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2022 이슈 결산 좌담회 2022-12-28
 

배리어프리, 현장의 온도

 

진행 및 정리: 허영균(본지 편집장)
참여: 김민솔(독립 프로듀서), 김원영(무용수, 변호사), 신재훈(극단 작은방 연출)

공연예술 분야에서 각각 배리어프리 공연 연출, 접근성 매니저, 퍼포머로 다른 역할을 경험한 패널들과 함께 2022년 현재 배리어프리에 관한 현장의 온도를 이야기 나누었다. 창작자로서 또 공연예술계의 구성원으로서 배리어프리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개인의 경험과 더불어 배리어프리의 다듬어지지 않은 모서리를 들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배리어프리 좌담회

배리어프리-시도의 출발
허영균: 안녕하세요. 각자 공연예술계에서 맡고 계신 역할과 함께 배리어프리 작업과 관련한 경험을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처음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접하고 시도하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하네요.

신재훈: 극단 작은방에서 연극 연출을 하고 있는 신재훈입니다. 우연히 전통예술 분야 ‘탈춤’ 창작자들과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분들이 춰오시던 춤이 ‘문둥북춤’이라고 특정 장애를 묘사한 춤이었어요. 이분들은 아주 오랫동안 문제제기 없이 전통을 전승하는 의미로서 춤을 이어오셨는데, 몇 해 전부터 무대에 서기 이상하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5년 정도 전에 이런 고민을 나눌 기회가 있었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탈춤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함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화들이 지금은 배리어프리 형식으로 도약하여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실은 장애인이라든가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 속에서 작업을 해나가며, 배리어프리라는 개념을 만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국립극장에서〈틴에이지 딕〉이라는 공연을 제안받아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연습 단계에서부터 기획된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했습니다.

김원영: 변호사이기도 하지만 ‘무용수’인 김원영입니다. 2011년~2012년도 대학원 생활 중 학교 총연극회 친구들과 장애가 있는 저의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형 연극을 만들어 보자며 팀을 꾸렸습니다. 학교 안에서 만든 공연이었는데, 그때 아마 어떤 자극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공연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청각장애, 시각장애가 있는 친구들도 누구나 와서 공연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냐고 뜻을 모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악한 수준의 배리어프리 공연이었지만, 관람객들에게 스마트폰을 빌려주어서 문자통역을 시도하거나 채팅을 통해 문자통역을 제공한다던가 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2년 뒤인 2013년도에 정식 팀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배리어프리라고 지칭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가능한 모두의 접근성이 보장된 공연을 만들자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팀이 영국의 그레이 아이(graeae)였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접근성이라는 것이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고, 공연 프로덕션 안에서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레이아이를 리서치 하며 깨닫게 됐고, 집중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변호사가 되어 공연계를 쭉 떠나 있다가 몇 년 전에 돌아왔는데, 배리어프리를 시도하는 팀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이 시작되고 있더라고요.

김민솔: 독립 프로듀서이면서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는 김민솔입니다. 저는 관객을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니까, 공연의 열악한 접근성에 대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극장이나 공연의 컨디션에 따라 특정한 사람들이 올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봤고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년층 관객, 시골에서 오신 관객들의 매너 문제, 어린이 관객의 소음 문제 등으로 공연 주최 측으로부터 입장 거절을 당하는 것들을 보면서 기획자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화장실만 보더라도 센서로 물이 틀어지는 세면대 중엔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인 경우가 많고요. 키높이 방석이 있는 극장은 과연 몇 개나 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서촌공간 서로에서 몇 년 동안 기획을 했었고, 그 인근에 농학교와 맹학교가 있어 그 분들과 연계한 낭독공연을 했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배리어프리에 관한 관심이 구체화 되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용 기획을 주로 했었는데, 이 아름다운 무용 공연을 시각장애인 분들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상상했단 말이죠. 그러다가 맥캠리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유럽 쪽에는 음성해설 같은 것이 개발되어 있다는 말씀을 듣고 더 구체적인 관심이 생겼습니다.

배리어프리의 현 단계
허영균: 민간에서든 공공에서든 배리어프리적인 시도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사례와 선례가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부딪히며 하나씩 룰과 약속을 만들어나가는 초기의 단계인 것 같아요. 공연장이나 축제, 행사 등에서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만들기도 하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에서도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 같은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정도 사이에 시작된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금의 배리어프리 작업의 경향 그리고 방법은 어떤 식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시나요? 동료들과 이야기 나눌 때, 배리어프리 개념이 어떻게 다루어지는 지도 궁금하고요.

김민솔: 솔직히 말하면 배리어프리가 악세서리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시도를 하고 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너무 좋지만, 몇몇 작품들은 ‘저럴 거면 시도하지 말지’라는 생각도 들게 하거든요. 배리어프리 공연이 특별하다고 생각할 때부터 문제인 것 같아요. 남들하니까 나도 해야지란 생각으로 우후죽순 시도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좋다’에요.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환경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극장 혜화동1번지는 전통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잖아요? 그럴 수 없다면 대안을 찾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시도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리어프리는 패션이 아니니까요. 또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다 보니, 이 포지션 혹은 역할에 대한 인지가 꽤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김원영: 너무 급하게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물론 그래도 많아지는 것이 좋은 게 아니냐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과연 많아지기만 하는 것이 좋은 건가 의심해야 한다고 봐요. 이를테면 배리어프리라고 해서 프로덕션 단계부터 완전히 수어통역사가 개입하거나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어떤 팀들은 공연장 모형 세트까지 만들어서 프로덕션 단계에서 배리어프리 시도를 한다고 들었거든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팀이 있는 반면에 여전히 또 많은 공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든요. 배리어프리 공연이라면 기본적으로 공연장 안내원이 립뷰 마스크를 쓰는 것부터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상대피 안내 멘트부터라도 접근성을 높일 수 있거든요. 이상적인 배리어프리 작업의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시도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수어 통역을 프로덕션 단계부터 할 수 없을 수도 있겠죠. 너무나 많은 예산이 들어가잖아요. 그렇지만 자막을 제공할 수는 있죠. 개방형 자막이 어렵다면 폐쇄형 자막을 제공할 수도 있고요. 하려면 너무 잘해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김민솔: 김원영 선생님 말씀에 동감해요. 접근성이 조금 좋아진 공연을 우리는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죠. ‘배리어프리’라는 타이틀을 공연명 앞에 붙이고 나면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어요. ‘이 정도로 배리어프리라고 해도 될까?’하는 자기 검열이 생기는 것 같아요. 립뷰 마스크를 쓰는 것부터 해서 기획자들은 배리어프리라는 말이 없었을 때도 관객의 요청이 있었을 경우, 방법을 찾아 냈었거든요. 음성해설이 없는 공연이지만, 음성해설을 제공한다던가 대본을 미리 공유 드린다거나, 개별적으로 작품 설명을 해드린다거나, 원하신다면 개별적인 터치투어라도 해서 계속 방법을 찾아왔던 것 같아요. 정답은 없잖아요.

김원영: ‘음성해설 전문작가가 따로 계시다는데, 그걸 준바하려면 품이 엄청 많이 든다는데?’이런 생각부터 출발하면 어려운 상황인 거죠. 그렇게 못하는 공연이어도, 스태프 중 한 명이 어설프더라도 ‘지금 무대 위에 배우 두 사람이 나와 있어요.’라고 설명만 하더라도 훨씬 많은 분들이 공연을 경험할 수 있어요. 완벽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하려는 시도가 중요해요. 현장에서 기지를 발휘해서 실천적으로 해왔던, 매우 불완전하지만 많은 관객들에게 접근성을 높이려는 실천이 오히려 제도와 지원이 생긴 후로 소극적이게 되거나 어려워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신재훈: 아마도 자리매김은 영원히 안 될 테지만, 논쟁의 씨앗들은 좀 곳곳에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영역이 나뉘어 접근성 매니저님이 배리어프리 관련 업무를 전담했다면, 통합적인 차원에서 창작진들이 이야길 나누기 시작했거든요.

허영균: 창작할 때의 고려사항, 관객에 대한 고려 등, 서로의 약속과 사회적인 합의가 조금씩 섬세해지는 과정인 듯합니다. 이 섬세한 결을 처음부터 잘 다져가야 할 테고요. 재훈 연출님께서 말씀하신 통합적인 차원에서의 대화와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기획, 연습, 실연의 단계에서 관객을 만날 때까지의 물리적, 인적 조건들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나요?

신재훈: 편집장님이 표현하신 ‘섬세한 결’을 바꿔서 이야기 하자면,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과 부서의 동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준비를 다 잘 해놓은 것 같은데 전화 예약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기도 하고, 극장 시설 파트에서 왜 이런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고요. 공연이라는 것이 무대 위와 옆에 모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작은 영역까지 길게 뿌리가 뻗어져 있다는 것을 배리어프리 공연을 준비하면서 확인하게 되었어요. 결론적으로 모두가 함께, 통합적인 이야기가 나눠지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뭔가가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허영균: 공연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공감과 합의’가 배리어프리 작업의 처음이자 끝이란 생각이 듭니다. 합의의 ‘정도와 깊이’는 그 다음 기준이 되겠고요.

김민솔: 접근성 매니저가 많다면 많고, 없다면 없는데 아직 모두 자리 잡지 못하고 여러 시도를 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연출, 기획 등 무엇을 중심에 두는 접근성 매니저인가에 따라 성향은 다른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제가 PD를 맡은 공연에 따로 접근성 매니저를 두지 않고 직접 일을 하는데, 접근성 매니저로서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제가 자꾸 걸림돌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뭔가 해야 한다,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매번 설득해야 하고, 제안이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신재훈: 국립극장의 연습동의 문이 여닫이문이었는데,〈틴에이지 딕〉의 두 배우 조우리, 하지선 님이 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접근성 문제가 제기 되었어요.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여닫이문을 미닫이문으로 바꾸었습니다. 분장실도 문 공사를 다시 하고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었고요. 이걸 해내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 국립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가능할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각양각색의 접근성 매니저
허영균: 접근성 매니저란 말을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접근성 매니저라는 단어, 개념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현재 국내에서 접근성 매니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고, 무엇을 하며, 어떤 교육과 지원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김원영: 영국의 개념을 국어로 그대로 번역한 것이 ‘접근성 매니저’인데, 영국에서는 ‘그레이아이’를 중심으로 공연을 통합시키려는 팀들이 제도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양산된 창작자들이 호주의 극장에 접근성 매니저로 전속 취업을 한다거나 하는 사례를 만들어 냈고요.

김민솔: 연출가마다 스타일이 다르듯이 접근성 매니저도 모두 하는 일이 달라요. 저를 기준으로 보자면, 프로덕션에 따라 다르지만 티켓 오픈 전부터 팀 워크숍 진행부터 홍보물 방향까지 함께 작업합니다. 공연 안내문에 쓰일 워딩을 어떻게 할 것인지, PD와 연출이 결정하는 과정에 함께 하고요. 자막을 쓸지, 수어통역을 제공할지, 컴플레인에 대한 대비도 하고요. 작품 연출의 입장에 더욱 집중하여 접근성 매니저 업무를 수행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관객에 입장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허영균: 한편으로 접근성 매니저 홀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접근성 매니저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언젠가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각 매니저마다의 전문영역에 대한 고찰과 대비도 준비해 나가야 할 것 같아 보입니다. 관객 대응이나 극장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준비는 프로덕션 마다 달라지는 접근성 매니저보다 해당 플랫폼들이 각 상황에 맞는 체계적인 대비를 해두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재훈: 어떤 분과 작업하느냐에 따라 접근성 매니저의 업무나 위상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접근성 매니저님께 많이 의지한 연출이거든요. 어떤 작은 일이라도 팀내에서 발생하면 다 물어보다보니, 결국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까지 하시게 되었거든요.

배리어프리의 제한성
허영균: 맹점은 관객을 향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관객개발 측면에서 장애 관객을 위한 관람 방식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요? 공연 전후의 이동지원과 더불어서 공연에 대한 접근성 장치로서 기존의 음성해설, 수어통역, 문자해설 방식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느끼시는지요? 더불어서 배리어프리라고 통칭하지만, 수많은 장애의 유형이 있잖아요. 공연에 참여할 수 없는 창작자의 몸도 다양하고요. 현시점에서 ‘배리어프리’에서 고려하는 배리어의 대상이 한정적이란 생각이 드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김민솔: 시청각 장애, 휠체어 이용 관객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본인의 작품을 해치는 배리어프리를 시도하고 싶지 않다는 작업자들도 있었어요. 배리어를 말 그대로 장벽이라고 이해한다면,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 예를 들어, 오후 1시, 오전 11시에 공연을 하는 시도도 배리어프리의 노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허영균: 실제로 몇 해간 무대를 떠나 있다가 복귀한 배우께서 공연 내내 수어통역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적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어요. “내 장면은 누가 보장해주지? 내 연기는 누가 보호해주지?”라는 말씀을 하더라고요. 배우로서 온전히 무대와 연기에 몰입하는데 늘 그림자처럼 동반되는 수어통역이 방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처음 생각해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전회차가 아닌 일부 회차만 수어통역을 제공한다거나 하는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을텐데, 이런 지점에 대한 의견들이 있으실까요?

김원영: 수어통역이 포함된 창작물 자체가 퍼포먼스에 포함이 되고 있는 경우에는 전회차 수어통역을 동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일부여도 충분히 의미있는 실천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배우든, 연출이든 수어통역이 있어 원하는 대로 작업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발레를 못하는 것을 인정하거든요. 그처럼 시각장애인이 즐길 수 없는 공연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윤리적 책임감의 압박을 느껴서 하는 배리어프리는 오히려 창작을 덮어버리는 격이겠죠.

허영균: 신재훈 연출님의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작업이나〈틴에이지 딕〉의 경우, 배우와 일대일로 등치된 수어통역사 분들이 수어통역과 함께 연기를 펼쳤는데요. 그런 선택을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과정에서 설득해야 할 것들은 없었는지도요.

신재훈:〈틴에이지 딕〉은 수어통역사 전원이 등장인물과 유사한 의상을 입었고, 분장도 진하게 했죠.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수어통역사님과 출연자가 일대일로 붙어 다니게 했었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한 건 아니었어요. 시작은 어떻게 좀 더 배리어프리를 잘 해볼까였고,〈틴에이지 딕〉의 분장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의 제안을 받고 수어통역사 분들과 합의 끝에 상호작용하여 그런 결정과 결과를 만들었어요. 천하제일탈공작소 작업은 탈춤꾼들이 수어통역사가 옆에 계셔서 덜 쑥스럽고 힘이 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반면 수어통역사들이 배우보다 도드라져 보인다는 문제제기도 있었긴 합니다.

김민솔: 아마도 예산 문제로 전회차 수어통역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다만 앞서 말씀하신 연출적 선택의 경우 통번역팀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좀 더 배우 쪽과 긴밀하게 작업하는가, 수어‘통역’에 집중하는가는 팀마다 다르더라고요. 역시 전문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역사들과 작업을 하다보면 외국어 통번역처럼, 계속 회의를 통해 의미와 맥락을 파악하시더라요. 결국 연출님들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허영균: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목소리가 들리거나, 모습이 상상되거나 보일 때 하나의 인격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자막이 공연 안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때, 하나의 인격을 가진 발언으로 들리고 보이거든요. 공연 대본에는 다섯 명의 출연자가 있겠지만, 저에게는 10명으로 보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감상자의 입장에서 배리어프리의 연출적 시도가 가져오는 변화는 꽤 크다고 봅니다. 연출이 책임져야 할 것이 더 늘어난 셈이기도 하겠네요. 음성해설 이야길 잠깐 나누고 넘어갈까요? 무대나 전시에서 음성해설을 들을 때, 묘사나 서술의 방법이 다양하다고 느끼거든요. 같은 풍경을 봐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듯이, 음성해설사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설이 이뤄질테니까요. 10명의 음성해설 대본작가가 있으면 10개의 다른 해설본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재훈: 맞습니다. 아주 다르죠. 어떤 분들은 묘사를 하거나 문학적 표현을 쓰지 말고 명확하게 ‘한 걸음, 두 걸음 걸었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문학적 표현을 풍부하게 쓰시기도 하고요. 저의 경우에는 후자가 더 좋았습니다. 최근 지방 공연 때 폐쇄형 단말기를 사용하여 음성해설을 지원했는데,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아마도 도슨트처럼 여기셔서 그런 듯 합니다.

김민솔: 비장애인 관객들이 음성해설에 대해 만족한 것은 아마도 작품을 해석, 해설해준다고 생각해서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행동의 묘사가 아니라 장면의 해설이 들어가니까 감상이 수월했던 거죠. 음성해설 전문가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 음성해설 대본 작성법은 영국식, 유럽식, 호주식, 미주식 등이 있으며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음성해설에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음성해설사인 것 같고요.

허영균: 단순하게는 해설사의 목소리가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도 작품을 감상하는 결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김원영: 누가 음성해설을 하는지가 정말 중요해요. 무대 위의 퍼포머와 음성해설사의 젠더 관계성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고요.

바람과 기대
허영균: 마지막으로 올해 배리어프리와 관련한 전반적인 소회와 함께, 내년과 그 이후에 공적, 민적으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지점이 있다면 짧게 한 마디씩 나눠주시면서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신재훈: 배리어프리가 악세사리가 아닌 다른 세계가 만나면서 생기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연출로 섭외되어서 극단 작업 바깥에서 배리어프리를 시도했었지만, 내년에는 극단 내에서 이런 시도를 함께 해보기로 했는데요. 관객들 이전에 창작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시도해볼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김원영: 어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회를 다녀왔는데, 장애예술에 대한 예산이 늘었더라고요. 장애인 관련한 부분은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지지를 받아요. 좋은 일하는 걸로 보이니까요. 그런데 여전히 장애인 창작자는 참 적습니다. 배리어프리에 관한 관심만큼 다양한 장애인 창작자들에 대한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솔: 접근성 공연을 해보지 않은 동료들을 만나는데, '하지 않음'에 대한 죄책감을 많이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런 동료들한테는 시도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얘기해주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접근성 장치가 제공되고, 제공되지 않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원영
공연 창작자이자 글쓰는 사람.〈무용수-되기〉,〈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법〉,〈인정투쟁; 예술가편〉등의 공연에 배우 또는 무용수로 참여했다〈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등의 책을 썼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법인 덕수 등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신재훈
극단 작은방에서 글을 쓰고 연출한다. 비움으로써 풍성한 무대를 꿈꾼다. 최근 전통예술 분야 창작자들과도 활발한 협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풍편에 넌즞 들은 아가멤논〉,〈금조 이야기〉,〈이야기에 대한 이야기〉,〈틴에이지 딕〉등을 연출했다.

김민솔
베짱이를 꿈꾸지만 개미처럼 일하는 슬픈 연극인으로 독립 프로듀서이자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며, 음성해설 대본을 가끔 쓰고 있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중 관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독립 기획자로 일하고 있으며,〈옥상 위 카우보이〉,〈2022서울국제공연예술제〉접근성매니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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