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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20주년에 영상화를 준비하며 2021-02-0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20주년에 영상화를 준비하며

 

이연경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기반팀장)

 

2021년이 된 지도 보름이 지났는데, 새해가 밝았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끈질긴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도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을 옮겨 다니며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2020년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자 노력해야 했고, 수많은 기대와 좌절,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행정가들이 경험한 것 보다 훨씬 큰 폭의 감정들을 경험해야 했을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2020년은 내가 담당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2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해였다. 축제를 준비하는 동료들 개개인도 담당한 부분에서 꼭 빠트리지 않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20주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였을텐데, 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하지 못하게 될 줄은, 온라인으로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지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작년 초만 해도, 잠시 우왕좌왕 하다 지나가겠지,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겠지 등등 흐릿하지만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렇게 짧게 스쳐지나가지 않았다. 축제는 결국 사상 최초로 해외 공연작품을 초청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는 그 결정을 6월 중순에 내렸다. 우리보다 앞서 결정을 내렸던 수많은 기관, 행사, 축제들을 참고하고,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외신정보들을 참고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결정을 내렸다 엎기를 반복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들어와서 2주간, 본국으로 돌아가서 또 다시 2주간, 최대 한 달여에 달하는 시간 동안 격리되어야 하는 상황은 해외 단체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었고 감정이었다. 

해외초청작의 빈자리는 더 많은 국내 예술가들의 기회가 되었다. 뒤늦게 제안을 드렸지만, 아주 흔쾌히 모든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할 의사를 밝혀주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데 아군이 늘어난 느낌으로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더 크고 치열한 고민들을 해야 하는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운영이 자유롭지 못한 공공극장을 대관해서 쓰기 때문에, 덩달아 축제의 개최 여부도 심하게 흔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축제를 개최했다 말기를 여러 날이 되고, 동료들과 우리 기관 전체와 더불어 축제를 개최하는 형식을 변경하는 방법에 대해 계획을 여러 가지로 세웠다. 사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는데,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페스티벌만은 피하고 싶다…!’

1년 동안 10월 한 달간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는 우리 축제가 온라인으로 개최될 줄은 어느 시점 전 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축제 관계로 만난 예술가 중 한분이 ‘스파프가 온라인으로 개최될 줄은 정말로 몰랐어요’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동감했다.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긴 했지만, 하루가 48시간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선택지는 축제를 취소하던가, 온라인으로 축제를 개최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축제가 개최될 2020년 10월 8일 목요일을 앞두고는 추석 연휴, 개천절이 버티고 있었고, 사실 축제 개막도 징검다리 연휴 중 하루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해본들 답은 있으면서도 없어서, 참여하는 예술가분들과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무국에서 하는 말이 단정적으로 다 결정된 사항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사실은 생각에 생각을 너무 더하고 있어서인지 감정이 메말라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떤 방향이든 빨리 대응할 수 있게 결정 해주세요’ 라는 말도 들렸다. 나조차도 수긍이 되지 않던 온라인 페스티벌로 향하는 배에 단체들이 먼저 하나 둘 씩 탑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결정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음을 직감했다. 

어느 플랫폼을 정해서 송출해야하지? 당연히 유튜브나 네이버 중에 하나겠지?
영상은 어떻게 찍어야 하지? 어느 업체가 좋을까?
공연 영상은 이럴 경우에 유료로 해야 하나?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볼까?
내가 혹시 모르고 지나갔다가 코앞에 닥쳐서 문제가 될 일이 있지는 않을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홈페이지 SPAF NAVER TV 섹션 Ⓒ예술경영지원센터

이 모든 것들이 문제없이 돌아가게끔 해야 하는 행정가인 우리도 문제지만, 무대 위의 공연을 영상으로 준비해야 하는 단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초연작품의 경우는 공연을 만들어 가면서 영상을 촬영해야하는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 고충이 훨씬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 너머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는 작업은, 다시 말해 공연을 영상으로 준비하는 일은 나나 동료들도 모두 경험이 전혀 없어 모든 결정을 내릴 때마다 모두의 머리를 맞대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분배나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초단기간 내에 지식이 쌓일 때마다 혹은 의견을 모아야 할 때마다 모이는 방식이 오히려 서로 돌다리를 두드려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글로써 나와 동료들이 겪어낸 코로나를 기록하기엔 끝도 없을 것 같고, 이번 기회를 빌어서는 화면 너머의 관객을 만나기 위해, 공연을 영상화 하는 과정 동안 겪었던 일들을 주로 공유하려 한다.

 

저희는 이미 같이 작업하던, 잘 아는 영상 감독님이 계세요

공연을 영상으로 담아낸 결과물은 과연 공연물일까 영상물일까.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몰라도,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축제를 준비하던 사람으로서, 속으로 쉽게 답을 딱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공연을 못하기 때문에 영상으로 촬영하는 건데, 이건 당연히 공연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결과물이지’ 라고 생각도 했었고, 결과물이 영상이기 때문에 ‘영상물’로 분류했어야 하는 두 가지 경험을 모두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무대 위의 공연물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끊임없는 전문성 간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되는 과정 중에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 편의 공연 영상물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공연 연출가도 영상 감독도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상황이 피치 못하게 발생하고, 어느 한쪽이 절반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최악의 경우 날선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공연 언어를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영상 감독 혹은 연출이 있어요’ 라고 의견을 준 단체들이 절반 정도 되는 상황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 그 절반의 방식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축제가 고용한 영상업체가 작품을 찍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체에 영상팀(감독)이 있는 경우는 그렇게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번에 우리 축제와 함께 작업한 영상업체도 다행히 공연팀의 특성에 맞추어 짧은 시간에 최대한 공연을 영상으로 승화시키는 데 최선의 방법을 찾는데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함께 작업한 단체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단체가 자체적으로 촬영을 진행한 경우도, 작업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 시간에 쫓기듯 작업했지만, 본인들의 원하는 바를 영상으로 충실히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원래도 축제는 무대를 내어줄 뿐, 정해진 시간에 무대 위를 채우는 것은 예술가의 몫이다. 100개의 공연이 올라가는 축제도 100개가 같은 모습일 수 없듯, 공연 영상도 각각의 다양함이 있는 모습이 오히려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던 축제에서 조금이나마 축제성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료냐 무료냐 그것이 문제로다

온라인 페스티벌을 결정하면서 곧바로 공연영상의 유무료 여부라는 큰 고민을 시작했다.

이미 단체들은 티켓수익이 발생하지 않게 되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만이나 고충이 생겼을 테지만, 축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몇 명이 온라인 공연을 관람했느냐’가 마치 축제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처럼 보이게 되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송출했던 영상들의 뷰수가 공공연히 끝나기가 무섭게 정보로 공유되고, 얼마 없지만 유료로 판매했던 공연들의 매출액을 암암리에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과에 따른 기회비용은 분명해 보였다.

우리는 개인 예술가나 공연단체가 영상화를 한다면 시도해보기 어려울 것에 대한 도전을 축제의 이름으로 해보기로 했다. 이미 하반기부터는 ‘언제까지 공연 영상이라고 무료로 볼꺼야’ 라는 의견들이 넘실대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가치를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다만, 공연예술의 현장성을 누구보다 숭고한 가치로 여겨온 공연예술 축제로서, ‘아무리 공연을 영상물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온라인 페스티벌에 유료화까지 더하면 축제의 가치관이 마치 변한 것과 같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속이 뜨끔한 충고도 받았기에 가볍게 한번 해보지 뭐 정도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가격을 정하는 것부터가 우선 난항이었다. 천원의 행복, 커피 한 두잔 덜 사마시기 등등 여러 가지 가격을 정하는 아이디어를 내며 왔다 갔다 하기를 여러 차례, 오천 원이라는 최소 금액을 정했다. 우리는 영상 송출 플랫폼을 네이버TV로 정했기 때문에, 유료 결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후원라이브 형식에 따라 최소 금액 이상을 후원하면 한편의 공연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끝나고 결과치를 받아보았을 때, 크고 작은 금액들이 모여 만든 이 수치는 어느 때의 티켓 수익보다도 값진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실제 티켓을 판매했을 때의 수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익이긴 하지만, 단 한 명이 5천원을 내고 관람을 했다고 해도 공연 영상을 유료로 관람하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 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매우 뜻깊다고 할 수 있다.

 

공연의 관람연령은 내가 정하는데? 영상은 왜 안돼?

영상의 유료화가 결정되면서 세트로 따라온 문제가 하나 있었다. 빙산의 일각처럼 여겨졌던 문제인데, 바로 영상물 등급심의이다.

공연의 등급심의(관람연령 규정)는 공연단체가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영상물로 된 공연은 영상물 관련 법규를 따라야 했고, 더욱이 유료화를 결정하면서 영상물의 등급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로 영상물이 넘쳐나게 되면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들도 영상물 등급심의를 앞 다투어 신청하고 있는 상황이라, 규정 그대로 따르게 된다면 한 작품당 영업일 기준 14일의 심사 기간이 지나야 연령등급이 나오게 되고, 그것을 결과에 따라 고지하지 않을 경우 불법이 된다고 하니 심장이 쪼여오는 기분이었다.

결국 촬영부터 편집, 검수, 등급신청,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작품당 최소 3~4주의 시간은 족히 걸리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정말 눈물을 머금고 축제 일정을 미뤄야 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 언론에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보도가 되기도 하고 급기야 유관 단체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 마련이 되면서, 속이 매우 타들어가고 사무실에 앉은 채로 살이 빠지는 유례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단 법률적으로나 기관차원의 행정 검토를 마쳐서 등급심의를 받는 것으로 결정했으니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서 축제 일정을 옮기는 것 만큼은 피해볼까 했다. 그러나 안정적 여유 없이는 최악의 경우 축제가 시작하고나서 일정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심의 담당 대리님의 전화통에 불이 났을 것으로 짐작한다. ‘공연영상’과 ‘등급심의’가 화두가 되었고, 나뿐만 아니라 유관기관으로부터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축제가 끝나갈 때 즈음에, 모든 작품이 등급심의를 일정에 차질없이 무사히 받았던 것을 자축하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담당 대리님께 전화연락을 드렸더니 웃으시며 이런 말씀을 해주셔서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위원회 심의 일정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급심의에 맞춰져있었어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음악저작권자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모든 것을 영상물 등급심의를 거치면서, 온라인 페스티벌을 개최하기 위한 전 과정에 있어 관련 법규를 정석대로 지켜나가기로 했는데, 그 다음으로 부딪힌 문제는 바로 저작권과 관련된 이슈였다.

사실 저작권은 공연을 영상으로 하는 것과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는 부분인데, 실제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놓치는 부분도 간혹 있었던 현장 상황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영상물로 옮겨지면서는 인터넷 망을 통해 송출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무대 위 공연 때보다 훨씬 높아져서, 인식 자체를 재정립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올해 해외초청작이 딱 한 작품 있었는데, 그 작품은 해외공연팀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고 잘 짜인 매뉴얼을 따라 한국 창작진이 만들어가는 공연이었다. 공연을 만드는 매뉴얼을 최대한 정교하게 따르면서 원작자의 의도에 흠이 가지 않도록 주의하다 보니 우리조차 빠트린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제 또한 저작권 관련된 문제였다.

매뉴얼 상에는 엄선된 오디션 과정을 통해 선발된 참가자들은 본인이 춤추기에 가장 마음에 드는 혹은 편안한 곡을 선택하도록 되어있었고, 그 과정을 준수하다 보니 나중에 참가자들이 골라놓은 음악은 저작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 문제라 함은 저작권료가 비싸거나, 저작권자를 찾기 매우 어려운 음악이었던 것인데, 이미 촬영이나 편집이 끝나가는 과정인데다, 원작자의 의도가 음악의 선택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 음악을 바꿔서 입히는 등의 과정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2~3주의 시간을 애를 먹은 다음에야 결국 저작권자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쪼여오던 심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공연이 영상물로 만들어지면서 보이거나 들리는 부분은 물론, 화면 안에 담기지 못한 부분까지 많은 저작권들이 연결되어있다. 무대 위의 공연이나 화면 속의 영상물이나 할 것 없이 이와 관련된 법규와 규정은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아직 세부적으로 잘 알지 못하거나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관계가 깊이 있는 예술가 및 주변 종사자들까지 관련된 안내와 교육,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래서, 공연은 몇 시에 하신다구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축제는 공공극장을 대관해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우리 축제로 극장을 사용한 것이 작년으로 벌써 3년이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매년 익숙함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장비나 일반인들은 모르는 구석구석까지 모두 무대 위의 시간을 밝혀주기 위해 돌아가고 있는 극장은 끊임없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관리가 필요하고 이에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당연히 이런 일들은 수많은 규정과 규칙으로 이뤄지는데, 지금보다 이러한 이해도가 많이 부족했을 때는 지켜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 알지만 속으로는 ‘너무 빡빡하다..’ 혹은 ‘그 규칙은 극장만 아는 것 아닌가?’ 하는 많은 의구심들을 눌러가며 극장과 소통을 했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다.

해를 거듭하며 그래도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협조가 잘 된다고 생각하던 차에 하필 우리는 코로나를 겪었고, 평소보다 두 배는 넘게 전화나 이메일로 소통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가장 빈번하게 소통했던 건이 있는데, 바로 ‘공연 시간은 몇 시인가’ 하는 문제였다.

무대 공연은 공연 준비시간과 리허설, 본 공연 시간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뉘는 편이다. 그러나 영상화 작업은 공연과 매우 다른 면이 있다. 우선 우리 축제를 통해 영상화 작업을 하는 공연이 모두 17편이나 되었다 보니, 그 각각이 매우 다를 수 있지만, 무엇보다 공연과 달랐던 점은 장면별로 촬영을 하게 되어 전막 수준의 공연을 한 번에 무대에 올리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장면별로 촬영을 하다 보니, 준비시간이 공연시간이 되고, 공연시간이 곧 촬영시간이 되었다. 이것은 극장에서 무대를 관장하는 분들께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유연하게 대처해주셨기에 망정이지, 서로 날을 세웠다면 큰 문제로 빚어질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차 삼차 되물어 오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래서 공연 시간이 몇 시’냐는 것이었다. 무대에 공연이 올라간다고 하면 무대의 여러 파트는 하다못해 조명이라도 켜고 꺼지는 것에 문제가 없을까 신경 쓰고 자리를 지키시는데, 그것이 상시적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상황을 아시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공연예술을 올리는 극장은 원래 무대의 공연을 준비하고 그것을 보려는 관객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일상이 되었던 작년 극장은 배우의 작은 손짓에 감동하던 관객은 커녕 바깥사람이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상황이 나아지면 ‘퐁당퐁당식’으로 극장이 제한적으로 운영되던 때도 있었고, 지금은 ‘퐁퐁당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 여러 분야의 피해가 실로 막대하다. 극장에서 하는 공연 관람의 안전성을 자타공인으로 인정받아 공연계가 활력을 다시 찾기를 두 손 모아 소망해 본다.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대본은 없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었어요!

온라인 페스티벌을 얼마 남기지 않고, 홍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왔다. 굳이 온라인이 아니라고 해도 때가 되면 홍보와 티켓 판매에 열을 올리는 때가 오기 마련인데,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관객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여간 막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 그냥 봐도 어렵거나 난해하게 느낄 수 있는 연극, 현대무용 작품이 주를 이루는 축제이다 보니 영상으로 선보였을 때는 조금 더 친숙하고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여러 분의 의견에 사전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SBS 기자이자 공연 관련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김수현 기자님을 사회자로 제일 먼저 정하고, 각 장르의 공연을 맛깔나고 쉽게 설명해주실 평론가 두 분으로 이경미, 김예림 선생님을 모시기로 했다. 세 분 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 촉박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흔쾌히 응해주셨다.

사전 회의 날짜가 되고 회의실에 모두가 모여 앉았는데, 설명을 들으시는 세 분 선생님들의 표정이 사뭇 긴장되고 심지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방향과 달랐던 것은 맞출 수 있는 부분인데, 짧은 시간에 준비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세 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래서 백스테이지 투어와 같은 느낌으로, 축제를 준비하면서 여러 상황을 많이 알고 있으니, 재미나는 요소들도 함께 얘기해주면 좋겠다는 여러 분의 요청으로 결국 나도 화면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장에서 대본이 주어지는 줄 알고 그것 하나만 믿고 있었는데, 운영업체도 너무 짧은 시간에 준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는지 주어진 종이에는 순서를 놓치지 않도록 공연단체와 작품명만 나열되어 있었을 뿐, 대본은 없는 상황이었다.

촬영 스튜디오라고는 하지만 잘 꾸며진 운영업체 사무실이라 익숙한 점도 있었고, 아마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얼굴 화장이며 머리 손질 등도 슥슥 아침에 늘 출근하듯 하고 말았는데, 화사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겉모습에 대한 긴장도 잠시,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화장을 안 한 맨얼굴은 신경도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편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2020년 축제를 준비해온 시간 동안의 모든 기억이 다소 특수했던 점도 있었고 생생하게 내재되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기자간담회를 준비하며, 영상화 구도를 잡기 위한 기획회의를 준비하며, 단체들과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빈번하게 소통하며 여러 가지 기억들이 많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영상을 촬영했을 때는 정말 ‘툭’ 치면 바로 줄줄 공연이나 관련된 내용을 읊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었다. 이것도 이렇게 무사히 넘어가는구나 하면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무용과 연극을 각각 촬영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공연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유튜브나 네이버TV를 통해 송출하고자 하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 보게 하기 위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나만의 혹은 우리 단체만의 방법이 필요한데, 온라인상에서는 누구보다 그 준비가 초심자에게는 조금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단체를 가장 잘 어필해야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것을 전파를 타고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어느덧 되어버린 듯 하다.

 

하트 만 개와 채팅이 기본이 된 우리의 일상

아직도 잊을 수 없는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그리고 저녁 8시. 나는 애써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내 얼굴이 나오는 온라인 페스티벌 프리 프로그램 때문에 매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미세한 클릭 소리가 들려왔는데, 우리 동료들이 내가 나오는 프로그램에 하트를 엄청나게 날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감동이 물밀 듯이 쓰나미처럼 다가왔다.

매번 공연영상이 송출되는 시간 전부터 영상에는 ‘하트’를 날릴 수 있었는데, 마치 이 하트를 날리는 것은 ‘나 이 공연이 너무 좋다’ 혹은 ‘나 이 단체 너무 응원한다, 힘내라’와 같은 무언의 메시지 같이 느껴져서 마치 함께 보는 관객들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 했다. 모든 공연은 거의 만 건에서 만 오천 건 정도의 하트를 기록했는데, 한 번의 클릭으로 날아가는 하트일 뿐이지만 매우 뿌듯했다.

우리 축제에서는 호평을 받은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공연 영상 관람 중이나 끝나고 난 후에 이어졌던 ‘온라인 채팅’이었다. 마치 관객과의 대화를 하듯 이어진 공연도 있었는데, 공연마다 거의 모두 안무가나 연출가, 배우 등이 자리 잡고 ‘따로 또 같이’ 관람을 하고 공연이 종료된 후에 관객들과 대화를 간단히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넷플릭스나 왓챠에서 영화를 보고 배우들이랑 얘기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공연은 워낙 끝나고 나서 ‘관객과의 대화’라는 문화가 있었다 보니 영상을 보고 나서도 뭔가 채팅창이라도 막혀있으면 갈증이 느껴지곤 했는데, 그런 부분이 해소된 느낌이었는지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다. 종종 ‘소리가 안 나와요’, ‘저만 이렇게 작게 들리나요?’와 같은 멘트가 올라와 우리 동료들이 땀을 삐질 흘리게 했지만, 대부분은 벅차오르는 소감을 남기시기도 하고 창작자들과의 대화를 즐겁게 이어나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소극적으로 생각하셨던 연출가나 안무가분들도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 라는 말에는 가만히 계실 수 없었던지 적극적으로 돌변하시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우리와 온라인 페스티벌을 함께 준비한 네이버 측도, ‘이렇게 수준 높은 라이브 채팅은 처음’이라며 역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라는 찬사를 보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던 때가 생각난다.

 

20주년에 맞이한 뜻밖의 변화

이렇게 준비한 우리의 2020년도 온라인 페스티벌은 프리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18일 동안 네이버TV에서 총 3,686명의 후원자를 기록하며 화려한 막을 내렸다. 평년 대면 축제 대비 관람객의 규모는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20년을 기념하는 해에 내딛었던 새로운 발걸음에 함께해준 소중한 관객들이기에 축제로서는 사뭇 의미가 더욱 크다.

새로운 형식의 축제는 무엇보다 공연 영상화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영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공연을 하는 단체들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지만, 누구보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나름의 성과와 새로운 창작열을 불태워주셨다. 그러한 각고의 노력 없이는 개최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어디에서나 누가 물어봐도 공연 단체 분들을 향하는 찬사를 아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 발 빠르게 합류하여 수준 높은 영상화를 이뤄냈던 여럿 영상업체와 감독님들 또한 숨은 공로자이다. 누구도 이번 작업을 하며 영상에 대한 전문성에 대해 목소리 높이지 않고, 누구보다 높은 이해력으로 상황을 받아들여주셨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경험한 공연 영상화는 공연과 영상이라는 두 전문 영역 간의 팽팽한 긴장감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번 작업은 특히 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이 어느 한 영역이 더 나설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철저한 양보와 협조가 아름답게 잘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2020년에 20주년을 맞이했던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온라인 페스티벌이나 공연 영상화 작업은 두고두고 누군가의 구설에 오르기 딱 좋다. 나나 우리 동료들도 이 행보를 적극적으로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은 아니기에, ‘언 발에 오줌누기식’ 차선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우리만의 자성의 목소리도 한 동안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온전히 경험하고 체득된 공연영상화나 온라인 페스티벌의 준비과정은 작은 티끌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미천한 지식이나마 공유하고 싶다.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머리를 모으고 장갑 낀 손이라도 서로 맞잡고 가는 수밖에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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