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창작 판소리’가 동시대 관객과 만나기까지
[PAMS Choice] 판소리만들기-자, 예술감독 이자람 × 연출가 박지혜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와 융합하여 <사천가>와 <억척가>를 발표, 판소리와 연극을 훌륭히 접목시켰던 소리꾼 이자람은 지속 가능한 판소리 무대에 관해 고민하던 중 “판소리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었고,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비슷한 고민을 하던 연출가 박지혜를 만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각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표한 <이방인의 노래>는 ‘연극뿐 아니라 판소리 작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이 될 것’으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판소리만들기-자의 예술감독이자 소리꾼인 이자람과 연출가 박지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판소리로 가능한 소통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서
Q(유현진). 얼마만의 만남인가? 그동안의 근황은 어떠한지.
박지혜(이하 ‘박’) : 되게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사실 함께 작업을 마친지 한 달 밖에 안됐다. <이방인의 노래>로 7월엔 오키나와, 8월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 함께 다녀왔다. 그 후에는 소속해있는 양손프로젝트와 4주간 연습을 하고 베세토 연극제에서 <한개의 사람>이라는 작품을 올렸다.
이자람(이하 ‘이’) : 아주 오랜만인 것 같은데 사실 8월 밀양 일정 이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이방인의 노래> 서울 공연을 위한 준비로 5월부터 줄곧 함께였다. 그전에는 <판소리 단편선_추물/살인> 공연을 위해 함께였고. 그래도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다. (웃음)
Q. <이방인의 노래>로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감회와 각오가 있다면.
박 :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어 기쁘다. 사실 작품을 서울아트마켓 무대에 올린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는 ‘이것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 써야겠다’는 본능이 가장 먼저 발동했다. 하지만, 결국 공연이라는 것은 어느 무대에서든 본질적으로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품이 원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며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꼼꼼히 짚어나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궁극적으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중요치 않게 되었고, 다만 우리 안에서 이 이야기의 흐름을 쭉 정리한 후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 함께 나눠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 나에겐 세 번째 팸스초이스 무대다. <사천가>(2009년 선정작)와 <억척가>(2012년 선정작)로 서울아트마켓에 소개된 적이 있고, 그때는 사람들에게 ‘판소리는 이런 겁니다’ 하고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이번 팸스초이스 쇼케이스에서 선보이게 될 작품 <이방인의 노래>는 <억척가>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판소리극이다. 소리꾼으로서 어디를 향해갈지, 어떤 무대에, 어떻게 서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며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에 나의 이전 작업을 보신 분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봐주실지―조금 두렵긴 하지만―궁금하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타문화 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지점에서부터 공감대를 형성해갈지도 무척 궁금하다.
많은 분께서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해주시는 <사천가>나 <억척가>를 생각해보면, 그런 접점들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다. <이방인의 노래>에 서는 소리꾼 이자람은 이전 작처럼 재주를 부린다기보다 이야기를 건네는 입장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Q. 박지혜 연출은 서울아트마켓이 처음인가? 팸스초이스 쇼케이스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 : 처음이다. 다른 작품으로 일본, 중국 공연을 해오면서, 작품이 다양한 관객을 만났을 때 그 자체가 가진 함의가 깊어지고 레이어가 많이 생긴다고 느꼈다. 비단 해외가 아니라 한국 지방의 특정 관객을 만날 때도 역시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작품이 새로이 완성되고 도달되는 것을 경험했다. 서울아트마켓은 해외의 수많은 관객을 만나는 정거장 같은 무대이니만큼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
Q. 올해 <이방인의 노래>로 일본 오키나와 키지무나 페스타(Kijimuna Festa, 오키나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박 : 굉장히 뜨거웠다. 전에 양손프로젝트와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으로 만든 작품 <개는 맹수다>로 일본 돗토리 버드 씨어터 페스티벌(Bird Theatre Festival Tottori)에 다녀왔다. 그때 일본 관객들은 참 점잖고, 예의 바르고, 관객으로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걸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입히기를 지극히 꺼리는 느낌이랄까. 이번 오키나와 공연 중에는 관객들이 정말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런 점에서 더 놀라웠다. 현지 스태프들 말로는 중간중간 웃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공연을 보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판소리의 특성상 보는 관객들도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함께해주셨던 것 같다. 아이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너무 재밌어하시고 눈물도 흘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방인의 노래> 공연 직전에는 자람 씨가 모노레일에서 전통 판소리 <심청가> 공연을 했는데 그때도 관객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압도되고 있다는 기운을 받았다. 나 역시 관객으로 참여한 그 순간, 그 세계에 매료되었는데, 일본 관객들에게도 다른 나라의 전통을 보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 나도 굉장히 뜨거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는 <사천가>나 <억척가>로도 가 본 적이 없던 터라 반응이 더욱 궁금했던 공연이었다. 또 <이방인의 노래>의 첫 해외 공연이어서 제가 만든 판소리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해주실지, 작품 자체가 다른 언어로 전달될 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유효하게 전달이 될지 궁금했었는데 의외로 한국 관객들과 굉장히 비슷한 호흡과 템포로 웃고, 탄성을 보내주셨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공간이 아주 작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매우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들어왔던 일본 관객들이 활짝 열린 마음으로 뜨겁게, 열심히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팀 모두가 행복하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Q. 또 새로이 발견한 지점이 있다면?
박 : 어려웠던 것은 자막이었다. 장면마다 정해진 리듬이 있는데 관객들에게는 자막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 : 맞다. 그래서 이번 일본 공연에서는 자막을 읽는 시간이 필요한 구간을 찾아내어, 소리꾼이 해당 장면의 리듬을 최대한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이 자막 읽는 시간을 기다려주기 위한 작업을 따로 했다.
박 : 작품이 해외로 가게 되면, 자막을 놓고 자막과 장면 사이의 호흡을 디테일하게 잡는 리허설을 꼭 따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열리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특히 더 공감하는 어떤 대목이 있다고 느꼈다. 한국과는 다른 지점이었다. 새로 발견된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지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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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노래> ©판소리만들기-자 | <이방인의 노래> ©판소리만들기-자 |
연극, 소설 그리고 판소리의 만남
Q. 이자람 씨는 팸스초이스를 통해 이전 작업인 <사천가>, <억척가> 모두를 성공적으로 해외에 알렸다. 이전 작업들과 이번 <이방인의 노래>를 준비하며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 일단 이번 작품은 이전 작보다 공연 자체의 규모가 작다. <사천가>나 <억척가>는 대극장 공연으로 초청되고 있는 데 반해 <이방인의 노래>는 스튜디오나 박스극장에 어울리게 태어난 작품이라 극을 올리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물리적인 시간에 대한 부담으로 단편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전통 판소리도 시간이 길고, <사천가>나 <억척가>도 혼자 두 시간 반을 공연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한 시간 남짓한 단편 판소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래서 단편 희곡과 소설을 읽다가 알게 된 한국 근대 소설가 주요섭의 <추물>과 <살인>으로 박지혜 연출과 함께 ‘판소리단편선’ 작업을 시작했다. 새롭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박지혜 연출이 남미의 환상문학과 판소리가 어떤 부분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무렵 남미의 문학작품들을 찾아 읽다가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단편소설
Q. ‘판소리’와 ‘브레히트’는 손꼽히는 어울림, 좋은 선택으로 국내외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판소리’와 ‘마르케스’의 만남까지,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떠한 점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나?
이 : <이방인의 노래> 첫머리에도 그런 대사가 있지만, 정말로
작업 막바지에 작품에 등장하는 ‘라사라’라는 인물이 문득 나의 친언니와 닮았음을 발견하곤 박지혜 연출과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모두 이 작품을 고른 나의 본능이 나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앞으로 이 공연을 진행하면서 쭉 잃고 싶지 않은 지점이기도 하다.
박 : 감각적으로 이 작품에서 내가 배울 것이 있다고 느끼면 붙잡는 편이다. 일단 붙잡고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의 미덕, 정체성, 이런 것이 늘 숙제인데, 주변 사람들과 등장인물들의 닮은 점들이 내게 주는 위로가 있고 그들에게 주는 위로가 있고. 이렇게 발견되는 것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계속 발견하고 싶다.
Q. 판소리는 ‘한 사람의 화자가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모든 상황과 인물을 전달’한다는 장르의 특성상 소리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은 ‘소설 속 언어를 판소리화’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혹은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박 : 작가의 인생관이나 철학은 정확하게 작가가 작품에 원래 썼던 문체로 드러나고, 그것이 판소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작에 따라 소리꾼의 말투도 달라지고, 화법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달라진다. 마르케스의
이 : 판소리 대본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마치 영문 시를 써내는 것과 같이 예민하고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해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 작가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 중이다. 팸스 무대를 위해 번역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번역본을 받았다. 우리 안에서 섬세하게 검토하고, 필요하면 수정도 해가며 꼼꼼히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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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자람 ©판소리만들기-자 | <이방인의 노래> 포스터 ©판소리만들기-자 |
Q. 박지혜 연출에게 묻는다. <이방인의 노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 : 소리꾼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가’, ‘이 작품을 어떤 시선으로 담아내는가’를 설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이것은 창작 판소리의 본질적인 부분인데, 전통 판소리는 소리꾼이 해당 이야기를 부르는 이유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러나 창작 판소리는 새로 판소리를 만들어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 판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현대의 관객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입장을 가진 ‘시선’이 분명히 존재해야 하고, 이 시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창작 판소리 작업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와 소리꾼이 공존하는 부분에서 어떤 거리와 위치에서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가 참 어려웠다.
이 : 소리꾼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를 대하고 다루어내는지가 판소리라는 장르의 특징이면서 힘이다. 그만큼 그 부분이 어렵기도 하다.
Q. 그렇다면 판소리는 무엇인가? <이방인의 노래>는 판소리인가?
이 : 판소리는 한 사람의 서사자가 자신의 기술들로 하나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공연 장르이다. 모든 기술이 중요하지만, 관객이 가장 크게 받아들이는 기술은 바로 소리꾼의 ‘소리’다. 소리꾼은 다양한 리듬 위에서 자신의 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소리꾼이 그 이야기를 잘해낼 수 있도록 무대 위에 고수(들)가 함께한다. 고수는 관객과 소리꾼의 중간자 역할이기도 하고, 드라마 속 인물처럼 있기도 하고, 음악을 돕는 기술자이기도 하다. 소리꾼은 무대 위에서 매 순간에 발생하는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기술과 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공연의 관장자다. 관객을 살피고, 이야기가 잘 흘러가는지를 살피면서 주어진 약속을 실행하는 퍼포머인 것이다. 소리꾼이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다. 무대 위의 소리꾼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음악적 뉘앙스도, 인물도, 전부 달라진다. 이야기에 대한 소리꾼의 태도가 그대로 공연으로 반영되어 관객을 만나고 그 자체가 판소리 공연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나는 작업을 함에 있어 소리꾼과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만든 <판소리단편선:주요섭_추물/살인>이나 <이방인의 노래>는 판소리다. 물론 <사천가>와 <억척가>도 판소리다.
통영에서 있었던 <이방인의 노래> 초연 때, <사천가>와 <억척가>를 모두 본 프랑스인 관객이, 자막 없는 상태로―원작 내용 역시 모르는 채로―공연을 보고 나서 ‘아쉽게도 이전 작 같은 펀치가 없다’고 얘기했었다. 그분이 경험한 <사천가>나 <억척가>는 극적 긴장도가 높은 드라마가 무대 위에 극대화된 작품이었고 그에 걸맞게 판소리 역시 강하게 쓰인 작품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이자람의 작업들을 기억하는 그분이 이번 작품에 기대했던 점 역시 그러한 ‘한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방인의 노래>는 규모부터 그런 ‘한방’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스스로도 판소리라는 장르에는 꼭 그런 ‘한방’ 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회의를 느끼려는 시점에 이 작품의 원작을 만났고, 작품으로 완성된 <이방인의 노래>가 서울에서 초연될 때―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이 작품이―어떻게 관객과 만날지 궁금했었다. 다행히도 공연을 만든 우리가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고 원활하게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을 했기에 이번 팸스초이스를 준비하면서도 ‘이러한 경험을 외국 관객들과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외국이라고 다를까, 사람들을 놀라게 할 강렬한 ‘한방’ 없이도 판소리를 통해 관객들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박지혜와 이자람, 이자람과 박지혜의 이야기
Q. 두 사람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박지혜 연출은 현재 공연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양손프로젝트’의 연출을 맡고 있는데, 최근 어떠한 작업을 하였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박 : 양손프로젝트는 최근에 베세토 연극제에서 한•중•일 단편선 <한개의 사람>을 했다. 계속 소설을 원작으로 양손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의도된 시작은 아니었으나 팀 전원이 소설 작업에 깊은 매력을 느껴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해온 단편 작업을 총정리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내년 혹은 내 후년에 양손프로젝트가 작업해온 단편을 한 번에 다 올려보고 싶다. 현진건, 김동인, 모파상, 다자이 오사무 등 총 스무 편 정도 되는 작품들을 올리며 우리 작업을 다져볼 기회를 갖고 싶다. 우리가 어떤 문법과 어휘를 발견했는지 정리해보고, 또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다시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그리고 나서는 진짜 다른 걸 해보고 싶다.
Q. ‘다른 것’이라면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 않을 계획이란 의미인가?
박 : 소설에 접근하는 방식에서의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 소설은 이미 양손프로젝트가 가고 있는 하나의 길인 듯하고, 소설 안에서 장편의 호흡이라거나 아예 이 문법 안의 창작이거나, 아직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접근을 시작하고 싶다.
당장 다음 작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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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자람(좌)과 박지혜 연출가(우) ©판소리만들기-자 |
Q. 그러한 작업에 이자람 씨와의 판소리 작업이 주는 영향이 있나?
박 : 판소리 작업은 내가 진행하는 작업들에 대단히 많은 영향을 준다. 개인적으로 1인극이나 소설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소리와 만나는 지점이 생긴 것 같다. 그게 아직 결과물로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고 현재 소화시키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판소리가 인물을 만들어내고 장면을 청각화 하는 방식과, 소리꾼이라는 캐릭터가 관객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연극에는 없는 다른 종류의 서사극이고 새로운 지점이어서, 그것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소화가 될지 나 또한 지켜보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 <이방인의 노래>는 또 다르다. 이전 작업인 <판소리단편선:주요섭_추물/살인>이 ‘판소리라면 으레 이렇구나’ 했던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전형적인 판소리에서 벗어나는, 뭐랄까 더 철학적이고 잔잔하고 고요한 작품이었는데 판소리 안에서 또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느낌이다. 이것은 양손프로젝트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소리꾼과 인물이 만나는 아주 고요하고도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아직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 경험이 참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 자신의 껍질을 까는, 계속 어디로 갈 수 있는 연극작업을 하고 싶다.
Q. 이자람 씨는 앞으로 계속해서 창작판소리 작업을 하실 계획인지?
이 : 그렇다. 나의 기능들이 아직 무사한 순간까지 계속 작업하고 싶다.
Q. 하반기 일정에 대해 알려달라
이 : 올 하반기는 <억척가>로 국내 지방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천안, 구리를 다녀왔고, 그 사이 11월에는 인간문화재 송순섭 선생님과 함께하는 동편제 <흥보가> 완창을 준비하고 있다. 남는 시간에는 희곡들을 읽으며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 혹은 공연을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 연극이든, 판소리든, 공연을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박 : 여러분 삶의 시간을 공연에 투자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단 두 시간이라도 공연과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유현진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이방인의 노래> <이방인의 노래>는 『백년동안의 고독』 등을 집필한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판소리만들기-자 판소리만들기-자는 예술감독 이자람을 필두로 판소리를 토대로 한 새로운 작품을 창작, 공연하는 단체이다. 한국의 대표적 전통연희 판소리는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관객과의 친밀도가 높은 세계적 공연예술양식으로, ‘자’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양식적, 미학적, 서사적 요소를 비롯한 다양한 양분을 토대로 새로운 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판소리단편선’이라는 타이틀 아래 “기존에 비해 짧지만, 완성형의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를 모토로 2014년 말 주요섭의 단편소설 <추물>과 <살인>을 엮은 <판소리단편선1_추물/살인>을 발표하였으며, 2015년 5월 <판소리단편선2_이방인의 노래>를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