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고정값 없는 무대에서 발생하는 선도적인 마주침 2021-08-04

고정값 없는 무대에서 발생하는 선도적인 마주침

전강희_공연평론가, 드라마터그

 

지난달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서 셰익스피어 극을 전문으로 올리는 흑인 여성 극단 마와 극단Mawa Theatre Company이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말라위 지역 말로 ‘내일’이라는 뜻의 마와 극단은 4명의 배우 가브리엘 브룩스Gabrielle Brooks, 메이지 보든Maisey Bawden, 다니엘 카세라테Danielle Kassaraté, 제이드 사뮤엘스Jade Samuels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이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흑인 여성의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다음 세대가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전 텍스트에서 흑인 여성과 흑인 혼혈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브룩스에 따르면, 마와 극단은 백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작품을 통해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많은 공연이 올라가고, 영국 연극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올해에는 먼저 탈라와 극단Talawa Theatre Company과 협업한 작업으로 관객을 만난다. 두 단체 모두 셰익스피어에게서 영감을 받아 비디오 시리즈를 만들었고 8월 발표를 앞두고 있다. 마와 극단은 앞으로도 다른 작품들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세계에 담긴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작품 소재 중에서 혈통, 계급, 여성들 간의 우정, 식민지화에 주목하고 있다.
브룩스는 “영국 흑인 여성으로서 고전의 역사에 스스로를 포함시킬 수 있다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략 92%는 백인 여성으로 채워지는 업계의 최고 자리에 흑인 여성의 자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다음 사진은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네 사람의 얼굴이다.

마와 극단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가브리엘 브룩스, 메이지 보든, 다니엘 카세라테, 제이드 사뮤엘스)
마와 극단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가브리엘 브룩스, 메이지 보든, 다니엘 카세라테, 제이드 사뮤엘스)

마와 극단이 셰익스피어와 만나는 것은 블랙과 화이트의 만남을 뛰어넘는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와 21세기 오늘이 섞이고, 원주민이 백인이던 영국이라는 공간에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자손이 거주하면서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섞이고 있다.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의 사진을 보면 누군가는 아시아의 혼혈로, 누군가는 남미 계통의 혼혈로 보인다. 이런 시각으로 무대를 보는 관객이라면 이 공연을 통해 더 뒤엉킨 시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연극 평론가 마이클 빌링턴Michael Billington이 2019년 런던의 샘 워너메이커 플레이하우스Sam Wanamaker Playhouse에서 전 배역을 유색인종으로 캐스팅한 <리처드 3세>를 보면서 ‘모든 등장인물이 독특하다’고 하면서 ‘ 선도적pioneer ’이라 언급했던 그런 느낌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최근 필자가 보았던 공연 중에서 선도적이면서 생경한 만남이라는 느낌을 받은 공연이 무엇이 있었을지 생각해보았다. 농인 극단 ‘핸드스피크’의 제2회 워크숍 공연이 떠올랐다. 성수동에 있는 헤이그라운드에서 6월 12일과 13일 양일간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올라간 공연이다. 예매표를 찾기 위해 안내를 찾아가니 농인들이 말을 걸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짓을 했다. 수어를 모르는 나는 눈치껏 표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관객 대부분이 농인이거나 수어를 아는 사람들이라서 나를 포함한 몇몇 청인은 공연 전날 대본을 메일로 받아서 미리 읽고 공연장을 찾았다. 대본을 미리 보았지만, 몇 차례 이야기의 흐름을 놓쳤다. 공연을 따라가기 위해 내 눈앞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어제 읽었던 대본을 떠올리려 집중하면서 공연을 관람했다. 내가 공연을 보면서 사용한 언어는 농인의 언어도, 청인의 언어도 아닌 제3의 어떤 것이지 않았을까? 나는 이점이 마이클 빌링턴이 ‘선도적 pioneer ’이라고 외쳤던 지점과 같은 맥락일 것으로 생각한다.

핸드스피크 워크숍
핸드스피크 워크숍(출처: 핸드스피크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andspeak.korea)

극장이란 어떤 공간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극장의 무대에 어떤 몸들이 올라갔나를 떠올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도, 그 시간대의 우리 역사 시대에도, 여자가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공적 공간인 극장에서는 이성애 규범화가 더욱 철저하게 수행되었다. 여자 역할을 대신해서 무대에 올랐던 남자 배우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수행하는 여성의 움직임은 사회가 여성이라면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 그 움직임들이었다. 이런 수행이 관습으로 정례화되어 갈 때, 선도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무대에서 권력이 된 관습을 몰아내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극장의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퀴어 지리학을 연구하는 캐스 브라운, 개빈 브라운, 제이슨 림이 쓴 <섹슈얼리티 지리학>의 다음 문구를 보자.

“권력은 서로를 구성해내는 저항과 지배가 매우 촘촘하게 얽힌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은 단순히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저항과 지배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연루되어 있다. 오히려 권력은 촘촘한 그물처럼 우리를 언제나 휘감고 있는 것에 가깝다. 권력은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규율하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작동된다. 권력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영향을 미치는 힘이 아니며, 우리 모두는 권력의 자장 안에 위치해있다. 권력은 생산적이며 다양한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p.20)

최근 한 기사에서 권력이라 할 수 있는 극장의 관습이 ‘연극계’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다른 권력의 양상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두 달 전쯤 영국에서 ‘트랜스 캐스팅 성명서Trans Casting Statement’가 발표되었다. 작년 3월 <플루토에서 아침Breakfast on Pluto>이라는 공연이 웨스트 엔드에 올라갔다. 트랜스젠더 역할인 패트릭Patrick/푸시Pussy를 이 정체성과 전혀 관련이 없는 출연자가 맡게 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공연의 제작을 맡은 돈마 창고극장Donmar Warehouse은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모든 영역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을 내놓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주요 대극장들을 ‘트랜스, 논바이너리, 젠더 비순응/비관행 정체성’을 연기해야 할 때는 해당 정체성의 사람을 출연시키도록 한다는 성명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트랜스 캐스팅 성명서를 지지하는 극장 중 하나인 로열익스체인지 극장
트랜스 캐스팅 성명서를 지지하는 극장 중 하나인 로열익스체인지 극장

성명을 지지하는 퓨얼 씨어터Fuel Theatre의 이사 케이트 맥그래스Kate McGrath는 “누구든지 어떤 역할에 캐스팅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트렌스, 논바이너리non-binary, 젠더 비순응/비관행gender non-conformity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극장이나 공적인 공간에서 더 불평등을 겪기 때문에 성명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는 정체성과 관련 없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좋은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트랜스 캐스팅 성명서가 만들어지고 극장 관계자들이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권력이 저항과 지배라는 관계의 균형을 뚫고 탄생한 순간이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야 선도적인 공연을 만들고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공연을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강희
전강희는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 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 예술가들의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의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 ACC의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국립극단의 창작프로젝트 <창작공감;연출>의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참고기사

Lanre Bakare, ‘UK’s first all-black, all-female Shakespeare company aim to shine new light on Bard‘
(10 Jun 2021,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culture/2021/jun/10/uks-first-all-black-all-female-shakespeare-company-aim-to-shine-new-light-on-bard

Lanre Bakare, ‘UK theatres promise to only cast trans actors in trans roles’ (26 May 2021,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1/may/26/uk-theatres-promise-to-only-cast-trans-actors-in-trans-roles

Ta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