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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그러나 특별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연예술문화 愛 2015-01-20

일상적인 그러나 특별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연 문화 愛
[피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 디렉터 알베르토 리갈루피


아르헨티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먼 나라.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공연장을 책임지고 있는 디렉터 알베르토 리갈루피(Alberto Ligaluppi)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문득 현실과 환상의 경계 따위 우습게 넘나드는 소설과 시들을 쓴 남미 작가들이 떠올랐다. 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파블로 네루다,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이들 중 몇몇 작품들을 언젠가 무대에 올릴 수 있을 거란 즐거운 공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방대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무대 위에 펼칠 자신이 없어 늘 공상으로 그친다. 그래도 그곳에는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용감한 예술가들이 있지 않을까, 지금 그들을 계승하는 후예 작가들이 누구인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알베르토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테아트로 산마틴(위), 테아트로 프레시덴테알베알(아래)

테아트로 드라 리베라(위), 테아트로 사르미엔토(아래)

테아트로 산마틴(위), 테아트로 프레시덴테알베알(아래) 테아트로 드라 리베라(위), 테아트로 사르미엔토(아래)

스페인어 문화권 최대의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

Q(신민경) :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A(알베르토 리갈루피) : 처음은 아니다. 5년 만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Buenos Aires, 이하 FIBA1)) 디렉터로 일할 때, 2008 서울아트마켓(이하 PAMS)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그전까지 한국 공연예술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덕분에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을 보고, 이듬해 축제에 초청했다. 일주일 공연이 전석 매진될 정도로 아르헨티나 연극인과 관객들이 그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 5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 설레기는 하다. 서울에 있는 동안 연극,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생각인데 인터뷰가 끝나면 저녁에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자전거>나 극단 하땅세의 <파우스트>를 보러 갈 예정이다.

Q : 2010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Complejo Teatral de Buenos Aires 이하 CTBA)2)의 디렉터로 부임했다고 들었다. 극장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나?

A : CTBA는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실은 지난주에 70주년 기념행사가 있어 부득이하게 PAMS가 끝나는 시기에 도착했다. CTBA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남미와 유럽을 포함한 스페인어 문화권 전체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다. 지금은 총 8개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화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제작 스튜디오, 아카이브를 겸한 도서관 등도 부속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소속 예술가들을 포함해 약 1,2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데 시 정부로부터 운영 예산을 전액 지원 받고 있는 공공문화기관이다. 공연장에 올라가는 콘텐츠의 방향성은 클래식, 고전보다 동시대적인 재해석, 컨템퍼러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Q : 상상이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다. 8개 공연장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기획하나?

A : 6명 또는 7명의 프로듀서들이 공연장에서 기획, 초청, 제작할 작품들을 추천한다. 심사위원(Jury)으로 불리는 3명의 프로그래머들이 프로듀서들이 제안한 작품들을 검토하고, 3명의 재정, 기술, 프로그램 디렉터들(Finance, Technical, Managing Director)에게 프로그램 구성안을 보낸다. 난 총괄 책임자(General Director)로서 최종 기획안을 결정한다. 아르헨티나의 공연예술 성수기는 3월부터 12월인데, 그중에서 6, 7, 8월이 소위, 연극 시즌이죠. 10월은 축제 시즌이다. CTBA처럼 대형 공연 시설을 자체 기획자들의 아이디어만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우리는 7~8개 내외의 페스티벌들과 지속적으로 연계 기획한다. FIBA 뿐 아니라 영화 관련 축제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극장 로비에서 공연중인 뮤지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극장 로비에서 공연중인 뮤지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1)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예술축제는 1997년부터 홀수 년 10월 2주간 개최된다. 국내외 공연들을 초청하며, 연극, 무용, 시각예술 및 사운드아트 등 현대예술 전 장르를 대상으로 한다. 현 예술감독은 다리오 로페르피도(DARÍO LOPÉRFIDO)가 역임하고 있다.
2)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CTBA)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 운영하는 공연 시설을 단일 운영 체계 안에 두어 극장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2000년에 7개의 공연장들을 통합하면서 CTBA는가 탄생했다. 현재 총 8개의 공연장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극장은 테아트로 산마틴(Teatro San Martin)으로 1,200석이다. 2014년에 맞은 CTBA 70주년 행사는 이 극장의 역사와 관련한다. 무대 제작, 소품 및 의상 디자인 공방 등 제반 시설도 함께 있으며, 이외에 400명을 수용하는 영화관, 방송 제작 스튜디오, 다양한 음악 콘서트와 실험적 공연을 수용하는 라이브클럽, 소규모 갤러리 등이 있다.

매주 500편!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특별한 연극 사랑

Q :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가? 혹시 좋아하는 장르, 작품들이 있다면, 좀 더 자세히 얘기를 듣고 싶다.

A :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는 연극이다. 그 다음이 음악 또는 발레일 듯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연 문화는 일상에 가깝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도시에서 한 주 동안 올라가는 공연이 몇 편인지 짐작이 가나? 매주 500편에 가까운 연극이 올라간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같은 주말에는 공연 시간을 6시, 9시, 자정 12시로 편성하는데, 세 개 공연 시간대에 올라가는 공연이 모두 다르고 대부분 만석이다. 우리 도시에서는 자정에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치 여름의 에든버러아비뇽 축제에서 가능한 일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일상적이다. 런던, 베를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공연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난 늘 이 점이 자랑스럽다.

Q : 시민들이 그렇게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령에 관계없이 전 세대가 연극 관람을 좋아하는 편인가?

A : 공연 관람이 시민들에게 일상이 된 것은 ‘더러운 전쟁’3)이 끝난 후에 생긴 새로운 전통이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표적인 이민자 국가이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는데, 유럽의 극문학과 공연 문화가 함께 아르헨티나로 전파되었다. 연극을 관람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 가족 문화 안으로 스며들어 저녁에 함께 극장에 가는 일이 가족의 전통(family tradition)이 되었다. 젊은 세대 중에는 연극 마니아도 많고, 연극을 하려는 예술가들도 많다. 부에노스아이레스만 해도 창단 2-3년 미만의 젊은 극단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Q :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극작가는 누구인가? 해외 공연도 좋아하는 편인가?

A : 인기 있는 극작가는 단연 셰익스피어이다. 체호프와 몰리에르가 그 다음이다. 미국 작가 유진 오닐과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들도 자주 올라가는 편이다. 아르헨티나 극작가는 로베르토 아를트, 에두아르도 파블로브스키, 알베르토 바카레차의 작품들이 인기가 많다. CTBA에서 일 년동안 올라가는 해외 공연 숫자는 20편에서 25편 내외인데, 그중 10% 내외가 아시아에서 온 작품들이다. 연극은 독일에서 온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다.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처럼 그 나라만의 현실이나, 독창적인 이야기를 가진 작품들도 초청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우선 호감을 갖는 작품은 위에 언급한 세계적인 극작가들의 작품을 독창적인 시선이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들이다.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의 <햄릿>ⓒBronwen Sharp

테아트로 산마틴을 가득 메운 관객들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의 <햄릿>
ⓒBronwen Sharp
테아트로 산마틴을 가득 메운 관객들
 

Q : 여느 장르보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은 걸 느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이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 난 행정가이기 이전에 연출가였다. 그렇게 재능 있는 편은 아니었다. (웃음) 이전에는 화가였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사람들을 캔버스에 그리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뉴욕에서 한창 그림을 그릴 때, 한국을 비롯한 동양 예술(oriental art)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예술 속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Orientalism and Occidentalism)에 관심이 생길 때, 그림에서 연극이란 장르로 관심이 옮겨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연극 연출을 시작했는데, 예술 행정가(arts manager)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창작자로 남을 것인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기획자의 길을 선택했다.

Q :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연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 것인가?

A : 창작과 기획을 병행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했다. 20년 전 갈림길에서 선택했고, 현재에 만족한다. 행정가로서 은퇴한다면 소박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Q : 한국의 문화, 공연에 대해 아르헨티나 관객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알베르토 씨는 한국의 공연들이 다른 국가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가?

A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번째로 큰 이민자 커뮤니티가 바로 한국인들이다. 이민 1세대들은 식당,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많다. 최근에는 패션 산업에서 한국계 이민자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젊은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상당수는 교사를 하고 있다. 사회 전반과 경제에서 한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데 비해 한국의 문화와 공연은 아르헨티나에서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더 노력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 연극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은 부드럽고, 밝은(mild, soft and pleasant) 느낌이다. 일본 연극과 비교한다면 일본은 한국 연극보다 직설적이고, 극적이고, 어둡다(more direct, dramatic and dark). 많은 작품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얘기할 수 없고, 축제에 초청했던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이 극 구조 안에 음악과 무용의 요소가 있어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 좀 더 보편적일 수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2014년에 CTBA는 2 편의 한국 무용을 초청했다. 한국 무용은 유럽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무용수들은 탁월한 기량을 갖고 있는데, 한국과 유럽 각각의 전통을 작품 안에 조화롭게 넣은 점이 특징적이다. 앞으로 두 나라 간 더 많은 교류가 무용 장르에서 있을 거라 기대한다. 연극이나 무용에 비해 음악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인도와 일본 음악들이 알려진 것에 비해서 한국 음악은 남미에서 생소하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알베르토 리갈루피

알베르토 리갈루피

알베르토 리갈루피

 

인터뷰를 마치고 일주일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인터뷰 말미에 알베르토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아르헨티나의 젊은 작가들이 누군지 궁금하다는 내 얘기를 잊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무려 18명이나4)) 적어 보낸 것이었다. 보르헤스 후배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 번역, 소개될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10년 후에 알베르토와 주고받을 이메일에는 그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커뮤니티라는 한국계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의 작가 이름과 문학작품도 적혀 있기를 기대해본다. 두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접한 디아스포라들이 경계 위에서 다른 스타일의 동시대 문화예술을 창조하고, 그것이 새로운 전통이 되는 일들을 종종 보아왔으므로.

3) 세계적 석유파동으로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사회 불안이 고조되자,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대통령의 군사정권은 반정부적인 발언과 행동에 대해 탄압을 자행하고, 약 30,000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고문, 실종, 사형에 처해졌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렸던 군부독재는 총선거가 치러져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1983년까지 계속되었다.
4) 보내준 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노 텐코니 블랑코(Mariano Tenconi Blanco), 산티아고 로자(Santiago Losa), 루이스 카노(Luis Cano), 소피아 (Sofia Wihlemi), 넬슨 발렌트(Nelson Valente), 페트리치오 알바디(Patricio Abadi), 카트리나 모라(Caterina Mora), 마리아나 추(Mariana Chau), 로아로 비로(Lautaro Vilo), 셀리나 아르궬로 레나(Celina Arguello Rena), 마티아츠 움피에레(Matiaz Umpierrez), 마리아노 펜소티(Mariano Pensoti), 에바 알락(Eva Halac), 나탈리아 카이젤르(Natalia Casielles), 안드레 갈리나(Andrés Gallina), 세바스찬 키르츠너(Sebastián Kirszner), 아고스티나 로페즈(Agostina López), 솔 로드리게즈 세오아네(Sol Rodríguez Seoane).


 

ⓒCTBA 홈페이지


  • 기고자

  • 신민경_국립극장 국제교류사업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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