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예술을 통해 우리 삶을 꽃피우다 2016-03-15

예술을 통해 우리 삶을 꽃피우다
[피플]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감독 카르멘 로메로


23년 전, 긴 침묵 속에 가려져 있던 연극을 향한 열망이 한 기획자의 열정과 함께 깨어났다. 칠레 산티아고 기차역에서 시작된 작은 연극운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였고, 오늘날 20개국 66개 단체가 참가하는 규모 있는 국제공연예술축제로 성장하였다. 시속 1,000킬로처럼 빠른 속도로 많은 이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산티아고 아밀(Santiago a Mil)’이란 이름이 붙여진 축제.1) 매년 1월 3주간 개최되는 축제를 통해 시민들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같은 세계적 예술가와 조우할 수 있었고, 예술가들은 해외 축제와 연을 맺어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창설 이후 열정으로 축제를 이끌어 온 감독 카르멘 로메로(Carmen Romero)가 있다. 출장차 방문한 산티아고에서 그녀를 만나,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꿈을 추구하며 실현해 온”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Santiago a Mil International Theater Festival)의 시작과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산티아고 아밀의 아밀(a Mil)은 움직임과 속력을 표현하는 스페인어로 시속 1,000킬로를 상징한다.



Q(정선경). 두 기획자의 실천으로 출발한 축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궁금하다.

카르멘 로메로(이하 ‘카르멘’) : 칠레의 문화예술은 20세기 후반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경험하며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2) 이 기간 칠레 예술가들에게는 무언가를 발산하고자 하는 힘, 연극에 대한 에너지는 있었지만 이를 발현할 수 있는 장이 없었다. 나는 이들에게 표현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 에블린 캠벨(Evelyn Campbell, 현 재단 제작감독)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마포초 기차역(Estación Mapocho)3) 에서 세 연극단체의 공연을 선보였다. 이것이 축제의 시작이다. 당시에는 재정 지원도 없었고, 오직 ‘이렇게 존재해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참여하여 독립연극(Independent Theatre)에 대한 움직임을 키워갔고, 프로젝트도 함께 성장했다. 2001년부터 해외작품을 함께 소개하기 시작했고, 2004년 국가 칙령으로 떼아뜨로 아밀재단 FITAM(Fundación Teatro a Mil)이 설립되었다.



2)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는 1973년부터 1990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한 칠레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다. 재임 기간 3,197명의 인사가 정치적 이유로 처형, 감금, 고문, 강제 추방되었다. 연극 레퍼토리 < 죽음과 소녀 >는 이 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3) 마포초역 문화센터(Centro Cultural Estación Mapocho)는 파트리치오 알윈(Patricio Aylwin) 정부(1990-1994)가 칠레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기차역을 문화센터로 개조해 만든 건물이다. 현재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의 장소로 공연, 전시, 박람회 등이 개최된다.


제23회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포스터©Santiago a Mil International Festival

마포초역 문화센터©Centro Cultural Estación Mapocho

제23회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포스터
©Santiago a Mil International Festival
마포초역 문화센터
©Centro Cultural Estación Mapocho

Q. 그럼 축제는 재단의 모태가 되고, 재단에서 축제를 운영하는 것인가? 떼아뜨로 아밀 재단과 역할을 소개해 달라.

카르멘 : 그렇다.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는 재단의 중심 사업이고, 축제를 통해 재단의 미션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재단은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접하는 기회를 모든 이들로 확대한다. 우선, 저렴한 티켓 정책과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공연으로 경제적 문턱을 낮추었다. 또한, 2011년부터 축제를 산티아고뿐만 아니라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발파라이소(Valparaíso), 로스 라고스(Los Lagos) 등 8개 도, 45개 도시로 확대 개최하여 지역의 문화향유기회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번에 초청된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도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산티아고 시립극장(Teatro Municipal de Santiago) 외에 페냐롤렌(Peñalolén), 탈카(Talca)에서 공연되었다

훌륭한 예술은 훌륭한 관객을 만든다

Q. 극단 목화 공연을 향한 관객 반응을 보고, 축제가 지역사회의 문화적 삶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에 있어 지역사회란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카르멘 : 우리는 “모든 이를 위한 훌륭한 예술(Teatro Popular y Elitista)”을 추구한다. 훌륭한 예술은 훌륭한 관객을 만든다. 이를 위해 재단은 예술가와 관객을 교육하고 양성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교류하고 배우며, 공동체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경험을 확대해 나가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2016년부터 칠레는 연극을 정규 교과목으로 교육할 예정이다. 우리는 의회에 연극을 교과목으로 채택할 것을 요청했고, 전 의회와 문화부가 동의했다.4) 사람을 향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이를 꾸준히 지켜나가면 무엇인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지역과 사회, 경제적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이 교육을 통해 공연예술을 접하게 되었고, 예술이 그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기대가 크다. 



4) 교육개혁은 현 미셸 바체렛 헤리아(Michelle Bachelet Jeria)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서비스 시장’이 아닌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로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출처: 코트라 칠레 국가정보



Q. 칠레 예술가들을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카르멘 : 공연예술 마스터 강의, 연기법 등 공연예술 관계자의 역량개발을 위한 무료워크숍을 연중 운영하고, 영국 로열코트(Royal Court Theatre)나 프랑스 태양극단(Théâtre du Soleil) 등 세계적 극장, 극단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칠레 및 중남미 예술가와 작품이 해외에 소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대표적으로 칠레 공연예술마켓인 ‘플라테아’(PLATEA)(각주 5)를 개최한다. 



5) 플라테아는 칠레 및 중남미의 현대공연예술 작품 경향을 소개하고, 공연예술 전문가 간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기간 중 일주일 동안 개최된다. 매년 200명 내외의 공연예술 관계자가 참가하고 약 50개의 작품이 소개된다. 플라테아를 통해 프랑스 아비뇽 축제, 영국 에든버러 국제축제, 캐나다 트랜스아메리카 페스티벌(Festival TransAmériques), 독일 테아터포르멘 축제(Festival Theaterformen), 오스트리아 비엔나 축제주간(Wiener Festwochen) 등 세계 주요 축제로의 진출이 이루어졌다. 또한, 프리젠터 간 초청프로그램은 해외진출의 효과를 높인다. 대표적으로 2014년 소개된 라 레센티다(Teatro La Re-sentida)의 < 미래에 대한 상상(La imaginación del futuro) >은 2015년에만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독일, 싱가포르, 캐나다 등 14개 축제 및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플라테아©Fundación Teatro a Mil

지역 야외공연©Fundación Teatro a Mil

플라테아 ©Fundación Teatro a Mil 지역 야외공연 ©Fundación Teatro a Mil 

Q. 다양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운영하는 조직체계와 예산규모가 궁금하다.

카르멘 : 재단은 기자, 프로듀서, 행정가, 엔지니어, 예술가 출신의 공연예술 전문가로 구성된 6개 팀으로 조직되어 있다. 각 부서는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문화향유를 확대하고,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한다. 집행부는 사업에 대한 전략수립 및 조율, 제작부는 작품제작, 상업부는 재원조성, 대외협력부는 타겟 관객에게 사업과 작품을 홍보, 해외업무 및 공동제작팀은 해외진출, 행정 및 재정부는 전체 사업에 대한 법적 지원 및 재정을 담당한다. 예산은 연 500만 달러(한화 60억 원)다. 31%는 문화예술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금을 통해 공공재원으로 지원되고, 30%는 문화기부법에 따른 기업 세제 혜택에 따른 기부, 나머지는 민간기업 후원, 티켓 판매 수익, 해외사업 수익 등을 통해 조달한다. 

Q. 산티아고뿐만 아니라 칠레 전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적은 예산은 아니지만, 전국 단위의 사업을 운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카르멘 : 그렇다. 그래서 재정후원 외 다양한 방식의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다. 예를 들어 지역 공연 진행 시, 재단은 지역 극장에 대관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티켓 수익의 60%는 재단, 40%는 극장으로 배분되어 돌아가고, 재단 수입의 80%는 단체에 지급된다. 또한, 미디어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전국 단위의 대대적 홍보를 진행한다. 

 

2009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칠레 한국특집 포스터

극단 목화 < 템페스트 > 공연 ©손준현(한겨레)

2009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칠레 한국특집 포스터
극단 목화 < 템페스트 > 공연
©손준현(한겨레)

Q. 2009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사업을 통해 3개의 한국단체(극단 서울공장, 밀물현대무용단, 들소리)를 소개한 이후, 2015년 극단 마방진 < 칼로 맥베스 >와 2016년 극단 목화 < 템페스트 >를 초청했다. 한국공연에 대한 생각과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카르멘 : 칠레 공연과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한국만의 스타일을 보유하고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소개했던 한국 초청작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번에 소개한 극단 목화의 < 템페스트 > 역시 매진행렬과 기립박수 속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6), 극단 서울공장의 < 두 메데아 >도 관객 반응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속해서 한국의 새로운 작품을 칠레 관객들에게 소개하며 관계를 지속해 나가길 희망한다. 한국 작품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



6) 손준현, “굿장단 탄 ‘템페스트’에 안데스 응답”, 한겨레 신문, 2016.01.21.



Q. 프로그래밍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카르멘 : 축제를 기획하는 것은 사람들의 ‘느낌’, 그리고 ‘심장’과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훌륭한 예술’이란 자신이 탐구한 바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내적 욕구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관객이 그것을 항상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철저하고 정직한 여행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점이 축제를 프로그래밍하며 추구하고, 축제에 오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점이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되, 수준 높은 작품만을 소개하고자 했고, 전형적인 서구의 규범과 문화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카르멘 로메로 ©Shinah Kim

카르멘 로메로 ©KAMS

Q. 마지막으로 여성으로서, 리더로서, 당신 개인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카르멘 : 자녀 셋을 둔 엄마다. 남편은 예술가이고, 첫째는 가수, 둘째는 시각예술가다. 셋째는 연극을 하고 싶어 하다가 영화학교에 갔다. 가족 중 나만 예술가가 아니다(웃음).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 예술가들에게 표현의 장을 열어주고 싶어 축제를 개최하게 되었다. 공연예술을 사랑하지만, 실제적이고 조직적인 역할에 더 맞는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조직의 상당수가 여성이다. 우리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축제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로젝트 시작 후, 지원을 받기까지 3년이 걸렸다. ‘열정’, ‘인내’, ‘타인에 대한 경청’을 통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이 아닌 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때로 팀원이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이 걱정될 때도 있지만, 담당자가 확신이 있다면 이를 믿고 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렇게 진행했을 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았다. 마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새로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술이 새로운 세대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떼아뜨로 아밀 재단(Fundación Teatro a Mil)

ⓒKAMS



  • 기고자

  • 정선경_(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장개발팀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