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창단한 극단 몸꼴은 국내의 대표적인 거리예술 전문 단체이다. 올해 극단 몸꼴의 <불량충동>은 <오르페우스>(2005 팸스초이스 선정작)와 <리어카, 뒤집어지다>(2006 팸스초이스 선정작)에 이어 세 번째로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문래동에 자리한 단체의 연습실을 찾아가 대표 윤종연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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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윤종연 대표 © 이강혁 |
현재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예술감독이시기도 한데, 생각했던 것보다 젊으신 것 같아요. 연극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스무 살 때 유진규 선생님의 워크숍을 들었어요. 당시 유진규 선생님이 잠시 접었던 마임을 다시 하신다고, 당시 공간소극장 옆에 있던 볼재스튜디오에서 워크숍을 여셨죠. 워크숍 후에 극단을 만든다고 하셔서 저도 극단의 막내로 1년 정도 함께 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그 후 영국에 가서 3년 정도 코포럴 마임(corporeal mime)을 공부했습니다. 돌아와서 1년 정도 후, 제가 스물아홉쯤에 극단 몸꼴을 만들었죠.
한국의 거리예술의 초창기부터 경험을 시작하셨어요.
당시 유진규 선생님이 시도했던 것이 바로 거리극이었어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오브제의 변용과 지나가는 관객의 시선을 어떻게 잡아둘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 작은 화두를 갖고 시작을 했어요. 94년도에 그런 화두와 함께 극단 식구들, 마임협의회 분들과 춘천마임축제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 형식으로 작게 시작했습니다. 당시 90년대 중반 즈음에 재미있는 야외의 작업이 많았습니다. 연강홀의 로비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고,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무대에 비계를 설치하고, 객석에 인형들을 앉혀두고 관객들과 로비에서 시작해 무대로 돌아오는 공연을 하기도 했었죠. 또 실제 경복궁에서 명성왕후 시해 사건을 공연했던 적도 있어요. 당시 허가를 받지 않았고, 궁궐 여기저기를 도망 다니면서 했어요. 지금은 ‘이름 없는 공연팀’에 계신 신영철 연출가의 작업이었죠. 그때 이렇게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충격을 여러 번 받았죠. 한국의 거리예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과천축제나 안산거리극축제 이전 시기의 작업들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도가 더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할 수 있어요.
풍성한 자산을 바탕으로 극단 몸꼴이 만들어졌군요.
처음에는 새절역의 연습실에서 시작했어요. 혈기왕성하고 폼 잡는 거 좋아했던 시절이라 영국에서 스튜디오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마룻바닥을 다 직접 깔았었죠. 나중에 결국 다 뜯고 나가야 했는데, 그때 10년쯤 된 여기 문래동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대학로 근처로 가고 싶었지만, 돈 문제가 있었고요. 지금은 그래도 예술가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그때에는 좀 삭막했죠. 1층엔 공장이 가동되고 2층들은 거의 쓰레기나 폐자재들이 차 있는 공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기도 대공사를 하고 들어와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유학을 가기 전에는 진실, 정의 같은 저에게는 다소 모호한 언어들보다 외형적인 것들,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형식적인 기술들, 장식적인 것들을 배우고 싶었죠. 신체 언어에 있어서도 내용보다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모양들이 중요했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트레이닝을 지속했어요. 단체의 이름에 ‘꼴’이 들어간 것도 형태, 외형적인 것들을 중시하기 때문이었죠. 물론 이러한 생각은 차차 변화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리극도 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초기의 <오르페우스>나 <리어카, 뒤집어지다>의 경우 극장, 즉 실내에서 작업을 했어요. 하지만 거리극을 하면서 여러 다양한 삶을 마주하고, 인터뷰 하면서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시간들을 경험하고, 도시 위에서 부유하고 있는듯한 일종의 환영 같은 것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들 간의 관계는 무엇이며,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인지 등에 대한 생각이 이동하니 자연스럽게 사회나 지금 이 시대, 혹은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 것이죠.
저는 우연히 몸꼴의 작업을 축제에서 만났을 때, 탁월한 신체 언어와 대규모의 미장센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초창기에는 정말 혹사에 가깝게, 몸을 밀어붙이며 훈련했었죠. 그때에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배우들의 단순한 움직임의 테크닉 뿐만 아니라, 몸이 물체와 어떻게 만날 것인지 만남에서 어떤 모순들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끝없이 탐구했어요. 저는 공간적인 모순, 시간적인 모순들이 익숙한 사물들을 낯선 시각으로 보게 만들고 그것이 시적인 순간들, 영험한 순간들을 찾아오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때 관객도 연극적인 환영으로 빠져 들어가죠. 배우가 어느 순간에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순간 침대는 마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변하고 침대가 섬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많이 찾아내려 했어요. 집요하게 가져가려 했던 몸, 훈련들이 몸꼴의 저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는 거기에서 빠져나와 일상이나 사회, 삶, 시대로 고민의 방향이 옮겨간 것이죠. 사실 초창기 작업으로 주목받은 이후에, 욕심을 많이 내서 한 대규모의 작품들 중에서는 제가 생각하기에 조금 부끄러운 작품들도 있어요. 물론 대규모를 소화하며 얻은 나름의 중요한 성과도 있죠. 지금은 무조건 다수나 군중 혹은 몇 명을 만나느냐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먼 거리의 시각적으로 화려한 작품들도 좋지만, 또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나는 작품들도 좋아지기도 하고요.
몸꼴에는 오랜 기간 함께 한 배우들이 있죠?
저한테는 정말 그런 배우들이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창단 초기부터 가졌던 극단의 미션이나 방향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러면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 어디를 바라보고 어디쯤에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많은 설명을 안 해도 같이 작업할 수 있죠. 워크숍이나 메소드를 통해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 새로운 시선들을 만나려 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우리가 켜켜이 쌓아놓은 시간의 흔적과 거기에 숨겨진 힘들을 이제야 발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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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량충동> © 극단 몸꼴 |
<불량충동>에 대해
<불량충동>은 어떤 작품인가요?
2013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오픈 스튜디오 때 제작 지원을 받고 쇼케이스 형태로 발표를 처음 했어요. 완성된 작품으로 작년에 하이서울페스티벌과 고양호수예술축제에서 발표했고요. 축제 후에 규모가 좀 작아진 버전의 완성도 있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축제에서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섬세한 질감들, 공기의 질감 즉 밀도를 색다르게 컨트롤 해가며 바꿔놓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거대하게 화려한 스펙터클에서 빠져나와 내밀한 움직임을 찾아가는 것이죠. 처음 시작은 <오르페우스>였어요. 그런데 우리만의 향수로 10년 전 작품을 이 시대에 갖다 놓으려니 뭔가 어기적거리는 게 많은 겁니다. 그래서 그때 도구들, 소재들은 그대로 놓고 지금 우리의 불만들을 얹혀보자 해서 나온 게 <불량충동>이에요. <불량충동>의 오브제인 사다리 자체가 갖는 의미들, 사다림의 흔들림이 갖는 의미들, 그 안에서 열망이나 욕망들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채워지지 못하는 다른 부분들, 그러면서 생기는 불안들, 불안 때문에 만들어지는 퇴행적인 행동 및 충동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는 모습들, 이로 인해 어긋나는 질서들을 이야기해보자 하고 만들게 된 작품이죠. 이번에 저도 함께 출연해요. 저는 원래 시작이 배우였던 사람이라 함께 안에서 움직이니까 이전에 못했던 소통들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아요.
대형 오브제의 남다른 활용은 몸꼴의 또 다른 특징일 것 같은데요. <불량충동>의 사다리 오브제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떤 오브제를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배우에요. 오브제나 사물만 생각하면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든요. 거기에 오브제가 있을 때 배우는 어디에 위치해 있을 것인가를 따졌을 때 효과적인 연극적 장치들이 나오더라고요. <불량충동>의 사다리는 그렇게 나왔어요. 보통 사다리가 고정적이고 안정적이어야 오를 수 있는데, 안정적이지 못한 불안정한 사다리를 선택해서 극을 만들었죠. <리어카, 뒤집어지다>의 경우에는 리어카를 운용하면서 몸이 혹은 배우의 위치가 일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리어카라는 오브제를 선택할 수 있었고요.
팜스에 올해로 세 번째로 선정되었는데요. 그 동안의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요.
선정이 되어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마켓이 열리고, 작품을 세일즈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낯설고 불편한 것이 있었죠. 하지만 해외 공연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었었어요. 이것은 예술감독직을 겸하면서도 많이 배웠는데요. 작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통해 극단이나 축제 등이 어디로 가려는지 등의 비전을 공유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요. 저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재화나 물건이 아닌 이상 작품을 통해 어떤 의미를 나눌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죠.
다양해진 시선들
국내의 대표적인 거리예술 단체의 대표로서 거리예술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는 것이 있다면요.
거리예술은 변화와 발전의 시기를 거쳐 정책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러면서 거리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들도 다양해진 것 같아요. 거리예술이란 단어나 형식이 정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났는데요. 저는 오히려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을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다양한 형식들, 접근들을 더 안아주거나 담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원래 ‘거리’란 광의의 개념이기 때문이죠. 다양한 영역에서 더 확장할 수 있도록 해석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힙합이나 미술 쪽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시민 사회의 영역도 더 적극적으로 읽히는 등 또 다른 미래가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몸꼴의 앞으로의 계획은요?
올해에는 <멀리 있는 무덤>이란 작품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하이서울페스티벌, 고양호수예술축제에서 발표할 예정이에요. 극장과 야외의 환경에 맞게 작품을 변형해서요. 또 작년부터 이어진 태국의 비플로어 씨어터(B-Floor Theatre) 팀과의 협력 작업도 역시 이어갈 예정이에요. 태국 팀 연출가가 ‘검열’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태국은 군사정권에 왕권, 종교 때문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말들이 아주 제한적이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조사도 많이 했고요. 그런 주제로 작년에는 저희가 주도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방콕시어터페스티벌(Bangkok Theatre Festival)에 참가했었고, 올해에는 그쪽이 주도가 돼 작품을 만들 겁니다. 내년에는 둘의 시선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까지, 장기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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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연 대표 © 이강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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