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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自由奔放), 그 안에 존재하는 질서와 배려 - 박경소의 ‘이웃 같은’ 가야금 2016-09-06

자유분방(自由奔放), 그 안에 존재하는 질서와 배려  - 박경소의 ‘이웃 같은’ 가야금
 


Intro.

2015년 마지막 날, 박경소의 가야금을 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관계2)라는 이름의 공연이었다. 거기엔 오직 가야금만이 존재했다. 어떤 다른 악기도 없었다. 박경소의 가야금에 취하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박경소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모두 박경소가 만든 가야금작품이다.
박경소의 가야금이 연주되는 그 공간에는, 미세한 소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러 관객들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니다. 박경소의 가야금에 빨려 들어간 거다. 다정한 사람의 진솔한 얘기에 그저 그렇게 빠져든 거다.
모든 것이 다 새로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왠지 낯설지 않았다. 새로운 음악을 이렇게 친근하게 들었던 적이 있었나? 새로운 곡을 듣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박경소의 가야금은 따뜻했고, 친절했고, 독특했고 또 애잔했다. 다정다감(多情多感)인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모두 포용하면서,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싸 안았다.
그의 음악은, 그 날 객석에 놓인 여러 모양의 의자만큼이나 자유로웠다. 가로, 세로를 인위적으로 맞춘 객석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질서 속의 질서’가 느껴졌다. 의자도 그랬고, 박경소의 가야금이 그랬다. 거기에 모든 사람은 박경소의 가야금과 소통하면서, 모두 이웃이 되는 느낌이었다. 2016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가장 아름다운 관계>처럼 뭔가 거기에 있는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1) 2015년 12월 30일~3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필자와 박경소 연주가 © 이강혁

▲ 필자와 박경소 연주가 © 이강혁

1. 관계

올해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선정되었다. 작품명에서 말하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음악적으로 얘기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소통’하는 관계다. 음악을 통해서 ‘상호’ 소통하는 관계다. 내가 음악을 하고, 가야금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호 소통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내가 공연을 하는 건, 바로 음악적인 책임감을 진다는 거다. 사람들과 잘 소통하기 위해선, 언제나 어디서나 내 음악을 책임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2. 공간

그저 책임감만 느끼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음악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음악은, 어쩌면 특히 내가 연주하는 가야금이라는 악기는,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 ‘공간’이 무척 중요하다. 연주하는 무대의 크기를 비롯해 공연장마다 다른 공간의 구조 등 모든 것이 변수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때로는 관객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게, 연주가로서 내가 겪은 힘든 순간이다. 

연주 하면서, 지금 내 음악이 잘 전달되고 있구나, 그렇지 않구나, 이런 것을 알게 된다. 넓은 공연장에서도 “지금 내 가야금이 이 공간 전체를 뚫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땐, 정말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예전에 큰 콘서트홀에서 연주 하는데, 지금 내 음악이 저 2층과 3층에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절감했다. 참 힘들었다. 그 이후로는 더욱더 “음악과 연관해서 ‘공간’의 구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늘 연주하는 공간이 어떤가를 염두에 둔다. 그 안에서 내 음악이 어떻게 공기를 타고, 그 안의 사람들에게 모두 전달되느냐, 늘 이것에 신경을 쓴다.
다행히 예전 징크스를 갖고 있었던 그 공간에서, 다시 가야금을 연주하게 되었을 때, 내 가야금이 그 안의 모든 것을 뚫고 나가는구나! 이런 경험을 했다. 아티스트가 신경 써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음악이 소통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3. 수학(數學)

연주가에서 출발한 작곡가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악기가 가진 기교에 충실 하려 한다는 점이다. 작품에 대한 구조적인 견고함이 아쉽다. 당신의 작품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당신은 왜 아닐까? (웃음)

학교 다닐 때,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 않는가. ‘이과’에 해당하는 과목이 더 재미있었다. 보통 예술전공 학생들은 문과에 더 흥미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특히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무척 좋아한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커다란 흰 종이가 놓여있다. 그 종이 위에 문제를 풀어가면서 종이 위를 점차 채워가는 게 좋다. 공식을 대입하고 응용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때의 그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음악도 마찬가지다. 박경소의 음악도 이렇게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내게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나, 음악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수학에 공식이 있고, 문제를 풀 때 이 공식을 대입시키고, 그것을 응용해서 문제가 풀려나가듯이, 내 음악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내 음악이 일단 어떤 공식이 있고, 어떤 구조를 먼저 만들어 놓는다. 내 음악에는 일단 개략적인 설계도가 늘 선행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점차 그 안에 구체적인 정서를 채워가기 때문이다. 

개략적인 설계도가 있다고? 그러고 보니, 당신의 음악은 건축물 같기도 하다.

예전 우리 음악도, 매우 구조적이라고 생각된다. 동양음악은 유교적인 가치관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5음이란 것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런 궁, 상, 각, 치, 우. 라는 음은 저마다의 역할과 기능이 있었다. 따져보면 동양의 전통적인 음악도, 이런 수리와 논리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내 음악도 분명 이런 면을 지향하고 있다. 

다시 더 말하자면, 나는 곡을 연주할 때나, 작곡 할 때, 우선 전체적인 ‘구조’를 생각한다. 이런 구조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생겼을 때, 아주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이건 매우 이과적인 사고 아닌가? 그런데, 꼭 해 둘 말이 있다.

무슨 말?

나를 스스로 정의한다면, “박경소는, 조울증이 좀 있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이과 사람이다!”  (웃음) 일반적으로 이과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 충실히 빠져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남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 (웃음) 

4. 김죽파

당신의 음악을 논할 때, 김죽파 명인(1911∼1989)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지금 25현가야금을 주로 연주하지만, 내 음악에서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가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다. 학창시절의 한 때, 나는 오직 ‘서태지’와 ‘김죽파’만을 들었다.
서태지 듣고서 김죽파 듣고, 김죽파 듣고서 서태지 들었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음악에 아주 푹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들으면서 잠이 들고,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들으면서 잠에서 깼다. 

그래서일까? 당신의 김죽파류 산조는, 당신의 스승세대보다도 오히려 더 ‘김죽파적’이다.

스승들은 훌륭하지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거다. 그러나,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오직 김죽파 명인에게서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김죽파류에 크게 끌리지 않는다. 때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김죽파 명인은 저기를 저렇게 연주를 하지 않는데’, 또는 ‘저기의 음정 관계는 저렇지 않은데’ 등의 생각을 하면서 듣게 된다. 너무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소리를 통해서 김죽파 명인이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 그 농현(弄絃)을 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5. 테크닉

박경소의 음반, 전 트랙을 쭉 들었다. 편안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게 박경소가 연주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편안한 것이겠지. 정교하고 복잡한 것인데, 참 쉽고 편안하게 들리게 한다.

그걸 알아주니 감사하다. 내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곡을 만드는데 치열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좀 심한 표현이 가능하다면, 내가 곡을 만들 때 새디스트(sadist), 마조히스트(masochist), 뭐 이런 단어를 가져와도 좋을까? 음악을 만들 때, 또한 어떤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가학적으로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유보하면서라도, 곡을 만들고 나만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것에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것을 통해서, 내가 내 음악에 대해서 확신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것을 내심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 예를 들어서 나효신과 김희정 등 다른 여성작곡가의 작품을 국내외에서 여러 번 연주했다. 이런 연주를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이런 것들의 매력과 장점을 습득하려 한 것 같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나의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다. “창작이 제일 힘들지만, 창작이 제일 재밌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는 불면(不眠)의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 난 분명 새디스트적인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웃음) 

6. 메소드

당신은, 25현가야금 세대이다. 당신의 세대에 의해서, 25현가야금이 크게 빛을 발했다. 당신은 분명, 창작과 연주를 병행하는 25현가야금 연주의 리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25현가야금이 붐을 일으켰다. 학교에서도 25현가야금의 연주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산조와는 다르게, 25현가야금의 연주수법을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스승이나 선배 세대보다는, 우리 세대가 더욱 25현가야금에 익숙하다. 피아노를 더욱더 높은 수준까지 배우고 익혔고, 서양음악을 비롯한 여러 음악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25현가야금의 악보는 존재했지만, 거기엔 어떻게 연주하라는 지시는 별반 없었다. 이른바 ‘핑거링(fingering)2)’은 연주자 개인이 만들어내야 할 몫이었다. 나는 여기에 더욱더 재미를 느끼고, 적응이 빨랐던 것 같다. 악보 속의 음악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면서, 이걸 가장 잘 구사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궁리했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25현가야금을 위한 나만의 연주방식과 기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런 것이 나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는 그냥 특정한 악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연습 하지 않는다. 늘 가야금을 대하면서, ‘어떻게 손의 기운을 풀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내 생각과 느낌이 살아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한다. 그게 곧 관객과 어떻게 잘 소통하느냐의 문제일 것일 거다. 이게 25현가야금과 관련해서 나만의 메소드라면 메소드다. 

2) 특정 악기를 연주할 때의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을 의미

7. 소통

요즘, 누구나, ‘소통’을 얘기한다. 그런데 가야금연주자로서, 박경소의 소통은 다른 것 같다.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긴 어려워도 당신의 음악에 내재된 소통은 좀 다른 것 같다. 말 당신이 만든 제목처럼, ‘이웃이 되어주세요’라고 늘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음악에서 그런 영역이 분명 중시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대치동에 살았다. 지금의 대치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안 계시면, 옆집에 갔다. 그 집에서 냉장고를 열고, 음식을 먹어도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었다. 30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너무도 다른 것 같다. 새삼 ‘이웃’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 음악 속에 이런 정서를 담아내고 싶다.

 이웃과 소통하는 방식도 다양한 것 같다. 때론 진지하게, 대론 장난스럽게, (웃음) 당신의  첫 번째 음반은, 일반적인 국악계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신선한 충격’이 라기보다 ‘이상한 충격’이었다. (웃음)

(웃음) 그 모든 것이 다 박경소다. 첫 번째 음반이 내놓을 때가 다시 기억이 난다. 코스모 브리즈(Cosmo Breeze, 2010년) 음반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그랬다. ‘이게 정말 가야금연주자 박경소의 ‘첫 번째’ 음반으로 할 거냐‘고. 보통 산조나 창작 음악으로 진지하게 접근한 다음에, 그다음에 이런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엉뚱한‘ 음반을 내놓은 거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 분명 그 음악에 빠져있었고, 그게 바로 박경소였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Oriental Express)3)를 함께 하는 최영준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주었는데, 그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내 음악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재미있고 유익했다.

내가 평소에 대했던 박경소와 다르게, 이런 음악에서 박경소의 ‘뽕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국악 하는 다른 동년배와 좀 다른 게 있다면, 음악에선 좀 더 열려있었다는 거다. 이건 행운이고, 행복이다. 우리 집안에 음악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모두 귀가 예민한 편이다. 소리에 민감하지만, 음악엔 열려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국악과 가야금을 하게 되었지만, 타 장르에 대해선 열려있는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많다. 난 기본적으로 호기심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3) 김현종(드럼), 최영준(키보드), 김현모(베이스), 박경소(가야금)으로 이루어진 연주팀으로, 2006년 1집 앨범 ‘To The West’로 데뷔하였다. 2016년 5월에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 ‘빛나는 불협화음’이라는 공연의 아티스트로 참여한 바 있다.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Outro.

박경소의 얘기는 끝이 없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의 생각은 끝이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하고 반문하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그녀와의 대화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 상통하는, 음반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느낌이었다. 현재 대부도에서 지내면서, 바다와 달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이야기 등, 이런 모든 것들은 히트 트랙이 될 수밖에 없어 아쉽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정서는 모두 그녀의 음악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가 박경소의 가야금을 더 가까이 한다면, 정말 이 조울증을 넘나드는 - 어쩌면 스스로 컨트롤하면서, 그것에서 가학적 재미를 포착하는 – 이과생 같은 박경소가 만들어낸 ‘견고하면서도, 속 깊은’ 음악을 더욱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을 거다. 

내가 평론하는 입장에서, 이 한마디는 꼭 말할 수 있다. 박경소 음악의 큰 특징의 하나가 있다. 매우 ‘분방’한 것 같은데, 그 안에 확실한 ‘질서’가 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서 매우 ‘자유롭지만’, 그 안에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가 배어있다. 현시점에서 박경소의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이다. “분방하지만 질서가 있고, 자유롭지만 배려가 있다.” 

  • 기고자

  • 윤중강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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