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켄 포스터 Ken Foster
/ 예버 부에나 예술센터 선임 디렉터 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
지난 번 올린 글에서 저는 현재 미국의 공연예술작품의 전반적 동향과 현지 예술가 및 공연 기획자들이 처한 어려운 도전과제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현재의 분위기와 향후 몇 년간의 추세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난번 글에서 밝혔듯이, 미국에는 중앙집권화된 예술 정책집행 기관이 없습니다. 예술정책이 탈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예술조직들이 각각 개별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형국입니다. 그런 모든 민간 기관들의 대응전략을 다름아닌 미국의 ‘사실상의 예술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예술 환경의 추세와 예측 및 전망을 반드시 이해해야 변화하는 환경에 예술 기관/조직들의 대응 방법을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요즘 미국에서 어떤 분야를 얘기하든 경제를 빼곤 논의를 진행 할 수 없습니다.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악의 위기는 간신히 넘겼다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한 정서가 팽배해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2010년 심지어는 2011에도 경제 불안이 계속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고 실업 상태(현재 미국 노동계층 성인남녀 중 10% 이상이 실직상태임)가 지속되어 조만간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금융 중심지인 ‘월 스트리트(Wall Street)의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소위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 보통 미국인들의 생활)는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인들이 대다수 느끼는 정서입니다. 아무도 상황이 조만간 변하리라 예상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의 예술계에 큰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 들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과 이라크에서 진행중인 전쟁입니다. 왜냐하면 매년 미국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미국에 이런 의료보험 제도가 없다는 것에 놀랄 지도 모릅니다.) 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서 미국이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사안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토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예술은 논의의 중심 토론 과제가 아니지만, 지금 언급한 여러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이 우리 예술인 들에게 영향을 주고 또 우리는 적절히 대응해야 합니다. 경제분야를 넘어서, 환경과 관련된 또 다른 추세가 예술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기후 변화에 관한 뚜렷한 국가 정책도 없고 미국 내에서도 그와 관련하여 많은 이견이 없는 가운데, 예술 관련 조직들이 이 분야에 앞장서서 ‘친환경’ 운동을 위해 이산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는 비교적 작은 노력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더욱더 널리 확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국적으로 예술인들의 이동과 여러 가지 예술 공연 순회공연을 위해 교통수단을 좀더 친환경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환경 운동은 해외 순회공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게재한 글에서 미국은 본질적으로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중요한 흐름이며 예술 관련 단체들이 계속해서 주목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하와이와 아마 미국의 또 다른 한, 두 개의 주는 소위 ‘다수 가 소수인 주’(majority-minority state: 단일한 인종 집단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 하지 않는 주) 가 됐습니다. 사실, 본질적으로 미국인은 모두 소수 민족입니다. 그런 추세는 계속 이어 질것이고 향후 몇 년간 점점 더 많은 주로 확산 될 것입니다. 유럽의 혈통을 물려받은 민족이 주류 문화를 이루면서 전통적으로 유럽 중심주의 사고를 갖게 된 많은 예술 조직들에게 끼친 여파는 엄청났습니다. 특히 남미와 아시아에서 이민이 늘면서 상황이 크게 변하여 예술 단체들은 이런 변화된 상황에 적응 해야만 했습니다. 예술단체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관객이 된 남미 와 아시아 이민자들을 포용하기 위해서 그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위한, 또한 그들에 의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예술작품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예술 기획자들의 프로그램 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이민 사회 내에서는, 커다란 성장의 될 수도 있습니다.
눈에 잘 띠지 않지만, “국민의 정서”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미국의 예술계에 끼친 영향이 깊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야심 찬 의제뿐 아니라 경제적 불확실성이 결합하여 미국에서는 불안감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런 불안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돈은 별로 없지만, 여전히 외출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오락적인 측면이 가미되어 매우 재미 있는 공연이라도 내용에 예술성이 별로 없다면 사람들은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미국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가벼운 오락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지만, 예술, 라이브 공연에 경우 에는 사람들이 내용적으로 무엇인가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공연예술계에는 좋은 징조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외출을 삼가 하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즐기는 추세도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코쿠닝 ‘(cocooning: 한 동안 유행했던 현상으로서 주로 집에서 지내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이라고 합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사실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기술 발전이 이루어 지면서, 예술계와 예술단체들의 얼굴이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폰”의 성공으로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해보고자 하는 우리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아이폰으로 십 만개가 넘는 휴대폰 응용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때문에 예술인들이 관객들 그리고 잠재적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관객들의 수요와 욕구에 발 빠르게 발맞추어 대응 해야 한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이는 진부한 방법으로 관객을 끄는 기법에 대한 조바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최신 기술 혁신을 모색하여 갖게 됐다는 데 따른 흥분감도 반영된 것입니다. 기술에 이미 많은 투자를 했던 예술 단체들은 이제는 그러한 투자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투자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는 예술 단체들 에게는 커다란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첨단 기술에 투입했고 정작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줄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개인의 생활을 비인간적인 기술이 통제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크게 실망과 좌절을 느끼면서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추세가 나타났습니다. 즉, 사람들 사이 에서는 ‘최첨단 기술로 이루어진 우리의 생활 환경’(high touch world)에 발맞추어 ‘최첨단 기술이 가미된 공연’(high touch events)-예컨대 ‘라이브 예술’ 따위에 대한 -- 에 갈망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스크린을 통해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에 싫증이 났고 (그것도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에) 라이브 예술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예술 단체들에 영향을 주고 있는 중요한 추세는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지방적인 특색을 지닐 수 밖에 없는 다른 추세들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에는 정부에서 펼치는 중앙집권화된 예술정책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한 지방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는 정책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여러 추세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가 가진 본질적인 변화와 관련되어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추세에도 대응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광범위 하게 나타나는 국가적인 흐름과 그것이 어떤 식으로 예술기관들과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술과 예술가 자신들에게는 어떤 여파를 미칠까? 예술가들도 엄연히 평범한 시민이기 때문에 불확실한 경제, 이민의 증가 때문에 점점 변하는 인구구성, 첨단 기술의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점 등, 일련의 여러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예술가들도 갈수록 첨단기술을 이용 하여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공연되는 작품들 중 마지막 단계인 공연 때는 아니 지만 창작 단계에서는 비디오 기술을 조금이나마 이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 될 것입니다. 예술가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첨단 기술이란 활용 할 수 있는 도구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 할 수 있고 상당히 특이하고 창의적으로 활용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러한 현대 기술의 중심에는 상호 교류와 소통이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즉,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공연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참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관객들이 참여하여 즉석에서 관객 스스로 극의 결말을, 이를 테면 언제든 ‘투표’를 통해서 정하거나 자신들의 반응으로 극의 흐름을 결정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노력도 있습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수많은 공연작품들은 이런 노력을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 저기서 보입니다.
예술인들은 또한 바로 전통적인 의미의 ‘관객’과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관계 에도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일부 연극과 무용작품에서는 직접 예술가 와 관객이 일대 일로 직접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무용작품에서는 관객들이 헤드폰을 끼고, 개인적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춤도 추는 광경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도 앞으로 계속 지속 될듯합니다.
창의성과 공연 내용과 관련되어서는, 우리는 지금 과도기에 도달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예술계는 ‘’반(反) 부시 ‘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정부와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바마가 예술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더 이상 정부를 비판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이라크/아프카니스탄 전쟁을 결부시켜봅시다. 또한 미국 인구 구성에 있어서 본질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과의 직접적 관련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예술이 내용적으로나 작품 제작에 있어서 정치적인 성향을 띤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술인들은 항상 그랬듯이 좀더 보편적인 생각을 탐구합니다. 다만 현재의 불확실한 사회적 상황에서 이런 작품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가볍고 재미있는 예술작품을 보면서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하고 그에 따라 그런 류의 작품은 지금의 어려운 시기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러한 내적인 갈등을 겪는 예술가 들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내가 도대체 지금 당장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내가 관객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나의 예술을 통해 이야기 해야 하나?’ 이러한 질문들은 예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답이 없습니다. 결국 그래서 앞에서 이미 언급한 과도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예전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추세나 예술적인 관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뚜렷이 구분 할 수 있는 흐름이 보일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지난번 게재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예술계와 예술계 종사자들에게는 지금이 최적의 시기도 아니고 최악의 시기도 아닙니다. 즉, 지금 현재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소위 예술의 ‘발판이 약간 흔들리는’ 시기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런 점 때문에 예술가들이나 예술단체들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예술적 실험과 혁신을 추구하기에는 최고의 시기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전략을 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무엇이 가장 현실에 적합한지, 떠오르는 추세 중 어떤 것(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중요한 흐름)을 선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추세가 생겨날지 지켜보고 직접 참여해보고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미국 이외의 지역(특히, 아시아 지역 아마 여러분이 가장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일 텐데요)과 비교하여 미국에 상황에 대해서 몇 마디의 말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지금이 물론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향후 2-3년 후에 새로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고립주의적인 경향을 보였지만,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흐름이 너무도 많이 생겨 나서 이런 고립주의를 계속 유지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미국인 이라면 누구나 향후 10년 후면, 아시아가 국력을 더 키워서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모두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우려를 지닌 이들도 있지만, 예술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과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먼 거리에 있지만, 문화적으로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지역의 예술인들의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예술가들과의 협력을 늘리는 미국 예술가들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예술적 영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몇 년간 더욱 널리 확산 될 수 있는 상황으로서 긍정적이고 기대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술인들과 예술단체들은 전세계 다른 지역 출신 예술 및 예술인들을 겨냥해 이른바 ‘예술 작품 수입/수출 모델’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들과의 교류, 합작을 장기적 관점에서 더욱 발전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기를 더 바라고 있습니다. 즉, 미국 예술계의 지평을 크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 무진 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큰 기대감을 지니고 이런 상황이 도래하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의 바램은 이 글을 읽고 여러분이 미국 예술계의 흐름과 과연 미국 예술계가 맞이하고 있는 예술의 큰 추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글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제가 쓴 글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조언, 질책 등 여러 가지 의견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사이트를 통해서든 아니면 kfoster@ybca.org 를 통해서 직접 저에게 보내주시든 어떤 의견도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