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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넘어 기회를 잡아라
_K-뮤지컬국제마켓 후기
2022-01-05

꿈을 넘어 기회를 잡아라

_K-뮤지컬국제마켓 후기

_이응규(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드리밈 부문 - 뮤지컬〈유앤잇〉,〈러브랭귀지〉
선보임 부문 - 뮤지컬〈기억을 걷다〉선정

기억이 어렴풋한 어린 시절, 과수원을 하던 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인근 광역시의 청과물시장에 수확한 사과를 내다 팔았다. 새벽 경매장이 열리는 청과물시장에 늦지 않기 위해 전날 밤 트럭을 몰고 김천에서 대전으로 출발하셨는데 가끔 분신과 같다는 둥, 행운의 증표라는 둥, 어머니께 그럴싸한 핑계를 둘러대며 어린 나를 데려가시곤 했다.
시간이 흘러 2021년. 반짝이는 구두와 양복을 입었지만, 그 시절 아버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바로 제1회 K-뮤지컬국제마켓이 그곳이다. 그 첫 시작을 함께하며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던 순간을 공유하려 한다.

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장으로
뮤지컬 세계에 발을 들인 이래 창작자로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뮤지컬을 만드는 것과 판로를 개척하는 일은 전혀 다른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EG 뮤지컬 컴퍼니’를 세울 당시만 해도 대표이자 프로듀서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면 시장은 저절로 알아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졌다. 회사 설립 후 5년간 무려 13개의 IP를 만들어내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시장의 현실은 냉혹했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프로듀서의 세계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던 중 얻은 결실도 있었다.
제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DIMF’)에서 뮤지컬〈유앤잇〉(작가 오서은, 작곡 이응규)이 DIMF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계기를 얻었다. 하지만 작품을 계속해서 시장에 알리고 재공연의 기회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뭔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작품은 ‘수상했었다’라는 그럴싸한 꼬리표만 남기고 이내 사장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 부딪쳐 보기 위해 지난 7월 서울 드림아트센터 2관에 10주간 공연을 올렸다. 비록 코로나의 악재 속에서도 작품은 계획했던 공연 기간을 무사하게 완주할 수 있었지만, 자부담의 재정적 한계와 시장 분석의 미흡 등으로 BEP를 넘기지 못한 채 아쉽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런 뼈아픈 경험을 통해 작품성 못지않게 안정적인 뮤지컬 제작과 유통 환경의 중요함에 대해 눈을 뜨던 어느 날, K-뮤지컬국제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꿈을 넘어 기회를 잡아라
지난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K-뮤지컬국제마켓은 뮤지컬의 국내외 투자를 촉진하고 완성된 뮤지컬 작품뿐만 아니라 개발단계의 작품을 선정하여 뮤지컬 제작, 투자자에게 선보이며 안정적인 뮤지컬 제작. 유통 환경을 조성하고자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에서 2021년 올해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만들었던 뮤지컬 IP의 해외 진출, 투자유치와 안정적인 제작 여건 마련이 절실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참여를 결심했고 그동안 경작해온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드리밈-완성작 부문으로〈유앤잇〉, 드리밈-미완성작으로는 미국 뉴욕대학교 Tisch School 유학 시절 졸업 작품으로 창작한〈러브랭귀지〉, 그리고 선보임(낭독 공연)으로 제11회 DIMF 창작지원작인〈기억을 걷다〉가 선정되었다. 총 세 작품을 3일 안에 모두 선보이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K-뮤지컬 국제마켓이 준비한 다양한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누릴 수 있었다.

드리밈-작품의 상품성을 검증받고 최우수상까지 받다!
이번 행사에서 ‘드리밈’ 부문은 뮤지컬 완성작 또는 미완성 작품의 제작 혹은 투자의 기회를 모색하고 시장에 선보이는 피칭(Pitching)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뮤지컬전문가와 투자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10분간 피칭을 심도 있게 분석해 질문하며 피칭에 참여하는 작품 중 우수작에는 상금도 수여하는 대회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필자는 뮤지컬〈유앤잇〉과〈러브랭귀지〉두 작품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선정과 동시에 행사 직전까지 예경으로부터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육과 멘토링을 지원받을 기회를 얻었다. 뮤지컬 창작이 전공인 필자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세무회계, 인사 노무를 비롯해 공연기획과 유통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습득하고 뮤지컬 제작자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실무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교육 과정 중 특히 투자사의 멘토들과 세 번에 걸친 멘토링 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 멘토링을 통해서 작품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왜 이 작품이 투자를 받아야만 하는지, 지금 관객들이 원하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지를 검증해 나갔다. 이는 공연 투자사의 관점을 이해하고 공연 투자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과정까지 배우는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으며 제작자 중심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리밈 미완성작의〈러브랭귀지〉피칭은 일반관객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와 음악의 수준, 기획과 스토리 구성이 명쾌하다는 평을 받으며 미완성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K-뮤지컬국제마켓 뮤지컬 드리밈 EG 뮤지컬 컴퍼니〈러브랭귀지〉최우수상 수상 ⓒ예술경영지원센터
K-뮤지컬국제마켓 뮤지컬 드리밈 EG 뮤지컬 컴퍼니〈러브랭귀지〉최우수상 수상 ⓒ예술경영지원센터

선보임 – 낭독 공연 후 열린 국제 투자자들과의 미팅
‘선보임’이란 뮤지컬 작품의 제작 혹은 투자의 기회를 모색하고자 시장에 선보이는 낭독 공연 및 주요 장면 시연 형태의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지칭하며 우리 회사는 뮤지컬〈기억을 걷다〉를 이 선보임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0년 전 창작을 시작해 5차례의 낭독 공연을 거쳐 제11회 DIMF 창작지원에서 탈락 후, 재도전으로 제12회 DIMF 무대에 올렸지만 다른 우수 작품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한 채 서랍 속에 오랜 시간 동안 묵혀두고 있던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었다. 80분의 제한된 시간 안에 긴 원작을 줄여 핵심만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훌륭한 스태프, 배우, 연주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리라이팅을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값진 보상으로 돌아왔다. 공연 후 관객과 투자자들의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보임의 가장 큰 장점은 드리밈-피칭과는 다르게 제작자나 투자자에게 직접적으로 공연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공연 후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낭독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는 자유로운 대화의 장이 열렸으며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서 활동하는 여러 해외 인사들에게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또한, 후속 진행에 있어서도 실질적이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향후 글로벌한 K-뮤지컬의 대표작이 될 꿈을 품어볼 수 있던 설레는 시간이었다. 서랍에 박혀있던 뮤지컬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선보임을 통한 낭독 공연은 큰 의미가 있는 한걸음이자 작품의 핵심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과정이 되었다.

K-뮤지컬국제마켓 뮤지컬 선보임 EG 뮤지컬 컴퍼니〈기억을 걷다〉ⓒ예술경영지원센터
K-뮤지컬국제마켓 뮤지컬 선보임 EG 뮤지컬 컴퍼니〈기억을 걷다〉ⓒ예술경영지원센터

새로운 꿈을 꾸며…
상반기 6월 공모부터 지난 11월 행사 동안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환희가 함께 했던 K-뮤지컬 국제마켓. 3일 동안 세 작품을 K-뮤지컬 국제마켓에 내놓으며 들었던 솔직한 심정은 15년간 정성스럽게 경작한 결실을 인정받는 농부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어린 시절 청과물 시장이 서기 전날 밤, 좁은 여인숙에서 쪽잠을 주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었다. 정성스럽게 농작한 길고 긴 시간들, 시장에 선보일 사과를 부드러운 수건으로 광내던 모습들, 시장으로 가는 설레는 발걸음들은 때때로 제값을 받지 못한 실망감과 함께 무거운 어깨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 좋은 가격에 팔릴 국내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우리 집 사과에 대해 설명하시던 자부심 넘치는 아버지의 세 가지 철칙이 떠오른다.

“첫째, 조금이라도 상품성이 없다면 단 한 푼도 얻어가지 못한다. 둘째, 닦아서 광이 나는 것보다 깨물어서 확 달아야 한다. 셋째, 시장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경매사에게 모든 걸 다 맡겨선 안 된다.”

햇병아리 농부처럼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이번 마켓에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기회에 열심히 참여했고 덕분에 의미 있는 여러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성스럽게 만든 콘텐츠를 선보이며 EG 뮤지컬 컴퍼니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현재 걸어가고 있는 좌표를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K-뮤지컬국제마켓 해외인사 비즈니스미팅 ⓒ예술경영지원센터
K-뮤지컬국제마켓 해외인사 비즈니스미팅 ⓒ예술경영지원센터

이 마켓의 가장 큰 장점은 내로라하는 뮤지컬 국내외 인사들과 명함을 교환할 수 있고 그들과 서로를 알리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자연스레 형성된다는 점이다. 드리밈, 선보임 외에도 국내외 뮤지컬전문가, 투자 전문가들이 강의하는 세미나와 투자 멘토링, 비즈니스미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킹은 큰 수확이었다. 더 매력적인 장점이라면 그들 중 대부분은 한국 뮤지컬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고 e-메일을 통해 작품을 보내오길 원하며 검토하길 원한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기회이다.
이번 경험이 반드시 값진 보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한 알의 사과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농부의 마음처럼 모든 경험을 값지게 가슴에 새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뮤지컬 국제 마켓에도 계속해서 도전하며 세계적인 뮤지컬을 만들어 내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K-뮤지컬국제마켓 또한 이제 갓 시작한 만큼 이 행사가 앞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에 중요한 역할로 자리매김해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제작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이응규(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는 뮤지컬 작곡가이자 제작자이다. 한국에 해외 뮤지컬 붐이 불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 작곡,작사,연출,제작 등 혼자서 멀티 테스크로 뮤지컬을 만들어 제1회 DIMF 대학생부문 인기상을 수상하며 뮤지컬 크리에이터로 데뷔했다. 이후 뉴욕에서 정통 뮤지컬을 공부한 후 EG 뮤지컬 컴퍼니를 설립해 한국의 오프브로드웨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5년 동안 십여 편의 IP를 만들어 시연 및 OSMU를 개발해 왔으며 현재 서울과 대구를 중심으로 뮤지컬 창작, 제작을 활발히 하고 있고 최근 아시아 시장으로 문화예술 컨텐츠를 확장하고 있는 뮤지컬계의 젊은 일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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