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대안의 구원; 더 커진 관객과 기록된 경험 2020-11-04

대안의 구원
더 커진 관객과 기록된 경험

필자 /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C 대표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이미 늦어버린 듯한 감각, 지나간 것만 같은 느낌이 이르게도 찾아왔다. 글에서 언급할 프로젝트가 (일단) 끝난 것은 불과 4개월 전. 그러나 그것을 다시 말하기가 왜 이리 주저되는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훈련시킨 것은 새로운 거리감만이 아니다. 이 바이러스는 공간을 완전히 통제하면서 공간과 엮이고 맞물려 있는 시간을 해체해냈다. 공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시간성이란 얼마나 덧없는지, 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동시대’라는 용어를 비로소 이해하고, 비로소 포기한다.

10개월 남짓한 시간은 공연예술에 관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대체로 자문자답이다. 공연예술의 본질, 공연예술의 습성, 공연예술의 방법론에 대한 물음은 때론 질문 편에, 때론 답변의 편에 섰다. 요약하자면 “왜 하느냐?”와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일 것이다. 다수의 우리는 ‘하겠다’는 의지로 대답을 대신하며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공연예술은 영상이라는 구원투수를 만난다.

이 글은 ‘새로운 예술 장르로서의 공연예술 영상’이라는 주제 아래 써진다. 그러기 위해 올해 5월과 6월에 걸쳐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진행했던 ’Performance for price: Cleanroom’(이하 클린룸)을 언급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아마도) 본격적으로 시도했던 ‘온라인 라이브 공연’이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한 악조건들을 프로젝트의 전제조건으로 역이용했기 때문이다.


’Performance for price: Cleanroom’ 포스터 ©삼일로창고극장

<클린룸>은 그동안 사무실로 쓰였던 삼일로창고극장의 빈 공간이다. 공간은 일주일 동안 한 사람을 위한 작업실이 된다. 작가 외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공연장의 스태프들, 협업자들조차 입장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섯 명은 이른바 ‘1인 창작자’로서, 홀로 수행하는 작업에 비중을 두고 나아가는 작가들이다. ‘Performance for price’는 가성비라는 단어를 거칠게 번역한 것으로, 공연예술의 가성비를 묻는 것이 프로젝트의 큰 의도였다. 작가들은 일주일 사이 제한된 공간에서 공연을 만들고, 일주일 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공연을 펼쳤다. 공연은 실시간으로 진행되었으며, 막을 내림1) 과 동시에 영상도 사라진다.


’Performance for price: Cleanroom’ 티져 영상 ©삼일로창고극장

이미 찍어둔 공연 영상이나, 공연 실황 중계가 어쨌거나 극장에 앉은 관객의 시점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클린룸>은 애초에 관객을 극장에서 만날 계획이 없었고, 유튜브와 페이스북 라이브 채널을 공연장으로 설정했다.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이 객석이 아닌 곳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볼 것을 전제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공연자는 달라진 관객과의 거리감과 관객의 시점을 헤아려 무대를 선보여야 하고, 전체를 보면서도 부분에 맺히는 하나의 소실점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했다. 이는 공연자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제안/제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관객은? 물리적 극장이 아닌 곳에서 관객은 더 큰 결정권을 갖는다. 공연에 늦어 입장을 제지 당할 일도 없고, 공연 중에 눈치 보지 않고 하품을 하거나 떠들거나 먹거나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공연을 멈추기도 하고, 일찍 끝내버릴 수도 있다. 때론 공연에 대한 반응과 의견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며, 어떤 공연자는 그 의견을 즉석에서 수용한다. 창작의 주도권이 공연자에게 있다면, 감상의 주도권은 관객에게 있다. ‘좀 더’.


’Performance for price: Cleanroom’ 공연 중 관객들의 댓글과 반응 ©삼일로창고극장

사회적 거리두기의 전면적 실행으로 공연장 등 다중이용시설, 공공예술기관의 휴관으로 예술가들의 활동이 제한되고, 극장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지속해서 관객을 만나는 방법으로서 영상 외에 다른 대안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꽤나 근사한 대안이라고, 머잖아 대안을 넘어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공연예술에 관한 수많은 질문을 던져준 점만으로도. 공연예술의 본질, 공연예술만의 특성이라 여겨왔던 것들이 실은 속성보다 순기능에 가깝다는 것, 본질이나 특성은 기술, 상황, 관점의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공연예술과 영상을 둘러싼 논의가 제기되고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공연의 방법이 아니라 공연 공간으로서의 영상을, 관객과의 거리감-관계 설정으로서의 영상을, 관람의 개념으로서의 영상을 생각하기에도 이 순간이 바쁘다. 대안으로서의 공연예술 영상을 논하거나, 공연예술 영상을 새로운 공연 장르로 바라보는 식의 개념 정리는 지금은(혹은 이제는) 조금 덜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공연예술과 영상 둘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성에 대한 말하기, 공연예술 영상은 공연이냐 아니냐에 대한 의견 개진 또한 연일 미룬다. 모든 문장에 ‘벌써’라는 수식을 달며.

통과 중인 것은 최초의 논의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굳건하게 제작되고 있는 공연 영상들은 금세 초기의 모델로 남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육체적 체험을 빼앗는 동안, 적어도 기록의 경험을 남겼다는 것을 기억하자. 분명 2020년은 가장 잘 기록된 한 해일 것이다. 영상으로만 공연하는 창작자와 영상으로만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도 머잖아 등장할 것이다. (어쩌면 다수가 될지도 모른다.) 관객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힘 있는 관객이 있는 한 공연 또한 오래 지켜질 것이므로 공연예술의 영상화를 어떤 식으로든 지지할 예정이다.

필자소개 / 허영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대표)
문학과 공연예술을 공부했다. 연극과 무용을 만들고 그에 대한 글을 써오다 기획의 영역으로 반경을 옮겼다. 퍼포먼스성을 기반으로하는 여러 창작 활동을 모두 공연의 일부로 보고 출판, 공연, 영상 프로젝트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y0ung9yun@gmail.com

1)‘막을 내리다’는 표현은 얼마나 ‘공연적’인가. 영상에서도 공연성은 살아있다. 관객의 훈련된 몸이, 공연의 약속된 체험이 공연성을 요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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