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Diversity of Korean Street Arts(거리예술)’ 거리예술,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0-12-02

‘Diversity of Korean Street Arts(거리예술)’
거리예술,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글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거리예술 창작자들과 작품세계를 소개하기 위해 발간하는 ‘Diversity of Korean Street Arts(거리예술): Dialogue & Spectrum’에 수록된 서문의 원문입니다.

함께 쓰는 서문
한국의 거리예술은 학제적으로 고정된 개념이 부재한 채 변화를 거듭해왔습니다. 거리예술의 각 주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양식을 만들어왔습니다. 함께 쓰는 서문은 현재진행형인 한국 거리예술의 궤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시도입니다. 거리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 예술가, 연구자들이 함께 서문을 작성해 주었습니다. 익명으로 참여한 필진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각자의 글을 쓰며 앞선 필자의 의견에 덧대거나, 삭제, 수정, 보완하였으며, 원고는 수정의 이력이 남은 상태로 다음 필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모인 글을 수정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원문의 형태로 본 웹페이지에 공개합니다. 이 글쓰기가 확장되어 한국의 거리예술의 현재를 넓게 조망할 수 있는 ‘모두가 함께 쓰는 거리예술 위키피디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함께 쓰는 서문에 참여해주신 필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편집팀)

거리예술,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거리는_어디인가 #문화민주주의의_관점


[공중] ‘비상’ 하이서울페스티벌 2013 ⓒ이란희


[공중] ‘휴먼넷’ 서울거리예술축제 2018 ⓒ임현진

유럽에서 거리예술은 예술을 즐길 기회를 갖지 못하는 다수 대중들에게 예술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하였다.(“문화민주주의”) 쉽게 대중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거리였다. 그러나 오늘날 거리예술가들은 종종 ‘예술’과 ‘거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행위를 하기엔 거리가 너무 소란스럽고 산만하다. 거리의 대중은 여전히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고 있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떤 작품은 거리에서 예술행위를 하면서도 거리의 대중이 아니라 다시금 소수 예술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창작한 것처럼 보인다. 소란스러운 거리를 떠나 외딴 장소를 찾아가는가 하면, 내밀한(intimate) 분위기 속에서 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하기도 한다. 이런 시도들이 예술형식의 다양성을 위해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극장을 나와 거리의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거리예술의 출발선(‘문화민주주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술을 추구하자니 거리와 대중을 떠나야 할 것 같고, 거리의 대중을 쫓아가자니 예술을 포기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바램과 거리에서 예술이 가능하다는 주장 사이에는 여전히 넘기 어려운 골짜기가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간격으로 인해 우리는 종종 모순에 부딪힌다. 예년까지 예술이 거리에서 대중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여기에 거리예술의 어려움이 있다. 예술을 배신해서도 안 되겠지만 거리의 대중을 떠나도 안 되기 때문이다. 거리예술이라는 용어는 거리와 예술이 합쳐진 것이다. 이 용어를 버리지 않는 한 거리예술가는 거리(혹은 거리의 대중)와 예술 둘 다 껴안고 가야 한다. 거리예술은 거리에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하고 증명하여야 한다.하지만 6.8혁명과 함께 성장한 거리예술에서 거리와 광장은 단순히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 정치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거리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운동의 공간이었으며, 그 목소리 중 하나는 엘리트 예술에의 거부와 자기 언어에의 긍정이었다. 거리예술가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 ‘저항’과 같은 관념에 몰두하는 것은 형식적인 한계를 지우며 다원화된 표현방식을 탐구하는 것에도 있지만, 그 내용과 정신에 있어 이러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와 예술은 양극점을 향해 달리는 쌍방향 화살표와 같은 관계는 아니다. 거리예술에서 거리는 소란스럽고 산만한 물리적 배경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작품의 주재료이자 주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거리의 맥락-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작품의 주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거리예술은 공적 혹은 사적 공간에서 다채로운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여기서 비롯되는 관계성의 미학을 가진 예술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거리예술에서 관객과 예술가는 대상과 주체, 향유자와 생산자라는 이분화된 관계라기보다는 함께 상호작용한다. 고로 거리에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하고 이를 관객에게 증명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거리예술의 범주를 매우 제한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거리예술은 거리와 공공공간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함께 해오기도 하였다. 국내 거리예술가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이 ‘공간 사용허가 절차와 기관과의 협력에서의 어려움’1)이라는 것은 공공공간이 마치 기관의 사유재산인 것처럼 여겨지는 행정의 벽을 체감하는 지점일 것이다. 이때 게릴라성 해프닝으로 공간의 전복을 꾀하거나, 자본과 자동차가 채우던 도시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며 일탈감과 도시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거리예술이 가진 질문하는 힘이었다. 최근엔 사라져가는 구도심의 이야기에 집중하거나,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생기는 도시 난민과 연대하는 등 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자본의 폭력에 집중하는 작업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때 거리예술은 때로 사적공간으로 들어감으로써 더 큰 도시와 공공성을 읽게 하여 여전히 거리예술로서의 장소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거리예술은 단순히 다수의 대중에게 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도시 사회학적인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광장] ‘선동백서’ ⓒ임현진


[광장] 하이서울페스티벌 2014 ⓒ이란희

#공공공간과_거리예술 #거리의_관객
‘공공공간’은 거리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고 다른 이와 연대할 수 있는 공공공간이 오늘 날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 기반의 상업공간으로 대체되고 있음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대규모 거리예술축제인 ‘오리악축제(Le Festival d’Aurillac)’와 뮐루즈의 거리예술축제 ‘거리의 무대들(Scènes de la rue)’의 예술감독 프레데릭 레미(Frédéric Rémy)는 공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공공간의 소멸 속에서 오히려 현대의 ‘사유화된 공간’에서 공공성을 더 드러나게 하는 것, 그러한 공공성의 재생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거리예술축제의 역할로 보고 있다. 한 도시를 찾는 거리예술가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신성시 되고 예술가 - 관객의 이분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닌, 지역 주민 역시 한 예술가가 도시 속에서 예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예술가를 한 명의 ‘시민’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거리예술가의 존재라는 것이다.

지자체의 지원, 협력과 긴밀히 연결된 한국의 공공공간 속에서의 거리예술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성을 필두로 한 대표적인 지역 공간을 무대로 창작을 하는 예술가가 공공공간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우리의 예술이 관(官)이 주도하는 멍석 위에서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는지, 수많은 거절과 가위질, 협상불가의 상황 앞에서 오늘의 공공공간 속 거리예술이 얼마나 온순해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공공공간 속에 침투한 거리예술이 과연 지자체의 문화 사업 성과와 지역주민의 안전한 문화적 향유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성’의 정의를 예술가 자신의 몸을 통해 거리의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은 오늘의 거리예술가들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숙제이다.  


[공원] ‘마사지사’ 크라코프국제거리극축제 ⓒ임현진


[공원]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 2019 ⓒ채민

공공공간에서 벌어지는 민원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거리예술의 창작 과정 동안 자연스레 노출되는 장면, 행동, 소리 등은 그 공간을 함께 점유하고 있는 시민들의‘평가’를 받게 된다. 여기에서 거리예술가는 한 공간의 침입자로 간주되기도,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예술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공공간 본연의‘공공성’을 해치는 존재가 되는 불의의 순간을 본인의 창작활동 기간 동안 겪게 된다. 비단 과정 뿐 아니라 축제에서 공연을 마치고, 혹은 공연 중에 날아오는 예기치 못한 비난과 난입 역시 거리예술가들이 감내해야 할 전쟁 같은 순간이다. 거리가 함의하는 방대함,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유로움과 공공공간의 제약에 대해서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거리예술에서 공공공간 예술로의 명칭 변경이 예술계의 주도적인 입김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일 수 있겠으나, 우리가 바라던 ‘거리’가 어떤 세계를 의미하고 있었는지, 그 세계 속에서 우리가 바라던 자유는 무엇이었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도로] ‘그림속풍경2014; 신들이 돌아오다2’ 하이서울페스티벌 2014 ⓒ이란희


[도로] ‘유랑축제’ 도시횡단프로젝트광주 ⓒ이란희

#거리예술을_둘러싼_환경
한국의 거리예술은 과천축제가 2003년 ‘과천마당극제’에서 ‘과천한마당축제’로 명칭을 바꾸고 축제의 중심을 마당극에서 거리극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마당극을 한국 거리예술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보다 다양한 표현양식과 공간의 활용을 보여주는 거리예술은 과천축제에서 ‘거리극’이라는 명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식되었다. 마당극과 거리극은 모두 야외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거리극의 뿌리는 마당극과 다르다. 마당극은 1960년대 말 탈춤 등 전통연희양식을 차용하여 독재와 경제불평등, 분단 등과 같은 정치적 주제를 다루면서 시작한 공연예술이다. 흥미롭게도 마당극의 출발은 68학생운동 당시 정치적 이슈를 확산시키기 위해 문화를 이용하면서 시작한 유럽 현대거리극과 아주 유사하다. 형식에 있어서도 마당극은 관객의 존재를 적극 인정하고 즉흥적으로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관객을 공연 속으로 끌어들였는데, 이것 역시 “장터극의 유산”(l’héritage du théâtre forain)이라는 유럽의 일부 거리극에서 종종 사용되는 수법이기도 하다.


[작은공간/골목] ‘가르강튀아의 탄생’ 하이서울페스티벌 2013
ⓒ이란희


[작은공간/인도] ‘모델닷컴’ 하이서울페스티벌 2014
ⓒ이란희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이후 해외의 공연예술이 유입되면서 그에 자극받은 국내 예술가들에 의해 보다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되었고 표현방식에서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공연공간의 실험은 거리예술의 태동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축제를 중심으로 한 ‘극장 밖’ 공연이 대중과 만나기 시작했고 거리에서의 시위나 놀이 등 공동의 경험을 기반으로 예술가들은 예술적 표현의 공간으로 거리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이미 60년대부터 거리 등 야외공간에서 소위 ‘행위예술’ 혹은 ‘퍼포먼스’로 지칭하던 실험연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2) 이들은 야외공간에서 극단적이고 광기어린 몸짓을 통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추구했다.(한영애 퍼포먼스의 ‘good&good’, 극단 단무의 ‘5가지 이야기’ 등) 이러한 실험연극 역시 아주 단순하고 강렬한 이미지에 의존했으며, 나아가 거리의 대중과 소통하는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거리극과 어떤 관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작은공간/틈새] ‘노래의 힘’ 선유도거리예술마켓 ⓒ거리예술마켓

 

또한 한국의 거리예술 역사가 관객들이 경험한 거리의 문화와 밀접하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정치적인 저항운동으로서의 거리극은 90년대에 접어들며 시위 문화의 감소세를 맞이하였고, 21세기에 진입하며 ‘2002 월드컵’을 계기로 국가적 스포츠를 위시한 대규모 거리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나 자신이 ‘거리의 사람들’ 중 한 명이 된다는 것, 군중들 속에서 같은 것을 보고 마음을 나누는 체험은 한 시절 거리의 그림 속에 내가 속해 있었다는 기억과 거리 문화의 참여자로서의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현대에도 역시 시위 문화와 퍼레이드를 필두로 한 거리예술은 현재 진행중이다. 대표적으로 ‘퀴어 퍼레이드’의 거리행진, 정신 질환자의 생존과 자부심에 관한 ‘매드 프라이드’, 블랙리스트에 대항하는 광장의 극장 ‘블랙텐트’,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안산순례길’ 등은 비단 예술가가 아닌 시민들 자신이 ‘거리의 참여자’로서 스스로 생성해 낸 거리예술 문화이기도 하다. 

#한국_거리예술의_중요한_흐름 #거리예술_창작과_유통의_환경
2005년 거리극의 모습을 갖춘 공연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극단 몸꼴의 ‘오르페우스’, 호모루덴스컴퍼니의 4-59번지’) 거리극의 선두를 개척한 이들은 유럽에서 공부하는 동안 다양한 공연예술을 접한 유학파였다. 한편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외의 거리극이 소개되고, 또 해외의 거리극단과의 공동제작이 추진되면서(요리의 출구’, 구도’, 1+1’, 날보아’, 파편의 산’) 호기심 많은 젊은 공연예술인이 거리극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특정공간/계단] ‘잡온론’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특정공간/버스정류장] ‘도착’ 하이서울페스티벌 2015 ⓒ이란희

2015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등장 이후 거리예술분야의 국제 교류와 공동 제작은 매우 활발한 양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거리예술 센터인 프랑스 마르세이의 Cité des arts de la rue 와의 협업과 벤치마킹을 통해 만들어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위 기관의 기획진 및 상주단체와의 협업 아래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의 ‘공공공간 예술창작’ 워크숍, 거리예술의 대규모 스펙터클을 실험하는 ‘대형작품 실험실’, ‘공공공간 사운드아트’ 등 거리 예술을 다방면으로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는 창작자들의 양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매년 실시되는 ‘거리예술 NEXT’ 프로그램은 국내의 거리예술 전문가들과의 워크숍 이후 해외 탐방 과정이 이어져 거리예술축제의 리서치를 통해 국내의 거리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다음 단계의 국제교류를 도모하고 있다. 서울거리예술축제 등 의 대규모 지자체 축제에서 해외팀을 활발히 초청하여 관객들이 국제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 역시 거리예술계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교류 형태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면서 원거리 기반의 거리예술 공동제작 역시 이루어졌다.
국내 예술가들과 거리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영상예술을 선보이는 프랑스 단체 KompleX KapharnaüM 의 협업으로 제작된 은 사운드와 시각예술을 이용하여 비대면과 온라인 만남이 불가피해진 재난의 시대에서 거리예술의 매개체와 협업을 모색한다.

2009년에는 프로젝트 잠상이 “공사중”(2009)이라는 영상예술을 선보였다. 그 전에 일부 영상을 이용한 공연이 있었지만(“자화상”/2007), 본격적으로 영상을 중심으로 한 공연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이보다 앞서 선보인 2008년 변방연극제 초청작, 크리에이티브 VaQi의 ‘산초의 꿈’ 역시 건축물에 투사하는 프로젝션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2008년 변방연극제에서 발표한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산초의 꿈’과 2009년 과천축제에서 선보인 프로젝트 잠상의 ‘공사중’은 본격적으로 영상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었다. 2007년 창단된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는 극장과 공공공간을 넘나들며 동시대적 이슈를 가지고 관객들과 만나는 방식을 고민해왔다. 2010년 변방연극제와 공동제작한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는 광화문, 시청 일대 도시공간을 재료로 삼은 작품으로 공공공간 이슈를 경험토록 하였다. 프로젝트 잠상은 그 후로도 매년 거리를 위한 영상공연물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카메라와 빔프로젝트 등 고가장비가 사용되고, 촬영과 편집에 많은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는지 영상예술은 그 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현재는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거리가 밤에도 너무 밝아 영상예술을 할 만한 곳을 찾기가 아주 어렵다는 점도 한몫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2009년 이후 한 동안 영상이 가담함으로써 이를 수용하기 위해이후 영상 등 다양한 양식을 포괄하기 위해거리극 대신에 ‘거리예술’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유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거리를 위한 영상예술과 거리예술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흔히 건물의 창과 벽을 이용한 미디어 파사드,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의 맵핑 작업이 대규모의 면적을 사용하며 스펙터클한 효과를 내는 영상 기반의 거리예술로 자리잡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거리예술협회가 창립되어 거리예술인 사이에 정보 및 인력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안산국제거리극축제(2004년)를 비롯해 고양호수예술축제(2005년), 거리예술마켓(2013년), 서울거리예술축제(2016년), 광주거리예술축제(2017년), 포항거리예술축제(2018년),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2019년)과 같이 거리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들이 생겨나고, 수원연극축제도 거리예술축제로 전환하여(2018년) 거리예술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에는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가 문을 열고  제작, 교육, 배급과 연습시설이 갖춰진 창작 베이스캠프를 제공하게 되면서 한국의 거리예술계는 또 다른 지형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젊은 창작자들의 육성에 기여하고 있는데, 실로 연극 등 전통적인 공연예술의 틀 안에서 갈증을 느끼고 새로운 형태의 작업이나 극장을 벗어나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펼치려는 창작자, 신체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버리고 자신의 연출색이 드러난 퍼포먼스를 만들고자 하는 많은 창작자들이 서울거리예술센터를 찾고 있다.
한편, 거리예술창작센터는 서커스 장르의 창작, 제작 트랙을 동시에 기획하고 있는데 캐나다의 국립서커스학교 (École Nationale du Cirque), 프랑스에 포진한 국립 서커스 거점 단체(Pôle national cirque), 샬롱 거리예술축제 (Chalon dans la rue) 등 대표적인 국제 거리예술과 서커스 축제와 긴밀히 협업하며 워크숍과 양성사업, 국제교류 사업을 펼치고 있다.(앞 문장 2015년 ---) 흥미롭게도 이는 서커스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함에 따라서커스가 거리예술과 합류하였다.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서커스가 거리예술로 수렴되는 양상에는
국내의 극장 환경이 전문적인 기예도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설이 아직 갖춰져있지 않다는 점과 그리하여 자연스레 차이니즈 폴, 타이트 와이어 등 천고가 높고 긴 폭을 필요로 하는 기예도구가 야외공간을 찾게 되었다는 점. 그것이 가진 스펙터클함과 시각적인 흥미가 거리예술축제의 프로그래밍과 만나 거리예술 장르와 교집합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반면
서커스 교육은 유럽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져 중국이나 북한처럼 단순히 기예만을 보여주는 서커스가 아니라 예술의 면모를 강조하는 유럽 현대 서커스와 궤도를 같이 하고 있다.

상기 거리예술 축제는 모두 지자체가 주최하는 지역축제이다. 지역축제는 해당 지역민들에게 문화예술향유기회를 제공하고 도시공간에 활력을 이끌어 내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지자체 주최의 축제들이 거리예술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경향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거리예술이 가진 성격이 결합되면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역분권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각 지자체들은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기존에 활용되던 문예회관을 비롯한 공간 운영에 나서지만, 단순히 좋은 작품을 지역에서 선보이고 문화향유의 기회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지역문화재단의 이사장-지방자치단체장-이 수많은 시민-유권자-앞에서 얼굴을 보이고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거리예술은 이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극장 문턱을 넘지 않아도 일상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은 곧 문화민주주의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또한 거리예술이 서커스, 광대극을 흡수하며 확보한 대중성과, 에어리얼 퍼포먼스, 대형 퍼펫, 불꽃의 활용 등의 방식으로 제공되는 시각적 스펙터클은 정책 결정권자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최근 각 지역문화재단에서 도시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 역시 거리예술로부터 영감을 받고 또 거리예술작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증가하고 있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지와 같은 정량적 기준이 축제의 성공 및 지속 여부를 평가하는 핵심이 된다.
이때, 예술축제의 정성적 측면, 즉 새로운 예술적 시도와 예술가 발굴, 이를 통한 관객과의 질적 소통지점은 주최기관이 고용한 비상근 예술감독 외 소수의 예술기반 종사자들만의 몫이 되는 경우가 다수다. 지역축제의 (예산집행)방향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 역시 상급기관인 해당 지자체 장의 정치적 판단과 취향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2018년에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감독 위촉과정에서 불공정성이 제기되며 예술계 종사자들은 지역예술축제의 공공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정치적 결정에 의해 축제와 거리예술계가 휘청이는 것은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과천축제가 2015년 갑자기 ‘말’을 테마로 하는 축제 ‘과천누리마축제’로 전환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이에 시민들이 ‘말 안되는 예술제’를 자체적으로 여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 행동을 펼쳤으나, 과천축제가 다시 거리예술축제로 돌아온 것은 시장이 바뀐 이후에나 가능했다. 이는 지자체 중심의 거리예술축제를 통한 작품 유통이라는 구조 자체가 가진 한계이자 추후에도 반복될 수 있는 위험요소라고 할 수 있다.

[특정공간/옥상] ‘비오는 날이면 (파전이 생각나)’ 신촌문화발전소 ⓒ임현진

[특정공간/창문] ‘서촌오디세이’ 하이서울페스티벌2014 ⓒ이란희

[특정공간/컨테이너] ‘세상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하이서울페스티벌 2013 ⓒ이란희

2020년, 예기치 않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거리예술축제는 대부분 취소되었다. 실내 예술전용 공간이 아닌, 열려있는 공공공간에서 관객과 대면하는 거리예술은 코로나에 덜 취약할 수도 있지만,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대의 아래 거의 취소되었다. 반면, 민간이 주도하는 축제 중 거리예술을 프로그래밍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춘천마임축제, 그리고 축제 밖 거리예술 프로젝트들은 철저하게 안전수칙을 지키며 진행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공예술축제의 미션이었던 예술을 통한 시민들과의 만남은 민간의 몫이 된 듯하다.
재난 시대를 맞이하며 광장과 대중, 축제성 구현으로 상징되는 지역예술축제 안에서의 거리예술은 설 자리를 잃은 듯하다. 사실, 코로나는 이러한 상황을 촉발시켰을 뿐이다. 최근 거리예술축제는 세밀한 공간 및 관객과의 소통방식을 지향하는 다양한 층위의 거리예술작품들을 프로그래밍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이는 비단 국내 거리예술에 국한된 경향은 아니다. 유럽의 거리예술 역시 규모, 공간의 활용, 형식,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 공연시간도 다양해졌으며, 명칭 역시 거리예술에서 공공공간예술로 전환되고 있다.
거리예술축제가 변화하고 있는 거리예술의 지속가능한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공간의 확대 혹은 축소, 지역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창조, 시민-관객의 범위 재설정과 관계맺기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물론 축제 밖에도 거리예술은 존재해왔었다. 동시대 이슈, 민주주의, 공공공간의 회수와 같은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사유와 창작이 두드러진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안산순례길’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는 프로젝트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로 구성된 콜렉티브안산순례길개척위원회가 기획하고 제작하였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공식 초청작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2017년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마린보이 이성형씨가 세월호 1000일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퍼포먼스 ‘숨’을 공연하였다. 이밖에도 스스로를 거리예술가로 이름짓지 않은 예술가들이 공공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와 층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정공간/폐건물] ‘유랑축제’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 ⓒ임현진


[특정공간/화장실] ‘파도, 그 일렁임의 아름다움’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5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정의와_유형 #규범을_넘어서는_시도
거리예술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연장을 찾지 않는 다수 대중을 위해 거리에서 연극을 시도한 거리극에서 출발하였지만 타 장르가 수용되고 나아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아주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되면서 거리예술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러한 예술들을 ‘공공공간예술’(arts in the public space), ‘도시연극’(urban theatre), ‘비관습적 연극’(unconventional theatre) 등의 명칭으로 담아보기도 한다. 최근 거리예술에서는 장소특정형(site-specific) 공연과 체험형 공연 등 다양한 시도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거리예술가들은 알게 모르게 ‘자유’, ‘저항’, ‘유랑’과 같은 관념에 몰두한다. 어쩌면 이같은 관념 때문에 거리예술에서 규범을 파괴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났는지 모른다. 따라서 거리예술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바로 규범화시키는 것이고, 이는 곧 거리예술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거리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하지만, 모든 것은 이름을 부여하여야만 비로소 정체성을 찾고 올곧이 존재하여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리예술은 주요 요소인 불특정다수의 관객, 공간은 매우 다양한 메시지, 형태, 규모, 미학, 관계 맺기의 다양성으로 인해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작품으로 존재한다. 이 모든 작업에 이름을 붙이고 기록을 남기며 각각의 유의미함을 찾고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국내 거리예술의 반경이 정립되고 하나의 장르로서 인식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타 장르에서 보이지 않는 구체적인 특성들을 발굴해내자면 그 시작은 거리 혹은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일 것이다. 광장에선 3방향 혹은 4방향에 관객을 두는 방식, 거리에선 일직선을 쭉 뻗은 공간이 주는 원근감을 활용하거나 선형의 공간을 관객과 함께 내달리는 이동형 공연의 방식, 공간이 원래 갖고 있는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등의 예시는 거리예술에서 아주 흔하게 활용되는 형태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작품일지라도 무대 세트를 그대로 옮겨와 극장과 같은 환경을 갖추어 진행하는 작품들을 거리예술의 범주에 넣지 않는 것과 함께 생각하면, 거리예술에서 공간을 읽어내고 이에 작품을 묻어내는 것은 중요한 지점임을 알 수 있다.
야외 공간이 가진 물리적 공간의 한계는 텍스트의 활용에서도 드러난다. 소리가 퍼지는 야외공간이자 외부 소음에 취약하며 주변 도시 경관이 텍스트로 읽히는 공간에서 거리예술은 기존의 연극처럼 대사와 서사 중심의 작업보다 신체극을 필두로 하여 단순하고 압축적인 스토리라인을 갖게 되나. 이는 서커스와도 연결되는데,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기예적으로 활용되는 오브제가 가진 상징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들이 강세를 보이게 된다.
또한 극장처럼 객석이 완비되지 않은 환경 속, 밀집된 공간의 군중을 상대하는만큼 그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동형 작품을 비롯하여 관객의 시야각 확보를 위해 연기의 시점을 높이는 방식-죽마를 타거나, 높은 의자 위에서의 마임, 도심 공간에서의 에어리얼 퍼포먼스 등은 이러한 공간적 한계 속에서 드러나는 전략이었다.객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건 무대와 객석간의 경계가 약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는 거리예술이 가진 정신과도 결합하며 적극적인 시민참여를 거리예술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격상시켰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하거나 관객과 배우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작업들 혹은 광대극이나 마당극에서 주로 쓰이는 관객의 개입 요소 등은 거리예술이 가진 중요한 경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명 음향 등 시스템의 활용에서도 거리예술가들은 그들만의 양식들을 만들어왔다. 조명은 없거나 간소화되고 음향 역시 이동형 공연의 경우 수레 음향 등으로 재편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또한 배우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대사가 가진 집중도의 한계로 인해 배우의 입에서 발화되는 대사와 음향 시스템을 통해 처리되는 대사가 다른 맥락을 가지고 겹치는 것 역시 거리예술이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며 발전시켜온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거리예술이 공간을 중심으로 정의될 때 중요해지는 건 단순히 열린 공간이 아닌, 그 공간이 가진 맥락과 장소성이라고 할 수 있다. 타 공연예술장르에 비해 지역기반 리서치 작업이 많은 것 역시 거리예술이 가진 장소성에의 탐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해지는 것은 장소적 차원에서 ‘거리’의 개념이 될 것이다.

 


[공간의 맥락을 전유한 거리예술]
하이서울페스티벌 2015 ⓒ이란희


[관객]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기
ⓒ임현진

다수의 대중, 문화예술정책기관, 예술종사자들조차 거리예술을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식하지 않으며, 대체로 거리예술은 도시의 활력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인식되어왔다. 2017년 (사)한국거리예술협회에서 시행한 거리예술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거리예술발전을 위해 성장 및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약 40%의 응답자가 1순위로 ‘거리예술의 장르적 특성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고 답하였다. 이는 비단 거리예술 외부의 시선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거리예술씬을 구성하고 있는 공적 기관, 거리예술 종사자가 합의할 수 있는 거리예술의 경계에 대한 이해와 나눔이 필요하다.
본문에서 12개 단체를 거리예술가로 선정하였고 이 중 3개의 단체가 전격적인 서커스예술가로 파악된다. 거리예술과 서커스의 경계는 무엇인가? 서커스는 거리예술에 포함되는가?2000년대 중반, 거리예술 도입 초기에는 신체 언어나 오브제로 소통하는 작품들이 대다수였으며, 신체의 움직임이 주된 언어가 되는 서커스 역시 거리예술, 정확히는 거리예술축제라는 반경에서 관객을 만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서커스 창작 및 유통지원이 활발해짐에 따라 컨템포러리 서커스란 독자적인 장르의 범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거리예술가 중, 자신을 서커스 예술가로 규정짓지 않더라도 신체를 주된 언어로 삼으며 예술적 실현의 중심으로 사용하는 단체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이에 국내 서커스와 거리예술의 장르적 경계는 확연하지 않다.
하지만, 거리예술은 공간성이 장르를 규정짓는 핵심요소이며, 서커스는 거리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실내공연의 특성을 가지고도 상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서커스를 거리예술의 하위 장르로 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거리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고 해서, 연극을 거리예술의 하위 장르로 보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본서의 제목을 <거리예술과 서커스>로 수정하던지, 거리예술가만으로 재선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프닝이야말로 거리예술의 장르적 경계가 합의되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리예술의 개념을 살펴보는 작업의 의미는 거리예술을 기존 장르들과 구분하여 고유의 특성을 규정하는데 있지 않다. 이 과정에서 거리예술을 타장르의 상위장르로 위치시키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본문에 선정된 12개 단체는 꾸준히 각자의 방법론으로 ‘거리’와 ‘대중’을 만나 파장을 일으키려 시도하고 있고 그 파장의 배열을 통해 한국 거리예술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포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책자의 제목을 스펙트럼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작업은 거리예술이 언제나 동시대 예술가들과 거리의 시민들이 생동하는 역사였음을 확인하고, 앞으로 거리예술의 미래에 대한 고민에 고민을 보태는 일이다.

Diversity of Korean Street Arts(거리예술) 출판물 [바로가기] 


1)   김경희, “거리예술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고백”,『2012밥상포럼 거리예술 맛있게 먹기 자료집』,2012, 4쪽.
2)   이혁발,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공저,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 2005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