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근동사중주단 혹은 The NEQ(Near East Quartet)라 불린다. 2010년 색소폰 연주자 손성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그룹이다. 재즈와 한국 전통음악 사이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도를 단순한 결합이나 과거의 답습이 아닌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모델이라 말한다. 1집 앨범 ‘Chaosmos’(2010)는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과 독특한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고, 2011년 제7회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2015년에는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으로 선정된 김율희를 영입, 2집 앨범 ‘Passing of Illusion’을 발매했다. 이번에는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 크로스오버음반상을 수상하며 성가를 높였다.
김율희(보컬), 손성제(색소폰), 서수진(드러머), 정수욱(기타)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근동사중주단을 만났다. 멤버들 모두 함께했지만 답변은 주로 정수욱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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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근동사중주단 © 이강혁 |
2010년 근동사중주단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00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음악을 틀어보고 싶었다. 안 하던 음악들을 찾아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 음악이 있더라. 손성제씨가 ‘야학 선생님’같이 국악의 세계로 인도했다. 실력파 드러머인 서수진씨도 합류했다.
국악으로 뭘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간 재즈 씬(scene)에만 있었다. 메인스트림 재즈. 미국의 것을 재현하는 데 목표를 두다가 회의를 느껴 다른 표현 방식을 찾았다. 우연히 국악, 타악을 만나게 됐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처음에는 국악적인 요소는 실험용 분량에 불과했다. 김율희씨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국악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정수욱)
데뷔앨범 ‘Chaosmos’로 한국적 재즈와 장르를 벗어난 다양성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데뷔앨범은 어떤 의도로 녹음했나.
새로움을 주고 싶었다. 지금은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당시엔 재즈 씬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다양하지 못했단 얘기다. 다양하고 풍성해지려면 새로운 게 나와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새로운 게 중요하다. 새로움이 변화를 만든다. 이후 전보다 좀 더 다양해졌다. 크로스오버도 한 장르다. 국악 퓨전도 풍성해졌다. 국악 쪽에서 재즈를, 재즈 쪽에서 국악을 바라본 새로운 시도였다. (정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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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에도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본인들의 음악 활동에 어떤 의미를 지녔나?
앨범이 나올 때마다 선정됐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상업적이지 않은 음반을 아트마켓에서 발굴해 의미를 부여했다. 계속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1집 때 선정되었던 경험이 2집에 큰 원동력이 됐다. 기획자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 만큼 서울아트마켓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수욱)
2집 앨범 ‘Passing of Illusion’은 어떻게 녹음하게 됐나?
1집이 반면교사가 됐다. 원래 시작했을 때의 의도를 더욱 강화시키려 했다. (정수욱)
김율희씨는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이 무엇인가.
국악계에는 전통 국악이 아닌 시도가 의외로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굳이 외국 활동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국악은 한국에서 일등하면 세계 일등이다. 애초에는 충실하게 공부하느라 딴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시에서 열린 ‘모자이크 코리아 20141)에 참가했는데, 이는 처음으로 다른 음악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재즈인들의 마인드는 달랐다. 딴 세상 사람들같이 느껴졌다. 혼란과 문화 충격을 겪은 한편 자유로워지고픈 마음도 생기고 숨통이 트였다. 내 분야에 익숙해지다가 새로운 그룹 활동의 제의를 받은 거다. 젊기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 다른 장르와 만남을 위해 그동안 써왔던 호흡을 달리 해야 했다. 해오던 내 호흡만 고집하고 부를 수 없었다. 맨 처음 창법에 대한 문제는 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판소리처럼 모든 것을 세게 부르지 못했다. (김율희)
1) ‘모자이크 코리아 2014’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시청과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 주관 및 후원으로 진행한 축제형 콘서트로, 2014년 4월에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시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의 국악과 서양의 재즈의 협연을 선보였으며, K-POP 이외에 다양한 한국문화 콘텐츠의 소개하는 장이 되었다. 김율희씨는 국악 아티스트로, 정수욱씨는 재즈 아티스트로서 본 행사에 참여하였다.
서수진씨는 미국에서 재즈 드럼을 공부하다가 합류했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었나?
마음을 먹게 된 건 2집 듣고 나서다. 국악 같지도 재즈 같지도 않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크로스오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선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없던 걸 만들어내고 싶다. (서수진)
근동사중주단의 음악 정체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국악과 재즈와의 밸런스를 어떻게 두어서 활동할 생각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국악도 아니고 재즈도 아닌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가 들었던 국악이나 재즈를 다시 영사기로 투영하는 것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도하고 있다. (정수욱)
지난 작품 활동을 돌이켜봤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해외에서 공연할 때 우여곡절이라든지 성과를 얘기해 달라.
올해 초에 프랑스 쿠탕스(Coutances)에 갔다. 노르망디 근처에서 차로 4시간을 가야 하는 시골 지역이다. 그런데 독일 재즈 레이블 ACT 사장이 공연을 보기 위해 그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그 방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유명 레이블의 사장이 그 먼 곳까지 관심을 갖고 찾아와 준 것 자체가 우리에겐 매우 고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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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율희(보컬), 정수욱(기타) © 이강혁 |
즉흥 연주를 할 때 합주는 어떻게 진행되나?
즉흥 음악은 악보도 없다. 10번 하면 10번이 다 다르다. 포맷은 있다. 누군가 추를 잡고, 힘의 밸런스를 맞춘다. 나는 그게 율희씨 같다. 연주곡일 때는 다른데 노래 곡일 때는 그 추를 믿고 따라간다. (정수욱)
근동사중주단의 색깔, 방향을 알고는 있지만, 가사가 있고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해야 여기 맞출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솔직히 연습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존의 노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국악에서 배웠던 노래를 어떻게 풀어헤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김율희)
막상 연습장에 도착하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잘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다. 이 음악이 존재하던 음악이 아니다. 생각이 서로 다를 때도 있다. 처음에 토대가 되는 요소들을 쌓는다. 쌓기만 하면 간단하지만 그 토대를 길게 하고 넓게 펼치면 달라진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보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1집에서는 베이스가 있었는데 2집에선 드럼이 피아노와 베이스 역할을 한다. 또 김율희씨가 꽹과리나 징을 치기도 한다. (정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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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동사중주단 © 이강혁 |
향후 작품 계획은? 해외 진출 계획이 있나.
12월 19일부터 녹음 작업이 있다. 새로운 곡들을 만든다. 서로 의도를 맞추려면 많이 해 봐야 한다. 통산 3집인 이번 앨범은 다른 레이블에서의 1집이 될지도 모르겠다. 12월에 인도에서 공연이 있다.
외국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매체·청중·장소가 있다. 생경해서 논란이 됐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도 지금은 고전이 됐다. 우리도 그러한 기초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싶다. 음악의 층위를 세로로 쌓기 보다는 가로로 지평을 넓히고 싶은 거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이 잘 돼 있고 내공 있는 뮤지션들의 세션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서울아트마켓과 같은 플랫폼이 정기적으로 만들어지면 그러한 씬이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수욱)
또 한편으론 요즘은 우리가 외국을 나가는 것보다, 해외 사람들이 우리를 보러 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시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된 2~30분 솔로 할 수 있는 클럽이 생긴다면 서울아트마켓이 바로 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의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어도 우리나라 음악 전체의 발전에 좋은 토양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정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