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말의 물질성이 짓는 시
[Who&Work] 극단 동 _ 강량원 연출
[Who&Work] 극단 동 _ 강량원 연출
고골리의『검찰관』을 각색한 극단 동의 <비밀경찰>. 2010년 1월 초연 이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뽑은 2010년 ‘올해의 연극베스트 3’, 그리고 2011년 서울아트마켓의 팸스초이스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국립극단과의 공동제작으로 새로운 창작극 <상주국수집>의 공연에 한창인 극단 동의 강량원 연출을 만났다.
비밀경찰은 등장하지 않는다
Q: <비밀경찰>의 창작 배경과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비밀경찰>은 정확하게 말하면 고골리 원작의 희곡 <검찰관>이 아닌 메이어홀드가 연출한 공연 <검찰관>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창작된 결과물이다. 메이어홀드는 가장 연극적인 연극을 추구했고 관객과의 즉각적인 소통의 방법을 발견했다. 그 방법이 극장주의 연극이다. 우리는 우리 전통 남사당놀이 형식으로 극장주의 연극을 만들었다.
또한 원작 희곡의 당대성과 현실비판성을 고수하려고 했다. 인물의 대사를 통해 연극의 내용과 우리나라의 현실 상황을 접목시켰고 우리의 전통 연희가 아니라 미국식 뮤직홀로 마무리함으로써 지금 우리 문화의 왜곡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극단 동의 <비밀경찰>에는 정작 주인공인 비밀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비밀경찰이란 외부자가 아닌 어느 틈엔가 우리 속으로 침입해서 우리의 주인으로 행세하는 ‘사로잡혀있는 생각들’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창작자가 관객과 어떠한 연극적 형식과 취향을 매개로 소통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어떤 때는 물질적인 감각이 매개체가 되기도, 또 어떤 때는 이성적인 사고가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비밀경찰>은 물질적인 감각을 매개체로 삼았다. 우리는 관객이 생각하기도 전에 놀라고 흥분하게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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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밀경찰>을 포함하여 극단 동의 다수의 작품은, 낯설고 절제된 언어의 분절적 울림과 신체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시청각으로 표현된 시를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 극단 동의 작품에서 몸과 말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A 우리는 말의 음성이나 색깔, 힘의 세기와 같은 말의 물질성에 더 중점을 둔다. 그것을 몸의 물질성에 흡수시키지 않고 나란히 배치하려고 애를 쓴다. 즉 말이 부드러우면 몸을 강하게 쓰고 말이 강하면 몸을 부드럽게 쓰는 식이다.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하고 때로는 대립적인 특성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현상이나 인물을 하나의 말로 규정하여 마침표를 찍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각도로 현상과 인물을 드러내 보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연출의 역할이다. 이것이 연극적 경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비밀경찰>에서 몸과 말은 각각의 장면마다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덜미(꼭두각시인형극) 장면에서 배우는 인형으로 분했다. 그때 인형의 말은 원래는 인형조종자의 몫이므로 배우 한 사람이 인형과 인형조종자 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배우는 자신을 인형의 몸과 인형조종자의 말하는 몸으로 나누어 연기했다. 우리는 이렇게 몸과 다른 리듬과 템포를 가진 말하기를 좋아한다.
연출과 배우의 공동 설계
Q: 극단 동의 연출과 작업 특징이 궁금하다.
A 극단 동은 연출과 배우의 역할 구분과 경계를 없애고, 연출과 배우가 함께 논의하고 연구하여 공동의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 그 언어를 찾는 과정이어서 관객에게 낯설고 생경하게 비추어지곤 한다. 어쩌면 그러한 과정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객과 항상 새롭게 만나고 싶고, 그 새로운 만남은 극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출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공동의 언어를 우리는 ‘단위’라고 부른다. 집을 지을 때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듯이 우리는 단위라는 것으로 전체 작품을 건축해 나간다. 단위가 관객과 의사소통을 하는 언어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품마다 단위의 크기나 형태가 달라진다. 사상연극에서는 사상을 담아내는 몇 분 간의 말과 행동이 하나의 단위가 되기도 하고, 개인의 내면 문제를 그린 작품에서는 찰나의 감각 한 조각이 하나의 단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보통 연출이 시놉시스를 제안하면 배우들이 단위로 시놉시스를 채우고 연출은 다시 피드백을 주고, 그렇게 연습과 상호 토론을 거쳐서 전체 작품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인간이 언제나 그 자신의 욕구와 의지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연극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와 다르다. 그래서 행동의 원인과 의도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고 겉으로 표출된 행동만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쓴다. 인간의 주체란 인물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견고한 요소가 아닌, 인물 간 상호 작용과 영향, 즉 두 행위자들 간의 힘의 관계와 더불어 그들이 소속된 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Q: 관객은 일반적으로 텍스트와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함으로써 극의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그러나 극단 동은 텍스트 외의 비언어적 요소들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극 창작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해 달라.
A 극장에서 벌어지는 연극행위자와 관객과의 소통을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관객과 배우는 이야기를 나눈다. 극단 동은 이야기를 배우 행동의 물리력과 감각으로 바꾸어 공연하고, 그때 관객은 해체된 이야기를 머리를 쥐어짜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배우의 물리력과 감각에 전염된다. 따라서 이야기는 관객의 몸을 개방시키는 하나의 방편이고, 중요한 것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배우의 몸과 관객의 몸이 서로 영향을 받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극단 동의 리허설은 배우의 모든 행위를 물리력과 감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배우는 무대에 등장하여 퇴장할 때까지 매 순간 대상과 육체적인 교감을 한다. 단 한 순간도 대상을 잃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내면이나 정신으로 돌아올 틈조차 없다. 이미 완전한 물리력과 감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는 자신의 내부가 아닌 자신과 대상 사이 그 어디엔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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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 | ||||
동 스타일로 조명하는 살아있는 망자들
Q: 그간 윌리엄 포크너(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에밀 졸라(테레즈 라캥),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 카프카(변신), 장 주네(하녀들),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오버외스터라이히), 헨릭 입센(유령) 등 해외 여러 작가의 희곡과 고전을 바탕으로 창작해왔다. 작품을 선택할 때 고려하거나 집중하는 요소가 있다면.
A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작품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품을 고른 다음 작품 스타일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정하고 그 스타일에 맞는 작품을 찾는 식이다. 스타일이란 관객과 소통할 도구를 말하는데, 예를 들어 <테레즈 라캥>의 육체적인 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오감, <변신>은 제스처였다.
다른 하나는 소재이다. <변신>이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등 그간의 창작은 대체로 국외자(局外者)를 이야기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살아있는 죽음/살아있는 망자(living dea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나는 이를 민중사관 쪽에서도 제외되었고, 부르주아 역사관에서도 벗어나있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로 해석한다. <변신>에서 카프카는 유럽인도, 폴란드인도 아닌 인물을,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에서 포크너는 미국 남부에서 노예도 아니고 지주도 아니면서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백인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벗어나있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인물군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사의 새로운 전환과 사회 변혁의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 현재 조명되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분류되지 않던 룸펜 프롤레타리아(Lumpen Proletariat,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질병이나 실업에 의하여 노동자 계급에서 탈락된 극빈층)가 오늘날에는 프롤레타리아를 이해하는 중요한 고리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Q: 올해 4월 초연한 <샘플 054씨 외 3인>과 9월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하고 있는 <상주국수집>은 직접 극작한 창작 공연이다.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극작 계획도 있는지.
A 연출가에게 창작과 소설 개작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작의 단계에서부터 특정한 연극 형식을 고려한 희곡으로 작업할 때 배우들과 수월하게 작업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이야기의 근원을 우리 안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계속할 예정이어서 당분간 창작을 병행할 것 같다.
Q: 현재 고민하고 있는 지점, 그리고 향후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해 달라.
A 극단 동은 두 번의 중극장 공연을 하면서 극단 동의 연극과 연기형식을 중극장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말을 더욱 줄이고 섬세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신체행동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그러나 관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이루어내는 소극장 작업이 훨씬 매력적이다. 또 무대미술과 조명 등 스태프 분야에 대해서도 보다 온전하게 우리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나갈 생각이다.
<세자매> 리허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월요일연극연구실(연극이론, 연기 등을 자체적으로 연구하는 극단 동 내부의 랩)에서 지난 2년여에 걸쳐 안톤 체홉의 네 개 장막극을 번안하여 무대에 올렸는데, 거기에 <세자매>가 빠져있어 이번 기회에 채우려는 것이다. 게릴라소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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