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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이슈를 연극에 담아내는 연출가 이경성 2019-11-02

동시대 이슈를 연극에 담아내는 연출가 이경성
 


우리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경성 연출가는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중요시하지만, 과연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일까? 그와 그의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Creative VaQi)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그로 비롯된 다양한 층위의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질문을 던져왔다.
실례로, 지난해 선보인 <비포 애프터(Before After)>는 그의 연출적 특징을 총체적으로 잘 드러냈다는 평가와 더불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 일상의 기억과 경험을 소재로 우리 삶과 사건의 관계를 살펴보는 연극을 선보였다. 동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한 작품이었다는 평과 함께 다수의 연극상을 받았다. 올해 팸스초이스로 선정된 <비포 애프터>와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   

▲ 필자와 이경성 연출가 © 박예림

▲ 필자와 이경성 연출가 © 박예림

이번에 팸스초이스로 <비포 애프터>가 선정되어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하게 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서울아트마켓은 작년에 국제교류와 관련된 포럼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양한 델리게이터들이 참여하고 공연예술을 통해 교류하는 모습이 상당히 좋아 보였어요. 기회가 되면 참여하고 싶었는데, 창작의 시기와 서울아트마켓의 일정이 맞지 않았어요. 한국의 주요 기획자와 창작자가 두루 참여하면서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극단이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팸스초이스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국제교류라면 다소 거창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다른 문화권에서의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바키는 공동창작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창작의 과정 자체가 극단의 주요한 메소드라는 평을 받고 있어요. 일련의 과정과 경험을 통해 여기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극단 소개와 더불어 창작 활동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 극단은 서로 동시대에 관해 지속해서 토론하고, 고민해야 할 거리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연극을 통해 세상과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이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려 하고 있어요.
한 예술가의 작업 방식은 그 예술가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만들면서 작가가 일차적으로 구성해 놓은 텍스트로부터 출발하는 게 창작자로서의 욕구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성원들과 소위 말하는 공동창작을 통해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표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의견과 생각들이 충돌하면서 이것이 다른 영역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다른 매체가 아닌 무대언어로 그것이 어떻게 변환되어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두가 작가로 참여하여 인터뷰, 리서치, 토론, 발표, 글쓰기를 통해 창작하고, 저는 그것을 조율하고, 장면을 만들고 작품의 구조를 세우게 됩니다.
함께 만든다는 의미에서 크게 공동창작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언어를 찾고 있어요. 우리는 다양한 집단에 속해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차이와 갈등을 발견해 가면서 소통을 합니다. 다행인 점은 시간이 쌓여가면서 극단에서 서로의 관심사가 닮아가고 있어요. 

▲ <서울연습-모델,하우스>, <남산 도큐멘타:연극의 연습-극장편> © 두산아트센터, 크리에이티브 바키

▲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 © 두산아트센터, 크리에이티브 바키

현재 진행형의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작품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는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현실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삶과 연극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인식됩니다.
그간의 창작 활동을 들으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8년에서 2010년 동안 연출가로서 제게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했습니다. 피지컬 씨어터도 해보고, 오브제극도 해보고, 장소 특정적 공연도 하고요.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느 평론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직 뭘 실험해야 할지 모르는 연출가다’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그러한가?’ 소위 실험적 공연을 하는 그룹이 성장하면서 통상적으로 듣는 말이기도 하지만요.
작업 초기에는 극장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횡단보도, 광장, 미술관, 가정집, 호텔의 어느 방 등을 무대로 삼으면서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공연 했습니다. 실재하는 공간을 통해 삶의 특정한 시간을 다시 체험케 함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되짚어 보고 싶었거든요. <움직이는 전시회>,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 <24시-밤의 제전>이 그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들여다보는 ‘연습’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연극은 삶의 연습이라는 맥락에서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연극의 연습-인물편>,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을 선보였고, 극장과 연극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연극이 현실을 다룰 수 있을까, 연극이 어떻게 삶의 영역으로 침투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에서 동시대적 이슈를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연극의 ‘동시대성’에 대해 말씀 나눠볼게요. 연출께서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한 것 같고요. 해외 공연 경험과 함께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2014년 페스티벌 도쿄에서 공연되었던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은 전혀 다른 삶의 경험과 시간을 가지고 있는 젊은 배우들과 74세의 할머니가 만나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었는데, 세대 간의 갈등과 역사, 정치의식의 차이와 같은 이슈들이 일본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관객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이끌어 냈습니다. 공연하는 동안에는 일본 관객들이 매우 차분한 반응을 보였는데 나중에 트위터에 보니까 그 안에서 열띤 토론과 의견을 쏟아내고 있었어요.  
이 공연은 올해 6월 독일 떼아터포르먼 축제(Festival Theatreformen)에도 초청되었는데 소위 말하는 독일 다큐멘터리 연극의 경우 굉장히 건조한 데 비해, 우리의 작품은 이성적이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멜랑콜리한 정서가 느껴져 신기한 체험이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에 의해서 잘 전달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경험하신 며느리와의 갈등 같은, 문화적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그렇지요.
그런데 이 축제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의 공연들이 오기 때문에 관객들이 작품과 더욱 잘 만날 수 있게 다양하게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사전에 역사적인 자료도 소개하고 예술감독이 첫 공연 전에 30분 정도 공연에 대한 소개 토크를, 와인을 마시면서 로비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연출도 미리 신청하는 관객에 한해서 40분 정도 공연 무대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공연 관람 전에 연출을 소개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 꿈꾸는 것, 고민하는 것을 말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여러 단계를 통해서 문화가 다른 공연을 만나는 지점을 축제 측과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단순히 작품을 상연하고 다시 짐을 싸고 돌아오는 패키지 여행식의 교류가 아니었어요.
또 올해 5월 독일 베를린 떼아터트레펜(The Berliner Theatertreffen)의 국제 포럼(Internationales Forum)에 초청을 받았는데, 많은 작가와 연출가들이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어려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도 여성 연출가는 남성 중심적인 인도 사회에 대한 저항을, 이라크에서 벨기에로 온 난민 출신 연출가는 언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바그다드로 돌아가 거리극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컨템포러리 아트의 미학적 기준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내용과 형식면에서 세련되어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과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동시대적인 작품이라고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와 그가 속한 배경을 고려했을 때, 그가 속한 사회적 맥락에서 잘 소통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고 있다고 느꼈어요. 가장 동시대적인 것은 자신(예술가)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인식하면서 그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응시와 더불어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 <비포 애프터> © 크리에이티브 바키

▲ <비포 애프터> © 크리에이티브 바키

지난해 <비포 애프터>를 통해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번에 팸스초이스에도 선정되었고요. 작품 소개와 더불어 올해 10월 재공연을 하는데 지난해 초연과 비교했을 때 창작자로서 어떤지 궁금해요.  

<비포 애프터>는 2014년 우리에게 매우 큰 아픔을 준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인간과 인간이 진실 되게 소통하고, 타인의 일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것은 가능할까?’ 이 질문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었어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도 다시 읽었어요. ‘나’라는 주체가 직접 그 고통을 겪어 보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배려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고만 있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몰이해를 낳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모순과 긴장감 사이에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사회적인 연대는 타인의 고통을 통감하며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논리적인 설명보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우리가 무감각하다는 현실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관객들도 이러한 지점을 작품을 통해 공감했던 것으로 생각해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계속 그것과 나를 의식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올해 <비포 애프터> 재공연은 제게 감사한 기회입니다. 초연과 재연 사이에 <그녀를 말해요>라는 작품을 통해서 피해자의 가족을 인터뷰한 작품도 있었어요.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경성 연출가 © 두산아트센터

▲ 이경성 연출가 © 두산아트센터

끝으로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참여하는 마음은 어떤가요?

팸스초이스를 통해 해외 공연을 전제로 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다양한 미학적, 사회적 담론을 함께 이야기하는 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하는 동안 진행되는 포럼, 미팅 등을 통해서 작품과 잘 연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각자 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요. 물론 작품을 통해 다른 문화권에서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지만, 이 기회를 통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델리게이터들이 2016년 한국에서는 공연예술을 통해서 이러한 소통, 담론들이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성 연출가와 그의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작품은 우리에게 함께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을 건다. 연극을 통한 질문, 그의 질문은 우리의 현재를 각성시킨다. 공연 매체의 실험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공연이란 무엇인지 새로이 생각하게 된다. 극장과 연극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젊은 연출가, 앞으로 그의 시선이 우리의 무엇을 응시할지 기대해본다.

ⓒKAMS



  • 기고자

  • 남윤일 (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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