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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유럽의 무용 현장들: 펠리에 당스, 임풀스탄츠, 아비뇽 페스티벌 리뷰② 2023-10-25
 

 

동시대적 몸의 현상과 창작의 방식들


 

 
조형빈_무용비평가

 

유럽에는 수많은 공연예술 축제들이 있지만, 그중 무용에 포커스를 맞춘 몇 개의 축제들이 여름 기간에 몰려서 열린다. 2023년 여름, 7월 한 달 동안 여러 나라들을 지나며 이들 무용 축제들을 외부인이자 관객으로서 관찰하고, 유럽의 현대무용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임풀스탄츠, 몸을 바라보는 동시대적 관점들
임풀스탄츠 비엔나 국제 댄스 페스티벌(ImPulstanz Vienn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이하 임풀스탄츠)의 첫 주차의 여러 공연들, 그리고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와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의 공연을 보면서 여전히 살아있는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와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몽펠리에 당스(Montpellier Danse)에서 보았던 것처럼 과거의 시간들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들이 동시대의 흐름 안에서 작동되고 있었고, 그것은 여러 안무가들에 의해 각각의 맥락을 가지고 펼쳐지고 있었다.

도리스 울리히(Doris Uhlich), more than naked - 10th anniversary, ImPulsTanz Classic. © Bernhard Müller  © 조형빈

 
일정의 제한 때문에 임풀스탄츠의 전반부만을 보고 다음 도시로 이동해야 했지만, 열흘 남짓의 시간 동안 볼 수 있었던 공연과 행사들을 통해서도 임풀스탄츠가 보여주고자 하는 무용의 면모들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개막공연에서 짧은 버전으로 미리 선보였고, 며칠 후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Quartier Wien)에서 전체 버전을 선보인 도리스 울리히(Doris Uhlich)more than naked2013년 초연했던 공연을 오리지널 캐스트로 다시 한번 무대 위에 올린 공연이었다. 모든 퍼포머가 나체로 등장하는 more than naked는 단순히 옷을 벗는다는 것을 넘어서서, 피부와 근육을 비일상적인 방식으로 다루는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몸으로 인지하는 영역과 춤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more than naked가 보여주는 몸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국면들은 여전히 유효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공연이었다.
 
유럽이라는 지형 안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어떤 종류의 공연들도 보였다. 루이스 드 아브레우와 칼리스토 네토(Luiz de Abreu & Calixto Neto / VOA)의 공연 O Samba do Crioulo Doido에는 브라질 댄서 한 명이 등장한다. 나체로 등장한 한 명의 남성 무용수는 브라질 국기로 도배된 무대 앞에 서서 에로틱한 춤을 추는데, 이 벌거벗은 몸은 국가와 개인의 정체성 사이를 잇는 매체(medium)로서 작동하면서 탈식민주의와 인종주의, 권력의 문제 사이에서 몸이 무엇을 매개하는지 고민하게끔 했다. 공연이 단순히 그 안에 품고 있는 이야기로써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펼쳐지는 사회의 지형까지 함께 포함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O Samba do Crioulo Doido가 보여주는 몸과 정치성은 이것들이 다른 지역(이를테면 한국)에서 어떤 형태로 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론 피터스(Jeroen Peeters)And then it got legs북 프레젠테이션, Volkstheater © 조형빈


이외에도 많은 흥미로운 공연들이 펼쳐졌지만, 이번 임풀스탄츠 프로그램 중에서 관심 있게 본 것은 예론 피터스(Jeroen Peeters)의 북 프레젠테이션 행사였다. 2022년에 발간된 예론 피터스의 책 And then it got legs는 무용 드라마투르기(Dramaturgy)를 주제로 드라마투르기의 재료, 과정, 구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예론 피터스의 경험을 토대로 구성한 책이다. 이번 임풀스탄츠에서는 올해 2판이 나온 이 책을 가지고 퍼포먼스 이론가 보야나 스베이지(Bojana Cvejić), 드라마투르그 가이 쿨스(Guy Cools)가 대담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미 이론가이자 드라마투르기로서 오래 작업을 해 온 세 사람의 토크를 통해 안무가와의 관계나 작업과의 관계 등 드라마투르기라는 역할이 가지고 있는 난점들을 세심하게 짚는 대담이 진행되었다. 임풀스탄츠를 구성하는 다양한 공연들 이외에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동시대 무용 현장이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고,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비뇽 페스티벌, 축제가 되는 도시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작은 도시 아비뇽에는 매년 7월 한 달 동안 도시 전체를 감싸는 공연예술 축제가 열린다.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은 비슷한 시기 열리는 두 개의 축제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예술감독에 의해 선정된 수십 개의 작품들로 구성된 페스티벌 IN’이고 다른 하나는 매년 천 개가 넘는 단체들이 자유롭게 참가하여 도시의 극장들을 메우는 페스티벌 OFF’. 올해 역시 천오백 개의 다양한 공연들이 페스티벌 OFF를 통해 아비뇽의 극장에 올랐지만, 나는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페스티벌 IN에 올라간 몇몇 무용 공연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거대한 교황궁 안뜰(Cour d'honneur du Palais des papes)을 가득 메운 관객들 © 조형빈


 
아비뇽 페스티벌은 1947년 장 빌라(Jean Vilar)에 의해 아비뇽 연극제가 만들어지면서 시작한 축제로, 올해로 77번째를 맞아 장르를 넘나드는 44개의 공연이 도시 곳곳의 건축 유산들을 극장 삼아 올려졌다. 20229월 새롭게 디렉터를 맡은 티아고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는 아비뇽 페스티벌이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외국인 감독으로 올해 첫 축제를 이끌게 되었다. 팬데믹의 여파를 극복하고 더욱 접근 가능하고 경계를 허무는 축제가 되기 위하여, 이미 지역 축제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아비뇽 페스티벌에 예술과 예술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영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새로운 디렉터와 함께 변화의 움직임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번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무용 작품으로 분류된 작업은 열 개 남짓이었다. 전 유럽의 주목을 받으며 열리는 축제인 만큼, 상당수의 공연이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무가들의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아비뇽 페스티벌을 위해 신작 The Romeo을 만든 트라젤 해럴(Trajal Harrell), 여성 작가들에 의해 쓰인 TV 시리즈를 기반으로 신작 Black Lights를 만든 프랑스의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Mathilde Monnier), 13년 전 아비뇽 페스티벌을 위해 만든 작업 En Atendant를 같은 공간에서 재연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등 세계가 주목하는 안무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작업을 선보이고 있었다.
트라젤 해럴(Trajal Harrell)The Romeo© 조형빈


미국 출신의 안무가로 2019년부터 샤우슈필하우스 취리히 댄스 앙상블(Schauspielhaus Zürich Dance Ensemble)의 디렉터로 활동 중인 트라젤 해럴은, 아비뇽 교황궁 안뜰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바라보는 작품을 올렸다. 기원이 모호한, 그러나 전 세계에 알려진 개념으로서의 캐릭터를 여러 무용수의 군무로 표현하고, 의상과 무대의 웅장한 울림이 겹치면서 아비뇽 한복판에 춤의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공연 대다수가 아비뇽의 오래된 역사 유적을 극장 삼아 이루어지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비단 The Romeo뿐만이 아니었다. 조명 설치 없이 오로지 태양광만을 빛 삼아 해가 완벽히 질 때까지 공연을 이어가는 것으로 유명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En Atendant, 어둠 속에 서서히 잠겨 들면서도 특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과거의 작업을 셀레스탕 회랑(Cloître des Célestins)에서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En Atendant가 올려진 셀레스탕 회랑 © 조형빈


창작에서 공간과 시간의 문제
한정된 시간 동안 여러 축제를 방문하느라 각 축제의 모든 부분을 경험할 수는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유럽 무용 지형의 어떤 특성들이 있었다. 먼저, 나는 관객으로서 여러 축제를 돌아다녔지만, 공연을 만든 창작자들도 나처럼 유럽 전역을 계속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몽펠리에 당스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인 보리스 샤르마츠는 임플스탄츠에서도 또 다른 작업물 선보였으며,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게 보지 못했던 마틸드 모니에의 Black Lights를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안무가와 단체들이 같은 작품 혹은 제각기 다른 작품으로 같은 기간 여러 축제를 돌며 공연을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투어를 다니는 작품들은 바로 그 이유로 지역적 교차특수성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창작되고 있기도 했다.
 
몽펠리에, 빈 그리고 아비뇽 세 도시는 작지 않은 규모로 축제를 올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축제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어 흥미로웠다. 몽펠리에 당스는 국립안무센터를 중심으로 한 창작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축제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임풀스탄츠는 넓은 규모의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교류의 장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IN’‘OFF’를 가로지르며 막대한 규모로 올려지면서, 공연예술이라는 하나의 글로벌 산업 구조를 감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또한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지금 유럽에서 몸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또 몸을 바라보는 창작자들의 시선은 어떠한지 역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축제 곳곳에서 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몸을 해체하고 그것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작업을 볼 수 있었고, 이는 시간을 가로질러 소환되는 작업들과 함께 무용의 영역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었다. 유럽의 지형이 보여준 모더니즘으로부터 건너온 동시대적 시간성, 그리고 지역적 교차와 창작의 공간성은 지금 한국과 아시아의 상황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방식의 창작이 가능할지, 그것이 구현되는 공간과 시간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할지, 2023년 여름 유럽에 도착할 때 가지고 있었던 질문보다 더 큰 질문을 가지고 돌아오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조형빈
 
공연을 보고 글을 쓴다.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무용월간지 , 웹진 in등에서 기자와 편집위원을 지내며 다양한 매체에 동시대 무용에 대한 비평글을 기고/발표하였다. 몸과 움직임이 사회와 연결되는 '정치적인 몸'의 순간들에 관심이 있으며, 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비평지 에디토리얼 콜렉티브 널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hyeongbin_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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