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반복으로 완성되는 박순호의 춤, ‘아코모다도르(acomodador)’! 2016-08-05

반복으로 완성되는 박순호의 춤, ‘아코모다도르(acomodador)1)’!
 


박순호는 판소리, 타악 등 전통으로부터의 영감에서 현대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유도, 바둑 등 엄격한 규칙의 스포츠에서 자유로운 변형을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수성과 통찰력,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정교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국내외 유수 페스티벌 및 극장에 활발히 초청받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는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re)에서 안무를 공부했고, 국제 레지던시와 협업, 미디어 아트 등 타 장르와의 합작,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반경을 넓혀가며 안무가로서의 저력을 다져 왔다. 2007년 박순호 댄스프로젝트로 활동을 시작하여 2012년 브레시트 댄스컴퍼니로 단체명을 바꾼 박순호 대표는 2014년 LIG문화재단의 협력 아티스트로서, ‘스포츠 시리즈’ <유도>와 <활>을 연이어 발표하며 안무가로서의 존재감을 한 층 확대했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움직임과 오브제로 밀도 가득했던 <유도>가 2016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7월의 대학로에서 박순호 대표를 만나 그의 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말에 신중하고 커튼콜에도 잘 나가지 않을 만큼 낯가림이 심한 성격과 대조적으로 도발적 에너지가 가득한 박순호의 작품들은 일본의 맹인 검객으로 유명한 ‘자토이치(ZATOICHI, 座頭市)’를 떠올리게 한다. 자토이치가 침묵 속에서 검(劍)으로 말하듯 춤으로 말하는 박순호 대표가 오늘만은 필자의 언어로 대답해주길 바라면서 말을 걸어 본다.

필자와 박순호 대표 © 이강혁

▲ 필자와 박순호 대표 © 이강혁

브레시트 무용단 이름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죠?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베레쉬트(Bereshit)’는 창세기 1장 1절의 첫 단어입니다. 영어로 제네시스(genesis)1)죠. 브레쉬트, 베레쉬트 등 여러 가지로 발음하는데 저는 ‘브레시트’로 읽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이 단어의 느낌이 좋았어요. ‘시작에’라는 뜻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창작행위와 그 에너지가 응축된 것이라 느껴집니다. 해외 공연에서도 무용단 이름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는데 앞으로 많이 불리면 익숙해지리라 생각해요. 

 1) 아코모다도르(acomodador): 포르투갈어로 조절하다 라는 뜻의 명사형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한 자기성찰의 방법으로 등장한 단어. 
 2) 개역성경에서 ‘세상 창조에 관한 기록’이란 뜻을 가진 ‘창세기’의 히브리 제목 ‘베레쉬트(Bereshit)’는 ‘태초에’라는 의미를 가진다.


무용단의 구성과 그동안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무용단은 한성대를 졸업한 동문들과 시작해서 현재 5명의 단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라고사의 페스티벌(Zaragoza Trayectos)에 초청되면서 ‘박순호댄스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해외 활동을 하다 보니 무용단 이름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2012년부터 ‘브레시트 댄스컴퍼니’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무용단은 2007년 스페인 공연을 계기로 멕시코, 영국, 인도 등 해외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국내공연은 신작을 자주 내지 못하는 제 성향 탓에 활발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주요 레퍼토리도 <생명력 Life Force>, < 人 -조화와 불균형>, <활>, <유도> 등 많지 않아요.

많은 활동에도 레퍼토리가 적다는 것은 반복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는 무용단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해요. 한국의 지원금제도는 신작에 치중되어있지요. 레퍼토리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정말 필요한 작업이고 그 가치가 인정되길 바랍니다.

동의합니다. 사실 한 작품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것은 제 작업 성향이기도 해요. 저는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한 작품이 여러 곳에 초청되다 보니 반복을 하게 되는데 저는 똑같이 공연한 적이 없어요. 끊임없이 발전시키려 합니다. 물론 무용수들이 힘들어하기도 해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많은 사람이 찾아주고 박수를 받으면서 레퍼토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스스로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제 단원들이 많이 이해해주고 저도 만족하고 있어요. 한국시장은 작품이 짧게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일이 많죠. 열정에 대한 보상이 따라주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어떤 무용단으로 비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는 무용단의 이미지가 있나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네 가지가 있는데 일, 사랑, 놀이, 그리고 연대라고 합니다. 후배들과 오래 함께하다 보니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네 가지를 함께 찾고 서로의 관계 안에서 발전하는 무용단이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예술적 색깔을 말하자면 전통을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내는 무용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밖에서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또 다른 저를 찾는 것 같습니다. 미국 언론에서 우리 무용단에 대해 ‘어반 쿨(urban cool)’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여러 번 보았는데, 우리 작품이 시크(chic)하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빠르고 에너지 넘친다고 하는데 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신기하게 생각했죠. 

▲ <유도> © 브레시트댄스컴퍼니

▲ <유도> © 브레시트댄스컴퍼니

작품 <유도> 이야기를 해보죠. 초연 무대는 매력적인 춤의 밀도가 높고 흥미로운 오브제가 눈에 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안무자의 입장에서 <유도>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주세요.

<유도>는 우연히 책에서 ‘여우사냥’에 대한 것을 읽으며 인간의 공격성, 폭력성이 스포츠 안에 내재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어요. 폭력적 본능이 현대에 와서 스포츠라는 옷을 입었다고 보는 것이죠. ‘폭력성’은 무엇일까 찾기 시작했을 때 마침 폴란드에 공연을 가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섬뜩한 느낌을 받았어요. 폭력성은 생존본능이라는 생물학자의 주장도 있듯, 현대사회에서 폭력성은 양적으로 줄어든 것이지만 질적으로는 늘 같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오브제가 흥미로웠던 것이 유도 종목에서 사용하는 유도 매트였어요. 그래서 한번 작업해보고 싶었습니다. 

유도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들에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 같은데,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LIG극장에서 초연될 때 풀지 못한 숙제처럼 부족한 면을 느꼈어요. 움직임에 대한 리서치, 장면마다 아이디어, 오브제, 조명, 사운드 등 세부 요소들은 많이 찾아서 넣었지만, 정작 폭력성을 어떻게 (안무라는 기법을 이용해) 관객에게 던져주어야 할지는 풀어내지 못했거든요. 그것을 찾는 것이 창작의 정점이고 그 정점이 감동을 줄 때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도 어떻게 완성할지 잘 모르겠어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스포츠의 승부가 아니라 정점에 오른 스포츠인들이 보여주는 과정, 그것의 감동입니다. 전문무용수들의 기량을 통해 이런 과정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팸스초이에 세 번째 선정되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팸스초이스는 단순히 외국 프리젠터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조그만 무용단에게 열악한 국내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나갈 기회를 주는 든든한 지원제도입니다. 저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그 극장에 왔던 프리젠터들이 초청을 해주면서 또 다른 기회를 얻어왔어요. 무용단과 단원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에 시장 개척의 기회는 중요한 것입니다. 팸스초이스는 앞으로도 해외시장에서 좋은 기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까지 제 작품 세 개가 해외진출의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매번 저희의 노력에 동기부여가 되어 준 점에 감사하고 있어요.

최근 국내공연규모가 소그룹으로 변하면서 해외진출이 쉬워지기도 했고, 제작단계부터 해외교류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팸스초이스에 거는 기대가 많아졌다고 할 수 있어요. 주관하는 기관과 예술가 모두 같은 비전을 가져야하고, 과정에 참여하는 전문가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유도>로 팸스초이스에 참여하면서 바라는 결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팸스초이스를 통한 성과를 말하자면 공연을 반복할 기회를 통해 완성도를 갖게 되고, 그 완성도가 다시 해외 초청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무용단의 경우 미국 매니지먼트를 얻게 되었어요.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발을 디딘 것이 ‘제이콥스 필로우 페스티벌(Jacob’s Pillow Dance Festival)’이었고 이를 통해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해외진출이 공연에 그치지 않고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는데 그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팸스초이스를 통해서도 이러한 기회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국내활동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고민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물론 의식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진 계획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었고 작년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소외지역의 양로원, 청소년센터 등을 찾는 공연을 작년에 10회 했고 올해는 상반기 5회를 마쳤습니다. 무용계 안에서의 공연도 좋지만 이런 활동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 박순호 대표 © 이강혁

▲ 박순호 대표 © 이강혁

한국에서 안무가로 사는 것은 어떤가요?

사실 올해 초에 무용을 그만둘까 고민을 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해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안무만 하다가 행정가의 역할을 해야 하니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안무가가 되려 한 것이었는데, 경영과 행정을 고민하며 시장을 계산하고 있는 저를 본 것이죠. 저와 함께 하는 무용수들까지 불안하게 한다면 이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되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이라 생각해요. 

어떻게 그 갈등에서 빠져나왔나요?

아직 빠져나온 것은 아니고 극복하는 과도기에 있어요. 그 갈등 속에서 만든 작품이 <활>입니다. 힘든 시기에 <활>을 만들며 포르투갈어 ‘아코모다도르(acomodador)’를 알게 되었어요. ‘조절하다’라는 뜻인데, 활을 쏘려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 ‘조절’이라 생각하다가 시간 지나니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내 안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어요. 무의식, 본능으로 사는 것 말고 모든 순간 내 안의 것에 집중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에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저 스스로 무용을 그만두는 적당한 시기를 알게 될 것 같아요. 40살이 넘도록 무용만 했으니 그다음 40년은 다른 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브레시트 무용단은 안정된 시스템을 갖게 되어 제가 빠져나와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껏 1인 리더로 모든 것을 이끌고 있는데 저도 안무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고, 후배들도 안무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들을 무용단 안에서 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현실적인 생각도 하고 있어요. 모두가 현재의 과정에 만족하고 있기에 훗날 무용단이 없어지더라도 기분 좋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이죠. 각자 1인 안무가로 독립해야겠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하고 있어요. 

ⓒKAMS



  • 기고자

  • 김예림(무용평론가)

Ta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