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현대무용의 자부심
[동향] 이스라엘 현대무용플랫폼 인터내셔널 익스포저(International Exposure)
제21회 이스라엘 현대무용플랫폼, 인터내셔널 익스포저(International Exposure)가 12월 2일부터 6일까지 텔아비브(Tel Aviv)와 예루살렘(Jerusalem)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올해 축제에는 총 60개 단체의 이스라엘 안무가 및 무용단이 참가해 54개의 공연을 선보였으며 30개국 133명의 외국 게스트들이 참가했다. 인터내셔널 익스포저는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바체바 무용단(Batsheva Dance Company)을 비롯하여 야스민 고더(Yasmeen Godder), 인발 핀토(Inbal Pinto), 바락 마셜(Barak Marshall), 샤론 에얄(Sharon Eyal) 등의 중견 안무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활력 넘치는 신진 예술가들이 총집합한 이스라엘 무용의 ‘오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스라엘. 어떤 글귀에서 본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거룩한 곳, 동시에 누군가에는 낯설고 또 불편한 곳이다. 그러나 현대무용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때, 이스라엘은 몹시 흥미진진하고 항상 궁금한 나라다. 이미 이스라엘의 국가 브랜드로 군림하고 있는 오하드 나하린을 포함하여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 이마누엘 갓(Emanuel Gat), 이칙 갈릴리(Itzik Galili) 등 세계 무대에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들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하 시댄스)를 포함한 공연을 통해 봤던 이스라엘 작품들 그리고 2014년 처음 이 행사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안무가들 등 여러 경험이 켜켜이 쌓여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현대무용에 대한 기본 이상의 믿음과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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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익스포저(International Exposure) 2015 전경 ©Ahram Gwak |
2014년과 비교해 축제 자체의 형식과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연은 텔아비브의 수잔델랄센터(Suzanne Dellal Center)를 중심으로 소개되었고 작년에는 갈릴리의 키부츠 현대무용단(Kibbutz Contemporary Dance Company)을, 올해는 버티고 무용단(Vertigo Dance Company)의 버티고 에코 아트 빌리지를 방문하는 일정이 진행되었다. 특별히 올해의 경우, 예루살렘 마하네 예후다(Mahane Yehuda) 시장을 배경으로 공간특정형 공연들이 펼쳐졌다. 헝가리에서의 개인 일정으로 버티고 아트 빌리지 방문과 예루살렘 공연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축제는 이칙 갈릴리(Itzik Galili)의 < Man of the Hou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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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민 고더 컴퍼니의 < Climax > |
이번 인터내셔널 익스포저에서 느낀 가장 큰 특징이자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흔적들이 작품 속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자주 발견되었다. 전쟁과 테러, 난민, 경제 붕괴 등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전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비극을 외면할 수 없는 예술가의 현실이, 그들이 느끼고 있을 시의적 과제가, 예술가로서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작품 곳곳에서 보였다. 빽빽한 일정 때문에 충분히 담소를 나눌 시간도 부족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시간을 내어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의 중심에도 언제나 전쟁과 테러에 대한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물론 전쟁과 테러만이 작품의 중심에 있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유독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질문을 던지며, 그 속에서 개인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가려는 작품을 볼 때마다, 스스로 물음표가 더 진해졌다.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켜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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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델랄센터의 디렉터 야이르 바르디(좌)와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이칙 갈릴리(우) ©Ahram Gwak |
이스라엘 안무가협회의 회원들 ©Ahram Gwak |
두 번째 발견은 이스라엘 젊은 안무가들의 활발한 움직임이다. 매년 11월 커튼 업(Curtain up)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스라엘 신진 안무가 플랫폼에서 발굴한 몇몇 신인들이 이번 축제에 소개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흥미로웠던 작품 중 하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주택난 문제를 실제 룸메이트와의 경험을 통해 구성한 엘라 로스차일드(Ella Rothschild)의 < 12 Postdated Checks >이다. 또한, 개인적인 순위에서 축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로템 타사츠 댄스 프로젝트(Rotem Tashach Dance Projects)의 < Some Ner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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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익스포저가 열린 수잔델랄센터 ©Ahram Gwak |
이스라엘 무용계의 상징이자 가장 중요한 극장으로 꼽히는 곳은 여전히 수잔델랄센터(Suzanne Dellal Centre for Dance and Theatre)다. 인터내셔널 익스포저의 공연 역시 대부분 이곳의 극장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공간은 텔아비브 구시가지 자파에 있는 이스라엘 안무가협회의 창고극장 2(Warehouse 2)이다. 일요일 하루 동안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진행되었는데, 창고극장 2는 말 그대로 올드 자파의 창고를 극장과 전시 공간으로 개조한 문화예술공간이다. 단순히 공간의 쓰임새나 미적 특성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현재 총 55개 컴퍼니로 구성된 이스라엘 안무가협회(Choreographer Association)는 일정한 공공지원 없이 각 단체별로 공간 운영비를 분담하여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리허설과 공연, 전시와 이벤트가 가능한 창고극장은 이들 55개 단체의 창작과 연습, 작품 발표 등으로 연중 운영되며 텔아비브 무용계의 새로운 창작 메카로서 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무가들의 독립적인 연대, 자율적인 운영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관객과 무용계 전반의 자생력이 만들어낸 매우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공간이 있다면 안무가들의 자율적인 연대, 공공재원에 기대지 않는 자율적인 운영, 그리고 이것을 지지하고 찾아주는 관객들이라는 새로운 무용 생태계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저변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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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안무가협회의 창고극장 2(Warehouse 2) ©Ahram Gwak |
2016년 인터내셔널 익스포저가 궁금한 이유는 올해 만났던 젊은 안무가들, 올해도 확인했던 오하드 나하린, 야스민 고더, 샤론 에얄, 로이 아사프(Roy Assaf) 등의 새로운 관심과 도전, 그들이 만들어갈 1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매년 변화하는, 매년 도약하는 이스라엘 무용계의 다양성, 그것이 만들어낼 그 자부심이 기대된다.
©K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