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켄 포스터 Ken Foster
/ 예버 부에나 예술센터 선임 디렉터 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
KAMS가 이번에 저를 공연예술의 국제적 추세를 실은 온라인 저널의 미국 통신원으로 초빙해주셔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 온라인 판 저널이 모든 분야의 한국 예술가들과 예술 분야 전문가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먼저 저에 대한 과거의 경력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의 관점을 이해 할 수 있으실 겁니다. 지난 30년 동안 저는 미국에서 공연예술 분야를 소개하는 프리젠터로 일했습니다. 많은 경우 대학교와 협력하여 일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리틀톤 이라는 콜로라도(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에 있는 덴버시의 작은 교외지역에서 200석밖에 안된 규모가 작은 극장에서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일리노이에 있는 데카터 라는 중부에 있는 작은 마을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2년 동안 한 사립대학에서 공연예술을 소개하는 프리젠터로 근무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펜실베니아(미국 동부 해안에 있는 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명문대학인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에서 근무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명문대학들이 주로 작은 농촌 지역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인데 펜실베니아 주가 이러한 특이한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곳도 예외 없이 펜실베니아 중부에 명문대학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공연작품들을 기획하여 만들어 학생들 에게 뿐만 아니라 더 큰 지역사회에게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7년을 재직한 뒤, 저는 아리조나 주(미국 남서부 턱슨에 있는 아리조나 대학에서 이와 비슷한 직위로 옮겨서 근무했습니다. 분명히 샌프란스시코(미국 서해안에 있는 커다란 국제적 도시로서 상당히 크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 공동체가 존재 하는 곳) 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실제로, 미국의 모든 도시 가운데 1인당 예술가와 예술기관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이 샌프란시코입니다. YBCA는 현대 예술 센터로서 각종 공연뿐만 아니라 여러 전시회를 한다든지 영화도 상영하는 곳입니다. YBCA에서 우리가 특히 관심을 두는 분야는 신선한 아이디어,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예술 작품으로 실험적인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들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형태와 내용의 경계를 넘어서 자신의 생각을 예술적으로 새롭게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찾고 있으므로 자연히 여러 예술 분야를 융합한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연예술 분야에서 30여 년 동안 일하는 동안, 미국공연기획자 협회(APAP) 이사회 (미국에서 공연예술을 위한 가장 큰 예술 협회) 에서 10년 근무하는 등, 여러 공공 기관에 깊이 관여 하여 근무했습니다. 그러한 근무 경험과 다른 저의 업무 경험 덕분에 미국전역에 있는 다양한 지역사회와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미국의 공연예술계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폭넓은 관점을 지닐 수 있게 됐습니다. 바로 그러한 폭넓은 관점을 이 포럼을 통해서 향후 몇 달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첫 번째 보고서에서, 저는 미국의 공연예술 분야의 상황과 맥락을 알려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여러 차례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면 여러 사람들이 미국의 공연예술분야의 장점과 단점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바램은 미국예술과 관련하여 저만의 통찰력을 통해서 그런 오해를 풀어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인식해야 할 점은 미국은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이루는 문화적 다양성이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큰 도시에서든, 일리노이주 데카터 같은 작은 마을이든지, 공동체사회 내에서 여러 소수민족과 문화적 다양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도시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만, 미국 어느 곳에서도 단일민족만의 문화는 없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도시의 예술 소개 기관들과 각종 예술 기관들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다양한 민족들을 자신들의 예술공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므로, 단일한 예술 기관 내에서도 예술 스타일과 문화적 배경이 다양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점 때문에 미국에서 매우 풍요로운 문화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이유라고 봅니다.
이러한 예술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미국 예술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예술계 지원에 관련해서는 미국이 그다지 관대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문화부도 없습니다. 그리고 국립 예술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서는 예술 및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일부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그다지 커다란 양의 지원은 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예술조직들이 다른 조직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자극제의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미국의 대부분의 예술 기관들은 상당량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자신들 스스로 예술작품을 창출하고 소개하는 데에 필요한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원금의 출처는 보통 개인의 기부금입니다. 비영리 예술 기관들에 기부하는 돈의 양에 따라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도 재정적 지원의 원천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그런 경우는 기업의 마케팅 부서를 통해서 기부가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예술 투자 금에 대해서 나중에 자신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기 때문입니다. (종종 비현실적인 환상 일 경우가 많다.) 기업 지원의 출처는 보통 기업의 후원을 통해서입니다. 예술을 지원하는 재단들은 소도시지역, 주, 큰 지역, 전국단위로 운영되는 경우 등 다양합니다. 이런 예술 지원은 일반적으로 재단에 이익이 되는 특정 프로젝트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대부분의 주와 도시들에는 이런 저런 정부 기관들이 있어서 또한 예술계에 지원을 합니다. 예술기관들에는 종종 이런 다양한 조직으로부터 지원금을 얻기 위해서 뛰는 전담 직원들도 상당수가 있습니다.
매출, 다시 말해, 얻어진 수익금은 예술기관의 예산의 무려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예술기관들은 입장권 판매 매출, 매점수익, 시설 임대, 갤러리 입장료, 서점 등, 어떤 식으로 든 영리목적의 노력을 벌이고 유지하여 수익을 창출해 각자의 예술 활동을 지원합니다. 미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통념이 있습니다. 첫째, 수익은 반드시 절반가량은 스스로 창출해야 하며 나머지 절반은 기부를 통해서 얻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수입원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예술기관은 어떤 한 수입원이 줄어들더라도 이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커지므로 더욱 재정구조가 더욱 탄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예술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술은 본래” 허례허식”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일겁니다. 즉, 사람들은 예술이란 경기가 좋을 때는 즐기면 좋겠지만, 경제와 같은 중요한 사안이 온 나라의 관심사일 경우는 그다지 예술은 불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점 때문에 미국 예술계 에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술을 천직으로 삼은 저와 같은 사람들은 예술의 중요성을 지역사회에 일깨워주는데 전념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를 이끄는 원동력은 “사명감”, “비전” 등과 같은 슬로건이며 이를 통해서 예술기관의 목적이 무엇이며, 이런 기관의 활동이 왜 중요한지, 왜 지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우리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사회에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굳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이 일에 기꺼이 계속 종사하고 있는 겁니다. 대부분은 평균 이하의 열악한 보수를 받고 일하며,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우리지역사회에 예술을 일으키도록 노력합니다. 때로는 매우 절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술업계 종사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열정을 가지고 대하는 이상주의적인 부류의 사람들 일 겁니다.
이런 모든 걸림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예술은 미국에서 상당히 큰 산업입니다. 오케스트라, 오페라, 극 예술, 무용 등을 제작하는 단체들은 대도시부터 작은 농촌 지역사회 등까지 미국전역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예술산업의 범위는 또한 너무나도 광대하여 고전음악, 현대 극, 댄스, 재즈, 실험음악, 민속 춤 등, 사실상 모든 종류와 모든 스타일의 노력, 즉, 미국에서 제작된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게다가 미국에는 상당히 큰 공연예술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예술작품 제작 기관들과는 달리, 공연기관들은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위해서 순회공연들도 기획합니다. 공연을 소개하는 이런 노력들을 통해서, 때로는 전국각지에서 공연예술 큐레이터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공연기관들은 규모가 크든 작든, 지역사회를 위해서 일종의 공연예술 시즌을 만들기도 합니다. 저의 경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학생 들에게뿐만 아니라, 더 큰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대학을 기반으로 공연을 펼치는 기관들도 있고, 그러나 대학 캠퍼스를 뛰어넘어서 공연을 펼칠 때는 공연기관들이 규모도 제 각각이며 여러 가지 형태와 모양을 띱니다. 매우 작을 단체도 있고, 예술가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가서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만반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이 공연조직을 100%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대학, 지역사회의 예술 위원회와 소수이지만 민간 비영리 예술 기관 들도 또한 전국 각지에 존재해 있어서 공연예술을 그들의 지역사회에 소개합니다. 공연 제작 업체들 처람, 공연예술 소개도 엄청난 규모를 지닌 산업으로서 오직 예술, 예술가들과 관객들을 연결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는 사명감을 지닌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있습니다.
향후, 제가 올릴 많은 소식들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현재 미국예술계의 현황에 대해 저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시점은 미국예술계에 있어서 최고의 절정도 아니고 최악의 시점도 아니다. 경기침체가 미국의 재계에 영향을 미치듯이 예술기관들에 미칠 여파도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우리가 항상 하고 있는 활동(창의적인 방안을 찾아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우리나라의 예술계를 지원하고 지탱하려는 활동)을 이제는 다른 나라도 모두 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좀더 효과적으로 항상 행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경기침체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우선적인 가치를 두었던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다음에 올릴 기사에서는, 그런 변화에 대해서 좀더 전해드리겠습니다 한편, KAMS여러분에게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미국의 예술계에 대해서 여러분이 혹시 충고할 사항이나 의문점이 있으면 기꺼이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kfoster@ybca.org 로 이 메일을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의문점에 대해서 대답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