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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 영상, 공연과 기술을 이야기하다 2020-11-04

공연과 영상, 공연과 기술을 이야기하다
-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회차 -

필자/김수현
SBS 보도본부 정책문화부 선임기자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된 ‘공연예술 영상화’에 대하여 전문가 분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SBS <커튼콜>과 함께 마련하였습니다. 지난 8월 5일 수요일부터 총 5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팟캐스트를 특집 편성하였으며, 오디오와 영상을 위 링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원고와 함께 매 회를 정리하는 기획 원고가 순차적으로 등재 중 이오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기획원고 시리즈
1. ‘코로나19 시대의 공연예술 영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바로가기]
2. ‘공연예술 영상의 소비와 향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바로가기]
3. ‘공연예술 영상의 제작’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바로가기] 
4. 공연영상물의 저작권과 온라인공연의 수익화 [바로가기] 
5-1. 공연과 영상, 공연과 기술을 이야기하다 (1부) 
5-2. 공연예술 영상의 진화; 영국을 중심으로 (2부) [바로가기] 

공연예술 영상화 특집 팟캐스트, 마지막 5회차는 ‘새로운 장르로서의 공연예술 영상’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앞선 팟캐스트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얘기가 공연이 영상으로 옮겨지면 더 이상 원 공연 그대로가 아닌 다른 콘텐츠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장르가 되고 있는 ‘공연 영상’ 얘기를 하려는 취지로, 인접 장르인 영화계 인사도 패널로 초청했다. ‘장밋빛 인생’ ‘정글 스토리’의 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인 김홍준 감독, 그리고 지니뮤직 VR사업팀 안정일 팀장이 함께 했다. 영국에 있는 아이러브스테이지 김준영 대표는 화상 인터뷰로 참여했다.

강릉국제영화제 예술감독인 김홍준 감독은 수년간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예술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관객과 배우, 제작진이 만나는 ‘영화제’라는 행사 자체가 공연의 성격이 짙은 이벤트이다. 뮤지컬 영화제에서는 단순히 ‘뮤지컬 영화’를 트는 게 그치지 않고 공연과 영화를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그는 공연예술의 영상화를 바라보는 영화계의 시각을 전했다. 안정일 팀장은 공연과 음반 제작, 뮤지션 매니지먼트 경력이 풍부하고 현재 지니뮤직의 VR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마마무 VR 앨범을 내놓은 데 이어, 영상 사업과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을 비롯한 여러 실감 미디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 기술과 공연, 미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려고 애써온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예술의 영상화와 관련한 아이디어들을 풀어놓았다. 영국에서 공연 콘텐츠를 개발하고 공연 예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김준영 대표는 영국 사례를 중심으로 해외의 공연예술 영상화 흐름을 소개했다. 이 글에서는 김홍준 감독과 안정일 팀장의 대담과 김준영 대표의 화상 인터뷰 내용을 따로 정리해 전한다. 대화 내용은 압축하고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회차 녹화 현장 ©예술경영지원센터

1부. 공연과 영상, 공연과 기술을 이야기하다

김수현/ 단순히 공연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준다는 차원을 넘어서 공연 영상이 새로운 장르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감독 활동과 뮤지컬 영화제에서 공연과 영상의 접목을 시도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해주신다면.

김홍준/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예술감독을 맡았을 때, 한국 영화의 전문 인력들과 뮤지컬 업계의 젊은 인력들이 만나 교류하는 장을 만들어 서로 자극을 주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화제로 기획했다. 영화를 일종의 원천 콘텐츠로 삼아 무대에 올리는 방식을 시험해 봤다. 그 이전에 김태용 감독이 1930년대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에 변사 해설과 약간의 노래, 라이브 음악을 곁들여 연출한 시도가 있었다. 이 팟캐스트 주제는 ‘공연의 영상화’지만 거꾸로 ‘영상의 공연화’를 시도한 셈이다.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에서 <오발탄>이라는 고전영화를 상영하면서, 영상은 원래 영상을 그대로 쓰고, 대사는 성우들이 무대에서 라이브로 더빙했다. 음악은 현대적 감각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 연주했다. 대사 내용은 예전 영화와 같이 해서 예스러움을 살리지만, 대사의 톤이나 느낌은 현대 관객이 저항감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그냥 봤으면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졌을 영화가 일종의 공연 형태로 바뀌면서 집중도도 있고 내가 봐도 재미있더라.
앞으로 공연예술의 영상화뿐 아니라 영상의 공연화도 활발해지고, 상업적 잠재력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영화 관람, 공연 관람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느끼면서 대면 공연에 대한 갈망도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또 일반적인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떠나서 VR을 포함해 훨씬 다양한 형태의 공연예술이 등장할 것이다.

김수현/지니뮤직에서 내놓은 VR 앨범이 그런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안정일/ 그렇다. 마마무 콘서트라는 ‘공연’을 새로운 방식의 영상으로 만들어본 거다. VR이라는 가상현실 기술은 사람이 어떤 기구를 쓰면 현실과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 그 공간 안에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시청각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VR 앨범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이 가상공간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공연장의 현장감은 VR 기술로 훨씬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또 그 가상공간이 미디어화되면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해진다.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기존의 공연들은 모두 무대를 평면적으로 만들었다. 한쪽 방향으로 관객을 향해서 퍼포먼스하던 그 습관을 VR로 촬영해서 한쪽 방향으로 보고 있으면, 나의 전면을 제외하면 다 의미 없는 공간이 되고, 굉장히 심심한 미디어가 되어버린다.
VR이라는 미디어는 ‘나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게 초점이라고 생각했다. 평면적인 연출을 사방으로 바꿔놓았다. 앞에만 있던 무대장치를 360도로 만들어놓고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힘썼다. 기존의 공연을 VR 카메라로 그냥 찍는 게 아니다. 공연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굉장히 다양한 표현들을 공간을 확장해 연출하면, 훨씬 볼거리가 많아진다. 현실에서 보지 못한 요소들도 연출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면 매력적인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음악 공연 위주로 산업을 만드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무용 장르나, 움직임이 있는 퍼포먼스들을 VR 영상 미디어로 만들면,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문턱을 쉽사리 뛰어넘게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에 혼자서 뭔가를 보는 일이 많아지는데, 공연예술의 영상화,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와 결합, 이런 것들이 몇 가지 문턱만 넘으면, 더 많은 관객들을 창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수현/ VR앨범은 헤드셋을 끼고 내가 일대일로 무대를 대면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공연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있는 객석에서 보는데, VR 앨범은 지극히 개인화된 미디어로 만들어지는 셈이다. 영화사에서도 초창기의 영화는 혼자 보는 모델이었다고 들었는데.

김흥준/현대인은 영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영화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영화가 굉장히 오래된 예술이라는 착각을 하지만, 사실은 탄생한 지 백여 년 정도밖에 안됐다. 영화사를 보면 초창기 영화 메커니즘을 만든 사람은 에디슨이 대표적이다. 에디슨은 영화 수익모델을 자판기 모델로 생각했다. 동전을 넣으면 자판기에서 20-30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이 돌아간다.

김수현/그럼 사람들이 자판기에 눈을 대고 보는 것인가.

김홍준/맞다. 요즘으로 치면 유튜브 짧은 영상 같은 느낌인데 초창기에는 사람들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지불하고 재미있어 했는데, 그게 스토리를 담기에는 너무 짧기 때문에 금방 망해버렸다. 그래서 하마터면 영화라는 것이 훨씬 뒤늦게 다시 살아나거나, 아니면 없어질 뻔 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의 상업적인 수익모델을 만들어낸 사람이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였다. 뤼미에르 형제는 공연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공연장 무대가 있는 자리에 스크린을 설치해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듯 영화를 보게 만들고 입장료를 받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극장의 위기를 이야기하는데, 영화사의 초창기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것이 선택 가능한 노선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초기 영화 시대로 되돌아가는 느낌도 있다.

김수현/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 산업이 처음엔 사실 공연장 모델을 따른 셈이다.

김흥준/그렇다. 그렇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예전 SF소설을 보면 미래의 텔레비전이 3차원 영상이 되고, 심지어 구현은 안되고 있지만 냄새도 맡고 촉각도 느낄 수 있다는 ‘상상’들이 나오는데, VR이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런 상상을 현실화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새로운 장르들이, 테크놀로지 자체는 새로운 것이지만, 그런 개념들은 이미 예전에도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단순히 테크놀로지의 신기함이나 화소 수 같은 기술적, 물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나 감정을 어떻게 건드릴 것인가에 있다. 그래서 VR 중에는 대면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도 있다. (김준영 대표 인터뷰에서도 언급되는 ‘Draw Me Close’가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 배우가 관객과 접촉하면서 진행되는 그런 시도들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안정일/테크놀로지 발전도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워낙 기존의 다른 미디어들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테크놀로지 수준이 낮으면 만족시키기 어렵다. VR은 기술적인 수준도 초보적 단계이고, 사람들의 정서를 어떻게 건드릴지 시도도 많이 해보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럴수록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야 한다. VR 앨범에서 내가 좋아하는 어떤 아티스트가 나를 안아주는 상황을 만들어봤는데, 실제로 가까이 오면 기술적 한계 때문에 화면이 깨진다. 깨지는 걸 보여주기 싫어서 블러 처리를 했다. 마치 깜짝 놀라서 그러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다.

김수현/VR 앨범에 그런 콘텐츠가 있었나.

안정일/맨 처음 출시할 때는 없었는데, 해가 지나고 나서 신년 인사 콘텐츠로 업데이트한 것이다. 앱으로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가수들이 신년 덕담을 팬에게 해주다가 안아주는 장면을 연출했다. 묘하게 마음을 전달해주는 느낌이 있었다. 보통 프레임 있는 영상에서 시도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되든 안되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김수현/공연계에서는 예전에 하던 식으로만 해서는 안된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한다. 공연예술 영상화가 대세라는데, 이걸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안정일/ 영상화 이야기와, 영상 콘텐츠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이야기는 갈 길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영상으로 돈을 벌려면 유료 온라인 서비스나 상영을 하고, 관객을 많이 모아야 한다. 재미와 감동이 잘 전해지도록 영상을 만들어야 하고, 이는 많은 자본과 노하우가 들어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모든 공연이 영상화로 돈을 벌 수는 없다. 이게 가능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들로 나눠질 것이다.
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지금까지 상업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던 장르의 경우, 오히려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테크니션과 좋은 연출자들이 달라붙어서 영화나 영상을 만들어도, 작품은 좋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돈 주고 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예 시도도 안한 장르들, 그래서 영상화가 별로 진전되지 않은 장르가 있다. 그런 장르의 경우 기존 사업모델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면 좋겠다.

공연영상 유료화로 돈을 벌 수 있는 경우는 현재로선 팬덤이 강한 K팝 아이돌 콘서트나 뮤지컬 등 일부에 한정된다. 하지만 당장 돈을 벌 수 없다고 해서 영상화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잘 만든 전막 공연 영상이 아니더라도 색다른 매력으로 관심을 끄는 공연 영상들을 내놓으면 홍보나 브랜딩, 팬덤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이후 공연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앞서 ‘공연예술 영상의 제작’ 팟캐스트에서 ‘부가 영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안정일/ 많은 자본이 투입된 고 퀄리티의 영상만이 살아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유튜브나 새롭게 떠오르는 플랫폼의 경우에는 오히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프로덕션이나 작품들은 좋은 영업의 기회, 비즈니스 모델의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 광고 수익으로 돈을 벌기에는 들어간 투자액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각 플랫폼과 그 유저들의 특징을 파악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으로, 알맞은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제작자나 아티스트 본인이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나중에 공연을 하게 되면 굉장히 많은 관객들이 모일 수 있다.
영상으로 당장 돈 버는 건 어렵더라도, 그런 콘텐츠들을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플랫폼 사업자들도 공연을 영상화한 작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동업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대세이고, 새로운 영상 플랫폼에 관심이 많고, 사업자들끼리 경쟁이 심한 상황이지 않은가.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한테 지금이 영상 쪽으로는 굉장히 기회라고 생각한다. IP(지적재산)를 갖고 있는 제작자나 아티스트들이 직접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내고, 그 다음 단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각 장르마다 다른 방향의 생존 방식, 다른 방향의 사업 모델, 사업 기회들을 잘 주워담고 성장해야 한다.

안정일 팀장은 흔히 돈을 벌기 어려울 것으로 간주되는 장르들—무용, 클래식 음악 등등-의 영상화와 관련한 제언들도 내놓았다.

안정일/무용의 순간순간을 전달할 수 있는 ‘험블(humble)’하고 ‘레어(rare)’한 영상들을 만들어서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 쪽으로 접근하는 거다. 대표적인 예가 케이팝의 춤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의 유튜브 채널인데, 굉장히 구독자가 많다. 흔치 않은 느낌이나 콘텐츠가 자체가 갖고 있는 역동성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클래식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회는 소리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객석 위치에 따라서도 들리는 소리가 다르다. 영상화할 때 소리 측면에서 다르게 접근해서 비주얼의 무난함을 극복하면 좋겠다. 스테레오로 정형화된 대중음악과는 차별화해서, 밸런스를 좀 다르게 편성하면 좋을 것 같다.
넌버벌 퍼포먼스도 영상화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넌버벌 퍼포먼스는 사운드를 활용해서 극적인 연출을 한 부분이 많은데, 새로운 미디어와 결합해서 연출자의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공연 자체로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장르에서도, 다채로운 공연 영상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널리 알리고 팬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 영상에서 생생한 소리, 훌륭한 음향으로 ‘무난한 비주얼’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앞서 ‘공연예술의 제작’ 팟캐스트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됐던 내용이다.

김수현/요즘 공연 보신 것 중에 새롭고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해 주신다면.

김홍준/새롭기를 기대했는데 좀 실망스러웠던 공연들도 많았던 것 같다. 테크놀로지를 너무 앞세운 공연들은 재미가 없었다. 이머시브 공연이나 장소 특정적 공연, 이런 것들 중 상당수가 정말 중요한 스토리텔링이나 캐릭터, 말하자면 시나리오가 부실한 상태에서 하드웨어에만 매혹되어 몰두하는 것 같더라.
새로운 형태의 공연들이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지원이 어쩌면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스트레스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실험하고 하드웨어를 구현하는 것이 지원 조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 작품에 필요한 것 이상의 화려함이나 규모, 정교한 기술적 장치들이 들어가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 재미있을 수 있지만, 공연에서 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기가 쉽다.
지난해 강릉국제영화제에서 VR을 전혀 모르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VR 전시를 했다. 의외로 VR 전문가들에게는 크게 평가를 못 받았는데, VR을 처음 접한 분들이 제일 좋아한 콘텐츠가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 사실 스토리도 없지만, 뒤에 보면 낭떠러지가 있고, 앞에는 멋진 경치가 펼쳐지고, 위로는 하늘이 보이고 하니까, 그리 고화질도 아닌데,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
실제 체험하는 것처럼 완벽한 사운드와 화질이 제공된다면 색다른 차원의 경험이 되겠지만, 어차피 기술 수준이 아직 그 단계까지 못 갔다면, 오히려 많은 부분들을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게 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단순하고, 기술적으로 별 것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원래의 체험에 가깝게, 빈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좋지 않을까. 공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회차 녹화 현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안정일/중요한 말씀이다. 부천영화제에서 그 영화 봤는데, 만약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VR 콘텐츠가 감동은 훨씬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흥준/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극장에서 보는 다큐멘터리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안정일/마치 내가 직접 올라가는 듯한 느낌!

김흥준/그렇다. 다큐멘터리로 보면 저 영웅들의 처절한 투쟁을 내가 제 3자로, 겸손하게 무릎 꿇고 바라보는 느낌인 반면, 이 콘텐츠는 소박하지만 내가 바로 그 자리에 가 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있다. VR이라는 장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체험이 아닐까.

안정일/요즘 콘텐츠 지원 사업이 굉장히 많다. 특히 실감 콘텐츠는 예년보다 훨씬 예산이 많아졌지만, 들여다보면 대부분 감독님 말씀대로 엄청나게 새로운 기술이 들어가거나, 규모가 굉장히 커야 그 사업으로 선정될 수 있다. 아주 새로운 기술이 아니더라도 기존의 기술들을 잘 활용해서 새로운 온라인 공연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에 나눠서 지원하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지금 공연 제작자와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을 텐데. 지원 자격도 너무 어렵고, 기술도 접목해야 하고, 이게 과연 이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유일한 방향인가 싶었다.

김수현/영국에는 공연과 영상, 디지털 기술의 결합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 있다고 한다. 음향효과를 잘 활용한 ‘인카운터’라는 공연도, 이 기관의 지원 덕분에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무대에서 구현할 수 있었다. 콘텐츠 지원사업은 보통 산업적으로 규모가 크고 신기술 관련 프로젝트만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공연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안정일/지원사업을 보면 기술과 관련 산업 네트워크가 있지 않으면,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것들이많다. 그래서 기존 콘텐츠 사업자들이 배제되고, 실감 콘텐츠 하는 사업자들만 달려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양한 방식의 공연 영상화 사업을 지원하고, 국내 실감 미디어 기술이나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컴퓨터 가공 영상) 기술 보유 기업들과 공연 제작자들을 매칭해서 새로운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김수현/현재 공연과 영상 분야 융합 사업이 좀 있는지?

김홍준/지금까지는 공연은 공연대로, VR은 VR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기존의 틀이 딱 잡혀있기 때문에 이걸 벗어나려는 것 같지 않다. 사실 3D도 그랬고, 증강현실도 그랬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시류를 타는 측면이 있다. 어차피 시류를 타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오늘의 주제이기도 한 공연의 영상화 관련해 영화계에서도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영화 인력 중에 젊은 세대들은 공연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쳐 보면 자기 영화에 직접 음악을 만들어 넣거나, 안무를 짜서 넣기도 한다. 지금은 이런 친구들이 제대로 길을 못 찾고 있는데, 공연 아카이빙 사업에 투입해 지원해주면 어떨까. 콘텐츠를 기록으로 남기는 아카이빙, 인력 개발, 새로운 장르 창출의 인적 기반을 닦는 사업들을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면 좋겠다.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30년쯤 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콘텐츠 사업에 막 투자하기 시작할 때, ‘인프라 구축과 인력 양성’을 얘기하면 그걸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도와주는 것, 일종의 시혜라고 생각하더라, 그런데 당시 문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문화 정책을 들여다보면, 가령 독립영화를 지원한다든가, 예술가들에게 레지던시를 제공해 작품 활동을 하게 하는 것들이, 당장 유명하고 돈 잘 버는 콘텐츠를 만들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키워진 인력 100명 중에 99명은 나중에 포기하고 진로를 바꿀 망정, 한 사람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나오면 되는 거였다. 우리 문화정책이나 사회 일반의 예술에 대한 인식도 그런 패러다임으로 바뀌면 좋겠고, 실제로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새로운 예술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 지,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지금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답답함과 불만이 문화예술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데, 이를 전사회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공연예술의 영상화’라는 주제 속에서도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해야 할 고민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안정일/영상 콘텐츠로 수익을 올리는 것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걸그룹 블랙핑크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블랙핑크가 초기부터 주력한 게 뮤직비디오다. 기존의 뮤직비디오보다 훨씬 많이 투자해서, 유튜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유튜브 뮤직비디오로 벌어들인 광고 수익이 중요하다기보단, 많은 팬들을 만들어서 전세계 유명 음악축제 섭외 1순위 그룹이 되었다.
공연을 온라인 콘텐츠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하다 보면, 콘텐츠 자체가 수익을 올리는 것 말고도, 이 IP(지적재산), 공연을 다른 지역에서 선보일 기회도 생길 수 있고, 라이선스 계약도 체결할 수 있다.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서 어떻게 돈을 벌지 고민하지 마시고, 이 매체가 만드는 콘텐츠가 많은 관객을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마음으로 여러 시도를 하면 좋겠다.

김홍준/콘텐츠 업계에서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직접 창작자로서, 30년 이상을 지내왔는데도, 아직도 감을 잡기 어렵다. 요즘은 관객이나 소비자의 반응을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역시 인간은 의식주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며, 예술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 코로나 상황에서 증명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현실에 대해서 공포감을 느끼는 것도, 생명과 생계의 위협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것들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 잔의 커피일 수 있고, 한 곡의 노래일 수 있고, 공연장이나 갤러리, 책방에서 겪었던 접촉과 대면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 같다. 관객을 믿고, 대중을 믿고,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계속 나아가는 게, 문화산업 종사자나 창작자들이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다. 공황도 있었고 전쟁도 있었고 다른 팬데믹 상황도 있었고, 기존 질서를 깨는 기술이 등장할 때도 위기가 왔다. 사람들이 그 때 어떻게 시선을 이동했는지, 뭘 선택했는지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 자리에서도 시도할 일들이 생길 것 같다.


공연예술 영상화 팟캐스트 5-1회차 다시보기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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