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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위한, 시민들에 의한 축제 2014-04-15

시민들을 위한, 시민들에 의한 축제
[축제/마켓] 2014 쿠리치바 페스티벌 리뷰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시행하는 국제공연예술 전문인력 양성 사업 ’프로젝트 NEXT’에 참가한 나는 작년 11월부터 주 브라질 한국문화원에 근무 중이다. 브라질 면적은 한반도의 약 37배인 851만 ㎢이며, 인구는 약 1억 9천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나라이다. 브라질은 한국과 달리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탓에 반드시 카디건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낮엔 너무 더워 민소매를 입고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 게다가 오후엔 비가 한번 씩은 오기 때문에 우산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날씨만큼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모습들이 브라질에는 즐비하다. 브라질에서는 음악만 나오면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녀노소 엉덩이를 흔들고, 처음 본 사람과도 부둥켜안고 춤추며, 레즈비언 커플이 길거리에서 키스하고 있어도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을 물어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미안한지 잘 아는 듯 길을 알려줘 많은 여행자들을 헤매게 만들곤 한다. 즉 엉덩이를 들썩일 정로도 흥이 많고, 누구에게나 개방적이며, 착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바로 브라질인 것이다. 그들은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도 남과 비교하거나 남을 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오롯이 즐기며 살아간다.

브라질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쿠리치바 페스티벌

쿠리치바 페스티벌(Festival de Curitiba)은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브라질 남서쪽에 위치한 쿠리치바 (Curitiba)에서 열린다. 쿠리치바는 약 3백만 명이 살고 있을 정도로 남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가 큰 도시이다. 친환경 도시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쿠리치바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 대중버스체계의 모델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쿠리치바는 여전히 낯선 도시이다. 작년 쿠리치바 페스티벌에서 판소리 만들기 자의 <억척가>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기사를 전해 들었지만, 기사만으로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어떤 성향을 가진 축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때마침 총괄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셀수 쿠리(Celso Curi)1)의 초청으로 축제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올해 23회를 맞이한 쿠리치바 페스티벌은 1992년 18~20살 소년 4명이 모여 연극 축제를 기획한 것에서 출발했다. 당시 축제를 기획한 한 명이었던 레안드루 크노폴스(Leandro Knopfholz)는 현재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축제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쿠리치바 페스티벌 공식 포스터

40대 초반에 자신이 기획한 축제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직접 양조한 맥주세트를 선물하는 그의 너그러운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쉽게도 디렉터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축제 초기부터 큐레이터를 맡아온 셀수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쿠리치바 페스티벌은 초기부터 지난 20년 동안 브라질 공연을 소개하는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으나, 2년 전부터는 국제 축제로 도약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작년에 처음으로 해외 작품인 판소리 만들기 자의 <억척가>를 소개해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기세를 몰아 올해 5개 해외 작품을 더 선보였다. 향후에도 꾸준히 다양한 나라의 작품을 브라질 대중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며, 해외와의 공동 작업도 계획 중이라 한다. 올해 예산은 한화(韓貨)로 약 28억 3천 만원(600만 헤이아스)이었고, 모든 지원금은 공공지원금인 레이 호우아네트(Lei Rouanet)2)을 통해 전액 지원받았다.

거리축제 공식작품, <불행한 아줌마> 주말거리공연

  • 1) 셀소 쿠리는 프로듀서, 문화 관리자, 출판인이자 저널리스트이다. 2011, 13년 La Red(중남미 기획자 연합회)회장을 역임했고, OFF Cultural Productions의 상임이사를 지내고 있으며 쿠리치바 페스티벌 총괄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현재 상파울루 브라질 문화기관인 오스왈드 문화원 (Oficina Cultural Oswald de Andrade)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 2) 레이 호우아네트(Lei Rouanet)는 1990년에 시작한 브라질 문화지원 정책이다. 지원이 필요한 예술 축제나 프로젝트는 Lei Rouanet를 통해 얼마가 필요한지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승인이 되면 기업, 회사, 개인의 후원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그러면 지원 수혜자는 직접 기업을 찾아가 소득세 4%까지의 면세 혜택을 설명한다. 지원에 대한 협의가 완료되면 지원 수혜자는 기업에서 직접 후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호우아네트를 통해 지원금을 받게 된다. 민간 기업의 지원금처럼 보이지만 면세 혜택에 따른 지원금이기 때문에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지원금이라고 본다. 이 정책이 문화지원금의 확충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특히 기업의 경우 자신의 브랜드에 어울리거나, 효과성이 높은 큰 행사만을 지원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한다는 예술계의 우려가 높다.


다양한 공연의 향연

쿠리치바 페스티벌은 3월 26일에서 4월 13일까지 쿠리치바 전역에 있는 66개 공연장을 통해 공식 초청공연 35개(해외 5작품, 브라질 작품 31개), 비공식 초청공연 약 400개, 마술쇼 및 서커스 6개, 스탠딩 코미디 33개, 아동극 6개, 거리공연 4개, 음식 부스 27개 등 다양하면서도 엄청난 양의 공연들을 진행했다. 500개의 행사가 진행되었고, 3천 명의 예술가가 공연하는 규모가 큰 행사였다. 공연장 대부분은 도심에 위치해 있어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거리였으며, 길거리에서 진행되는 공연도 많아서 쿠리치바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페스티벌은 연극을 중심으로 한 공식초청공연(Mostra)과 비공식 초청공연(Fringe)로 이루어진다. 공식 초청작품은 3명의 큐레이터가 국내외 작품을 추천하고 일 년에 걸친 여러 번의 공식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공식회의 이외에도 꾸준히 이메일, 전화 등을 주고받으며 최종 초청 작품을 선정한다. 작년 공식 해외초청작이었던 판소리 만들기 자의 <억척가>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을 판소리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올해 해외 초청된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루크리스의 능욕(The Rape of Lucrece)>을 모놀로그 음악극으로 재해석 해낸 작품을 선보였다. 두 작품 모두 한 명의 여성배우가 모놀로그 형태로 음악과 함께 공연을 진행한다는 공연 포맷 뿐 아니라, 고전을 재해석하여 현대 사회에서 욕망, 욕정에 의해 인간 스스로가 파멸해가는 모습을 투영한 작품들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브라질 작품 <교육상담 (Conselho de Classe)>은 브라질 교육 문제를 희화화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코미디물이었다. 공식 프로그램들은 텍스트 중심의 작품들이 많았고,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하면서 연극적 힘을 가진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한국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비공식 초청공연 프린지 작품들의 경우는, 전문 배우가 70% 이상으로 이루어진 단체라면 직접 신청해서 참가 가능하며, 기본적으로 공연장 및 공연 장비가 지원된다. 프린지 작품의 경우 공연장에서 하는 작품들은 공식 초청작과 비슷하게 상당히 진지한 느낌의 연극이 많았다. 그에 반해 거리공연의 경우는 광대극, 서커스, 음악극 등 가벼운 공연들이 주를 이루었다.

판소리만들기 자 <억척가> ◎사진제공 LG아트센터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루크리스의 능욕(The Rape of Lucrece)」

쿠리치바 페스티벌은 연극 축제 외에도 마술 축제, 스탠딩 코미디 축제, 아동극 축제, 음식 축제, 거리공연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미시매시(MishMash)는 올해 6회째를 맞이한 마술쇼 및 서커스 축제로 6개 단체 및 개인이 참가했다. 히조라마 (Risorama)는 2004년부터 시작된 스탠딩 코미디 페스티벌로 33개 단체 및 개인 아티스트들이 참가했는데, 이는 남미 최대의 스탠딩 코미디 페스티벌라고 한다. 구리치바(Guritiba) 아동극 페스티벌은 올해 6개 팀이 참가했다. 거리공연축제(SESI Na Rua)는 문화지원기관 SESI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 무료 거리공연 축제이며 4개 단체가 참가했다.


다양한 공연뿐 아니라 음식 축제도 있는데,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개스트로노믹스(Gastronomix) 라는 축제는 도심이 아닌 넓은 공원에서 개최된다. 쿠리치바의 유명한 식당들이 제안하여 시작된 행사로 고급 음식을 적은 양에 판매해 참가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여러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이다. 관객들은 약 5천 원 (10헤알)의 입장료를 내고 고급 레스토랑의 여러 음식을 각 6~7천 원에 골라서 사먹을 수 있다. 올해는 27개 식당 및 바(bar)가 참여했다고 한다.


대부분 축제의 공연은 공연당 약 3만 원(60헤이아스) 정도였고, 프린지 공연은 5천원~3만 원의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공식 초청작품의 경우 매진되는 경우가 많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이애 비해 프린지공연은 바로 극장에 가서 볼 수 있었다. 아침 9시부터 프린지 및 구리치바 페스티벌의 아동극이 시작되고, 낮 시간에는 프린지, 미시매시, 히조라마 등의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반면 공식초청작품들은 7시 이후의 저녁에만 진행되었다. 상당히 많은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분산되어 한산하지 않을까 했지만, 거의 모든 행사장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동극, 히조라마 페스티벌 포스터 음식 축제

시민들을 위한, 시민들에 의한

아주 작은 소극장 공연에도, 2000석의 대극장 공연에도 극장 안은 항상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로 가득 찼다. 공연할 때에는 모두가 집중해서 공연을 즐기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모두 일어나 공연자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칠 줄 아는 멋진 관객들이었다. 이는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혹은 예술가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지난 23년간 쿠리치바 페스티벌이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 온 축제였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더 많은 한국 작품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쿠리치바 시민들과 만날 그날을 기대해 본다.

  • 기고자

  • 송정은_주브라질 한국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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