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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의 대안에서 시험무대로, 나아가 인큐베이터로 2013-12-24

브로드웨이의 대안에서 시험무대로, 나아가 인큐베이터로
[공간] 미국의 지역극장 둘러보기 Ⅲ


지난 미국 지역극장 탐방 중 뉴욕에서 관람한 뮤지컬 을 제외하면 23편의 공연을 지역 극장에서 관람했다. 이 글에서는 이번 가을 시즌을 맞아 새로 오픈한 브로드웨이 공연 15편 중 지역극장이 제작한 공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12월 15일 기준으로 브로드웨이의 30개 극장(총 40개)의 무대에서 총 32편의 작품이 공연 중이다. 이 중 올가을 시즌 시작한 공연이 15편, 여기에 흥행에 참패해 계획보다 한 달 이상 조기에 막을 내린 올랜도 블룸(Orlando Bloom)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를 더하고 아직 프리뷰 중인 <뷰티풀: 캐롤 킹 뮤지컬(Beautiful: The Carole King Musical)>을 제외하면 2014년 토니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공연이 현재까지 13개의 극장에서 막을 올린 것이다. 이 중 우선 두 개 이상의 지역극장이 공동제작 후 상업자본의 투자를 받아 브로드웨이에 데뷔시키는 데 성공한 케이스를 살펴보자.

새 뮤지컬 <신사를 위한 사랑과 살인 지침서>와 <첫 데이트>

11월 중순에 브로드웨이의 월터 커 극장(Walter Kerr Theater)에서 오픈한 <신사를 위한 사랑과 살인 지침서(A Gentleman’s Guide to Love & Murder)>는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부유한 백작의 상속자 서열 9위인 몬티 다이스퀴스가 8명의 친척을 살해하는 내용의 뮤지컬로 살해당하는 8명의 상속자를 모두 제퍼슨 메이스(Jefferson Mays)가 연기해 기대를 모았다. 메이스가 2004년도 퓰리처/토니 작인 <나는 내 스스로의 부인(I am My Own Wife)>에서 자그마치 1인 40역을 소화했던 명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암살’이라는 뮤지컬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과 블랙코미디 적 요소 때문에 <스위니 토드(Sweeney Todd)>나 <북 오브 몰몬(The Book of Mormon)>같은 작품들에 비교되기까지 해서 필자도 곧장 보러 갔는데, 앞의 두 작품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흥행 및 수상에는 성공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만약 이 뮤지컬이 다음 토니 시상식에서 최우수 새 뮤지컬 작품상을 받게 된다면, 그 트로피를 받으러 나올 사람들은 바로 올여름 만났던 샌디에고의 올드 글로브 극장(Old Globe Theatre)과 하트포드의 하트포드 스테이지 컴퍼니(Hartford Stage Company) 매니징 디렉터들이 될 거라는 것이다. 두 극장이 공동제작으로 작년 가을에 하트포드에서, 올봄에 올드 글로브에서 2012-2013시즌 정규 레퍼토리로 선을 보였고, 그 후 브로드웨이 제작자들의 투자를 받아 브로드웨이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만일 이 뮤지컬이 계속 흥행하면 그 수익의 일부를 지역극장들이 받게 되어 예산의 반은 모금해야 하는 지역극장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자체 제작한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게 된다면 기부자들에게 자부심과 보람을 안기게 될 것이고, 그것이 더 많은 기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에 대항하기 위해 그 대안으로 시작했던 지역극장들이 끊임없이 브로드웨이로 그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또 올여름 8월 8일 대장정을 마쳤던 시애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이 ACT 시어터(A Contemporary Theatre)였는데, 인터뷰 및 극장 투어 당시 <첫 데이트(First Date)>의 8월 8일 브로드웨이 오프닝 나잇에 참석하기 위해 예술감독을 비롯한 극장 관계자 상당수가 뉴욕에 가 있었고, 남아있던 부대표(Associate Executive Director) 니콜 코크란이 뮤지컬의 성공을 초조히 기원하며 우리를 대신 맞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스타벅스 본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ACT 시어터와 그 바로 근처의 뮤지컬 전용/전문 지역극장인 5번가 시어터(5th Avenue Theatre)가 공동으로 이 뮤지컬을 제작해 브로드웨이로 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뉴욕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남녀의 연애 이야기의 뮤지컬로 지극히 통속적인 제목과 포스터만 봐도 언젠가 혜화역 출구에서 전단지를 받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오픈런으로 시작해 연말이 되었는데도 막을 내린다는 소문이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서는 표가 꽤 팔리는 모양이다. (실제로 도대체 “저런 걸 누가 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뉴욕에 돌아왔는데 필자의 절친한 친구가 소개팅 상대와 데이트로 가서 봤는데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해서 재밌었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올드 글로브와 하트포드 스테이지 컴퍼니에서 공동제작한 <신사를 위한 사랑과 살인 지침서> 한 장면 시애틀와 5번가 시어터와 ACT 극장이 합작한 <첫 데이트>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

매리 짐머만의 <뮤지컬 정글북>

위의 두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굿먼 시어터(Goodman Theatre)헌팅턴 시어터 컴퍼니(Huntington Theatre Company)가 공동으로 제작한 <뮤지컬 정글북(The Jungle Book: The Musical)>은 이번 여행 첫 도시였던 시카고에서 초연을 한 것을 직접 관람했고, 그 후 보스턴으로 자리를 옮겨 10월 중순까지 공연 후 막을 내렸는데, 아마 언젠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키플링의 익숙한 스토리와 무대, 의상, 음악 등 모든 면에서 뉴욕에서도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충족한 공연인데, 디즈니에서 <라이온 킹>과 유사해 서로 경쟁하게 될까 걱정하고 있어서 우선 유럽이나 아시아 등 세계 시장에 먼저 진출 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재니스 조플린과의 하룻밤>

워싱턴 D.C.의 아레나 스테이지(Arena Stage)에서 관람한 이 콘서트 형식의 음악극 <재니스 조플린과의 하룻밤(A Night with Janice Joplin)>은 로큰롤의 전설적인 ‘27클럽’(27살에 요절한 록스타들이 유난히 많아 생긴 명칭으로 조플린을 비롯해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커트 코베인 등이 포함)의 여자 보컬리스트의 명곡들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에 그치기 쉬운 형식의 작품을, 작가이자 연출인 랜디 존슨은 조플린의 유족들에게 제공받은 그녀의 일기를 토대로 조플린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거슈윈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함께 버무려 조플린의 광팬이 아닌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브로드웨이의 라이시움 극장에서 올가을 오픈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지역극장 공연을 거쳤는데, 브로드웨이 오픈 후 뉴욕의 공연서적 전문 서점 드라마 북샵의 행사에서 보게 된 존슨은 포틀랜드에서 초연을 가졌던 이 공연의 전 회를 관람하며 관객들의 반응을 관찰한 후 극장을 옮길 때마다 수정을 거듭해 작품이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 센터 스테이지(Portland Center Stage), 파사디나 플레이하우스(Pasadena Playhouse), 밀워키 레퍼토리 시어터(Milwaukee Repertory Theater) 등에서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며, 역시 지역극장에서 힘을 합쳐 인큐베이팅해 브로드웨이로 옮긴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시카고 굿먼 극장과 보스턴 헌팅턴 시어터 컴퍼니 공동제작 뮤지컬 <정글북> 로큰롤 전설 재니스 조플린 역을 소화하고 있는 매리 브리짓 데이비스

<유리 동물원>

테네시 윌리엄스의 출세작 <유리 동물원(Glass Menagerie)>의 브로드웨이 리바이벌은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 현저한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 ‘고전’과 ‘스타’라는 트렌드 속에서 살아남아 수차례 연장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뮤지컬 <원스>의 연출 존 티파니의 간결한 연출과 체리 존스의 ‘아만다’와 재커리 퀸토의 ‘톰’을 보기 위해 모인 연극 애호가들의 발걸음 때문으로 해석되는 이 의외의 상업적 성공은, 최근 아메리칸 레퍼토리 시어터(American Repertory Theatre, 이하 A.R.T.)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2012년 뮤지컬 부문의 토니상을 양분했던 <원스>와 <포기와 베스> 모두 A.R.T.발 작품이며 올해 최우수 뮤지컬 리바이벌 상과 연출상을 받은 <피핀>역시 A.R.T. 제작에 예술감독인 다이앤 폴러스의 연출작인데, <유리 동물원> 역시 올봄 A.R.T.가 제작해 정규 시즌 레퍼토리에 포함 시켰던 작품이다. 아마 다이앤 폴러스가 예술 감독으로 있는 한 A.R.T.는 계속해서 토니 시상식에 참가하게 될 것 같다. 이미 86년에 수상한 지역극장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로드웨이 제작자 자격으로 말이다.

이안 맥켈란과 패트릭 스튜어트 주연의 <무인지대(No Man’s Land)>

코트 극장(Cort Theatre)에서 11월 말 오픈 한 <고도를 기다리며>와 레퍼토리로 번갈아 가며 공연되고 있는 핀터의 희곡을 8월 초 이미 버클리 레퍼토리 시어터(Berkeley Repertory Theater)에서 미리 볼 수 있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셰익스피어 남자 배우 두 명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런던이나 뉴욕이 아닌 버클리라는 작은 대학도시에서는 극장 측의 협조가 없었다면 표를 구하기란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 흔히 ‘프리-브로드웨이 트라이-아웃(Pre-Broadway Try-out)’이라 불리는 시험무대로 지역극장을 사용한 모델과는 달리, 2009년 이미 런던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함께 올린 바 있는 두 명이 브로드웨이 입성 전 미리 호흡을 맞춰 볼 겸 공연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찌 되었건 샌프란시스코 지역 연극 팬들에게는 다시 오기 힘들 행운이었음이 분명하다.

아메리칸 레퍼토리 극장의 3년 연속 토니상 수상 가능성을 높여준 <유리 동물원> 버클리 레퍼토리에서 여름에 공연한 후 뉴욕에 입성한 이안 맥켈란과 패트릭 스튜어트가 주연을 맡은 핀터의 <무인지대>


이처럼 영원한 적이 될 것처럼 시작했던 지역극장과 브로드웨이의 관계는 분명 밀접하며, 심지어는 지역극장이 그 상업성에서 브로드웨이를 닮아가는 형세를 볼 수 있다. 물론 타지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목적지 극장(Destination Theater), 즉 오레곤 셰익스피어 축제(Oregon Shakespeare Festival)나 루이빌의 액터스 시어터(Actors Theatre of Louisville) 같은 경우에는 브로드웨이에서 뭘 하던 상관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극장이 스스로 제작한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가게 되길 바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고, 또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작품을 차후 시즌 레퍼토리에 포함시키는 것 역시 매년 있는 일이다. 2012년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브루스 노리스의 <클라이본 파크>를 거스리 극장에서 본 것, 그리고 본래 맥카터 극장과 링컨 센터가 공동제작해 성공한 후 2013년 토니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듀랭의 연극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가 버클리 레퍼토리 극장을 포함한 내년 시즌 프로그램에 상당수 포함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13년 여름은 우선 대다수 주요 지역극장의 50주년이었다는 점에서, 분명 1960년대 초 시작된 미 지역극장 운동의 반 세기간의 업적과 그 영향을 돌아보기에 적합한 시점이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일은 2014년부터 토니 위원회가 우수 지역극장 상을 뉴욕에 위치한 극장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렇게 되면 브로드웨이에 단 3개 존재하는 비영리극장들을 비롯해 오프-브로드웨이와 오프-오프-브로드웨이의 수많은 단체가 지역의 극장들이 받을 상을 대신 수상할 수 있게 된다. 철저히 뉴욕중심의 공연계에서 타지역의 극장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상을 뉴욕으로 범위를 확장(?)시킨 결정을 두고, 같은 비영리극장의 모델로 예술을 만들고 있는데 단지 뉴욕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이런 상을 수상 못 한다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견해가 들어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지난 50년간 지역극장들이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고 이제는 형평성 고려의 대상을 뉴욕 극장들로 역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처럼 뉴욕과의 교류가 잦은 상황에서 더는 지리적 거리나 고립으로 인한 특별한 격려가 필요 없다는 시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 번 수상하고 나면 재수상이 불가하기 때문에 이제 지역극장 중에서 받을 만한 곳은 다 받았다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지만 말이다.
  • 기고자

  • 이창원_액터스 스튜디오 드라마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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