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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아트마켓 참가연재(5) 아시아 권역의 사회적 예술 운동 및 동시대 예술 프로젝트 연구(1) 2020-02-04

아시아 권역의 사회적 예술 운동 및
동시대 예술 프로젝트 연구(1)

임인자 (독립기획자, 소년의서 대표)

1. 들어가며 - 조사목적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또한 5·18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경 험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도시다. 그러나 현재 광주에서 말하는 아시아 는 ’음식’이나 ’여행’과 같은 매우 표면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비엔날레로 대표되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예술활동이 거의 대부분인 상황 이다. 내가 광주에서 생각하는 아시아는 식민의 경험으로부터, 국가폭력의 경험으로부터, 변 방으로부터 연대로서의 아시아이다. 또한 서구로부터의 일방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된 5·18 광주민중항쟁은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에 대항한 광주시민과 민중들의 저항정신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 을 재촉하는 힘이 되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으로 그 정신은 이어지며,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시민사회에서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

1980년의 광주에서 시작하여 전개되기 시작한 민중항쟁은 아시아 각국으로 번져, 독재 정부에 치열하게 항거하는 힘으로 표출되었다. 광주에서 시작된 민중의 항거 정신은 1986년 2월 필리핀에 상륙하였다가 1987년 6월 다시 한국으로, 1988년 8월 버마로, 1989 년 6월 중국으로, 1992년 5월 태국으로, 1998년 5월 인도네시아로, 2006년 4월 네팔로, 2008년 7월 몽골로, 그리고 2009년 7월에는 이란으로 도미노처럼 번져나갔다. 1980년대의 민주화의 거센 파도는 헌팅톤(Samuel Huntington)이 ‘제3의 물결’이라 표현한 것처럼 격랑을 이루어 전파되었으며, 1990년대 초반 동구권의 몰락은 물론 소련연방의 붕괴와 재편성까지 이어지게 한 바 있다(Huntington, 1991 & 1993).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러한 ‘물결’은 1990년대를 넘어 21세기에 들어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는데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은 그 물결의 수평적 파급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물론 광주민주화운동의 내용과 정신 이 곧이곧대로 전파된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맨 밑바닥에 위치하였던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근대화의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무대에 우뚝 서게 되었다. 오랜 가난과 독재 에 시달려온 동아시아 개발도상국들에게 있어서, 단기간 내에 가난을 극복한 한국은 본받아야할 모델이자 우상이었다. 모델의 양태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눈부신 경제발전 모델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에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에서 막강한 경제 강국의 대열에 올라섰다. 두 번째는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고귀한 피 흘림 위에 세워진 민주화 모델이다.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한국은 짧은 기간 동안에 경제발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낸 있는 모범적인 나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동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은 그 모델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 양자가 동시에 진행되었지만 경제발전 모델은 독재정권 담당자들에 의해 유행적으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이루어낸 민주화 투쟁 내용은 겨우 몇몇 언 론이나 비정부기구·시민단체 등을 통해 일반 민중들에게 조용히 전파되었다.1

아시아는 탈식민, 이념 대립, 베트남 전쟁, 민족주의 대두, 근대화, 민주화 운동 등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 속에서 예술가들은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고 억압으로 부터 ‘해방’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기존 예술의 개념과 범주, 미술 제도에 도전하 는 실험적 미술 사조를 이끌었다.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서구 근대주의의 비판은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벗어나 사회 맥락에서 예술을 파악하고 다양한 미학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예술 운동을 출현시켰다.2

광주에서 바라보는 아시아는 식민과 폭력으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으로서의 자유와 독립을 향해가는 연대의 발걸음이다. 나는 1989년 이철규 열사의 부릅뜬 눈의 익사 사진이 포스터로 만들어져 학교 담벼락에 붙었던 순간과 1990년대 초반 금남로에서 전두환의 얼굴이 희화회된 민중미술 그림을 보고서야 잘못된 권력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금남로 거리에 재현된 영화 ’꽃잎’ 촬영 이후의 광경을 보고 광주 5·18민중항쟁을 알게 되었다. 광주에서 성장했지만, 학교에서 조차 5·18민중항쟁에 대해 듣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사진을 찍었다가 감추어 두었다는 무서운 이야기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게 예술은 진실의 창이었다.

광주에서 예술은 사건 해결을 위해 진실을 재현하고 구성하는 역할을 하였다면, 지금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예술가들은 노동현장, 비정규직 투쟁 현장, 그리고 미투운 동 이후 예술계 내의 위계 폭력과 성평등 문제,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다하고 있다. 광주에서 이 문제들은 제대로 담론화되지 못하고, 예술은 무엇을 또 말하고 있는지 예술의 역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촛불혁명에서 검열과 블랙리스트 문제로 싸움을 하며 ’삭제된 목소리’, ’사라진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반성과 실천으로 저항을 해왔던 예술가로서 나는 다시 ’광주’와 ’아시아’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검열과 블랙리스트 반대 운동을 하면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블랙리스트 실행 등을 감각하면서, 2-3년간 해외아트마켓 방문 등의 국제교류사업에 지원 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다원예술과 연극분야를 중심으로 실행해왔던 국제교류가 중단된 상태를 감각하고 있었다.

예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경력단절의 상태로, 나는 더 늦기전에 아시아의 예술현장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시아 권역의 사회적 예술 운동 및 동시대 예술 프로젝트 연구’라는 주제를 정하였다. 그리고 실천적으로는 광주에서 예술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위한 축제를 준비하면서 아시아의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여 조사하고자 하였다. 아시아의 사회적 예술운동 및 동시대 공연예술현예술운동현황을 살핌으로서 차후 광주에서의 사회적 예술축제 창설 도모 및 아시아와의 교류 플랫폼 구축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으로 조사를 시작하였다.

2. 일본에서 조사를 시작하다

1)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에서의 국제교류에 대한 문제의식

아시아에서의 국제교류에서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아시아 국제 교류였다. 일본은 동아시아 교류에 있어 그동안 한국, 중국 등에 집중해왔지만, 최근 몇년사이 동남아시 아와의 교류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금지되었던 일본문화개방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98년 10월로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공연예술분야는 그 이전부터 교류가 진행되었는데, 한중일 3국의 연극인들이 ‘상호교류를 통해 무대예술의 창조정신을 고무하는 만남’이자 ‘동양연극의 개성과 그 예술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만남’을 주요 목표로 하여 1994년 처음 개최한 베세토연극제3가 대표적 인 교류 행사다. 1994년 이래 해마다 3개국이 돌아가며 열고 있다. 베세토(BeSeTo)란 3국의 수도인 베이징(Be), 서울(Se), 도쿄(To)를 의미한다. 민간에서는 1997년 시작한 Asia Meets Asia와 같은 프로그램에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지원하고 있다. Asia Meets Asia는 공연예술중심의 축제로 일본, 말레이시아, 한국, 몽골 등의 예술가가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으며, 무단통치와 학살을 자행했다. ’탈아입구’를 외치며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로 가자며 메이지 유신을 이 룬 이후 일본은 자신을 아시아의 대표로 표방하며 아시아를 식민화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 락과 함께, 특히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시민으로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성없는 태도에 분노한다. 이러한 일본이 도대체 어떠한 태도와 관점으로 아시아에서 문화예술교류를 행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일본은 아시아와 교류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행사 였다. 는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에서 개최한 행사로 일본, 태국 등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되었다.

(1)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을 통해 주도하는 ’아시아’

일본국제교류기금은 국제문화교류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전문 기관으로서, 1972년 10월에 설립된 일본 외무성 소관 특수법인을 전신으로 하여, 2003년 10월 1일 독립행정법인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으로 설립되었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은 도쿄 본부와 세계 23개국의 24개의 거점(중 2개소는 아시아센터 연락사무소) 및 일본 국내에 2개 의 부속기관(일본어국제센터, 간사이국제센터)와 지부(교토)를 두고 있으며, 운영은 정부 출자금의 운용수입과 매해 정부에서 받는 교부금 및 민간 기부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은 “국제문화교류사업을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이해와 국제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또한 문화뿐만 아니라, 기타 분야에서 세계에 공헌함과 동시에 좋은 국제환경을 정비하여, 조화로운 대외관계의 유지·발전에 기여하는 것” 을 그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4

2차 대전 종전 후 1960년대까지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 식시키고 평화적 이미지를 심기 위한 소극적 공공외교를 시행하였으며, 따라서 이 시기의 일본 공공외교는 전통적 문화에 초점을 맞춘 일방향적 투사의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문화외교와 국제 홍보를 강화하기 시작하였으며,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책임을 수행하는 국가로서의 위상과 이미지 확산이 공공외교의 핵심 초점이 되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서 공공외교 전담 기관으로서 1972년 일본국제교류기금(JF: Japan Foundation)을 창설된 것이다.5

전후 초기에는 미국이 공공외교의 우선적 대상 국가였으나, 곧 동남아에서 일본의 점령이라는 과거사와 더불어 일본의 경제적 진입에 기인하여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1970년대 중반 이래 동남아, 1980년대에는 중국이 일본 공공외교의 중요 대상 지역으로 부각하였다. 1995년에는 아시아에서는 다자주의를 강조하여 JF 아시아센터(Asia Center)를 출범 시키고 다변적 문화교류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6 1995년 10월에 설립된 ’아시아 센터’는 아세안 국가들의 문화를 일본에 소개했던 국제교류기금 ’아세안 문화센터’가 발전 적으로 확대된 조직으로, 일본과 인근 아시아 국가들 간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아시아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공통감각을 기르기 위해 설립되었다.7

그러나 2012년 이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집권 2기에 들어서 일본의 공공외 교는 과거의 반응적 성격에서 보다 ‘전향적인(proactive)’성격으로 변화하고 있음. 아베 총리 는 일본의 경제부흥과 “보통 국가화”라는 두 가지 핵심 아젠다를 내세우고 있으며, 전자는 아 베노믹스(Abenomics) 정책, 후자는 “적극적 평화주의” 하에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표방하 는 이른바 “안보 수정주의”로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일본을 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 특히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는 긍정적인 것이지만,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인 주변국에는 잠재적 위협과 우려로 인식될 수 있음. 바로 이것이 과거사 에 대한 미국과 주변국들의 본질적인 인식 차이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8

© Japan Foundation Asia center
© Japan Foundation Asia center

일본 정부는 2013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아세안일본 기념 정상회의 (the ASEAN-Japan Commemorative Summit Meeting)에서 아시아 문화 교류를 위한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그것은 "융합과 조화"를 통한 소통하는 아시아 를 향하는 "WA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 사업의 근거로, 2014 년 4월 본사 내에 산하기관으로 아시아센터를 설립하였다. 이 는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해인 지금부터 2020년까지 일본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간의 문화교류를 촉진하고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음악, 연극, 영화, 스포츠, 일본어 교육 및 기타 학술 교류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센터는 재단의 해외 사무소들과 협력하여 아시아 공동체들 간의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추구하고 지원한다. 아시아센터는 아시아 문화교류기금으로 6천7백만 달러를 집행할 예정이며, 라오스 비엔티엔, 캄보디아 프놈펜에 추가로 센터를 설립하였다. 현재 일본의 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에서의 문화예술지원정책은 4C(Communicate → Connect and Share → Collaborate → Create)라는 전략으로, 소통-연결-공유-협업-창조라는 단계적인 지원체계9를 과정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시아센터는 일본어교육 프로그램(NIHONGO Partners)과 문화와 지적 교류 (cultural and intellectual exchange)의 두 가지 큰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어교육 프로그램은 아세안 국가의 약 3,000명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9년 현재 브루나이 4명, 캄보디아 3명, 인도네시아 566명, 라오스 6명, 말레이시아 110명, 미얀마 18명, 필리핀 52명, 싱가포르 5명, 태국 375명, 베트남 112명, 타이완 30명이 참여하고 있다.10

문화와 지적 교류 분야에서는 사람-사람 교류 프로그램(People-to-People Exchange)으로 ’HANDs!- Hope and Dreams-Project!’가 진행되는데, 재난과 연관된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워크숍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시아 네트워크를 촉진하고 증진하는 프로그램(Promotion and Support for Building Networks in Asia)으로는 아시아의 각 분야 리더들을 일본에 초청하는 것, 일본 혹은 아세안 국가에 장·단기 펠로우쉽, 그룹별 인적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예술가들이 아세안 국가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면서 작품 개발 및 프로듀싱이 진행되었다.

아시아 문화 협업 프로그램(Promotion and Support for Building Networks in Asia)으로는 도쿄국제영화제, ’댄스 댄스 아시아(DANCE DANCE ASIA), 청소년 축구 교류 프로그램, 그리고 공연예술분야에서는 요코하마 공연예술회의 (TPAM, 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를 지원 하고 있다. ’댄스 댄스 아시아’ 프로그램에서는 2014 년도에 유명한 거리무용가와 단체들을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에 파견하여 협업 교류 체제를 마련하였다.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에서는 다양한 아시아 국제교류가 가능하도록 워크숍 등을 개최하고 있다.

’HANDs! - Hope and Dreams - Project! © Japan Foundation Asia center
’HANDs! - Hope and Dreams - Project! © Japan Foundation Asia center

2)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Asia Hundreds)

아시아센터는 사업 초창기,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각국에 예술 현장 인력예술가, 프로듀서 등-을 파견하여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Asia Hundreds)를 진행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다시 이들을 일본으로 초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기획안 에 대해 ‘어느 쪽이 얼마를 내는지’ 가 아니라 ‘아시아 교류의 확장’이라는 목표에 얼마나 부합 하는지를 판단하고 지원했다. 물론 올림픽 거품이라는 배경과 일본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심은 지울 수가 없고, 이러한 일방적인 예산 투여로 진행되는 교류에 대한 경험적 우려 역시 불식시킬 수는 없다.11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의 ’현재’를 바라보고자 기획되었다.

Asia Hundreds © Japan Foundation Asia center
Asia Hundreds © Japan Foundation Asia center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Asia Hundreds)12는 아시아 각 지역에서 활동 하는 예술가들의 현재와 고민을 들을 수 있다. 첫 시작은 인도네시아 자바의 무용가 Eko Supriyanto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예술가가 인터뷰어로 참여하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한국 등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분야의 다양한 창작자, 큐레이터 등을 인터뷰 하였다.

첫 시작인 인도네시아 자바의 무용가 Eko Supriyanto는 공연예술 프로듀서이자 코디네이터 Yuki Hata의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그는 자바 전통춤을 기반으로 현대무용을 창작하고 있으며, 그의 최신작 ’Cry Jailolo’을 중심으로 작품과 인도네시아의 공연예술산업과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13 두 번째 인터뷰는 태국 전통 가면춤인 콘(Khon)의 무용수이며, 현대무용의 안무가인 Pichet Klunchun와 무용평론가 Daisuke Muto의 상호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최근 작품에 대한 대담 및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는 작품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무용가 Eko Supriyanto, 인도네시아 아방가르드 춤으로 명성이 높은 Sardono Kusumo, 그리고 대만현대무용의 선구자 Lin Hwai-min을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는 아시아 예술가 중 자신의 롤모델로 꼽았다.14

세번째 인터뷰는 인도네시아 무용축제, 자카르타 예술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던 Helly Minarti와 일본의 민간기업에서 출연한 민간예술지원기관인 세존재단(The Saison Foundation)의 프로그램 디렉터 Atsuko Hisano와의 상호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Helly Minarti는 무용단체의 카피라이터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다 언론사 Jakarta Post에 근무하면서 많은 단체들을 만났다. 1990년대는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활황기였다. 그러나 1997년 중반 IMF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녀는 해고되었고, 자카르타 독일문화원(GoetheInstitut Jakarta)의 Rudolf Barth 박사의 초대로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무용과 연극 평론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것이 공연 예술 맥락에서 "아시아"라는 복잡한 개념과의 첫 접촉이었다.(That was my first contact with the complex notion of "Asia" within performing arts context.) 그리고 런던에서 예술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졸업 후 자카르타예술위원회에서 일하던 중 예술경영을 더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무용 관련 박사학위를 마쳤다. 중국에서 무엇을 " 근데(modern)"라고 할 것인지 무엇을 "동시대"라고 해야할지 긴 고민의 시간이었다. 돌아와 여러기관에서 일을 했는데, 특히 인도네시아 무용축제의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했다.15

네번째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 공연을 선보이는 Choy Ka Fai와 도쿄대학교 예술과 기술대학 교수인 Tadashi Uchino와 상호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Choy Ka Fai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싱가포르 출신의 예술가으로 Dump Type에 대한 관심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 여러가지 춤의 아카이브와 인터뷰를 통해 ’soft machine’ 이라는 작품을 인도에서 초연했다. 소프트 머신의 개념은 아시아의 현대 무용의 현재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Choy Ka Fai가 런던에 살고 있던 2009년, 주요 댄스 기관인 새들 러웰스에서 "아시아 밖: 현대 무용의 미래?"라는 행사가 열렸다. Choy Ka Fai는 그들의 홍 보 동영상을 보고 그것이 1차원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행사는 오히려 아시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시아 밖으로’보다 ’아시아 안에’가 더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Isn’t ’within Asia’ more interesting than ’out of Asia’?") 그래서 Choy Ka Fai는 아시아 여러 도시에서 예술가들을 만나고 현대 무용 장면에 대해 배우기 위해 2년 동안 아시아를 여행했다. 그리고 소프트 머신이라는 작품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예술가의 지역적,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무대에서 긴장이 지속된다. 이 작품에서 Choy Ka Fai는 친밀한 분위기에서 무용수들의 몸에 대해 질문하려고 했을 때 오히려 ’아시아’라는 개념에 의해 틀이 잡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었다.16

이후 말레이시아 Five Arts Centre의 Tark Teh, June Tan, 싱가포르/방콕 의 Tang Fu Ken(현재는 대만), 싱가포르 Ong Keng Sen, 한국 정은영, 김성희, 태국 JARUNUN PHANTACHAT 등이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한국 등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분야의 다양한 창작자, 큐레이터 등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현재 상태와 고민, 작품이나 활동의 핵심적인 개념들, 아시아 각 지역에서의 사회적 맥락, 예술창작 환경의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예술 활동에 있어서 아시아의 영향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태국 BIPAM에 참여하면서, 동남아시아 예술가들을 만났고, 이 사업이 예술가와 프로듀서들을 현지에 파견하는 인력양성사업과 맞물려 진행되면서, 일본 주도의 직접적인 일본문화전파와 교류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방콕 리서치편에서 공유하고자 한다.


1 정영선,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아시아 민주화운동에 대한 고찰 - 광주민주화운동의 아시아권 파급효과를 중 심으로, 동북아법연구, vol.4, no.2, 통권 8호, 2010, 254쪽
2 국립현대미술관,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2019
3 김의경, 「’베세토연극제’ 의 창설과 그 의의」, 『공연과리뷰』 제34호, 현대미학사, 2001.09.
4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연혁 https://www.jpf.or.kr/index/s1/s1_2.php
5 김태환,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와 한국의 지식외교 대응 방안」,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5.6
6 김태환,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와 한국의 지식외교 대응 방안」,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5.6
7 이연정, 「일본국제교류기금의 대외문화전략,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2004, 12
8 김태환, 「일본의 대미 공공외교와 한국의 지식외교 대응 방안」,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5.6
9 송정은, 「아세안과 한국 공연예술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논하다」, The Apro, 2015.11
10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 https://jfac.jp/en/partners/
11 고주영, 「동아시아의 경계 넘어서기-동남아시아, 예술, 교류」, 『연극평론』, Vol.93, 2019
12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https://jfac.jp/en/culture/features
13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시아센터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첫번째 Eko Supriyanto 영문 인터뷰, https://jfac.jp/en/culture/features/asiahundred01/
14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시아센터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두번째 Pichet Klunchun https://jfac.jp/en/ culture/features/asiahundred02/2/일본국제교류기금 이시아센터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두번째
15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시아센터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세번째 Helly Minarti https://jfac.jp/en/ culture/features/asiahundred03
16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시아센터 100명의 아시아 예술가 인터뷰 두번째 Choy Ka Fai https://jfac.jp/en/ culture/features/asiahundred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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