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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뒤따르고 관객과 마주하는 우리 시대의 큐레이터 2014-11-18

예술가를 뒤따르고 관객과 마주하는 우리 시대의 큐레이터
[피플] 워커아트센터 시니어 큐레이터 필립 바이터


우리에게 미술관으로 잘 알려진 미국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 이하 워커). 그러나 워커는 혁신적인 공연 예술 프로그램으로도 명성을 지닌 컨템퍼러리 예술의 본거지이다. 컨템퍼러리 무용, 실험 연극, 뉴 재즈, 아방가르드 포크, 얼터너티브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넘나드는 워커의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시니어 큐레이터 필립 바이터(Philip Bither)를 만났다.



Q(구효진): 워커아트센터가 탄생한 지 30년이 지난 1970년대가 되어서야 독립적인 공연예술 부서가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환경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필립 바이터):
올해 워커아트센터는 탄생 75년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이미 75년 전, 단순히 시각예술만이 아닌 콘서트, 교육 등 다양한 영역까지 포괄하는 복합 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방향을 설정하였던 셈이다.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 동시대적 관점을 가진 작품들을 더욱 활발하게 소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재즈와 시, 무용에 열정을 지닌 교수와 예술인, 기부자 무리가 있었다.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바탕이 되어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위한 전문 인력이 채용되었고, 이로써 재원 조성을 확대하는 한편, 라이브 연극과 무용, 음악 장르에서 아방가르드의 선두에 있는 예술가들을 미네소타에 데려오게 되었다. 당시 워커는 컨템퍼러리 시각예술과 오페라를 결합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시각예술과 타 장르를 잇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당시의 흐름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네소타 오페라는 바로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워커가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워커아트센터 전경

윌리엄 & 나딘 맥과이어 극장

워커아트센터 전경ⓒ워커아트센터 홈페이지 윌리엄 & 나딘 맥과이어 극장ⓒ워커아트센터 홈페이지

1960년대 워커의 또 다른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60년대 중반부터 워커에 와서 명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리 브루어(Lee Breuer),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그랜드 유니온(The Grand Union), 스티브 팩스톤(Steve Paxton),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같은 예술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워커는 명성 있는 예술가들을 초청할 뿐만 아니라 신진 창작자들에게도 집중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워커에 일종의 충성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미니애폴리스는 미국의 중소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서부 지역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1970년대부터 컨템퍼러리 무용, 실험 음악, 연극 장르에서 활동하는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그들이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고 개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 해외 예술가 초청이 워커의 주요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지역적으로도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워커가 1970년대에 공식적으로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시작한 후, 시각예술, 공연예술,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비슷한 모델을 시도하는 기관들이 미국에 여럿 생겨나게 되었다. 웩스너예술센터(Wexner Center for the Arts), 시카고 컨템퍼러리아트뮤지엄(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보스턴 컨템퍼러리아트 인스티튜트(Th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Boston) 등이 그 예이다. 지금은 우리와 같은 기관이 미국 전역에 약 12 곳이 있다. 각 기관의 공연예술파트 큐레이터들은 흥미로운 예술가와 작업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함께 소통하고 있다.

Q : 공연예술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A :
워커의 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예술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서 시작되었듯, 나 역시 음악 애호가로 출발하였다. 저널리즘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는 예술 비평을 쓰며 학내 재즈 페스티벌을 만들었고, 이후 뉴욕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rooklyn Academy of Music, 이하 BAM)의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Nextwave Festival)에 합류하게 되었다.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이 막 첫걸음을 떼던 시기였는데, 조셉 메릴로(Joseph V. Melillo, 現 제작감독)와 함께 우리는 페스티벌의 방향성을 고민하였다. 당시 BAM의 대표는 지원받기 위하여 유럽으로 갈 수밖에 없는 미국의 아방가르드 선구자들, 그리고 나아가 해외의 급진적 예술가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BAM 이후 나는 플린센터(Flynn Center)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컨템퍼러리 예술과 표현에 대한 나의 생각이 버몬트(Vermont)라는 소도시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관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워커에서는 1997년부터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내가 믿고 존경해 마지않던 프로그램을 유산처럼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장르적 지향점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와 접근법을 자유롭게 결합한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고, 단순한 공연 계약이 아닌 레지던시, 위촉 등의 방식을 통해 예술가에게 투자해오고 있다. 우리는 동반자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작품 창작을 지원하고, 작업의 원천이 되는 질문 그 자체와 더불어 작업의 콘텐츠에 있어서도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글로벌한 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흥미롭게 작업하는 예술가가 누가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머스 커닝햄과 존 케이지 <대화(Dialogues)>공연모습ⓒWalker Art Center Archives

트리샤 브라운의 <워커 건물벽을 걷고 있는 남자>ⓒGene Pittman

머스 커닝햄과 존 케이지 <대화(Dialogues)>공연 모습ⓒWalker Art Center Archives 트리샤 브라운의 <워커 건물벽을 걷고 있는 남자>ⓒGene Pittman

컨템퍼러리 예술은 ‘우리 시대와 연관된 것’, 그러나 동시에 ‘예술 양식과 사회가 포괄적으로 만나는 미래로 향해 있는 것’

Q : 컨템퍼러리 예술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

A :
매우 핵심적인 질문이다. 나는 컨템퍼러리 예술을 ‘우리 시대와 연관된 것, 하지만 동시에 예술 양식과 사회가 포괄적으로 만나는 미래로 향해있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다. 즉,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면서도 동시에 현재와 맞닿아있는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워커는 대가급 예술가와 중견 예술가, 신진 예술가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특정 예술가와 계속 함께 작업할지 또는 그만둘지를 결정할 때, 그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모험적인지, 위험을 감수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비록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머스 커닝햄, 트리샤 브라운 같은 이들은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움의 극한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Q : 컨템퍼러리 예술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에 따라서 당신이 예술가, 관객과 맺는 관계 역시 정의된다고 생각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A :
시각예술의 세계에서는 ‘컨템퍼러리 예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개념인지 제대로 이해되고 평가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부분 학구적이고 정제된 접근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이 ‘프로그램’화되고, 오직 큐레이터나 학자, 기관을 위해서만 전시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컨템퍼러리 예술이 해독되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 나에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에게 문맥을 읽는 수단을 제공하고, 관객이 예술가와 만나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워커에서는 작품의 출발점이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우리 웹사이트의 ‘워커 채널(Walker Channel)’이 그 예다. 우리는 작품을 위촉할 때마다 예술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으며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든다. 아카이브 목적도 분명 있지만, 관객이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는 문맥적 미디어 수단(tool)이기도 한 셈이다.

워커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플랫폼으로 ‘쉽게 말해요(speak easy)’란 북클럽 형태의 모임이 있다. 우리는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이 둘러앉아 대화할 수 있도록 극장의 바를 개방하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창작자가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아티스트 토크’에서는 사람들이 부담감을 느끼고 질문을 꺼려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한다.

75주년 워커 컬렉션

에리코(Eiko)&코마(Koma) 듀오와 대화하는 필립 바이터ⓒAndy Underwood-Bultmann

75주년 워커 컬렉션ⓒ워커아트센터 홈페이지
 
에리코(Eiko)&코마(Koma) 듀오와 대화하는 필립 바이터ⓒAndy Underwood-Bultmann

큐레이팅은 얼굴 없는 기관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

Q : 워커에서는 큐레이터 회의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 큐레이팅 과정을 외부에 공개하는 회의라니, 무척 흥미롭다.

A :
사실 공개회의가 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우리는 지역의 풀뿌리 단체와 사람들이 자신의 커뮤니티와 문화,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존중한다. 이러한 존중과 겸손함 없이는 그들의 눈에 우리가 학구적인 엘리트 집단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큐레이터 회의를 공개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다. 연초마다 일반 대중들에게 그해 시즌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가 왜 특정 예술가와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일종의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큐레이터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거대한 얼굴 없는 기관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Q :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있어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A :
나는 예술가와의 직접적 교류와 소통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것이 내가 관리자의 역할을 맡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과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 그들의 작업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기도 한다. ‘드라마투르그 또는 연출가가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가?’는 오늘날 미국에서 논쟁의 주제이다. 컨템퍼러리 퍼포먼스의 세계에서는 예술가가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가장 흥미로운 작업들이 때로는 미심쩍거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들을 시도하는 예술가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는 길을 앞서 나가는 예술가를 뒤따른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A :
워커는 현재 장르별 부서로 나누어져 있지만 복합(multidisciplinary) 센터에서 융합(interdisciplinary) 센터로 점진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우리는 길을 앞장서는 예술가들을 뒤따른다. 이들은 작업 방식과 장르를 혼합하기 시작하였으며, 더 이상 스스로를 ‘시각예술가’라던가 ‘무용가’라는 식으로 규정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큐레이터들 역시 장르별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팀제로 일하고, 장르 간 융합을 시도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감지하게 되었다.

나는 예술가와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 예술가들은 공간을 재창조하고, 표현 양식을 변혁해나간다. 우리는 크고 멋진 건물과 극장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가들을 이러한 공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축의 개념을 전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기관이 더 이상 중요하고 필요한가?’, ‘예술 기관은 과연 예술가를 돕고 있는가, 아니면 방해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 매체를 위해 창작하기도 하고, 매우 작고 친밀한 규모로 작업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기관의 도움 없이도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관이 올바른 미션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예술가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관의 우선적인 목표가 ‘기관의 존속’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자존심과 자만으로 운영되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예술가 없이는 기관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우리 기관이 커다란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그 파워를 공정하고 겸손하게 분배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 기고자

  • 구효진_아시아문화개발원 예술극장 사업팀 커뮤니케이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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