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렉처 퍼포먼스’, 베이루트 연극의 실험적 조류 2013-12-17

‘렉처 퍼포먼스’, 베이루트 연극의 실험적 조류
[동향] 아쉬칼알완의 홈 워크 스페이스에서 공연된 3개의 ‘렉처 퍼포먼스’


레바논에서 탄생했다고 많이들 말하는 렉처 퍼포먼스(lecture-performance)의 역사를 이 짧은 글에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아쉬칼알완의 홈 워크스페이스(Ashkal Alwan’s Home Workspace)에서 최근 상연된 공연 세 개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베이루트의 관객이 이 세 작품, 라비 무르에(Rabih Mroué)의 <화소 처리한 혁명(Pixelated Revolution)>, 마르와 아르사니오스(Marwa Arsanios)의 <곰을 죽여보셨나요? 또는 자밀라 되기(Have you Ever Killed a Bear? or Becoming Jamila)>, 제시카 카즈릭(Jessika Khazrik)의 <매춘이 관광에 미친 영향(The Influence of Prostitution on Tourism)> 모두를 흔히 ‘렉처 퍼포먼스’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들 아티스트 중 두 명(라비 무르에와 제시카 카즈릭)은 다른 용어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대략 20세에서 50세 사이의 아티스트 세 명이 만들기는 했지만, 이 글에서 강조하는 이들 작품간의 차이점은 세대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아쉬칼알완의 홈 워크스페이스에서 최근 2년간 제시된 이 사례들을 통해 하나의 형태로서의 렉처 퍼포먼스의 유연성에 대해 다룸으로써, 작품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는 한편, 렉처 퍼포먼스의 정의 내리기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렉처 퍼포먼스의 개괄을 하고자 한다.

라비 무르에 <화소 처리한 혁명>Home Workspace, 2011

<화소 처리한 혁명>의 경우, 라비 무르에는 ‘렉처 퍼포먼스’보다는 ‘논아카데믹 렉처’(Non-Academic Lecture)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세 작품 모두 대부분의 소재를 학계, 즉 ‘아카데믹 렉처’(academic lecture)에서 얻기 때문이다. <화소 처리한 혁명>에서, 무르에는 높은 플랫폼 위에 놓인 책상에 앉아 잇고 그의 얼굴에는 맥북 화면과 작은 데스크램프에서 나오는 빛이 비친다. 관객은 어둠 속에 앉아있다. 그는 ‘시리아에서의 오늘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스크롤 한다. 이 프레젠테이션 자료에는 유튜브에서 모은 스틸컷 또는 동영상과 영화 선언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미지들은 ‘시리아의 국민 기자들’(시위에서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건이나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이 진행중인 시리아 혁명을 소재로 만들었다. 반면, ‘Dogme 95’라는 제목의 선언문은 도발적인 젊은 덴마크 영화감독들이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 선언문은 세트, 특수효과, 포스트프로덕션 또는 소품 등의 고비용 기술을 거부하며 영화의 리얼리즘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다. 목숨을 걸고 시위를 촬영하며 휴대폰 카메라의 화소 처리한 이미지들을 전파하는 시리아인들에게 무르에는 이러한 영화적 조언을 투영한다. 무르에는, 카메라맨이 자신을 죽이는 사람과 자신의 죽음을 촬영하고 있는 듯한 우발적 영상에 주목한다. 특히 그가 ‘더블 슈팅’(Double Shooting) 이라고 부르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더블 슈팅’은 ‘촬영하다’와 ’총을 쏘다’는 의미를 모두 가진 ‘슈트’(shoot)란 영어단어의 모호함을 이용한 표현이다. 카메라맨은 촬영하고, 군인은 총을 쏘며, 이 유튜브 동영상에서의 짧은 순간 동안 두 사람은 ‘더블 슈팅’이라는 동사의 모호함 속에 갇힌다.

구조적으로 볼 때, 무대, 책상, 노트북 컴퓨터로 이루어진 무대장치, 미리 작성된 연설문을 A4 용지로 출력해서 관객들에게 공식적 어투의 아랍어로 읽어주는 연설, 컴퓨터 프로그램의 선택, 우렁찬 목소리 등, 이 작품의 모든 세팅은 학구적이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새로운 연구를 발표하기 위해 연구자가 제공하는 강연과 매우 흡사하게, 라비 무르에의 ‘논아카데믹 렉처’의 목표는 토론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준비한 강연 노트가 끝난 후, 무르에는 퇴장하고 마지막 유튜브 동영상은 계속 상영된다. 조명이 켜진 후에야 관객은 무르에는 더 이상 무대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계와는 달리, 토론은 강연장 밖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며, 본인 연구를 발표한 공연자와 직접 토론할 수는 없다.

학구적 강연의 구조를 취한 주요 목적이 단순히 토론을 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구조는 공연자를 권위적 위치에 놓으려는 작전이기도 하다. 관객은 죽음의 영상들과 영화 선언문을 병치하는 행위의 윤리성에 대해 논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강연이 시작될 때 “시리아 시위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촬영한다.”라는 말로 이미지들의 미적 측면을 시의적절하게 분석하자, 관객들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픽션적 내러티브를 형성하기 위해 이러한 권리를 사용한다면, 아니 활용한다면, 그 인해 결과는 무엇 때문인가? 이는 학구적 장치와 학구적 테크닉(선언문의 분석과 병치되는 이미지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무르에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내러티브이다. 즉 ‘시리아의 국민 기자’인 카메라맨의 죽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초월성(죽음이 가상적 또는 미적이라는 무르에의 주장)으로 끝나는 내러티브이다. 즉,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학구적 장치에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은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윤리로 둘러싼 질문을 막다른 골목에 밀어 넣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제기될 수 없고, 제기할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반면, 이 공연의 내러티브와 미적 콘텐츠(그 자체로 도발적이고 문제를 제기)는 논의되지 않는다.

마르와 아르사니오스 <곰을 죽여보셨나요? 또는 자밀라 되기> Home Workspace in the context of Home Works 6, 2013

마르와 아르사니오스의 <곰을 죽여보셨나요? 또는 자밀라 되기>에서, 아티스트는 보다 일반적인 용어인 ‘렉처 퍼포먼스’를 채택한다.  이 경우 공연은 학계에서 차용하는 요소가 거의 없고, 사실, ‘렉처’의 어원 중 하나가 ‘읽다’라는 뜻이라는 점에서, 이 공연을 ‘렉처’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뿐이다. 이 작품에서는 아티스트라기보다는 ‘글 읽어주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고, 관객과 본인을 분리하는 책상은 없다. 그리고 저렴하게 제본한 책자를 보며 읽는다. 어떠한 점에서 볼 때, 이 렉처는 스토리텔링 세션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관객은 공연자와 같은 의자에 앉아서 공연자를 반원 대형으로 둘러싸기 때문이다. 무대나 플랫폼은 없으며, 관객과 글 읽는 사람은 같은 높이에 앉는다. 사실 관객은 공연장으로 들어오면서 이 공연의 대본을 받기 때문에, 원한다면 공연자가 텍스트를 읽을 때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 글 읽는 사람은 아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관객 중 누구나 반원 대형 중앙에 앉아서, 친밀하고 비공식적으로 여겨지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텍스트를 읽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렉처 중에, 텍스트의 큐에 따라, 글 읽는 사람은 이미지를 얼굴에 올린다. 이러한 이미지로는 우선 50년대에 활동한 혁명적 알제리인인 자밀라 부히레드(Djamila Bouhired)의 사진이 있다. 사진에서 부히레드는 여성 체 게바라(Ché Guevara) 같은 복장으로, 유격대원 같은 위장용 군복을 입고 있다. 글 읽는 사람이 얼굴에 올리는 다른 이미지로는, 같은 시대의 이집트 여성잡지 ‘알힐랄’(Al-Hilal)의 커버가 있다. 이렇게 공연자가 자료 이미지로 얼굴을 가리는 평범한 행동은, ‘자밀라’가 되려는 아티스트의 시도뿐 아니라 좌파의 잃어버린 유산을 표현한다. 이러한 유산은 도달할 수 없는 전통으로, 아티스트는 이러한 전통을 구현하려고 하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이것은 먼지가 덥인 평면적 가면에 불과하다. 고전 연극의 가면을 상기시키는 가면일 수도 있다. 글 읽는 사람 뒤에 있는 스크린에는 이 젊은 유격대원을 그린 이집트 영화장면이 상영된다.

대본은 자밀라 부히레드의 악명 높은 재판을 다룬 <알제의 전투>(La Batailled’Alger)>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에서 자밀라 부히레드로 분한 젊은 여배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여배우가 ’범죄자’로 분한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 갈등으로 힘들어하다 출연을 포기했기 때문에 이 여배우가 캐스팅 된 것이 분명했다. 대본에는 이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현대 좌파운동에 대하 공부하는 모습에서 자밀라가 되는 순간으로 전환된다. 자밀라가 된 배우는 자밀라의 전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연기한다. 우선 자밀라가 군사훈련 받는 모습을 연기하고, 자밀라의 가장 유명한 행동(사람이 많은 카페에 폭탄을 설치)을 하는 순간을 연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젊은 여배우가 이제는 태연해진 베테랑 전투요원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본이, 전기와 픽션을 혼합한 문학적 내러티브가 토론을 유발할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 주제는 무르에의 <화소 처리한 혁명>처럼 확실히 뉴스거리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콘적 인물의 전기에 대한 탐구는, 이제는 묻혀버린 좌파의 유산에 대한 아티스트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한 진정한 탐색일 뿐이다. 텍스트를 읽는 일을 공연자에게 넘기는 결정은 흥미롭다. 원래 출연하려던 여배우가 아이콘적 ‘범죄자’를 내러티브에서 그리는 것에 대한 도덕적인 반대와도 매칭된다. 아티스트 본인이 자밀라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비슷한 도덕적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 결정을 통해 잃은 것도 있다. 제한적으로 사용된 연극적 요소(정적인 세팅의 공연에서 이미지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으로 소리 내고, 발을 구르는 행동)는 아티스트 자신이 이러한 개인적 탐구를 연기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데 대한 보상이 되기 어렵다.

제시카 카즈릭 <매춘이 관광에 미친 영향> Home Workspace Program 2012-13 Open Studios, 2013

<매춘이 관광에 미친 영향>이라는 작품에 대해 제시카 카즈릭은 ‘공연’이라는 단순한 용어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실상 학구적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카즈릭의 어머니가 1979년에 제출한 석사 논문은 어머니가 레바논관광연구소(Lebanese Institute of Tourism) 재학 시절 썼으며, 논문 제목은 매춘이 관광에 미치는 영향이다. ‘렉처’라는 단어를 뺀 것도 정확해 보인다. 왜냐하면 카즈릭은 텍스트를 읽지도 않고, 세팅을 학구적 강연에서 차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공연 중 카즈릭은 등받이는 있지만 다리가 없는 좌식 의자에 다리를 뻗고 앉아있다. 관객은 카즈릭 주변에 불규칙하게 배치된 쿠션 또는 비슷한 좌식 의자에 앉는다. 카즈릭의 무릎에는 아이패드 미니가 있으며, 카즈릭이 넘기는 사진들은 뒤의 스크린에 투사된다. 그리고 카즈릭은 클립으로 묶은 작은 인덱스 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속에는 아티스트의 어머니인 조르제트 카람(Georgette Karam)이 다양한 배경 앞에서 자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있다. 카즈릭은 손가락으로 사진을 넘기고 확대하거나 태블릿을 뒤집어서 인물과 풍경 사진을 병행해서 보여주며 같은 제목의 논문을 썼으며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했던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공연에는 대본이 없으며, 하나의 일화가 끝나갈 무렵 카즈릭은 인덱스 카드를 넘긴 후에 다음 추측으로 넘어간다. 다음 카드를 선택한 후, 카즈릭은 아이패드 사진앨범을 넘기며 적절한 이미지를 찾는다. 이 공연은 한 문서, 즉 논문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 제기로 진행된다. 이러한 면에서 이 공연은 다른 두 작품에도 존재하는 다큐멘터리 요소를 공유한다. 짓궂은 추측들을 통해, 카즈릭은 그 문서에 포함된 가능한 픽션들에 대한 암시를 준다. 카즈릭이 “만약 그렇다면 어떨까……”라는 표현을 반복할 때, 이 문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카즈릭의 문서 해석에 대한 의심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우선, 관객은 카람이 연구 중에 실제로 매춘부들을 인터뷰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카즈릭의 어머니가 단순히 자신의 상상을 받아 적은 것일까? 이쯤 되면 관객은 카즈릭이 자신의 어머니의 논문이 자전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긴장은 여기에 있다. 즉, 카즈릭은 논문의 수많은 일관성의 부재의 근거가 될 만한 수많은 가능성, 그리고 왜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도 자주 이 항공사에서 저 항공사로 이직했는지에 대한 수많은 추측들을 검토한다. 그러나 카즈릭은 자신의 어머니가 매춘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은 결국 하지 않는다. 공연 내내, 카즈릭은 더욱더 자극적인 사진을 넘기며, 어머니가 삼류적 배경에서 옷을 벗는 다양한 단계, 자극적인 모습, 그리고 관광 관련 배경 앞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은 카즈릭이 교묘하게 피해 가는 방 안의 코끼리를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관객은 카즈릭이 어머니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부인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이 문제(즉, 카즈릭의 어머니가 매춘부였음에 틀림없다는 점)의 직면을 피하기 위해 여러 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공연의 일화적 구조는 이러한 말해지지 않는 설명으로 인해 응집성을 가진다. 서로 콜라주 된 다양한 조각들을 통해, 관객은 이 단순화된 상상을 역으로 구성한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테크닉으로, 관객이 분명하고 성적인 설명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비공식적인 세팅(카즈릭은 좌식 의자에 앉아있고 카즈릭과 관객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음)은 카즈릭이 관객을 우월감, 이해, 해석이라는 착각으로 유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틀을 채택하지 않고 픽션과 상상을 다루는 것은 뛰어난 발상이다. 언어는 어렵다. 비판이론 관련 전문용어로 인해 무거워질 때가 많고, 따라가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조차 로코코적인 수식, 즉, 더욱 정교하고 잘못된 상상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주며, 공연자는 이러한 상상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결국, 정교한 상상, 쉬운 픽션을 만드는 것은 관객뿐이다.

서로 다른 용어에도 불구하고, 세 공연에는 공통점이 있다. 즉 세 작품 모두 다양한 종류의 자료를 검토하며, 이러한 자료로는 항상 사진이 있고, 텍스트가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러한 사진들은 서로 비슷하다기보다는 서로 상당히 다르기는 하다(무르에의 뉴스거리가 될만한 유튜브 동영상에서 아르사니오스의 먼지 쌓인 50년대 잡지 자료에 이르기까지). 공연자들이 연극적 테크닉을 드러내놓고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공연자는 항상 앉아있고, 대체적으로 정적이다. 그러나 세팅 요소 자체(책상의 존재, 관객의 위치 또는 공연자의 의자 다리의 유무)에서 드라마가 미묘하게 형성된다. 또한 내러티브와의 관계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구적 스타일의 이미지 분석 뒤에는 무르에의 관례적인 틀이 숨겨져있다. 그리고 카즈릭은 여유 있고 단편적인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내러티브의 개념을 깨고, 내러티브를 관객이 형성하는 상상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든지, 작품들은 모두 렉처 퍼포먼스에 포함된 방대한 가능성을 확인시킨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베이루트의 렉처 퍼포먼스 베테랑들조차도 아직 숙달하지 못한 것들이다.

  • 기고자

  • 스테판 타르노스키_작가, 큐레이터

Ta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