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메세나의 현주소 <1>
일본 메세나 활동의 흐름
글: 기무라노리꼬 (프리랜서 공연기획자)
일본에서 ‘메세나’라는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에 개최된 <제3회 일본-프랑스 문화 서밋>부터라 할 수 있다. ‘문화와 기업’이라는 주제로 양국의 기업가, 문화인, 지식인들이 3일간의 토론을 통해 기업에 의한 문화 지원이나 문화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며 이 자리에서 ‘메세나’라는 말이 주목을 받았다. 문화 지원을 의미하는 ‘메세나’라는 전문 용어가 이렇게 많이 사용된 것은 아마도 이때가 처음일 것이다. 그 후, 1990년에 <사단법인 기업메세나 현협의회>가 발족하면서 더욱더 ‘메세나’라는 용어는 일반화됐다. 또 같은 해, <사단법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1% 클럽>을 창립해서 회원 기업과 개인이 경상 이익이나 가처분소득(假處分所得)의 1% 이상을 사회공헌활동에 기부하는 활동도 시작했다.
거품경기(1980년대 말∼1990년대 초)가 일본열도를 덮어 있던 시절, 돈을 아낌없이 쓰는 화려한 메세나 활동이 번창했는데 거품이 사라진 후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소박한 메세나 활동이 등장하는 등 규모 면에서 보면 축소됐지만 활동 층은 확대되고 있으며 다양화되고 있다. 또 그 개념도 ‘기업에 의한 예술문화지원’부터 교육이나 환경, 사회복지 등도 포함한 ‘기업에 의한 사회공헌활동’으로 해석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메세나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고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본격화 되어온 지난 일본의 20년, 그 흐름을 살펴보는 것과 함께 메세나 활동 활성화에 노력하는 단체, 특히, 공연예술분야를 지속적인 지원을 해온 <재단법인 세존(Saison) 문화재단>과 <재단법인 아시히맥주 예술문화재단>의 사례를 2회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기업 메세나 출발부터 1990년의 동향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기업의 문화 참여라고 하면 해외에서 오페라를 초청하거나 인상파 그림을 고액으로 구입을 하는 등, 말하자면 구미의 문화를 수입하고 기업 이름을 화려하게 알리는 홍보적인 행위가 많았다. 구미의 뛰어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문화 참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것을 변화시킨 것이 ‘메세나’라는 용어의 등장이다. 이 용어가 사회 전반에서 퍼지면서 완성된 작품을 문화 참여라는 이름 아래서 소비할 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환경이나 예술가들의 창조활동 등 문화의 생산 현장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즉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한다는 인식이 싹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90년대는 지원 영역이 확대되고 각 기업마다 개성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또 메세나 활동을 지속화시키기 위해 기본방침을 세우고 연간 예산에 편성시키거나 담당부서를 설치하는 등 기업 내에서의 기반 만들기가 적극적으로 추진된 것도 이 시기이다.
동시에 90년대는 일본이 심각한 경기불황으로 돌입한 시기기도 하다. 이와 함께 기업 메세나의 환경도 크게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전례가 없는 불황 속에 기업들은 메세나(사회공헌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잉여 이익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메세나를 ‘잉여 이익의 환원’ 사업으로 생각하면 이익이 감소되면서 그것을 중단시키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메세나 활동실태조사(사단법인 기업 메세나 현협의회)를 보면 메세나 총액은 90년대 초보다 감소 되었지만, 메세나 활동은 오히려 착실하게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기업 내에 만들어진 메세나 기반(기본 방칙, 예상화, 부서 등)이 단단했으며 오히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수준이 높은 활동을 지향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기업들이 많아졌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메세나는 잉여 이익을 환원하는 사업이며 원래의 기업활동(본업)과는 또 따른 특별한 업무라는 인식에서 기업경영활동의 일부이며 일반업무 중의 하나라는 인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다.
이 시기, 사회 변화와 사회 요구에 따라 등장한 메세나 활동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 현대무용이나 젊은 예술가 등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은 분야에 대한 지원
▶ 워크숍이나 예술창조체험 등 참여형의 프로그램
▶ 복수 기업이 손을 잡은 공동 메세나
▶ 시민, NPO(비영리단체), 공공단체와의 제휴 활동
▶ 각 기업의 시설이나 기술, 지식 등의 자금 이외의 지원 제공
▶ 예술문화진흥을 이끌어가는 인제 교육
▶ 교육, 복지, 환경, 지역사회의 활성화 등과 예술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
▶ 문화예술 분야로 특화된 문화예술재단의 설립과 운영
이 특징들은 지금도 기업 메세나의 보편적인 활동이 되고 있다.
90년대 메세나를 정리하자면, 인식 면에서는 ‘기업 홍보적 문화행사’→‘잉여 이익을 원하는 특별한 사회공헌활동’→‘기업경영활동의 일부’라는 3단계의 변화가 있었으며 내용면에서는 ‘해외 문화예술의 수입’→‘자금만을 제공하여 모든 업무와 운영을 업체에 맡긴 패키지 프로그램 위주’→‘예술 생산 현장에 대한 지원과 지역 사회 또는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 위주’로 변하고 있다.
2000년 이후의 동향과 21세기 일본 메세나
2000년에 들어도 일본의 경제불황은 완화되지 않았고 사회 및 경제 문제는 더욱 심각화되고 있다. 경제나 사회의 동향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기업은 없는 법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메세나 활동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메세나 활동실태조사>(사단법인 기업 메세나 현협의회)를 바탕으로 분석해본다
메세나 총 활동비 단위: 엔
1997년 |
196억8807만 |
2001년 |
175억8029만 |
2005년 |
331억4260만 |
1998년 |
214억7871만 |
2002년 |
212억6398만 |
2006년 |
256억8649만 |
1999년 |
196억5389만 |
2003년 |
224억2517만 |
2007년 |
264억9591만 |
2000년 |
183억2865만 |
2004년 |
232억5698만 |
2008년 |
258억1633만 |
※매년 4,400 정도 기업에 설문조사를 시도하고 답을 한 500-600 기업의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불황기 속에서도 메세나 활동비는 차차 증가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12년간 평균 활동비는 한국 원화로 약 2,840억 원이다. 이것은 동조사의 항목 <메세나 활동 예상화>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질문에 회답을 한 80% 이상의 기업이 전년도 실적을 감안하고 매년 메세나 활동비를 기업 예산으로 계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계속되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메세나 활동이 지속 하는 목적은 뭘까. 2000년에는 ①<사회공헌>, ②<문화예술진흥>, ③<기업 이미지>, ④<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진흥> 순위였는데 2002년에는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진흥>이 2위가 되고 2005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또 3위였던 <기업 이미지>는 이제 5위권에도 들어오지 않으며 이제 메세나가 깊이 기업과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메세나 활동을 추진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2000년에는 ①<문화예술의 계몽 및 보급>, ②<지역문화의 진흥>, ③<젊은 예술가에 대한 지원>, ④<국제교류>, ⑤<청소년에 대한 문화예술교육> 순위였는데 2004년부터는 2위의 <지역문화의 진흥>이 1위가 됐으며 아쉽게도 <국제교류> 대신에 <감상자에 대한 지원>이라는 항목이 올라왔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보면 일본 기업들은 이제 도시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진흥보다 지역사회 공헌을 메세나 대상으로 삼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 것은 예술분야와 또 다른 사회공헌분야와 연결한 복합적 메세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조사를 보면 메세나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 460사 중 40% 정도가 복합적 메세나를 실시하고 있다.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다른 사회공헌분야로서는 <청소년 교육>, <지역활성화>가 가장 많으며 <복지와 의료>, <환경>, <국제교류와 다문화>의 순위이다. 그 예로 장애인의 예술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나 양로원, 병원에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 시도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메세나가 증가를 보이는 배경에는 몇 개 사회적 변화가 있는데 먼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넓게 퍼졌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메세나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주목을 받은 1990년 당시와 비교해도 기업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그만큼 기대도 크다. 둘 째는 NPO등의 시민 영역(시민의 비영리활동으로 구성되는 경제부문)의 대두이다. 요즘 환경, 교육, 복지, 지역 활성화, 그리고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이 높은 NPO단체나 시민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그들과 협조하면서 더욱 사회와 시민이 바라는 사회공헌 및 메세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셋째는 문화예술이 크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문화시설에서의 공연이나 전시회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설이나 오래된 건물 등에서 문화예술활동이 추진되고 있으며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시설이나 프로그램들은 사회적 과제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폭넓은 영역에서 문화예술의 힘을 살리려고 하는 메세나 활동이 개발되고 있다. 위에서의 사회 배경의 변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다양한 복합형 메세나가 등장할 것이다.
2000년 이후의 메세나를 정리하자면 지역 활성화와 문화예술을 연결시키는 프로그램이 증가할 것이며, 또 지역 사회와 거기서의 문제 및 과제들과 밀접한 활동이 활발하게 될 것이다. 그게 비로 21세가 일본 메세나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기업 메세나 운동을 이론과 실천 면에서 떠받쳐온 <사단법인 기업 메세나 현협의회>(http://www.mecenat.or.jp)를 소개한다.
<사단법인 기업 메세나 현협의회>는 1990년에 기업 메세나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또 문화정책, 아트 매니지먼트 등 문화예술지원 전반을 대상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유일한 메세나 전문 인터메디얼리 단체(행정과 지역 사이에서 여러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사업은 크게 6개로 나눠진다. ①기업 메세나를 소개하는 세미나 등을 개최하거나 메세나 관련 서적을 발행하는 <개발 및 보급 사업>, ②기업 메세나 실태를 조사 및 분석하는(메세나 실태조사를 실시) <조사 및 연구 사업>, 메세나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거나 기관지를 통해 메세나 활동을 소개하는 <정보 수집 사업>, ④우수한 메세나 활동을 현창하는(메세나 어워드) <현창 사업>, ⑤세계 메세나 단체와의 교류를 추진하는 <국제교류 사업>, 그리고 ⑥<지원> 사업이다. <지원 사업>은 직접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를 촉진하는 <조성인정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제도는 94년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기부자에 대한 세금 문제를 고려해서 일단 이 협의회에 기부한 다음에 각 예술가 및 단체에 지원금으로 나가게 된다. 08년에 경우, 이 제도를 이용해서 기부를 실시한 단체 및 개인은 1501건, 9억8568만엔(약 123억 원)였다.
최근에는 문화정책에 대한 조언과 제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등, 활동 영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기업 메세나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는데, 다음에는 문화예술분야를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업 메세나 단체 <재단법인 세존(Saison) 문화재단>과 <재단법인 아시히맥주 예술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지원법과 그 성과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