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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아트마켓 해외초청인사 좌담회(3): 유디스 블랑켄베르그 누더존 공연예술제 프로그래머 인터뷰 2019-12-31

2019 서울아트마켓 해외초청인사 좌담회(3):
유디스 블랑켄베르그 누더존 공연예술제 프로그래머 인터뷰

김신우(독립프로듀서)

북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공연예술 축제, 누더존 공연예술제

누더존 공연예술제(Noorderzon Performing Arts Festival)는 네덜란드 북부의 작은 도시 흐로닝언(Groningen)에서 매년 8월, 11일간 열리는 국제 공연예술 축제다. 1991년에 창립되어 올해 29회차를 맞이한 만큼 역사가 깊다. 흐로닝언의 전체 인구가 20만 명인데 매년 축제의 방문자 수가 13만 명이라니 축제 기간 중 도시의 분위기가 어떨지 쉬이 짐작해볼 수 있다. 서울공연예술마켓(PAMS) 기간 중 서울을 방문한 누더존 공연예술제의 프로그래머 유디스 블랑켄베르크(Judith Blankenberg)를 통해 축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아트마켓 해외 초청 인사 좌담회(2019.10.09 / 서울 대학로 인근 카페)


2019 서울아트마켓 해외초청인사 좌담회(왼쪽부터 김신우 프로듀서, Judith Blankenberg) ⓒ예술경영지원센터

인터뷰어: 김신우 (독립프로듀서)
인터뷰이: Judith Blankenberg(네덜란드 / Noorderzon Performing Arts Festival / 프로그래머)

김신우: 1991년 페스티벌이 시작된 계기가 궁금하다.
유디스: 당초에 이 축제는 흐로닝언의 시민 중에서 여름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누더플란트손(Noorderplantsoen)이라는 공원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모여 음악 공연과 거리극을 보면서, 먹고 마시며 주말을 즐길 수 있는 그런 행사였다. 2001년 마크 여만(Mark Yeoman)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천천히 국제적인 컨템포러리 공연예술 축제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축제가 되기까지 약 7~8년 정도가 걸렸다. 이제는 많이 바뀌어서 대부분의 공연이 시내에 있는 극장에서 열리지만, 여전히 공원은 페스티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름이면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곳이라는 당초의 취지를 유지하고 싶어서다. 대규모의 음악 콘서트가 공원에서 열리고, 각종 토크나 문학 관련 프로그램, 떠오르는 지역 작가들의 프로그램도 공원에서 진행된다.


Nooderzon Park ⓒNiels Knelis Meijer

김신우: 그 모든 것에 있어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떻게 축제에 합류하게 되었나?
유디스: 나는 위트레흐트에서 드라마투르기를 전공했고, 프로그래밍 일을 처음 하게 된 것은 마크 여만이 당시 예술감독을 맡고 있던 로테르담 페스티벌 데 코이체(Festival de Keuze)에서였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서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마크와 같이 누더존 공연예술제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흐로닝언 시내에 있는 대극장의 연간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마크가 페스티벌 프로그래밍을 책임지고, 나는 대극장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데, 서로가 협력하고 자문을 하는 형태로 일한다.

김신우: 한 극장의 연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과 축제 프로그래밍은 굉장히 다를 것 같다.
유디스:
전혀 다르다. 특히 관객층이 다르다. 대극장에서는 좀 더 네덜란드와 벨기에 작가에 집중하는 편이고 매달 주제를 정해서 그에 맞는 공연을 선보인다. 그 외에도 “스토리텔링의 밤”이나 “영화 클럽” 등 커뮤니티가 즐길 수 있는 부대행사를 다양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대극장의 관객들은 비교적 익숙한 공연을 선호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으로 모험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누더존 공연예술제에서는 충격적이고 실험적인 공연을 해도 용인된다. 축제는 이미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관객층이 더 넓기도 하고, 그들이 새로운 것을 보길 기대하고 오기 때문이다. 축제의 프로그램이 훨씬 더 국제적이다.


Nooderzon Teddy’s Last Ride ⓒNiels Knelis Meijer

김신우: 페스티벌의 프로그래밍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유디스:
핵심 프로그램은 마크와 내가 리서치를 다니면서 직접 본 공연들로 구성한다. 하지만 그 밖에도 오랫동안 협력해온 다른 페스티벌의 동료들이 예술가나 작품을 추천해주고, 그런 경우 비디오로 관람하고 작품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번에 초청한 한국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도 그렇게 결정된 경우다. 함부르크의 캄프나겔이나 스위스의 테아터슈펙타켈 등과는 서로 긴밀히 소통하면서 작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김신우: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주안점이 있다면?
유디스:
‘다양성’, ‘타자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전 세계에서 서로 굉장히 다른 작품들을 초청하지만, 서로가 얼마나 다른가를 비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는가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차이보다는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택한다.
예전에는 한때 지역별, 혹은 나라별 포커스로 프로그래밍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특정한 주제나 포커스를 미리 선택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면 어떤 공통된 맥락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관객과 소통하지는 않는다. 주제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프로그래머의 의견이나 생각이 그렇게까지 우선시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품과 관객이 직접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리 주제가 주어진다면 관객은 작품을 너무 한정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규모나 강도의 균형은 맞추려고 한다. 매년 약 25~30편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워낙 야외 텐트에서부터 작은 블랙박스 극장까지 공연장의 규모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다양한 공간들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는다. 규모가 크고 무거운 작품과 작은 규모의 가벼운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또 우리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 중의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다. 어떤 내러티브나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고유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희곡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상대적으로 많이 선보이지 않는 편이다.


Nooderzon WANG Chong ⓒ Pierre Borasci

김신우: 전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오면서도, 관객들이 그 안에서 자신과의 유사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관점이 흥미롭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흐로닝언에 잘 접목할 수 있는 방법에도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유디스: 아주 중요하게 고려되는 부분이다. 어떤 식으로든 흐로닝언과 공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예를 들면 실케 휘스만과 하네스 데리레(Silke Huysmans&Hannes Dereere)의 <마이닝 스토리즈(Mining Stories)>의 경우 남미의 광산 채굴에 관한 작품이었지만 흐로닝언에서도 과거에 대규모 가스 채굴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한 지진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많아서 두 이야기는 공유하는 내용이 많다. 그런 식으로 흐로닝언에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다. 또 다른 고려 요소는 대사의 양이다. 외국 작품의 경우 공연 내내 많은 양의 자막을 읽어야 한다면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에 텍스트 내용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김신우: 관객에 대한 세심한 고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페스티벌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유디스:
앞서 이야기했지만 누더존 공연예술제는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축제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컨템포러리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축제가 되었지만, 그 정신은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매년 그 크기를 키워서 이제는 아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흐로닝언은 평균 연령이 아주 낮은 도시이기 때문에 젊은 부부들이 많다. 그들이 극장에 공연을 보러 오려면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른 공연의 모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어린이들이 뭔가를 만들거나,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열리거나,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마련된다. 예를 들면 작은 동물 인형들이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이벤트를 한 적도 있다. 노년층을 위해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공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공연이 있는 날 집에서 공연장까지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신우: 그 밖에도 관객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나?
유디스:
미스테리 루트라는 것이 있다. 보통 한해 프로그램이 30여 편에 달하기 때문에, 공연예술 전문가가 아니면 어떤 공연을 봐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수 있다. 프로그램 책자만 봐서는 내게 적합한 공연인지 알기가 어렵다. 미스테리 루트는 페스티벌 측에서 맞춤형 프로그램들을 선정해서 패키지를 구성하면 관객은 그걸 믿고 보는 형태다. 미스테리 루트 티켓을 구매하면 공연 당일까지 자기가 무슨 공연을 보게 될지 모른 채 극장에 오게 된다. 대체로 공연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는 공연들로 패키지를 구성해서, 공연예술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그 취지다. 그 외에도 공연이 끝나면 꼭 작가와의 대화를 가진다. 2005년부터 페스티벌에 매년 방문하던 한 기자가 있는데, 그 기자가 언제부턴가 자체적으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할 모더레이터팀을 꾸리는 등, 주도적으로 이 부분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고, 덕분에 작가와의 대화가 훨씬 활발해졌다. 관객이 페스티벌의 참여 인력이 된 케이스다.

김신우: 여러모로 페스티벌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유디스:
그린키(Green Key) 인증제도라는 것이 있다. 시설 운영의 친환경성과 책임의식을 평가하는 제도인데, 누더존은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축제의 운영감독인 펨케 이얼란드(Femke Eerland)는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드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페스티벌이라는 형식 자체가 한때 생겨났다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적인 차원에서 지속 가능성을 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예를 들면 플라스틱병을 줄이기 위해 페스티벌 장소 곳곳에 식수대를 설치했다. 페스티벌 스텝들을 위해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분해되는 그릇과 용기를 사용하고 있고, 채식주의 메뉴도 마련되어 있다. 그 외에도 1+1으로 티켓을 구매해서 사회적 취약 계층에 공연 티켓을 기부할 수 있는 제도도 있고, 모든 공연장은 휠체어 접근이 용이하게 되어 있다. 공원 내 모든 조명은 폐식용유 연료로 작동하고 페스티벌 굿즈도 모두 재활용품으로 만들어져있다. 팀 내에 페스티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여러 솔루션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또, 흐로닝언은 워낙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단체나 조직과 협력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

김신우: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 것 보면, 앞서 말한 문제의식이 프로그램에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 듯하다.
유디스:
맞다. 많은 공연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다룬다. 앞서 말했던 타자성의 문제와 더불어 이주와 난민, 인공지능, 가짜 뉴스, 인종, 세대, 젠더, 성 정체성의 다양성 등의 문제들이 제기된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내밀한 개인적인 이야기, 이를테면 첫사랑이나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경험 같은 것을 다루는 작품들도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균형이 좋다.

김신우: 페스티벌이 거의 30년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재정구조는 어떻게 되나?
유디스:
정부와 시에서 예산을 충당한다. 다행스럽게도 프로그램이나 예술적 방향성에 대한 개입은 전혀 없다. 정치적인 압박도 없다. 물론 관객 수나 공연 횟수처럼 시 차원에서 주어지는 목표 수치는 있고, 축제가 끝나면 보고서를 충실하게 작성해야 하지만 그것만 충족하면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을 선보이든 시나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정치적인 압박이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해외 예술가들에 대한 트래블링 지원금이다. 시기별로 정책상 필요하거나 우호 관계에 있는 국가들의 작가에 대해 지원금이 더 많이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유럽 전반적으로, 그리고 네덜란드 역시 포퓰리즘과 극우화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그 여파가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역시도 내부적으로 그런 경향에 휩쓸리지 않게 서로 연대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같은 기간에 열리는 유럽의 축제들과 긴밀히 협력한다. 해외 예술가가 유럽까지 와서 네덜란드 한 곳에서만 공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함부르크의 캄프나겔 극장이나 스위스의 테아터 슈펙타켈 등과 함께 유럽 투어를 조직하고 그 여비를 공동으로 분담한다. 여러 페스티벌과의 네트워크야말로 각자 장기적으로 페스티벌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 상생 전략인 것 같다.

김신우: 누더존 공연예술제의 미래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유디스:
마크 여만은 다시금 축제라는 형식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싶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까지는 개막작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개막작이 ‘영향력 있는’ 공연예술 고위 관계자들만을 위한 파티처럼 되어버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올해부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공연을 선보이는 이유는 관객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많은 페스티벌이 페스티벌이라는 형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관습적인 형식이 되어버린 부분들에 대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성은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Nooderzon Tent ⓒNiels Knelis Mei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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