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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년대를 내다보며 2020년에 탐색한 공연예술의 지속가능성 2021-06-02

2040년대를 내다보며 2020년에 탐색한 공연예술의 지속가능성
_IETM 보고서를 중심으로

전강희(공연평론가, 드라마터그)

2020년에는 2040년 정도가 되어야 맞이할 줄 알았던 세상이 갑자기 찾아왔다. 급진적인 형식이나 내용과 관련한 예술적 실험에 관심이 많았던 몇몇 공연예술 단체들이 주로 시도하던 것들이 모두가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숙제로 던져졌다. 예를 들자면, 2010년대에도 극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배리어프리, 커뮤니티와의 관계 등 접근성과 포용성을 고민했던 예술가들, 축제나 공공극장의 한 해 라인업의 성비 구성은 어떠한지를 따져 묻던 예술가들, 기술을 예술의 언어로 적극적으로 채택하던 예술가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을 나눴던 예술가들, 공공기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숫자였기 때문에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이들은 급진적인 예술가로 생각되곤 했다. 하지만 2020년에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면서 급진적인 소수가 천착하던 문제들이 모든 예술가가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온라인을 통해 국내외 각종 포럼이 열렸고, 해당 문제들을 주제로 삼아 진행된 레지던시가 있었다. 또한 SNS를 통해 한정된 기간 동안 공연예술 동영상을 송출하며 유료화를 시도한 단체도, 자신들의 희곡을 소수의 후원자에게만 보내는 방식으로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면서 관객과의 관계를 놓지 않으려 노력한 단체도 있었다. 공연예술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한국의 예술가들은 팬데믹 이전에도, 이후에도 꾸준히 존재하며 길을 찾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의 목소리가 서로 엮일 수 있는 공간, 전략적으로 울려 퍼질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주제로 예술가들이 모여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체적인 전략이 담긴 보고서로 발전시킨 사례가 있다. 유럽현대공연예술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for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이하 IETM)가 그 예이다. IETM은 연극, 무용, 퍼포먼스, 다원, 뉴미디어 등 동시대 공연예술에 종사하고 있는 전 세계 공연예술가들의 플랫폼으로 회원 수가 500이 넘는다. 회원은 페스티벌, 극단, 프로듀서, 예술가, 연구자, 연구센터, 대학, 교육 단체 등 다양한 기관과 직군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고서의 제목은 ‹Rewiring the Network (for the Twenties) - Resetting the agenda for IETM›이다. IETM은 왜 네트워크를 다시 연결하고 아젠다를 재설정하려고 하는가?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IETM이 변화해온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ETM 보고서 표지
@www.ietm.org

1981년에 ‘유럽 지역의 비공식적인 연극 관련 모임’으로 시작한 IETM에는 현재 50개가 넘는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80% 이상이 유럽이라 할지라도 지난 몇 년간 아시아와 중동을 포함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북미와 호주에서도 회원을 받기 시작했으며, 아프리카, 남미와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런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서 IETM은 ‘공연예술을 위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라고 정체성을 다시 정립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확장되던 네트워크의 경계가 팬데믹의 여파로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IETM은 오늘날 네트워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화두로 삼고 회원들과 여러 차례의 워크숍과 회의를 거치면서 ‘네트워크 다시 연결하기’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www.ietm.org

초기에 IETM이 강조하고 목표로 삼은 지점은 다음 다섯 가지였다.

- 유럽 내에서 국가 간 이동 가능성
- 점점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는 프로덕션들의 역량 재점검
- 예술가로서 커리어의 지속 가능한 발전
- 공적 지원 만들기
- 동시대 예술의 민주화

이 목표들이 2020년을 거치면서 다음 다섯 가지 문제로 변화되었다.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어떤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지는 한국에 있는 예술가들이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 ‘초이동성, 환경 문제’ vs. ‘고립’
- 프로덕션들의 협업과 분업의 인플레이션 현상
- 불확실한 조건에서 생활하는 예술가들의 숫자 증가
- 예산삭감과 제도화
- 지역의 관객들, 예술 현장과 의미 있는 관계 만들기

워크숍과 회의는 140여 명의 회원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졌다. 회원들은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생태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적 가치, 사회적 가치, 경제적 가치, 생태적 가치, 예술적 가치’를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0년에 닥친 변화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선정된 이 다섯 가지 가치 범주는 각각 더 구체적인 하위 범주 4가지로 분류되어 총 20개의 명제로 만들어졌다. 2020년에 닥친 변화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들인다면 2040년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공연예술 생태계 안에서 20가지 명제가 제시하는 것들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예술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가지 가치 범주 아래 제시된 20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 인간적 가치
1. 공정성
2. 모두가 발전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리더십
3.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
4. 모두가 배우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
- 사회적 가치
5. 다양한 관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
6. 예술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 구축
7. 더욱 중요해지는 협업과 이에 따른 포용적 실천과 교육
8. 예술계를 넘어 사회 각계와 함께 만들어 내는 시너지
- 경제적 가치
9. 새롭고 대안적인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
10. 노동자로서 정당한 보상과 안전한 사회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제도
11. 공유 가능한 공간과 자원
12. 지역이나 국가 차원에서 더 다양해진 지원 구조를 통해 예술가의 수입 원천의 다각화
- 생태적 가치
13. 생태적 인식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 공존
14. 창작 과정의 속도를 늦춘 친환경적인 제작환경
15. 이동성에 대한 재고
16. 국제적인 작업의 의미가 예술가가 직접 해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아이디어의 이동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
- 예술적 가치
17. 예술작품 자체보다는 예술이 사회, 경제 등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핵심
18. 예술이 스튜디오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나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19.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빨리 만들어 내는 것보다 오랫동안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
20. 타 영역에 영향을 주면서 얼마든지 변형 가능한 공간 창출

보고서 ‘네트워크 다시 연결하기’를 살펴보며 국제교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IETM은 팬데믹이 몰아닥친 지금뿐만 아니라 2040년에도 유효할 국제교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가장 먼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국제 협업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결국 느린 속도로 작업할 수 없는 환경에 노출된 예술가들의 처지를 한 번에 드러내는 말이다. 협업이 중요해지고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기관, 나아가서는 여러 나라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제작 과정이 세분화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과정이 예술가의 삶 속에서 일과 작업의 균형 잡기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결국 예술가가 작업할 시간을 충분히 누려도 되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예술가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점점 늘고 있다. 2020년에 국립극단에 새로운 예술감독이 취임하면서 기획된 <창작공감; 연출>과 <창작공감: 작가>를 예로 들 수 있겠다. 평소 예술가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씨앗 삼아 리서치 과정, 워크숍, 쇼케이스, 본공연 작품제작까지 오랜 시간 다양한 제작 단계를 거칠 수 있도록 예술가에게 물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프로젝트이다.

보고서는 또한 국제교류를 ‘환경 문제’와 연관 지어 언급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직접 해외 공연장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공연을 올리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에 관해 이야기한다. 실제 물리적 이동이 아닌 아이디어와 같은 정보가 이동하고 공유되고 발전되는 경로 역시 다가올 국제교류의 큰 축임을 강조하면서 국제교류의 프레임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예술가가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고서도 훌륭한 국제교류를 이뤄낸 사례로 콜드플레이가 5월 11일 브릿 어워즈에서 발표한 신곡 ‘하이어 파워(Higher Power)’ 무대를 예로 들 수 있다. 런던 템즈 강에 설치된 수상 무대에 한국의 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홀로그램으로 등장한다. 전 세계로 중계된 이 공연은 예술가들이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국제교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콜드플레이 브릿어워드 공연1)

보고서에는 ‘긴급함이 지속가능 하지 않은 것을 것들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2020년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 또한 지나온 시간에 대한 한 줄 요약 같은 말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면, 2040년에도 가치 있을 새로운 길에 대해서 많은 다양한 공연예술가들, 단체들과 한 자리에서 이야기 나눌 창구가 조만간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전강희
전강희는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 예술가들의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의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또한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 ACC의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는 국립극단의 창작프로젝트 <창작공감;연출>의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1) Coldplay BRIT Awards, Coldplay - Higher Power (Live at The BRIT Awards, London 2021), Youtube, 2021.5.12.
https://www.youtube.com/watch?v=kiqEEr7CK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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