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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S Choice] 모험과 실험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소리꾼 이희문 2014-09-16

모험과 실험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소리꾼 이희문
[PAMS Choice] 이희문컴퍼니, 소리꾼 이희문


한국 전통음악의 성악에는 민요, 잡가, 가곡, 가사, 시조, 판소리, 단가, 창극, 가야금병창 등 다양한 갈래가 있다. 이중 잡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경기민요의 전수자들이 겸하고 있기에 잡가는 민요의 하나로 취급된다. 하지만 민중의 노래였던 민요와 달리 잡가는 전문 소리꾼의 장르였고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서도·남도잡가로 나눠져 전승되고 있다.

현재 경기민요와 경기잡가를 중심으로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Order-made Repertory)’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소리꾼 이희문은 경기민요 이수자다. 그가 작년 12월에 첫 선을 보인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은 12곡의 잡가, 즉 12잡가를 다양한 예술가들과 ‘맞춤 제작’한 작품이다. 작곡가 장영규와 이태원은 본래 장구만을 반주 악기로 대동했던 잡가의 반주부를 편곡하여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 등의 악기를 합류시켰고,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연출은 자리에 앉아 부르는 노래(坐唱, 좌창)에 춤과 퍼포먼스의 동선을 새겨 넣었다. 또한 이들은 분절 형식의 12곡을 가사 내용에 따라 새롭게 엮어 이야기를 품은 잡가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새로운 잡가의 탄생에 앞서 주목할 것은 잡가를 새로운 방법으로 들려주는 소리꾼 이희문의 노력이다. 이어질 이희문과 나눈 인터뷰는 2014 서울아트마켓의 쇼케이스 팸스초이스에서 선보일 ‘雜[잡]’의 감상 설명서가 되기를 바란다.

雜[잡] , 다양한 예술 장르의 융복합

Q(송현민) :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은 12잡가를 바탕으로 했다. 음악의 성격이 강한데 팸스초이스의 다원/기타 분야로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A(이희문) : 음악이 주를 이루지만 퍼포먼스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녹아 있다. 총연출은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맡았고, 잡가 12곡은 비빙의 음악감독 장영규와 음악동인 고물의 음악감독 이태원이 각각 6곡씩 편곡했다. 두 작곡가는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영화, 연극, 무용 등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작곡가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참여가 ‘잡’을 자연스럽게 융·복합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노래 외에도 춤과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인다. 전통음악이 중심이지만 외형적으로 다원예술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Q : ‘雜[잡]’은 ‘잡가(雜歌)’에서 따온 명칭이다. 잡가가 무엇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거 같다.

A : ‘잡(雜)’은 ‘섞이다’ ‘뒤섞이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잡스럽다’ ‘잡년’ ‘잡놈’ 등의 표현처럼 나쁘게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3~4시간에 이르는 판소리 완창처럼 12잡가도 12곡 완창을 해야 하는 완결구조의 노래이고, 민중이 부른 민요와 달리 전문교육을 받아야만 부를 수 있는 노래다.

Q : 우문이지만 글자만 봐서는 ‘잡’과 ‘다원’이 통한다는 느낌도 얼핏 든다.

A : 나는 잡가를 오늘날의 대중가요와 비교하고 싶다. 노래 한 곡에 발라드, 록, 힙합의 요소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잡가에도 여러 음악어법이 뒤섞여 있다. 그런 면에서 정말 ‘잡스럽다’는 말이 와 닿는다. 가요나 잡가 모두 가수에게 전문적인 기교를 필요로 하는 것도 닮아 있다. 사실 잡가는 조선 시대의 전통 사회에서 대중가요 대접을 받은 노래다. 1896년에 미국에 유학중이던 이희철에게 미국인이 조선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니 12잡가 중 하나인 <제비가>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잡가를 부르던 민요 소리꾼들은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나 개그맨 등이 출연하는 대중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만큼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노래였다.

음악동인 고물과 함께 한 장면

남녀소리꾼들과 <선유가>를 선보이는 이희문

음악동인 고물과 함께 한 장면 남녀소리꾼들과 <선유가>를 선보이는 이희문

서울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잡가는 도시 상공인 같은 신흥 계급인 평민들이 그들의 감성에 맞게 가사를 개조하여 조선 후기에 즐겨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판소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조선 말기에 잡가 소리꾼들은 장안에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35년 동안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통문화의 붕괴와 함께 위축되었고, 1975년에 12잡가를 포함한 민요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후 여성 소리꾼에 의해 그 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12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달거리>,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를 일컫는다.



성(性)을 넘나드는 소리꾼

Q : 약 80분 정도로 이뤄지는 ‘雜[잡]’을 팸스초이스에서는 40분으로 줄여서 선보인다. 원래는 어떤 모습인가?

A : 1부와 2부, 각각 6곡으로 구성되었다. 이태원이 편곡한 1부는 음악에, 장영규가 편곡한 2부는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전반적으로 음악적인 것 못지않게 시각적인 측면을 강하게 가져간다.

Q : 1부와 2부가 어떻게 다른가?

A : 1부에서 주인공은 춘향이다. 춘향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애정 서사물의 여주인공이다. 그 서사를 살리기 위해 <소춘향가>, <출인가>, <방물가>, <형장가>, <집장가>, <십장가> 순으로 재구성했다.

Q : 음악적으로는 무엇이 다른가?

A : 서양음악에 ‘조(key)’의 역할을 하는 게 한국 전통음악의 ‘청(淸)’이다. 1부는 6곡의 청을 동일하게 조율해 하나의 청을 타고 노래가 유려하게 흐르는 느낌을 준다. 2부의 6곡은 각 곡마다 청이 틀리다. 그래서 분위기가 굉장히 다채롭다.

Q : 팸스초이스를 찾는 해외 마케터들에게 40분으로 압축된 ‘雜[잡]’의 특징을 설명해준다면?

A : 12잡가를 이런 형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무대는 전무후무하다고 자부한다. 조선 시대에 잡가는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다. 판소리 레퍼토리 중 인기가 많은 건 아마도 춘향가 속의 춘향이일 거다. 춘향이는 12잡가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춘향가>처럼. 그 외에 <선유가>, <적벽가>, <유산가>에는 한량 등 남성이 등장하기에 남성의 소리와 여성의 소리를 오고가야 한다. 총연출을 맡은 안은미도 이 점에 주목했다.

Q : 한국의 전통예술 중에는 유니섹스한 면이 좀 있지 않은가?

A : 추측하건데 ‘雜[잡]’ 심사에 참여한 해외자문단이 이런 점에 끌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중에 물어봐야 알겠지만. 전통예술에서 ‘박수(博數)’라 일컬어지는 남자무당은 남성의 몸이지만 접신했을 때 여신과 남신이 들락날락해야 하기에 성적 정체성이 하나면 버틸 수가 없다. 내가 춘향이가 되어 노래할 때, 남성 소리꾼이라는 사실을 넘어 중성적인 느낌을 최고조로 발휘시켜야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마돈나를 좋아했던 이런 시절의 감수성도 노래할 때 도움이 되는 거 같다. 그녀는 어떤 성도 다 받아들이는, 성소수자들의 엄마와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웃음) 나의 스승인 이춘희 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보유자)이 ‘雜[잡]’을 보고 “영화 <패왕별희>의 장국영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고 농담을 하셨다. <패왕별희> 속 경극 연행자들이 갖는 성적 정체성을 생각해도 좋을 거 같다.

<소춘향가>를 부르는 이희문

<선유가>를 부르는 이희문

<소춘향가>를 부르는 이희문 <선유가>를 부르는 이희문

Q : 잡가의 역사를 보면 조선 시대에는 박춘재(1881~1948) 같은 남성 소리꾼에 의해 전승되다가 지금은 대부분 여성 소리꾼에 의해 전승된다.

A : 그에 관해서 밝히기 힘든 역사가 있다. 잡가가 오늘날 사라진 이유는 소리꾼들의 생활고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있다. 노래가 불리지 않으면 노래와 창자 모두 죽는다. 상대적으로 생계에 대한 압박이 덜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명맥이 유지되었다.

Q : 그럼 남성 소리꾼이어서 좋은 점이 있는가?

A : 현재 잡가 연행자 중에 남성이 거의 없어, 때로는 나를 신비롭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민요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그 역사에는 여성 소리꾼의 온갖 아픔이 서려 있다. 일제 강점기에 천시 받았던 기생이었던 그들에게 민요와 잡가는 예술 이전에 생계수단이었다. 그래서 남성 시각으로 억압받아온 여성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앞으로 노래에 스며있는 아픈 구석을 바라보는 작업을 많이 할 예정이다. 남성 소리꾼이 사라진 배경 또한 내가 노래로서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Q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로 명명하는 작품을 두 개 이상 더 만들어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그들과 작업할 때면 내게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바로바로 보여서 기쁘다. 팸스초이스가 끝난 10월 말에는 내가 출연한 ‘KBS파노라마-풍류를 찾아서가 방영될 예정이다. 조선 풍속화 속 풍류를 즐기는 장면들을 재연한 내용이다. 12월에는 장영규와 함께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시리즈 중 하나인 ‘쾌(快)’를 선보인다.

소리꾼 이희문

소리꾼 이희문

한국 전통음악계에서 이희문은 좀 독특한 존재다. 일본 동방방송전문학교에서 영상을 공부하고 뮤직비디오 조감독 생활 이후에 민요를 접한 늦깎이 소리꾼인 그는 전수와 계승의 후예임과 동시에 모험과 실험을 의무 삼은 전위의 척탄병이기도 하다. 여기에 여성 소리꾼 중심의 계보에 남성 소리꾼의 잊혀진 자리를 되찾아 가는데 노력하고 있으며, 남성 소리꾼과 여성 소리꾼의 경계를 묘하게 오고간다. 그런 이희문이 팸스초이스에서 선보일 ‘雜[잡]’이 국내외에서 모인 이들에게 어떤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져줄지 한껏 기대해보자.


 

Ⓒ이희문컴퍼니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

’잡雜’. 섞였다는 말. 그래서 순수하지 않다는 것. 그런 잡스러움이 노래를 만드는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 소리꾼 이희문은 여기에 주목해 안무가 안은미와 음악가 장영규와 이태원에게 옛 노래 잡가를 자신에 어울리는 맞춤복으로 만들어달라 주문한다.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은 그들의 손끝에서 완성된 옷을 잘 차려입은 이희문이 그의 소리 친구들과 벌이는 쇼다. 화려한 무대 위를 유랑하며 목청과 몸짓으로 그려내는 잡가의 풍경.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전통을 둘러싼 권위와 오해에 던지는 통렬한 조롱이다. 2013년 12월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됐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이희문컴퍼니

이희문컴퍼니는 소리꾼 이희문을 주축으로 장르의 최전선에 있는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이다. 이희문은 변방에 놓인 시조, 가곡, 가사, 잡가, 경서도 민요 등 전통 성악을 공연의 중심으로 끌어와 성질이 다른 장르들과 접합한다. 그렇게 구축한 자기만의 짓으로 관객에게 옛 노래를 듣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해오고 있다. 2008년부터 경기소리프로젝트 <황제, 희문을 듣다>를 시작으로 <거침없이 얼씨구>,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 <제비, 여름, 민요> 등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 기고자

  • 송현민_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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