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컨템퍼러리 예술의 현재
[동향] MALAYSIA NOW! 커넥션 살롱 토크
덴마크 오딘시어터의 피어 벡 옌슨 프로듀서로 2014년의 문을 연 ‘커넥션 살롱 토크’가 영국, 덴마크,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그 여섯 번째 자리로 ‘말레이시아 나우!(MALAYSIA NOW!)’을 지난 1월 15일에 열었다. 2010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KAMS)의 커넥션(KAMS Connection) 사업은 공연예술 분야 국제교류 및 협력 사업을 다각화하고, 전문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커넥션 살롱 토크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를 미리 경험해 본 참가자들의 사례를 공유하고, 참석자와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통해 공연예술 국제교류에 대한 정보 제공 및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마련되었다.
‘말레이시아 나우!’는 지난 11월 ‘현대무용 교류’를 주제로 말레이시아 리서치 참가했던 원댄스 프로젝트 그룹의 이동원 안무가와 페스티벌 봄의 이승효 예술감독,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의 이동민 대표가 참석하여 말레이시아의 현대무용의 현황과 이슈, 나아가 아시아 공연 지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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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리서치 현장 |
[커넥션 발제]
말레이시아 현대무용의 현황 (이동원_원댄스 프로젝트 그룹 안무가)
말레이시아는 세 민족이 같이 사는 나라로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인으로 나뉘어져 있다. 세 언어 이외에도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영어까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역적으로 싱가포르, 홍콩, 태국, 라오스 등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그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게 특징적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영어라는 공통 언어권 때문에 인터내셔널 댄스 페스티벌을 하면 잘 엮일 수 있는 유기적인 형태이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매일 아침 9-10시부터 끌려 다닐 정도로 스케줄이 빠듯했다. (웃음) 대부분의 일정은 말레이시아의 극장 관계자, 기획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춤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안고 첫날부터 극장을 돌아다녔다. 쿠알라룸푸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경제적인 측면은 한국보다 월등히 뛰어난 부분들이 많았다. 극장의 경우, 우리가 가진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는 모습이었다. 이미 세계 유수의 다양한 뮤지컬을 수입해서 공연하고 있었고, 말레이시아 전통을 토대로 만든 작품들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해 보면 수치상으로는 작품의 수가 100개당 7개꼴로 매우 작다.
말레이시아의 현대무용은 크게 3~4 부류 밖에 되지 않는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은 없고 대부분 민간에서 개인이 운영한다. 지원 또한 정부 지원은 없고 기업에서 주관하는 펀딩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공연예술 공간인 다만사라 공연예술센터(Damansara Performing Arts Centre, 이하 DPAC)는 소극장(블랙박스 형태) 2개, 연습실 2개, 해외 레지던시로 구성되어 있다. DPAC는 해외 안무가들을 1-2 달 정도 초청해서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물론 국가에서 하는 펀딩도 있지만) 문화 발전에서 예술 분야보다는 관광 분야 발전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경우 KAMS처럼 정부 기관에서 하는 펀딩은 많지만, 현대 무용가에게 직접 펀딩이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말레이시아 문화예술국(National Department for Culture & Arts, 이하 JKKN)에서는 현대무용보다 말레이시아 전통 춤에서 발전된 다른 형태의 공연들이 중요한 컨템퍼러리 댄스로 여겨지고 있었다. 한국의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비슷한 아스와라(ASWARA) 예술대학은 국립 대학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무용 학부가 있는 유일한 학교이다. 발레, 현대무용도 가르치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곳이라 전통이 강세인 학교이다. 나는 KAMS에서 알게 된 중국계 현대무용가 스티브, 말레이시아 전통춤을 추는 카라와 함께 DPAC에서 쇼케이스를 했다. 세 민족으로 이루어진 탓에, 말레이시아에서의 활동은 각 민족끼리만 하고 그에 따라 보러오는 관객층도 나뉜다고 한다. 현대무용을 하는 단체가 3~4 팀 정도 있지만 다른 무용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러 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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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사라 공연예술센터 | 아스와라 예술대학 |
말레이시아에 머무는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한 레지던시를 방문하였다. 말레이시아의 주요 건축물을 디자인 한 건축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옛날 말레이시아 건물을 현대적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건물 중앙에는 지하 벙커 같은 곳도 있었다. 미술가나 설치 예술가, 조각가들이 한두 달 정도 머물면서 작업을 하면 레지던시 소유자인 건축가가 작품을 사준다고 한다. 레지던시 안에는 작품들이 갤러리처럼 전시되어 있었고, 실내 장식도 말레이시아 앤티크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레지던시는 예술가가 자국에서 펀딩을 받든 자비를 마련하든 간에 그 돈으로 예술가가 원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예술가를 초대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예술가와 같이 협업을 이루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주는 것이 그곳 레지던시의 역할이었다.
젊은 예술가들 6명이 하는 6편의 작품을 보았는데 한국 현대무용으로 치면 7~8년도 전의 움직임, 표현 방법들이 일괄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용 공연이라서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의 현대무용은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가서 배우고 이제 막 정착하는 단계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컨템퍼러리 예술은 동시대 예술을 만드는 것인데, 그렇다면 동시대? 현재, 이 시대, 지금, 지금 이곳에서 만드는 것? 말레이시아에서 지금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컨템퍼러리 댄스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이제 막 배워와 열악한 환경에서 국가의 펀딩 없이 만들고 있는 춤들이 바로 말레이시아의 컨템퍼러리 댄스였던 것이다. 그 지점에서 나 역시 ‘한국의 컨템퍼러리 댄스는 뭘까’라는 반문을, ‘현재 한국에서의 (동시대 한국 상황의 정서를 가진) 나의 춤은 어떠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얻은 성과는 DPAC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레지던시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무용이 어떻게 커넥션이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한국이 흰색이고 말레이시아가 검은색이라면, 이것들이 섞여 회색으로 변하는 것이 커넥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흰색, 검은색이 흡수되고 영향을 미쳐 회색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흰색, 검은색이 그대로 존재하며 얽히고설켜 새로운 것이 나오는 상태가 커넥션이라고 생각한다.
말레이시아 공연예술 대안 공간 방문기 (이승효_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보락 아트 시리즈(Borak Art Series)’는 재작년에 시작된 콘퍼런스로 2014년에는 펀딩과 모빌리티에 대한 주제로 말레이시아에서 이틀간 진행되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아시아센터가 말레이시아에 있어 힘을 많이 실어 주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이나 뉴질랜드 등이 초청되어 말레이시아에서 지금 필요한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콘퍼런스가 이제 막 시작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제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펀딩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협업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퍼포밍 아트 에이전시(Performing Art Agency)에서는 KAMS의 PAMS같이 말레이시아와 해외를 연결하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오프닝 퍼포먼스를 이동원 안무가가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재밌는 공연을 준비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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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락 아트 시리즈 2014 공식포스터 | 퍼포밍 아트 에이전시 관계자들ⓒ퍼포밍 아트센터 홈페이지 캡처 |
다음은 쿠알라룸푸르 공연예술센터(Kuala Lumpur Performing Art Centre, 이하 KLPac)이다. 재밌었던 것은 입구에 세워놓은 ’드레스 코드 없음’이라는 팻말이었다. 말레이시아 관객들은 공연예술이라 하는 것을 공식적(formal)이기도 하고, 격식도 차려야 하는 거리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을 무너뜨리고자 ‘반바지도 슬리퍼도 가능하다.’ 식의 관객 개발을 위한 새로운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극장 안에서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오피스 대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다 오픈 해 놓기도 했는데, 모두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아티스트 측면에서 보면 KLPac 대관료는 매우 저렴한 하루 1,000링깃(30만 원, 국립극장의 경우 450만 원)으로 독립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KLPac는 연간 프로그램으로 무용, 연극, 미술, 음악, 필름, 뮤지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KLPac는 110년 정도 된 건물을 이용, 창고로 썼던 공간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방문했던 공간은 한국의 안무가 김재덕이 공연하기도 했던 DPAC이다. 그곳에는 젊은 예술감독이 있었는데 싱가포르 안무가와도 일했었고, 공간에 상주 무용단으로 있으면서 공간을 운영하기도 하는 젊은 안무가였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극장을 소유한 환경이 부럽기도 했다. 운영 방식을 물었더니 공적으로 지원받는 것은 거의 없고 스폰서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말레이시아에서의 펀딩은 해외 쪽에서 끌어오는데 아시아-유럽이 연결된 재단이라든지, 해외 문화원에서 지원받는 것이 그들이 주로 말하는 펀딩이었다. 한국 같은 아르코, 서울문화재단 등에서 받는 공적 지원 시스템 등이 거의 없다 보니까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에선 개인 스폰서들이 지원하는 공간이 생겨났다. 연락만하고 오면 언제든지 해외 아티스트들에게 DPAC 공간은 오픈되어 있다. DPAC에서 제작비나 항공비를 지원해 줄 여력은 없지만 공간을 쓰면서 다양한 작업을 할 수도 있고, 협업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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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룸푸르 공연예술센터 | 핀다르스ⓒ핀다르스 페이스북 캡처 |
그 외 쿠아쉬 극장(kuAsh Theatre)에서 우연히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청동의 리듬(Rhythm in Bronze)>라는 전통 악기들을 사용한 퍼포먼스 공연이었다. 퍼포머들이 많이 나와 연주하고, 가면을 쓰고 나와 퍼포먼스를 하는 식이었다. 핀다르스(Findars)는 외대 쪽 베이스먼트 같은 느낌의 대안 공간이다. 바도 운영하고, 상영회도 하고, 퍼포먼스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말레이시아 실험영화제가 이 시기에 열리고 있었는데 영화제 안에서 오디오 비주얼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이런 신이 크게 존재하지 않지만, 공간 안에서 관심 있는 몇 명이 모여 진행하고 있는 정도였다. 아시아권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팀도 참여하고 있었고, 한국이나 일본과도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덧붙여 파이브 아트센터(Five Arts Centre)라는 공간이자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14명이 모여 있는 콜렉티브를 만나고 왔다. 3명이서 시작해 30년 정도가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20대의 젊은 아티스트부터 60대의 아티스트까지 섞여 있었다. 커넥션 사업 참가자였던 프로듀서 준 탐이라는 친구가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또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을 시작하는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컨템퍼러리 예술의 현재 (이동민_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대표)
개인적으로 아시아 커넥션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있어 이번 말레이시아 커넥션을 시작으로 그런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댄스 마켓 자체가 너무 유럽 취향으로 넘어가지 가거나, 유럽을 너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극복되지 못 할까 봐 걱정이 든다. 예술 마켓 자체가 좌지우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조금은 방향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시아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들, 무용가들, 독립 기획자들, 기관들이 아시아 댄스가 가진 정체성을 가지고 아시아의 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는 창작 비율이 매우 낮다. 현대무용, 창작 무용을 하는 단체의 수가 적다. 조셉 빅토르 곤잘레스(Joseph Victor Gonzales)가 운영하는 아스와라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비슷한 곳으로 말레이계로만 구성되어 있다. DPAC 같은 경우는 중국계이긴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이라 여타 중국계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가졌다.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오리지널 중국계로 광동 댄스 컴퍼니(Kwang Tung Dance Company)와 두 명의 남자 예술감독이 운영하는 두아 스페이스 댄스 시어터(Dua Space Dance Theatre) 두 단체가 있다. 이렇게 네 단체로는 컨템퍼러리를 다루거나 신 자체를 구성하기 어려운데 서로 간의 교류 역시 없다. 공통 워크숍을 제안했더니 불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따라서 안무 메서드나 무브먼트 리서치를 같이 하기는 힘든 환경이었다. 그러나 최근 DPAC 같은 경우는 싱가포르나 한국 안무가를 초청해 와서 공동 작업을 통해 유럽식 메서드를 작업에 녹아내고 있었다. 다른 곳은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있었는데 흡사 한국의 25년 전 상황과 같았다. 말레이시아 현대무용은 한국에서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무용과 다른, 올드한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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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 댄스 컴퍼니 공연 포스터ⓒ광동 댄스 컴퍼니 페이스북 캡처 |
두아 스페이스 댄스 시어터 공연 포스터ⓒ두아 스페이스 홈페이지 캡처 |
3일 정도 더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안무가들과 더 만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움직임을 뽑아내는 것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 그들은 심상을 디테일한 메서드라기보다는 추상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의 메서드에서 얻거나, 안무 감독이 해왔던 것들을 지켜보면서 도제식으로 현대무용을 하고 있었다.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한국 창작 무용이라는 신이 생성되었던 것처럼, 어떻게 보면 폐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 고유의 것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특한 신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만난 단체들은 30~40대로 말레이시아 창작 무용 1세대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이들과 컬래버레이션하기는 굉장히 힘들겠지만 만약에 우리가 “아시아만 가진 독특한 메서드를 개발해내겠다, 독특한 신을 만들어내겠다”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문제는 기획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단체에서 일하는 기획자들한테 위치를 물어보면 독립적인 일자리의 형태가 아니기에 독립 기획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어느 한국의 기획자들보다 많은 양을 작업하고 있었다. 말레이계나 전통 쪽으로는 국가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창작 쪽으로는 국가 지원이 없어 프로젝트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인 예술가가 자기 개인 이름으로 문화예술위원회 등에 지원할 수 있는 통로가 아예 없는 것이다. 개인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발생시킬 수 있는 지점이 없기에 다양성 부분이 걱정스럽긴 하다. 보락 아트 시리즈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일본재단에서 해외 거점 기지들을 계속 짓고 있는 것처럼, 아시아이기는 하지만 한·중·일과 심각한 교류가 없었고 소외되어 있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개발은 덜 되어있기에 여지는 많은 것 같다. 당장 비즈니스와 연결할 수 있는 조성 여건은 되어 있지 않지만, 매력적인 곳임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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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하며 보게 되었다. 무용의 경우 답답한 지점이 있었지만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 특히 다른 장르와 협업해서 나오는 작업들이 차이가 난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공공에서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까 민간에서 그런 작업들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았다. 우연히 갔던 노 블랙 타이(No Black Tie)라는 재즈 클럽이 있다. 뉴욕에서 음악 공부를 한 자매가 운영하는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좋은 재즈 클럽이었다. 인구가 2,300만 정도 되는, 현지 물가 수준이 조금 낮은 국가에서 수준 높은 퀄리티의 작업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
노 블랙 타이 공연 포스터 |
한국은 공공 지원이 많은 나라이다. 오히려 민간 분야가 소극적이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경우 민간 입장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으면 한국에서 지원을 받아오면 좋겠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음악 쪽, 제가 만난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그나마 뭐든 해보자는 식의 반응들이었다. 한국과 비교해서 무용만 볼 때 컨템퍼러리라는 기준을 만들기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창작 무용 1세대라는 점, 아시아 무용만의 이슈를 만들어 내고 발언권, 역량을 키워 나가는 작업들을 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다 공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현실화해 나갈 것이냐는 점이다. 사실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인접해 있기는 하지만 그들끼리의 커넥션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커넥션을 통해서 말레이시아에 처음 갔던 것처럼 이후에 또 다시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다른 국가들도 파악하고 싶다. 문제는 한국과 말레이시아만의 커넥션 진행으로만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컨템퍼러리가 물론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사실 유럽식 메서드를 가지고 와서 변주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유럽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는 분명히 있다. 말레이시아와 커넥션 사업을 하고 싶으시다면 앞서 소개한 극장들, 콜렉티브들이 중요한 거점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 외적인, 물질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도움받기보다는 아마 내용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경우도 해외 작가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펀딩을 받아 와서 현지 아티스트를 도와주고 협업을 추진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단순히 결과물을 공유하는 과정만으로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한국 창작 무용이든 컨템퍼러리 무용이든 한국 종사자들 측면에서 보면 스타일이나 층위 자체를 가르쳐 줘야겠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주목할 지점은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들이 지닌 독특한 면들이다. 그들은 유선 전화 시스템을 건너뛰고 모바일로 바로 넘어간 국가들이다. 거기에 그들이 가진 독특한 측면들이 있다. 어느 단계를 훅훅 뛰어넘은 친구들이기에 그런 것들이 결핍을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중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이가 그들에게 힘이 되는 지점으로 생길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소홀해 왔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우리가 겪지 못했던 긴 여정을 차근차근히 밟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들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사업을 시작하다 보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커넥션 토크]
사회자(서명구_서울연극센터 매니저):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있고,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어서 다채로움의 측면에서 다른 문화끼리 조화를 이루면서 발생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고,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다양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굉장히 폐쇄적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런지,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고려는 없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이동민 : 광동, 두아 스페이스는 둘 다 중국계 단체이다. 그들이 말해준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들이 지원 신청을 하게 되면 당신들은 중국계이기에 지원이 불가하다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정책적으로 말레이계에 편향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JKKN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10년 이상씩 활동한 이들에게 물어보면 현실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아스와라 같은 대학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MOU를 맺어 교류 중이지만, 정통 말레이 계열이기에 그 정도의 국가 지원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조셉 빅토르 곤잘레스 같은 경우는 아시아무용위원회 공동 의장이기도 하지만 정책적으로 편향된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사회자 : 교류와 협업에서 정책적인 배려를 한다면 다른 가능성도 볼 수 있을 것 같은지 묻고 싶다.
이승효 : 조셉 빅토르 곤잘레스가 학교 커리큘럼을 자랑하면서 한 말이 자기네 학생들은 말레이 댄스, 중국, 인도계 무용을 모두 가르친다 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메서드가 다양한 것도 좋지만, 방식 자체가 하나로 통합하는 방식인 것 같다. 말레이시아의 문제는 바로 그게 아닐까 싶다. 정치적으로 볼 때 현재 집권당 자체도 말레이시아인의 하나 됨을 강조한다. 서로의 다름이 긍정적 의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아예 없게 만드는 것이다. 부딪히는 자체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말레이시아가 정치든 문화든 발전해 나가려면 그들끼리 다름에 대해서 어떻게 충돌할지에 대한 질문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그런 문제 제기가 크게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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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나우! 커넥션 살롱 토크 현장(왼쪽부터 서명구, 이동민, 이승효, 이동원) |
관객 :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번 4월에 쿠알라룸푸르 도서전에 참여할 예정인데 마케팅 측면에서 한국 공연 팀과 같이 가보려고 한다. 아직 주최 측의 피드백은 받지 못했지만, 채널을 확보하는 방법과 아울러 현지 공연 팀과의 협업이 가능한지 궁금하다.
이동민 : 조직위원회와 얘기해 보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현지 예술단과 연결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추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지만, 한국의 예술단과 같이 가시는 거라면 답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일 것 같다. 현지 공연 팀과의 협업은 가능하나 그들은 예산을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이벤트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고 펀딩이 관건일 것 같다.
김석홍((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사무국장) : 발제자 세 분 모두 말레이시아 세 민족 간의 교류가 많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교류하려면 각자가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본다. 정작 아티스트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은지 궁금하다.
이동원 :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스티브라는 친구가 한국에 일주일 정도 있다 갔다고 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은 유행을 왜 이렇게 타는지 그 얘기를 하더라. 그 친구들이 보기에 한국은 다 비슷한 춤, 스타일이 한 번 의 유행으로 가는 것 같아 한국과 같이 작업하고 싶지만 그런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더라. 한류의 영향이 있어서 예술가들 또한 한국에 대한 관심은 충분한 것 같다. 문제는 그것들이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것이다. 나도 원하고 그들도 원하는데 만남을 어떻게 가져야 옳은가, 지속적으로 방향을 세울 것인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승효 : 말레이시아에서 느끼기에 한국의 공연예술이 지금 대단하기는 하구나 싶었다.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는데, 말레이시아는 한국이나 일본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유럽과 달리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동질감 또한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앞서간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배움의 대상이고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점은 느껴졌으나 한국이 특별한가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관객 : 한국무용을 하는 김용철이다. 아스와라를 5년 전에 방문했다. 개인이 아닌 공적 기금과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리서치를 다녀오면 풍부한 리서치가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왔다. 한국에 있으면 한국 창작 무용가이고, 해외에서 보면 컨템퍼러리 댄스 안무가로 구분되는데 그냥 ‘안무가’로 지칭하면 좀 더 범위가 확장되지 않나 싶다. 한국무용하는 사람으로 보면 단어 자체가 너무 닫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아닌 동남아시아로 발을 돌리기 위해 10년 전부터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왜 우리는 아시아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가가 늘 아쉬웠다.
사회자 : 이승효 감독은 페스티벌 봄에 계시고, 이전에 페스티벌 도쿄(Festival/Tokyo)에 계셨기에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동남아 지역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하다. 또 예술가들의 개별적인 협업 관계라기보다는 축제 단위에서의 협력 관계의 가능성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이승효 : 기획하는 입장에서 아시아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공모 프로그램을 진행해 본 적이 있는데,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 이런 것들이 부재한다. 공연 축제라고 해도 매우 수준이 낮다. 우리가 기대를 갖고 가면 찾을 것이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현대 무용 혹은 말레이시아의 컨템퍼러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가면 이미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에서 컨템퍼러리가 뭔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시간이 너무 걸릴 것이다. 뭔가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고, 한국에서도 동남아시아와 교류할 때 그것이 중요한 측면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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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홍 : 공공지원이 거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또 한 편으로는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공공지원에서 일정 부분 견인하는 지점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JKKN도 KAMS와 교류하면서 많은 부분 벤치마킹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아가서 공공 지원이 강력하게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
이승효 :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이나 일본을 보면 굉장히 시스템적으로 잘 되어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아티스트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굉장히 전통적인 것이거나 정부가 좋아하는 것만을 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좌파적인 사람들은 지원받기가 어렵다, 컨템퍼러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보적일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얘기를 하더라. 어차피 지원도 못 받는데 훨씬 더 재밌는 것을 하면 관객들도 돈 내고 보러 온다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보락 아트 시리즈에서 펀딩이 필요하고,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려되었던 점은 이제 한국을 벤치마킹해서 공적 지원들을 늘려가면서 말레이시아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이 자생적으로 나올 수 있는 시기인데 오히려 그것들이 죽지 않을까 싶다. 한국이나 일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더욱 더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관객들과 괴리되지 않는 자기들만의 컨템퍼러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동민 : 오히려 커넥션 관련해서 KAMS에서 JKKN 지원에 대한 압력을 넣어 주셨으면 좋겠다. 이 커넥션을 통해서 만났던 아티스트들이 계속 걱정하는 부분이 그런 것들이다.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공동 사업이 추진될 때, 한국에서는 지원 신청할 여지가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없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국가 대 국가 파트너로서 매칭 펀드에 대한 당위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부분을 기관 차원에서 좀 더 얘기해주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자 : JKKN 같은 경우는 네트워크 등을 가지고 프로그래밍 하지만 거기에 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없는 것인가.
김은희((재)예술경영지원센터 전략사업본부 시장개발팀) : 그런 측면에서 JKKN이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JKKN과 할 수 없는 내용은 말레이시아 컴퍼니나 민간 에이전시들과 협력하여 진행하였다. 리서치 이후의 협력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측면은 KAMS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 지난 다른 토크 때 자카르타 칵아트 페스티벌(KakArt Festival) 디렉터가 서구, 즉 유럽 중심의 시장이나 작품을 보는 시각에서 아시아가 벗어나야 한다고, 우리만의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얘기했다. 오늘 자리를 가지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작품 간의 협업은 꼭 아니더라도 공공 채널이나 기획자들의 협력 채널, 기획적인 측면에서의 교류는 지속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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