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정명주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콜리지 연극학과 박사과정)
2009년 11월 5일 영국 웨일즈에 국립극장이 마침내 오픈했다. 1963년 창설된 런던의 국립극장과 2004년 설립된 스코틀랜드 국립극장에 이어 영국에서 세 번째로 창설된 국립극장이며, 백 년이 넘는 논란 끝에 현실화된 극장이다. 스코틀랜드국립극장과 마찬가지로 건물이 없이 기획단과 연출진만을 둔 극단형식으로 창설되어 재정 및 운영면에서 새로운 국립극장의 모델을 제시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오픈하는 극장답게 인터넷으로 오픈 행사를 방송하여 웨일즈까지 가지 안고도 전국 어디서나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이 연극적 전통으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런던의 국립극장을 두고 굳이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 별도의 국립극장이 필요한 것인지, 21세기 글로벌시대, 디지털시대에 ‘국립’연극단체가 국가에 기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건물이 없는 극단형식의 국립극장이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 오픈 소식과 함께 여러 가지 질문들이 던져졌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국립극장 설립에 대한 논의는 영국의 국립극장 건립계획과 함께 1920년대부터 있어왔지만,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1949년 런던의 국립극장 건립 안이 국회에 통과되면서부터였다 . 그러나, 1963년 마침내 런던 국립극장이 창설되고, 1976년 현 사우스뱅크에 콩크리트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까지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국립극장 계획은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주요한 이유를 들자면, 잉글랜드와 별도로 운영되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아츠카운슬에 재정력이 현실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했고, 두 지역 모두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잉글랜드나, 버나드 쇼로 대표되는 아일랜드에 비해 연극적 전통이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곧 런던의 국립극장에 올라가는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작가의 작품의 숫자가 적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1707년 웨일즈, 스콧틀랜드, 잉글랜드의 합병 안이 통과되면서부터 강조된 대영제국으로서의 통합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사회적인 동의가 2차 세계대전.후, 한동안 강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90년대 말, 노동당의 득세와 더불어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강조와 지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스코틀랜드의 국립극장 창설 논의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특히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90년대에 들어 서면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스코틀랜드의 신예 극작가들을 중심으로 하여 2004년 마침내 ‘건물 없는 국립극장’의 건설이 현실화되었다.
세계 최초의 건물 없는 스코틀랜드 국립극장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한 건물도 없고 상주단체도 없는 기획단 개념의 국립극장 개념은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고안된 모델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기관이 되기 쉬운 국립연극단체가 경영업무를 줄이고 예술적 행위에 집중하게 하는 장점을 불러왔다. 2004년 창설과 함께 열린 컨퍼런스에서 초대 이사장 리처드 핀들레이가 지적한 바와 같이 ‘물새는 화장실, 카페, 낡은 카페트를 걱정하느라 낭비될 70%의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단체로서 보다 많은 국민에 봉사하는 다양한 지방투어공연에 중점을 두면서, 대국민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가 기대되었다. 실례로서 설립 2년 만에 2006년 2월에 올린 첫 프로젝트는 에딘버러와 글래스고우를 포함한 스코틀랜드의 10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막한 <홈(Home)> 시리즈였다. ‘고향’으로서의 스코틀랜드를 주제로 한 이 대형 연극 프로젝트는 각 도시의 이야기와 특성을 살린 연극작품이 각기 다른 그룹의 아티스트들에 의해 창작, 소개되었고 각 지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스코틀랜드국립극장의 첫 장을 열었다. 그 이후 4년에 이르는 동안 스코틀랜드국립극장은 무려 50여 편에 달하는 크고 작은 연극작품을 창작하여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투어공연을 시행하였다. 레퍼토리 측면에서는 아서 밀러의 <시련>을 비롯해 <오이디푸스> 등 세계적인 고전들이 공연되었고, 동시에 데이빗 그레이그를 비롯해, 데이빗 해로워(<365>), 앤소니 니일슨(<리얼리즘>), 크리스 핸넌(<엘리자베스 고든 퀸>) 등 30대 중후반의 스코틀랜드의 작가들의 신작들이 발표되었으며,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소규모 투어작품도 다수 공연되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스코틀랜드 배우들에 의해 진한 사투리로 공연되어 지역민들의 진정어린 환영을 받았다. 창작극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의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었고,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생생하게 그려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블랙와치>, <박카이>, <페르귄트>와 같은 대형작품들은 에딘버러 페스티벌, 런던의 바비칸센터, 뉴욕의 퍼브릭씨어터까지 수출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스코틀랜드국립극장의 성공은 한편으로는 지역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해온 주요 극장들과의 긴밀한 공동작업과 세계적인 극장들과의 공동제작, 그리고 9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젊고 재능 있는 스코틀랜드 극작가들의 기용이 주요요인이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지역에 부재한 연출가들을 잉글랜드에서 공수해 오는 지역주의를 벗어난 인재의 임용으로 예술적 완성도를 기했다. 2004년 임명된 초대 예술감독, 비키 페더스톤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임명 당시 페인즈 플라우라고 하는 런던의 창작극 전용극단의 대표를 맡고 있던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 연출가였다. 상임연출로 선임된 존 티파니 역시 잉글랜드 출신의 30대의 연출가였다. 이렇게 스코틀랜드인을 고집하지 않은 과감한 인재의 등용, 그리고 30대의 젊은 지역 극작가들과 팀을 이룰 수 있는 젊은 인력을 위주로 하여 스코틀랜드국립극장은 시작부터 참신하고 혁신적인 경영을 지향했다. 창설한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인 성공의 신화를 이루어낸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공식적인 임무는 결코 거창하지 않다. ‘국내외의 관객들을 흥분시키고 즐겁게 하는 도전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 그래서 스코틀랜드가 자랑스러워 하는 극단이 되는 것’이다 .
또 하나의 건물 없는 국립극장, 웨일즈국립극장
이러한 스코틀랜드국립극장에 성공에 힘입어, 올해 웨일즈국립극장이 건물없는 국립극장의 모델로 새로이 문을 열었다. 올해부터 2010년 본격적인 시즌까지 운영제작비 총 60억(3백만 파운드)의 예산을 가지고 시작한다 . 웨일즈 아츠카운슬의 사무총장 다이 스미스의 말처럼 ‘웨일즈와 웨일즈인들에게 뿌리를 둔 세계적인’ 극장이 될 것을 목표로 한다 . 오픈과 함께 발표한 2011년까지의 13개 작품계획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난 얼굴로 돌아 보라>로 유명한 잉글랜드 작가, 존 오스본의 희곡 <그 안의 악마(The Devil Within Him)이다. 존 오스본이 18세에 쓴 작품으로 검열에 걸려 숨겨졌다가 검열사무소 창고에서 작년에 발견된 희곡으로 내년 5월 웨일즈의 수도인 카디프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그리스 비극,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Persians)〉이 2010년 10월에 막을 올릴 예정이며, 웨일즈의 작가 게리 오웬이 현재 집필 중인 브리겐트의 청소년 자살사건을 다룬 창작극이 준비 중에 있고, 2011년 4월에는 웨일즈 출신의 배우 마이클 쉰이 출연하는 성극(Passion Play)이 탈보트 항구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 준비중인 작품들에서 보이듯이 웨일즈국립극단 역시 지역작가의 부재를 인정하고 성극에서부터 고전극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공연하면서 동시에 웨일즈 작가를 발굴, 양성할 계획으로 보인다. 그리고 스코틀랜드국립극단과 마찬가지로 지역을 찾아가는 투어공연들을 통해 전국민에게 봉사하는 국립단체로서 활약할 전망이다. 그러나, 웨일즈국립극단의 성공은 그리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웨일즈에 전문 연극단체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채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고, 아직은 전문 창작자도 연극관객도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에 비해 훨씬 부족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또 하나, 웨일즈 지역만의 과제가 있다면 잊혀져 가는 웨일즈 언어와 관련한 문제이다. 이미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는 웨일즈에서 고어가 되어버린 웨일즈어를 집에서라도 사용하는 인구는 20%에 지나지 않는다 . 소멸되어가는 언어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겠지만, 사뭇 고어의 보존을 위해 웨일즈어 공연을 해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를 들어 국립극장을 박물관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21세기, 국립극장의 역할은…
200년 전, 유럽에서 국립극장의 건설이 활발해 진 것은 제국주의로 재정비된 각 지역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문호 레싱이 1760년대에 함부르그에서 국립연극무대 창설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었다 . 그리고 100여 년 후 1868년 국민의 모금으로 지어진 프라하의 체코국립극장이나 대문호 예이츠의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아일랜드의 애비극장(1904년 창설)은 침략으로 인해 상실했던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예외적인 경우로 1800년대에 이미 상업적인 대중극장이 활성화 되어있었고,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귀족의 후원에 의존도가 적어서 국립극장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절실하지 않았다 .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누린 제국주의의 파워로 인해 국가적 자신감이 높았던 탓도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세기를 넘어, 21세기 초에 건립된 영국의 웨일즈국립극장은, 안웬 존스가 지적했듯이, ‘현대’ 웨일즈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삶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릇 21세기의 국립극장은, 가디언지의 비평가, 마이클 빌링턴의 말처럼 현재를 논할 때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 런던의 국립극장이 니콜라스 하이트너가 예술감독으로 임명하면서부터 노령화되어가던 관객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도 현실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활발하게 다루며 동시대인의 삶을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철도사유화를 다룬 데이빗 헤어의 <영원한 길(The Permanent Way)>, 토니 블레어와 부시 정권의 이라크 공격을 문제 삼은 정치코미디 <스터프 해픈즈(Stuff Happens)>, 교육문제를 다룬 알런 배넷의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 등은 정부지원금을 받는 극장이 정부의 실수를 정면으로 패러디하는 과감한 창작을 통해 폭넓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고, 나아가 웨스트엔드 및 브로드웨이까지 수출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맥락에서 웨일즈국립극장이나 스코틀랜드국립극장 역시, 마이클 빌링턴의 경고처럼 ‘국가의 아이덴티티의 한 부분을 이루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긴장을 고민하는 극장으로 기능할 때만이 비로소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

Anna-Marie Taylor, ‘국립극장(A National Theatre)’ Planet # 110 April/May 1995
Ibid.
컨퍼런스 ‘국립극장 무엇을 위한 것인가?
What is a National Theatre for? 2004년 8월 17일, 에딘버러 게이트웨이 극장
스코틀랜드 국립극장 홈페이지 www.nationaltheatrescotland.com
마크 브라운, 가디언지 ‘웨일즈국립극장 오픈’ 2009. 11.5.
Ibid.
공연정보 출처: 도미니크 마벤디쉬, 텔레그라프지 ''웨일즈와 웹:
이제 인터넷이 영국연극의 모양을 다시 만든다'' 2009.11.6
데이빗 아담스, <웨일즈 스테이지(Stage Welsh)>, Ceredigion: Gomer Press, 1996 p.21.
http://en.wikipedia.org/wiki/Welsh_language
Anna-Marie Taylor, ‘국립극장(A National Theatre)’ Planet # 110 April/May 1995
Ibid.
Anwen Jones, The National Theatre Debate in Wales,
1880-2002, Aberystwyth: the University of Wales, 2006
마이클 빌링턴, 가디언지 ‘(국립극장) 무엇을 위한 것인가?’ 2004. 5. 5.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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