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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아티스트 중심의 공동제작 : 벨기에 사례 2014-07-22

주목받는 아티스트 중심의 공동제작 : 벨기에 사례
[동향] 벨기에 안트베르펜 시립극장 토네일하위스


안트베르펜 시립극장 토네일하위스의 개혁적 시도

안트베르펜은 벨기에에서 수도 브뤼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항도(港都)이며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북부 플랑드르 지역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 토네일하위스(Toneelhuis)라는 시립극장이 있다. 극장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토네일하위스는 ’연극(toneel)’과 ’집(huis)’이라는 의미를 가진 두 단어가 합성되어 ’극장’이라는 뜻을 지닌다.

토네일하위스의 부얼라씨어터

토네일하위스 기 까시에 예술감독

토네일하위스의 부얼라시어터 토네일하위스 기 카시에 예술감독

그런 극장에 2006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발단은 기 카시에(Guy Cassiers)라는 연출가가 예술감독이 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제작 극장으로서 토네일하위스가 유지해왔던 기존의 작품 제작 방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유럽에서는 보통의 경우 제작 극장에서 예술감독의 권한과 역할이 매우 크다. 토네일하위스도 과거에는 예술감독이 직접 기호에 맞는 작품 연출하거나 객원 연출가들을 초빙해 극장 전속 배우들로 하여금 극장 또는 예술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의 작품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예술감독 중심의 운영 방식이었던 셈이다. 카시에는 그 같은 일종의 기득권을 포기했다. 대신 여섯 명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을 선정하였는데, 이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회의 다면성을 한 가지 공연 양식이나 해법으로만 풀어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각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이 추구하는 공연양식은 다 달랐다. 한 명은 안무가인 시디 라르비 세르카위(Sidi Larbi Cherkaoui)였다. 페터 미소텐은 비주얼 퍼포먼스로 색깔이 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였다. 벤야민 베르동크(Benjamin Verdonck)는 공공장소를 무대로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극을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작가이자 시각예술가이며 연극 연출가였다. 4명의 연극배우들로 구성된 콜렉티브인 올림픽 드라마티크도 합류했다. 카시에는 예술감독이면서도 사실상 레지던스 아티스트의 역할을 자임했다. 그는 안트베르펜에 있는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Arte Antwerpen)에서 그래픽을 전공했었다. 졸업 후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연극 속에 멀티미디어 요소를 부각시키는 작품들을 주로 만들어왔다. 토네일하위스는 카시에를 포함해 장르가 서로 다른 7명(단체)의 레지던스 아티스트(상주 기간 4년)를 확보하게 됐다.

극장은 각기 방식 다른 아티스트들 맞춤형 지원

토네일하위스가 시도한 새로운 제작 방식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극장이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어 작품을 만들되 공동제작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만난 토네일하위스의 루크 반 덴 보쉬(Luk Van den bosch) 극장장은 아티스트 중심의 제작 방식을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 빈페스티벌(축제명 비네 페스트보헨(Wiener Festwochen) 2014, 5월9일 - 6월 15일)에 초청된 연극 〈반 덴 보스(Van den Vos)〉의 주 제작자(Executive Producer)인 토네일하위스의 대표로 빈에 머물고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평소 토네일하위스의 제작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김성희 아시아예술극장 예술감독 주선으로 이뤄졌다.

“토네일하위스는 레지던스 아티스트에게 사전에 어떤 방향 제시나 제안을 하지 않는다. 물론 제작자이기는 하지만 작품을 아티스트에게 위촉하는 시스템도 아니다. 아티스트가 작품 제안을 해 오면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며 이후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한다. 카시에 감독이 토네일하위스에 온 뒤부터 극장 조직과 인력 배치 및 시설 등 자원의 활용은 모두 아티스트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바뀌었다."
- 토네일하위스, 루크 반 덴 보쉬 극장장


같은 극장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이라고 해서 이들이 서로 협력하는 체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제각기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자기만의 제작방식대로 작품을 만들며 기존의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한다.

"우리 극장은 표준화된 제작지원 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 각각의 아티스트들은 자기 방식대로 작품을 제작할 뿐이다. 우리는 각 아티스트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식’ 지원을 하고 아티스트들은 각자가 구축해놓은 별개의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새 아티스트가 들어올 경우 그의 요청에 따라 기존의 아티스트들과는 또 다른 형식의 지원을 하게 된다. 가령 벤야민 베르동크 같은 경우 작은 극장들과 협력해 작품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반 덴 보스〉를 기획한 FC 베르히만1)은 큰 단체들과의 제휴에 관심이 많다."

- 토네일하위스 대외협력 책임자, 크리스텔 마코엔

토네일하위스의 반 덴 보쉬 극장장과 크리스텔 마르코엔
대외협력 책임자 강일중

그리고 루크 반 덴 보쉬 극장장과의 만남 자리에 배석한 토네일하위스의 크리스텔 마코엔(Kristel Marcoen) 대외협력 책임자 역시, ’맞춤옷’의 개념으로 극장과 아티스트 간 관계를 설명한다.

1) 독일의 리미니 프로토콜 같은 콜렉티브로 6명의 배우·연출·기술스태프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다수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이 독립적 작품활동

FC 베르히만은 지난해 토네일하위스가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영입한 단체이며 2013-2016년에 토네일하위스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등록된 8명(단체) 중 하나이다. FC 베르히만이 토네일하위스에 합류한 후 극장 주도 제작으로 처음 만든 작품이 〈반 덴 보스〉였다. 유럽 중세 시대의 민담 〈여우 레이나드〉에서 소재를 가져와 인간 본성의 선과 악을 담아낸 작품이다. 무대 중심에 수영장을 만들고 영상과 라이브 현악 연주를 곁들여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당초 FC 베르히만은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려는 기획 아이디어를 갖고 토네일하위스에 적합한 음악단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요청에 따라 토네일하위스는 안트베르펜에 있는 음악극단체 무직테아터 트란스파란트(Musiektheater Transparant)와의 만남을 주선했고, 트란스파란트는 다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솔리스트앙상블 칼라이도스코프(Kaleidoscope)를 FC 베르히만에게 연결시켜 주었다.

4월축제 2014 포스터

4월축제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아이들

FC 베르히만 〈반 덴 보스〉, FC 베르히만

중요한 점은 토네일하위스는 그 과정에서 만남을 주선할 뿐 파트너 선정 여부는 전적으로 FC 베르히만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FC 베르히만은 결국 칼라이도스코프와 작업을 함께하기로 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반 덴 보스〉는 토네일하위스, 트란스파란트, 칼라이도스코프 등 3자의 참여로 제작이 이뤄졌다. 특이한 점은 토네일하위스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이 작품의 공동제작이나 유통을 주 제작사인 토네일하위스에 그냥 맡겨 두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토네일하위스 역시 자신들이 주 제작사라고 해서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을 대리해 투자자 유치나 작품의 유통을 전반적으로 다 책임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제작자와 아티스트들이 함께 뛰는 구조다. FC 베르히만은 〈반 덴 보스〉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제안서를 들고 프리 라이젠(Frie Leysen) 같은 공연기획자를 접촉해 2014 빈페스티벌에 이 작품을 올릴 수 있는지를 타진했다. 프리 라이젠은 올해 빈페스티벌의 음악을 제외한 공연 부문 큐레이터였고 〈반 덴 보스〉를 공연 프로그램의 하나로 선정했다. 〈반 덴 보스〉는 지난해 말 토네일하위스 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빈페스티벌, 베를린페스티벌(Berliner Festspiele),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오페라페스티벌(Opera Rotterdam), 브뤼셀의 카이시어터(Kaaitheater) 등 5개국 7개 극장이나 축제 무대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이들 축제나 극장들은 모두 공동제작자로 참여했다.

아티스트 별 공동제작으로 방대한 네트워크 구축

토네일하위스 주도로 제작된 레지던스 아티스트들의 작품은 모두 토네일하위스 극장에서 초연한 후 유럽 내 또 그 밖의 지역으로 투어를 떠난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FC 베르히만과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방식과 네트워킹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한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네덜란드 최대 규모 극단인 토네일그룹 암스테르담2)의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 예술감독이 지난해부터 토네일하위스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라는 점이다. 이보 반 호브는 카시에 예술감독과 함께 양쪽 극장과 극단의 배우들을 캐스팅해 〈햄릿 vs 햄릿〉이라는 작품을 공동제작해 이달부터 무대에 올린다. 벤야민 베르동크는 브뤼셀시립극장과 연결돼 작품을 공동제작하고 있다. 작년 잘츠부르크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의 젊은연출가상을 수상한 이라크 출신의 모크할라드 라셈(Mokhallad Rasem)도 레지던스 아티스트다. 현재 안트베르펜에서 활동 중인 그는 이라크국립극장에서 연출가로 일했었으며 중동의 다양한 이슈를 소재로 자신의 중동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그는 이미 지난해 토네일하위스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는 아랍계, 세르비아계, 터키계, 네덜란드계인 4명의 연출가가 동시대인의 눈으로 이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토네일하위스 전체로 보면 이들 레지던스 아티스트를 매개로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며 이 극장의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 이름이 비슷한 것 같지만 토네일하위스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

기득권 버린 것이 오히려 극장 영향력 확대 효과

토네일하위스가 부얼라(Bourla)시어터라는 대극장을 확보하고 있는 안트베르펜의 큰 시립극장이면서 일종의 제도권 극장이라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제도권 극장이 운영방식에서 변화와 개혁의 선봉에 섰다는 점과 예술감독 스스로가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아티스트 중심의 제작을 한 것은 결과적으로 극장의 힘을 키웠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아티스트 중심의 제작방식은 물론 다른 나라의 극장 또는 극단의 예술감독을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영입하는 과감한 조치, 또 극장과 아티스트가 투자 유치나 작품 유통을 위해 함께 뛰는 것 등은 우리에게는 분명 새롭게 보이는 모델이다. 토네일하위스는 이런 방식을 통해 연간 10편 정도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토네일하위스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는 미술관의 상주 작가와는 다른 개념으로 아티스트들이 토네일하위스의 극장 공간에 늘 머물거나 거기서 작업을 하는 개념은 아니다.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이 상주 작가라고 해서 스스로를 극장에 묶어놓는 시스템도 아니다. 토네일하위스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 이후 유럽 전역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 극장으로서의 명성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국의 제작 극장들도 새로운 개념의 토네일하우스 운영방식을 지켜보고 중·장기적으로 도입 가능성을 타진해 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네일하위스


  • 기고자

  • 강일중_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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