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 낯설게 본다. 세밀히 본다.
[PAMS Choice] 극단 놀땅 연출가 최진아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해’라고 어린왕자는 말했다. 저 말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보이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걸 보란 말인가. 무슨 수로. 무조건 심안만 강조하는 건 참 무책임한 처사다.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만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연극 <본.다>는 제목 그대로 보는 행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본.다>는 기승전결로 된 기존의 극적구조를 답습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시각적 활동을 진지하게 탐구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 언제나 참신한 소재를 새로운 서사방식으로 풀어내는 극단 놀땅의 최진아다.
여성주의도 인간주의도 아닌
Q(김일송): “깐깐하기로 대학로에서 악명 높은 극작가 겸 연출가”라고 공연포털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던데, 이런 소개에 동의하나?
A(최진아) : <금녀와 정희> 공연 때, 팸플릿에 사용할 용도로 기획자가 나와 상의 없이 만든 문구인데, 아마도 “악명 높은”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Q : 단체명은 ‘악명’과는 거리가 먼, ‘놀자’는 뜻의 ‘놀땅’인데.
A : 그러게, 최근 들어온 신입단원도 “단체명은 놀땅인데 왜 이리 쉬지 않고 연습하냐”고 하더라.
Q : 놀땅의 대표 연출가다. 그런데 연출가가 되고 싶어 연극에 발을 들인 게 아니었다고.
A : 그렇다. 배우들에게도 “캐스팅 안 시켜줘서 연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연우무대에 입단할 때, 지원란에 배우와 연출 2가지를 적었는데, 막상 무대에 설 일이 없었다. 요즘과 다르게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연출을 하셨고 작품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캐스팅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정말 하고 싶던 역이 있었는데 캐스팅이 되지 않다. 그래도 연극은 계속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연출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 <연애 얘기 아님>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많은 기회가 열렸다.
Q : 다음 작품인 <사랑, 지고지순하다>도 호평을 받았다. 한국연극에서 선정한 베스트 7에 꼽힐 만큼.
A : 운이 좋았다.
Q : 두 작품에 대해 김소연 평론가는 “최진아는 단순한 재현을 뛰어넘는 드라마의 공간을 통해 여리지만 당돌하고, 피 뚝뚝 흘릴 만큼 아파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그녀들의 자리를 넉넉하게 마련한다”고 했고, 김명화 평론가는 “최진아는 출발부터 흔들림이나 과도한 자의식 없이 담담하고 일관성 있게 여성주의 계열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평했다.
A : 두 작품 다 여성주의 시각을 목적으로 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을 쓰다 보니 주인공이 여자였을 뿐이다. 어쩌다 보니, 다음 이야기도 <그녀를 축복하다>라는 로맨스였고, 2009년에는 공연했던 <금녀와 정희>도 엄마와 딸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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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와 정희>(2009) 공연포스터 | <1동 28번지 차숙이네>(2010) |
Q : 2010년에 들어서야 전작과 결이 다른 작품을 발표했다.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은 “<1동 28번지 차숙이네>가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작가가 그동안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극작과 관심의 지평을 인간주의 쪽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주의로 지평을 넓히고자 애쓴 것도 아니었나?
A : 애당초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여성주의가 아닌 다른 주의의 작품을 쓰려는 마음도 없었다. 인간주의로 주제를 바꾸자는 생각은 없었다. 난 무슨 주의의 희곡을 쓰지는 않는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집 짓는 현장을 보고 구상한 작품일 뿐이다.
Q :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공연 중 무대 위에 집을 짓는 형식이 특이했다.
A : 그동안 연극을 보면서 인터미션에 무대전환 하는 걸 보고 무대전환이 본 공연의 드라마보다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블랙아웃 된 상태에서 더듬더듬 무대를 전환하는데, 저 재밌는 것을 공연 중에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형식으로 연출했다.
Q : <1동 28번지 차숙이네>도 성과가 좋아, 2011년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A : 팸스초이스에 선정돼서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에 초청되었고, 2012년에 터키공연도 갖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논문 같은 연극
Q :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자. 지금부터 던지는 질문은 2010년 최진아 연출가 본인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바뀌었을지, 혹은 공고화되었을지 기대가 된다.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배우들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있어요. 연출이 더 이상 안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연습 기간이 다 끝나고 무대에 올라갔으니, 이제는 배우의 몫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 연극 풍토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량이 있는 연출가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요.” 이제 아량 넓은 연출가가 되었나?
A : 참 예민한 부분이다. 어제도 끝나고 배우와 노트 중에 ‘내가 배우에게 도움이 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연출가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연출가와 배우는 기본적으로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늘 조화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서로 다른 요구가 있는데 그것을 조율하면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숙제다. 한편으로 매일 공연을 보고 노트를 하는 게 꺼려할 일은 아니지만, 배우로부터 “제발 떠나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는 자리를 비워주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관객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몸을 통해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존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에서 관념이나 추상을 이야기할 때 배우가 몸이라는 구체성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있다면, 연출가가 방향을 잘 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Q :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이 시대에 인간을 깊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관객이 지금 흥미 있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어떤 연극을 할까, 점점 어렵고 깊은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방금 전 질문의 대답으로 관념과 추상을 거론했는데, 관념과 추상을 어떻게 구상화하느냐에 따라 연극이 쉬워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A : 구체적인 몸으로 연극이라는 관념과 추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배우의 숙제라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관념과 추상을 결합하는 것은 연출가의 숙제다. 나는 관념과 추상이 문장이 아닌, 말줄임표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줄임표를 무대화하는 게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사실적인 공연에 사실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적인 무대에 비사실적 것들이 혼재되는 걸 즐기는 편이다. 대화 도중,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생각이 독백으로 들릴 수도 있고, 대화에서 파생된 상상을 무대로 보여줄 수도 있다. 대화 중에 등장 인물이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거나 심지어 하늘을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말줄임표 속에 들어가 있는 실제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진짜 생각과 삶이고, 그 말줄임표를 무대에서 보여주는 게 연출가로서의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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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2014) 공연 모습 |
Q : 그 대답을 <본.다>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표현방법을 놓고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다른 형식으로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좋은 소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 소재를 어떤 방법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게 늘 고민이에요.”라 했는데, <본.다>를 만들면서 표현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A : <본.다>를 구상할 즈음, 드라마로 감정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연극 외에 다른 연극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또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의 희로애락을 굳이 극장에서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때 국립극장에서 연출 제의를 받고, 당시 내가 관심을 가졌던 ‘본다’는 행위를 무대에 옮겨보고자 했다. 무엇인가를 보는 인간의 행위 자체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찰나의 쾌감을 연극으로 확대해 그 쾌감이 관객에게 전달되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적인 특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항상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을 찾으려 한다. 드라마가 어울리면 드라마로 드라마가 아닌 다른 방법이 나으면 다른 형식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동 28번지 차숙이네>의 경우 집 짓는 과정에서 느낀 감동을 무대로 옮기면서 다큐 성격의 연극이 나왔다. 그러나 내가 다큐 형식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정서적인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이외의 연극이다. <본.다>를 만들면서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니라 논문을 읽을 때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면서 느끼는 감동 같은 것을 연극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정서적인 순간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더 객관적이고 인식적인 작업을 하려고 하였다.
보이는 것부터 제대로 보자
Q : 순간적인 행위, 순간적인 인식을 연극적 시간 속에 확장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A : 본다는 건 1초 안에 이루어지는 행위인데 그걸 확장하려니 처음엔 난감했다. 물론 무엇인가를 1시간 이상 보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러면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가져가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본다’는 행위와 연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2012년에 초연을 가졌는데 2014년 재공연할 때는 인식의 변화가 생기더라. 그전까지는 본다는 행위로 대상을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보고 인식할 때 순간적 행위가 아닌 과거에 학습된 경로가 작용하여 인식하게 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2012년까지는 보는 행위가 과거의 인지를 뛰어넘는 순수한 행위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과거의 경험과 무관하게는 대상을 볼 수 없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인식의 변화였다. 아마도 2년 후에 다시 <본.다>를 하게 된다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동안은 정서적 감동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는데 이제는 보는 것을 통해서 감동적인 찰나를 만들 수도 있다 생각한다. <본.다> 3탄이 나온다면 그런 달라진 인식을 관객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Q : 2012년 <본.다>와 2014년 <본.다> 사이에 실질적인 연출의 차이가 있었나?
A : 2장에 의학적인 설명이 나오는 부분에 2-3문장을 바꾸었는데 관객들은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더라. 단순히 몇 문장이 아니라 장면으로 만들어내면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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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2014) 공연포스터 | <본.다> 공연모습 |
Q : <본.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A : 어떤 대상을 제대로 보려면 대상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의 자리에 ‘세상’을 놓으면 의미가 더 확대될 수 있다.
Q : 제대로 본다는 건 대상에 숨겨진 이면을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면의 다양한 결을 읽어내는 과정일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빨노파’ 밖에 모르는 사람은 무지개를 3가지 색으로 인식하겠지만 더 많은 색을 아는 사람에게는 7가지 이상의 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작품을 보는 관객의 해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A : 인디언 이야기 중에 10km 밖의 독수리를 보는 인디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인디언과 독수리의 교감이 있어 가능한 게 아닐까. 무언가를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한다면 물리적 한계를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을 연출하는 입장에서 관객이 7가지 이상의 색을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관객이 가진 스펙트럼이 3가지라면 자극을 통해 스펙트럼을 하나 둘 넓히고 싶은 거지. 내 연극이 관객의 시각을 다양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교과서를 통해 주입된 관점이 아닌 학습되지 않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그동안 감지하지 못한 것들을 포착하며 살아야하고 그것들을 연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연극이다. 내 작품을 통해 그동안 살면서 놓친 시각이나 지점들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Q : <1동 28번지 차숙이네>로 2012년 터키에 다녀왔는데 운이 좋다면 이번에 <본.다>로 또 한 번 다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길 것 같다.
A : 그동안 일반적인 담론에서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본.다>는 ‘몸의 눈으로 봐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봐야한다’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어떤 분은 <본.다>에 동서양의 철학이 결합되어 있다고 하시더라. 서양철학의 끝에 동양철학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본.다>가 그 지점을 보여준다면서. 그래서 해외에서 더 극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Q : 맞다, 국내 관객들은 낯설어 당황스러울 수 있다.
A : 좀 낯설거나 당황스러운 게 재밌는 거 아닌가. 낯설거나 당황스러운데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면 재밌는 연극이 된다고 생각한다.
Q : 반대로 해외 관객들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을 듯싶다.
A : 난 낯설어야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연극이 심심하고 단조롭다고 여겨진다면 그게 실패한 거라고 생각한다.
Q :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말씀이 있으면, 전해 달라.
A : 재미와 깊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깊이를 택하고 싶다. 그런데 재미를 먼저 느껴야 깊이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깊이를 느끼게 만들고 싶다면 어떤 식으로든 연극을 잘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든 낯설고 신선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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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최진아 |
Ⓒ극단 놀땅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본.다> <본.다>는 ‘“본다”는 것만으로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본다는 것은 다른 지각들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쾌감인데,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사물이나 사람, 대상이 갖는 본질과 통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15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시·지각에 대한 토론과 탐색, 개인 기억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시감각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을 만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극단 놀땅 극단 놀땅은 일상에 대한 관심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현재에 대한 관찰을 감성적이고 신선한 무대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관계, 사물, 세계에 대한 감각적인 접근으로 독특한 주제의식과 연극 놀이의 사유적 접근을 꾀하는 무대 표현들로, 사실과 비사실이 혼재된 재밌는 연극이란 평을 얻고 있는 극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