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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아트마켓참가연재(8) 아시아 권역의 사회적 예술 운동 및 동시대 예술 프로젝트 연구(4) 2020-04-01

아시아 권역의 사회적 예술 운동 및 
동시대 예술 프로젝트 연구(4)

임인자 (독립기획자, 소년의 서 대표)

4. 홍콩 2019, 집회가 전면 금지된 날

2019년 8월 31일 홍콩섬에서 ⓒ임인자 2019년 8월 31일 홍콩섬에서 ⓒ임인자

집회가 전면 금지된 날

2019년 8월 31일, 홍콩에서의 시위와 집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그날은 홍콩섬에서 홍콩의 프로듀서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홍콩 시민들이 저항을 시작한 직접적인 촉발 원인은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인 창퉁카이의 살인사건 그리고 그에 따른 ‘범죄인 인도 법안’ 제정이 결국 중국으로 홍콩인을 송환하는 뒷받침이 된다는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이후, 2047년까지 50년간 중국이 외교와 국방의 주권을 갖되,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a high degree of autonomy)을 부여한 ‘일국양제’체제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선거권 및 언론과 표현의 자유 문제 등에서 중국의 개입과 통제가 점점 가시화되면서 홍콩의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분노와 걱정이 기저에 깔려있다.

시위가 전면 금지된 날, 시위에 합류하기 위해 검정 옷을 입고 있던 나와 달리 그녀는 회색 옷을 입고 나왔다. 혹여나 경찰에 잡혔을 경우, 자신은 시위가 아닌 홍콩섬에 쇼핑을 위해 방문한 것이라는 알리바이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평화로운 시위에도 불구하고, 8월 11일 한 여성이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시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등 경찰의 무력 진압이 시작되면서, 무력에 대한 일상의 공포가 전해져왔다. 홍콩에서는 시위 소식이 텔레그램(Telegram)으로 전파된다. 우리가 몇 년 전 카카오톡의 검열 의혹으로 집회와 시위를 위한 소식을 텔레그램의 채팅방을 통해 논의하고 전파했던 것처럼, 홍콩인들도 디지털 기기에 남게 되는 모든 흔적들을 최대한 남기거나 검열 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통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집회가 금지된 그 날도 사람들이 어디에 모일 것인가의 정보를 교환하며 텔레그램 방을 찾게 되었고, 홍콩 프로듀서를 통해 그날의 집회 장소인 완차이역 인근의 서던 운동장(Southorn Playround)으로 향했다.   

홍콩 짜유!(香遭 加油)

집회가 불허되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카톨릭 신자들이 주최하는 기도회가 명분이었다. 완차이역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역 주변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고 참여를 독려했다. 서던 운동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람들의 모임은 생중계되며, 모두가 스스로에게 증언자가 되고 있었다. 기도가 이어졌고, 찬송가가 불리워졌다. 기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홍콩 짜유!(香遭 加油)를 외쳤다. 영상을 찍어 홍콩 친구들에게 전송하며 물어보니 ’홍콩 힘내라!’는 뜻이라 한다. 더 정확히는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더 부어 힘을 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집회가 금지되었기에 기도와 구호가 뒤섞이며 사람들이 함께 모여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을 보니, 한국의 80년대가 떠올랐다. 광주 5·18민중항쟁 이후 사건의 해결을 위해 종교계가 나섰던 의미에는 집회 결사의 자유가 모두 사라진 불가능한 제도들 속에서 모이고 발언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고, 지하실에서 등사를 하고, 광주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하며, 종교와 매체 그리고 예술의 힘을 빌어 광주를 말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1

기도회가 끝나고,홍콩의 대학생들이 깃발을 들고 운동장에 진입하자, 사람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기도회로 멈출 수 없는 시민들은 거리로 나가기 시작했다. 집회 금지로 인한 긴장감 속에서도 행진을 이어가던 시민들은 반대편에서 오는 2층 버스의 승객들과 손인사와 박수로 서로를 격려했다. 서로 질서 정연하게 행진을 이어갔다. 그렇게 행진이 계속되다가 결국 홍콩의 정부 관련 시설 앞에 바리케이트로 막힌 장소 뒤로 숨은 경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 바리케이트 안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경찰들 허리에는 총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니 마카오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가 경찰이 총을 쏠 수도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의 글을 남긴다. 사람들은 평화로운 행진과 집회를 이어갔지만, 결국 그날 저녁 지하철역에서는 열차 안까지 따라 들어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직접 체류액을 직접 난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날 사라졌던 한 소녀는 얼마 전 홍콩 인근 간에서 시신으로 떠올랐다.

식민화 과정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

홍콩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예술가들은 광화문에서 캠핑촌을 만들고 노숙을 하여 촛불의 하루하루를 지켜갔다. 그리고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만들어 ‘사라진 목소리’를 공연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홍콩에서 여전히 예술은 쉬워보이지 않았다. West Kowloon의 극장에서는 독일 리미니프로토콜과 홍몽시민의 협업인 ‘100%홍콩’은 계속 연기되는 사태를 맞기도 하였다.

1989년 5월 29일 제작되어 천안문 앞에 설치된
’민주주의 여신상’ⓒJeff Widener/AP뉴스
2019년 10월 제작된 홍콩 자유민주여신상 ⓒEPA=연합뉴스

1989년 6월 천안문 앞에는 ‘민주주의 여신상(Goddess of Democracy)’이 설치되었다. 인간 존엄으로서의 자유와 민주화를 꿈꾸었던 학생들이 중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며 사회 정의를 요구하며 모여들었고, 한생들은 ‘조각상’을 설치하였다. 자유가 분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1989년 6월 4일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학살되었다. 중국은 6·4민주화운동을 역사에서 지웠고, 검열하며,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그 침묵의 자리에, 2019년 홍콩인들은 ‘자유민주여신상’을 세웠다. 2014년 우산혁명에서 이어진 우산을 들고, 2019년 경찰의 체류탄과 체류액에 맞서 고글과 방독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한 여성의 모습이다. 거리에서 집회에서 함께 참여했던 이 ‘자유민주여신상’은 2019년 10월 14일 새벽 홍콩 ‘사자산’에 설치되었다. 국면은 나아지지 않고, 경찰의 폭력이 이어지고 있는 엄혹한 시간들에 높이 4m가 되는 ‘자유민주여신상’은 거리와 광장에서 떠나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자유’와 ‘민주’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말하고 있다. "당신은 포기해서는 안된다"라고. 오늘의 홍콩은 어제의 광주 5·18민중항쟁, 1987, 중국 천안문 6·4 학살 그리고 2016-2017 촛불혁명과 모두 맞닻아 있다. 여전히 폭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남아있는 채로. 그래서 응원하게 된다. 국가와 체재를 뛰어넘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짜유!(加油)! 응원을 보낸다.  

저항예술의 기록들과 아카이빙, 폭도는 없고 폭정만 있다(沒有暴徒,只有暴政)

아시아 예술 아카이브(Asia Art Archive)를 방문하였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예술가들은 사회적 저항의 과정과 질문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것은 중국에서 현재도 금기시되는 6·4 천안문 사건31으로부터 2019년 홍콩 광복혁명으로 이어지는 전방위적인 활동이었고, 예술이 사회적 금기를 뛰어 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회적 변혁은 예술을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시민을 폭도로 말하는 홍콩 정권의 폭력성에 대해 예술활동으로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그것은 폭도는 없고 폭정만 있다(沒有暴徒,只有暴政, No Rioters, Only Tyranny)’라는 독립출판물의 혁식이기도 했고, 또 저항 예술제 형식으로도 이어졌다. 아시아 예술 아카이브에서는 특별히 이러한 활동을 카테고리화하여 기록으로 남겨 두고 있었다.

2009년에 진행된 6.4 천안문 사건 20주년 기념 문화재
P-at-Riot:80後六四文化祭포스터 ⓒ임인자
2009년에 진행된 6.4 천안문 사건 20주년 기념 문화재
P-at-Riot:80後六四文化祭 ⓒP-at-Riot:80後六四文化祭포스터
폭도는 없고 폭정만 있다(沒有暴徒 ,只有暴政, No Rio te rs,
On lyTyranny) 독립출판물 © 임인자
딸과 함께 한 2019년 홍콩 시위 참여의 기록 독립출판물 © 임인자

5. 마카오 복(bok)페스티벌에서 만난 "중국이라는 정체성"

마카오의 독립연극축제 ‘복(BOK) 페스티벌(劇場博劇場)’은 2019년 8월 24일부 터 9월 8일 마카오 후우방실험장(後牛房實驗場 Ox Warehouse Experimental Site), 오 문당대예술중심 해사공방2호(澳門當代藝術中心海事工房2號, Macao Contemporary Art Centre - Navy Yard No.2), 포인지가혹합극장(蕭人之家黑盆劇場, Casa de Portugal Black Box Theatre) 등에서 열렸댜 복 페스티벌은 2013 년 민간연극단체인 천변외극단 (天邊外 澳門 劇團, Horizon Macau Theatre Group)이 독자적으로 시작하였다가, 2016 년부터는 마카오의 다양한 민간 극단과 극장들이 협업하여 축제를 이끌어가고 였다. 한국 에서는 하수민 연출의 작품과 김황 연출의〈모두를 위한 피자〉등의 작품이 초청되어 공연 되었댜 복 페스티벌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데 초청작품의 상연 뿐만 아니라, 비평 프로그랜 플리마켓, 24시간 프로젝트 등이 수행되면서 다양한 예술활동이 전개되었다.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1시간이면도착하는 마카오는 포루투칼로부터 오랜 식민 경험을 가진 도 다른 역사적 맥락을 지녔다. 중국과 홍콩의 긴장관계 속에 마카오의 상황 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2019년 복 페스티벌에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올 질문하 는 XIAO KE x ZI HAN 듀오의 작품〈CHINAME〉이 초청되어 공연되었는데, 이 작품은 전 세계에 분포된 중국인의 뿌리를 찾으며, ‘중국인’의 정체성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한다. 또한공연하는지역에서 만난중국인들과 인터뷰를하면서 ‘중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댜 이러한 인터뷰 과정을 통해 “중국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댜 다시 질문과 답은 여러 지 역을 통괄하며 또 다른 질문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대중예술인 트와이스의 멤버 가 TV에서대만의 국기를 들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중국에서 논쟁을 일으켰던 것을 기억할 지 모르겠다. 일국양제를 취하는 중국권에서 “당신은 중국인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정치적 인 논쟁을 불러온다. 상하이 출신의 중국 예술가 XIAO KE x ZI HAN 듀오는 국제질서의 맥락을정체성으로질문한다. 이들은각지역을돌아다니며, 직업 현지의 시민들을만나이 질문들을 이어가고 있다. 

2019 복 페스티벌(BOK Festival)
Talk WallⓒBok Festival
2019 복 페스티벌(Bok Festival)
ⓒ임인자
2019 복 페스티벌(Bok Festival)
초청작 CHINAMEⓒ임인자

홍콩과 마카오의 방문은 수세기에 걸친 서구의 지배와 식민 경험 이후 국가적 문화 체계를 조성하고자 하는 중국의 민족적인 열망과 자유의 경험과의 충돌, 그 안에서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예술의 노력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시아의 안과 밖으로 새로운 힘의 질서를 구성하고자 하는 중국의 열망과 그 내부적 정치와 국제적인 역학관계 및 정치적인 상황과 자본의 이중적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였다. 결국 이러한 역학관계는 우리를 어떠한 세계로 이끌어 가게 될지, 예술은 어디에 서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였다.



1      임인자, 「광주 5·18, 천안문 6·4 그리고 홍콩 2019」,《씬 1980》창간호, 2019.12.96-101쪽
2      이에 대한 아카이빙은 64demo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중국 당국의 검열로 중국에서는 열람이 불가능하다 https:/ / www.64mem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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