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유럽 밖의 예술로 모이는 시선 2014-06-17

유럽 밖의 예술로 모이는 시선
[축제/마켓] 2014 오스트리아 빈페스티벌  리뷰


오스트리아에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축제로서 국제적 명성을 가진 페스티벌이 2개가 있다. 하나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서부의 소도시 잘츠부르크(Salzburger)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잘츠부르크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 다른 하나는 동부의 대도시인 빈에서 봄 마다 개최되는 빈페스티벌(축제명 바이너 레스토헨(Wiener Festwochen)은 ’빈 축제 주간’이라는 뜻)이다. 전자는 1차 대전으로 겪게 된 정신적 황폐를 예술로 극복해 내기 위해 1920년에 시작된 것이며, 후자는 비슷한 목적으로 2차 대전 후인 1951년에 만들어졌다. 모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페스티벌들이다.

축제의 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흔히 음악축제라고 하지만 사실 공연작품 수를 기준으로 하면 연극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1920년 첫 축제의 작품은 ’모든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휴고 반 호트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의〈모든 사람(Jederman)>이라는 제목의 도덕극이었으며 축제의 시작을 주도한 사람들도 연극인들이었다. 연극을 제외한 나머지 3분의 2는 오페라와 콘서트로 이루어진다. 지금도 〈모든 사람〉공연이 올려지면서 축제가 시작된다. 빈페스티벌은 보다 종합예술제 성격이 강하다. 매년 5월에 시작되어 6월까지 5-6주 동안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클래식, 오페라, 연극, 무용, 대중음악, 영화 뿐 아니라 미술전시도 있다. 관객의 구성에 있어서도 두 축제는 차이가 있다.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워낙 잘 알려진 축제에다가 개최 시기도 여름휴가 계절이라 관객의 국적이 광범위하다. 지난 해의 경우 73개 나라에서 온 약 29만 명이 축제 프로그램을 관람했는데 그 중에는 유럽 밖 지역의 39개 국가 관람객들로 채워졌다. 워낙 오래 전부터 세계의 공연기획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축제인지라 전문가 관객들도 많다. 이에 비해 빈페스티벌은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 봄에 치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좁게는 지역 시민들 넓게는 인근 독어권 지역의 관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편이다. 프로그램도 오랜 기간 그러한 경향을 반영해왔다. 빈페스티벌이 전통적으로 빈 시청 앞 광장인 라트하우스플라츠(Rathausplatz)에서 연주와 노래를 중심으로 한 야외 무료공연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시민들을 위한 축제의 성격이 짙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잘츠부르크축제 개막공연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빈페스티벌 개막공연 ◎photo by Mike Ranz

잘츠부르크축제 개막공연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빈페스티벌 개막공연 ◎photo  by  Mike Ranz

축제 예산의 재원 조달에 있어서도 두 축제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은 민간 주도로 이뤄지면서 부분적으로 공공 지원을 받는 형식이다. 지난 해의 경우 전체 예산 중 공공지원 규모는 20%로 정도였다. 지난해 예산은 6천 500만 유로(한화 약 910억원)인데 그 중 티켓 판매액이 절반에 육박하는 3천만 유로에 달했는데 올해는 티켓판매 규모가 더 늘어난 것으로 예상된다. 빈페스티벌의 경우 예산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빈 시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축제예산은 1천 450만 유로(약 200억원)인데 그 중 4분의 3인 1천 100만 유로가 시에서 나온다. 나머지 350만 유로가 티켓판매와 기업협찬 등으로 충당된다. 빈페스티벌은 재정이 관(官) 의존형으로 지역민들과 주로 독어권 나라를 중심으로 유럽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종합예술축제다. 예산 규모가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 비해 빈약하게 보일 뿐 우리나라는 물론 평균적인 해외의 예술축제와 비교해 볼 때 풍성하다. 시민들을 위한 축제의 성격이 짙은 만큼 프로그램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의 것이 많다.

빈페스티벌에 부는 변화의 바람

그런 빈페스티벌에 요즘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움직임은 올해 축제 프로그램의 음악을 제외한 공연 부문 큐레이터에 벨기에 출신의 기획자 프리 라이젠(Frie Leysen·64))가 맡았다는 것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라이젠은 벨기에 브뤼셀에 쿤스텐페스티벌(Kunsten Festival des Arts)을 만들어 오랜 기간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이 조그만 축제를 컨템포러리 극을 중심으로 한 독보적인 페스티벌로 우뚝 솟게 한 장본인이다. 유럽 공연예술에 혁신적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라이젠은 프로그래밍을 위해 한국에도 수차례 방문했었으며 매우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럽인들이 서구적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가 올해 빈페스티벌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컨템포러리 작품들이 공연작품 리스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빈페스티벌 공연 큐레이터, 프리 라이젠

오페라를 포함한 이번 축제의 음악프로그램은 축제 예술감독인 마르쿠스 힌터호이저(Markus Hinterhaeuser)가 기획했지만 준비과정에서 라이젠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전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었던 마르쿠스 힌터호이저 역시 동시대적이며 아방가르드적인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음악인이다. 이들 새로운 예술감독과 큐레이터 진용에 의해 축제기간(5월 9일-6월 15일) 중 선보인 작품들로는 세계 32개국에서 제작된 37개 공연들은 물론 전시, 비디오 설치작품, 영화, 예술가와의 대화 프로그램 등이 있고 22건의 콘서트가 마련되었다. 프로그램 세부내용을 보면 유럽 작가 중심이었던 과거 프로그래밍과는 달리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출신 예술인들의 작품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이 이번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차이밍량의 〈당나라의 승려〉◎photo by Lin Meng Shan

라비 므루에 연출 퍼포먼스 〈Riding on a cloud〉

브렛 베일리 연출의 오페라 〈맥베스〉◎photo by Nicky Newman

▲ 차이밍량의 〈당나라의 승려〉◎photo by Lin Meng Shan ▲ 라비 므루에 연출 퍼포먼스 〈Riding on a cloud〉 ▲ 브렛 베일리 연출의 오페라 〈맥베스〉◎photo by Nicky Newman

당나라 승려 현장의 이야기를 느림의 미학으로 풀어낸 차이밍량은 차이밍량(Tsai Ming-liang) 연출의 퍼포먼스 〈당나라의 승려(The Monk from the Tang Dynasty)〉는 그 중의 하나이다. 차이밍량은 대만 출신의 유명 영화감독으로 영상설치작품 〈행자(Walker)〉와 단편영화 〈꿈(It is a dream)〉을 영화 속 장소를 그대로 공간에 재현한 영상설치작품도 소개했다. 이외에도 반(半)은 호랑이이고, 반은 사람인 신화 속의 인물, 웨어 타이거를 소재로 한 싱가포르 출신 호추니엔(Ho Tzu Nyen)의 퍼포먼스 〈만 마리의 호랑이들 (Ten Thousand Tigers)〉은 6월 초 빈 중심가에 있는 전시공연공간이 박불관지구(MQ) 내 G 극장에서 선보인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티프를 따와 각기 다른 의상을 입은 줄리엣이 여러 명 등장한 홍성민 연출의 한국 작품 〈줄리엣(Juliettttt)〉도 비슷한 시기에 무대에 오른다. 그외에도 레바논 출신 라비 므루에(Rabih Mroue) 연출의 퍼포먼스 〈구름타고(Riding on a cloud)〉, 베르디의 〈맥베스〉를 아프리카에서의 착취행위와 콩고 학살 문제등과 연결지워 각색한 남아공 출신 브렛 베일리(Brett Baily) 연출의 〈맥베스〉오페라와 영아랍시어터펀드(Young Arab Theater Fund, YATF)가 주관하는 혁명과 중산층, 식민주의를 다룬 〈접점 7〉 전시도 있다. 이들 작품들은 프리 라이젠의 색채가 많이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전체 프로그램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유럽 밖 지역의 컨템포러리 작품은 여전히 마이너이다.

빈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지역민이나 독어권을 비롯한 유럽의 관객을 의식한 프로그램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그런 작품들이 빈페스티벌 관객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급진적 해석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이탈리아 출신 로메오 카스텔루치 연출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를 들 수 있다. 5월 11일부터 빈페스티벌에서 세계초연된 이 작품은 오르페오가 지옥으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가는 신화 속 이야기를 빈의 한 병원에 실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해 있는 한 여자환자의 영상을 통해 추적하는 현대의학 이야기로 환치시켰다. 객석에 조용한 흐느낌이 번지는 이 작품은 현지 관객들로부터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또 하나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메오 카스텔루치 연출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또한 빈에서 태어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24개 연가곡을 영상과 연결시킨 만든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윌리엄 켄트리지의 동명 작품이나 도이체스 테아터 베를린(Deutsches Theater Berlin)이 제작한 〈빈 숲의 이야기(Geschichten aus dem Wienerwald)〉 같은 작품들도 지역민들에게 익숙한 음악이나 공간, 이야기들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현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들이었다.

공동제작, 유럽 밖으로 돌린 시선

이번 축제 프로그래밍에서 관심을 끄는 것 하나는 여러 나라의 공연예술축제나 극장들이 한 작품을 공동제작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공동제작은 각 작품의 제작 주체들이 제작비 부담을 줄이고, 예술가들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최대한 많은 곳에 작품을 유통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차이밍량의 〈당나라의 승려〉, 호추니엔의 〈만 마리의 호랑이들〉, 라비 므루에의 〈구름타고(Riding on a cloud)〉, 여우 설화를 소재로 인간의 폭력성을 다룬 벨기에 FC 베르히만의 〈여우에 대하여(Van den Vos)〉, 브렛 베일리의 〈맥베스〉 등은 공동제작된 작품 중 일부분이다. 한국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은 빈페스티벌, 벨기에 쿤스텐페스티벌(Kunstenfestivaldesarts), 호주 케리지웍스(Carriageworks),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 등과 함께 〈당나라의 승려〉와 〈만 마리의 호랑이들〉의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두 작품은 내년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기념 축제 시기에 광주에서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다.  

홍성민 연출의 〈줄리엣〉

FC 베르히만의 〈여우에 대하여〉

홍성민 연출의 〈줄리엣〉 FC 베르히만의 〈여우에 대하여〉

빈페스티벌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등의 컨템포러리 작품 수를 늘리고 공동제작에 참여하는 것 등은 빈을 비롯한 오스트리아나 유럽 지역의 관객들 사이에 일고 있는 유럽 밖 지역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제작비 절감을 꾀하기 위한 축제의 경영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업이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현지에서 관람한 몇 작품의 극장 내 분위기로 볼 때 지역 내 일반관객들이 때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유럽 밖의 컨템포러리 작품들에 대해 생소함을 더 느끼고 있다는 점이 감지된다. 축제 조직위원회측이 관객들의 그러한 인식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의 프로그래밍이 쉽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내부적으로도 균형잡힌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의 프리 라이젠 역할처럼 지난 해까지 수년간 연극을 중심으로 한 공연 분야 큐레이터를 맡았던 스테파니 카르프(Stefanie Carp)가 지난 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음 편하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비판 발언을 쏟아내고 큐레이터직을 물러난 것은 그러한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 라이젠 등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빈페스티벌이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유럽 밖 지역의 컨템포러리 작품들을 점차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_빈페스티벌 홈페이지



◈ 관련기사
[축제/마켓] 2013 쿤스텐페스티벌 (Kunstenfestivaldesarts) 리뷰
  • 기고자

  • 강일중_공연 칼럼니스트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