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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감춰진 리얼리티 –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광주> 2014-05-27

숫자에 감춰진 리얼리티- 리미니 프로토콜의〈100% 광주〉
[피플] 연출가 슈테판 카에기,  헬가르트 하우크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100% 광주〉가 2015년 개관을 앞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의 제작으로 지난 5월 광주와 서울에서 초연되었다.〈100% 광주〉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두 주자인 독일 리미니 프로토콜 극단의〈100% 도시〉연작 프로젝트로, 광주는 15 번째 도시이다. 슈테판 카에기(Stefan Kaegi)와 헬가르트 하우크(Helgard Haug)의 공동 연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 도시 구성원들의 통계학적 비율을 바탕으로 선별된 100명의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대규모 사회 참여극이다.〈100% 광주〉역시 연령대와 성비, 출신 지역 등에 따라 100명의 광주 시민들을 선발하여 광주란 도시를 구현한다. 이 연작 프로젝트는 2008년 베를린 헤벨극장(HAU1, Hebbel am Ufer Berlin)에서 초연된 후 런던, 파리, 브뤼셀, 멜버른, 도쿄, 밴쿠버 등 세계 주요 도시를 거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한국 공연은 <콜 커타(Call Cutta),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에 이어 세 번째인데, 주로 개인의 일상을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드라마투르기와 결합하여 연극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성찰해 왔다. 〈100% 광주〉는 제목에서부터 통계의 상징인 숫자와 한국 현대사의 상징인 광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숫자가 아닌 삶을, 익명이 아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공연의 공동연출가인 슈테판 카에기와 헬가르트 하우크를 만나 여전히 뜨거운 반응으로 세계 도시를 돌며 진화하고 있는〈100% 도시〉의 힘과〈100% 광주〉만이 지닌 매력에 대해 들어보았다.

일상의 전문가들과 연극을 다시 정의한다

Q(남지수) : 한국 연극 팬들에게 리미니 프로토콜은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프로토콜이라는 말을 통해 다큐멘터리 연극에 대한 의지를 선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재미난 이름인 ‘리미니 프로토콜’의 의미가 궁금하다.

A(슈테판 카에기, 헬가르트 하우크) : 리미니 프로토콜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아티스트들(Helgard Haug, Stefan Kaegi, Daniel Wetzel)로 구성된 극단이다. 경우에 따라 혼자 혹은 둘 셋이서 창작을 한다. 세 사람이 하는 어떤 작업이든, 모든 공연에 리미니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연극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고, 연극을 다시 정의하는 데 있다. 작업 방식에 있어서는 모든 형식이 가능하다. 주로 어떤 토픽을 조사하는 저널리스트처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인물들을 찾아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일상의 평범한 인물들을 연극으로 불러오는데, 바로 이 일련의 과정이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 해도 공연은 늘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다. ‘리미니(Rimini)’는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인데, ‘리미니’라는 발음이 주는 느낌이 프로토콜이라는 말과 조합될 때 아주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프로토콜(Protokoll)’은 우리가 쓰고, 연구하고, 관심을 갖는 모든 것이다.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이란 이름은 그렇게 태어났다.

(왼쪽) 독일 기센대학 응용연극학과 출신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가 모인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왼쪽) 독일 기센대학 응용연극학과 출신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가 모인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왼쪽) 독일 기센대학 응용연극학과 출신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가 모인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Q : 일상의 인물들을 이들은 ‘일상의 전문가(experts in daily life)’라 부르는데 캐스팅하고 버바텀(verbatim)1) 양식을 활용해 그들의 말을 무대서 발화하는 것이 리미니 프로토콜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계층이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A : 캐스팅은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학창시절 연극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당시 유럽의 관습적인 무대에서 이루어진 연극들에 상당한 지루함을 느꼈다. 내용보다 테크닉에 집중하는 것이 인위적으로 보였고, 무대 또한 현실과 관객들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과 우리의 삶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현실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연극이라 여겼다. 일상생활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 현실에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극에 반영하고 싶었다. 정치인, 경찰, 간호사, 삶을 회고하는 노인, 『자본론』에 영향을 받은 지성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연극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성찰(reflection)의 한 방법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연극을 좋아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1) 버바텀(verbatim)은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를’ 뜻하는 단어로, 관계자 인터뷰나 각종 기록물을 통해 리서치한 내용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양식이다.

릴레이 캐스팅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말한다

Q : 〈100% 광주〉 공연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100% 도시〉는 각 도시의 특수성을 고려해 맞춤옷을 입혀 주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각 도시들을 이어 주는 고리 또한 못지않게 중요해 보이는데, 일련의 연작을 관통하는 원칙이 있는가.

A : 우리는 100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할 그 지역에다 ‘팀’을 꾸린다. 해당 도시의 사람들, 그들의 생각과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그간의 준비 과정을 담은 기록들을 읽는다. 이를 바탕으로 스크립트 초안이 구성된다. 초안은 기본적인 서술과 질문으로만 구성된 형태다. 우리가 각 도시를 다니면서 했던 공통 질문에 해당 ‘도시/국가’의 현재적 상황이 반영된 특별한 질문들이 더해지고, 나머지는 구성원 개인에 대한 질문들로 구성된다.

〈100% 광주〉 연습 과정

〈100% 광주〉 연습 과정

〈100% 광주〉 연습 과정

Q : 〈100% 광주〉는 다섯 가지 표본(나이, 지역, 성별, 기혼 여부, 인종)으로 나누어 통계를 분석하고, 이에 맞는 100명을 캐스팅함으로써 도시 축소판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이 무작위 추출이 아니라 릴레이 캐스팅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또는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캐스팅이 진행될수록 표본에 맞는 사람을 캐스팅하기는 점점 어려울 것 같지만 방식이 독특하다.

A : 〈100% 도시〉의 캐스팅 방식은 독특하다. 우리는 단 1% 인물만 선택할 뿐이다. 먼저 통계청 근무자를 선택한다. 이 사람이 그 다음 사람을 캐스팅한다. 전체 참가자 중 적어도 2명을 알고 있다면 굉장한 일이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새의 눈으로 100명을 캐스팅하는 것과 비교해 독특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물론 캐스팅 과정이 어느 정도 프레임화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다섯 개 표본을 바탕에 두면서도, 별도로 우리가 꼭 무대 위에 세우고 싶은 사람들의 리스트도 구성한다. 리스트 구성은 팀과 상의해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다 보면 모든 사회적 경제적 계층이 재현될 수 있고, 특별한 직종의 종사자, 특별한 견해를 지닌 인물들,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도 포함되게 된다.

Q : 이러한 통계를 통한 연쇄반응 캐스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A : 캐스팅은 사람들이 속해 있거나 배제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다. 사회적 네트워킹이 두터운 사람들은 그 다음 사람을 캐스팅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다른 연령대나 심지어 다른 인종을 캐스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주로 또래 집단에서 선택을 한다.

Q : 엄격한 표본추출 방식에 기대고 있지만, 사실 질문엔 이런 구조가 드러나지 않는다. 공적이기보다는 사적이고, 보편적이기보다는 개인적 질문들이 많다. 구체적인 형식을 내세웠지만 내부로부터 굉장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통계 이면에 숨어있는 리얼리티가 눈에 띄었다.

A : 숫자 이면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 모두에겐 개인 나름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관객은 특정한 시민 한 명을 쫓아가며 그의 답변에 주목함으로써, 그 인물의 자서전을 구성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공연의 마지막에는 “예스”라는 대답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듯 모여서는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나는 엄마 없이 자랐다.”, “나는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내겐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가족이 있다” 등의 질문들이 던져진다. 이러한 질문에 공개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들 옆에 선 사람이 아주 다른 라이프 스타일과 견해를 가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함께 서게 되는 그 순간, 감동이 발생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 장면은 일종의 스냅샷처럼 각인된다. 우리는 도시의 다양한 층위들, 잠재성, 인물들의 갈등과 놓쳐버린 기회들을 바라보는 데서 이 공연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도시에 대한 매우 정직하고도, 때로는 매우 잔혹한 성찰이다.

〈100% 광주〉, 숨기지 말고 발언하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Q : 한국인에게 광주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에서 보았다시피) 많은 관객들은 이 공연이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자연스레 연결될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공연에서 정치사회적 맥락은 그리 많이 부각되진 않았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방식이 언제나 큰 그림이나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작은 이야기들에 주목해서 인가?

A : 〈100% 광주〉는 정치적이다. 사실 (수도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100% 도시〉 공연을 하게 된 것이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5.18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광주를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공연 중에는 ‘학살’에 관한 두 질문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5.18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놀라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잊고 살아가고 싶다고 투표를 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망각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 두려워하지 않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100% 광주〉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숨기지 말고 발언하라!(Speak up-do not hide!)”

Q : 광주를 둘러싼 역사적 굴레나 편견보다는 오늘날 우리의 광주, 그 온전한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광주는 우리에게도 특별하지만, 리미니 프로토콜에게도 특별할 것 같다.〈100% 도시〉가 수도(capital)가 아닌 도시에 주목한 첫 번째 사례이지 않나?

A : 그렇다, ‘도시(city)’에서〈100% 도시〉는 처음이었다. 늘 수도에서만 공연을 했었으니까. 우리에게도 이 공연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사실 우리는 수도에 사는 서울 관객들에게 좀 더 도발적일 수 있었다. 예컨대 광주 시민들에게 던진 질문을 똑같이 서울 관객들에게 던지는 장면이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도시와 수도의 반응을 비교할 수 있게 말이다. 어쨌든 관객들은 다양한 답변들이 만들어내는 상투성을(Cliche) 넘어선 공연적 측면에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Q: 한 달이 넘는 리허설 기간 동안 광주에서 체류한 것으로 안다. 당신이 바라보는 광주, 그 인상을 듣고 싶다. 광주시민들과의 작업을 통해 당신이 얻게 된 바 또는 영향을 받은 것이 무엇인가?

A : 우리는 광주시민의 유머를 사랑한다. 물론 처음엔 언어적 문제와 문화적인 차이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광주시민들이 우리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실험을 만들고 싶다는 열의를 불러일으켰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은가?

A :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다. 서프라이징한 연극(surprising theatre)을 만들고 싶다!



◎ 아시아예술극장

  • 기고자

  • 남지수_동국대 연구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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