험하고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이기도 했다. 멕 스튜어트(Meg Stuart)와 마크 톰킨스(Mark Tompkins)가 협업하고 함께 출연한 작업 ONE SHOT(2016)은 즉흥을 통해 공연을 만드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즉흥이 단순히 어떤 정해진 규칙들을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발산함으로써 공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실제로 즉흥적으로 상황들을 설정하고 퍼포머들이 그에 관해 대화하며 그때그때 맞닥뜨리는 것들을 바로 즉흥으로 옮기는, 실제 공연 자체가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구성됨으로써 즉흥이 이루어지는 설계 자체를 해체한 공연이었다.

 
RELATIVE CALM©Lucie Jansch
 
 
과거의 동시대적 시간성

오래된 안무가의 작업과 작업 세계를 존중하는 것을 넘어서서, 과거의 시간을 지금에 불러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것은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과거 작업을 변형 없이 그대로 보존하여 현재에 공연하는 것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30년 전의 안무를 나이 든 지금의 몸으로 다시 수행하는 현장에서 어떤 균열과 파열음이 발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루신다 차일즈의 공연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루신다 차일즈의 스타일이 포스트모던 무용에서 보여주었던 미니멀리즘을 여전히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2023년의 현재와 어긋나고 불협함으로써 도리어 거기서 어떤 새로운 의미들을 발생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ONE SHOT커튼콜 ©조형빈
 

안무가들이 자신이 만든 작업을 가지고 공연이 이루어지는 시즌에 여러 축제를 다니면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럽의 환경에서, 오래된 자신의 작업을 다시 재안무/재공연하는 것이 결코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축제와 오랜 연을 가지고 있거나 활동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축제와 함께 호흡해 왔던 안무가가 축제에 작품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축제와 안무가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작업들을 재소환했을 때, 그것이 동시대적 시간성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축제 전체의 지향점과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나는 과거의 시간을 헤집어 현재에 새로운 의의를 전달하고자 하는 유럽의 여러 무용 축제들을 통해, 한국의 시간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를 다시금 고민해 보게 되었다. ‘지금을 파악하고 어떤 과거가 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는 일, 그리고 그럼으로써 동시대적 시간성을 확보하는 일, 그것이 지금 유럽의 무용 축제들이 제시하고자 하는 무용 예술의 한 방향성일 것이다.
 
Ta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