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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전통 양식과 현대 공연예술에 미친 영향 2013-12-02

아랍의 전통 양식과 현대 공연예술에 미친 영향
[동향] 시리아 전통극 양식에 대한 고찰


사실 19세기말이전 시리아에 희곡과 연극 활동이 존재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다마스쿠스 출신의 부유한 상인 아부깔리 알 깝바니(AbūKhalīl Al-Qabbānī: 1835–1902)가 서양극의 형식을 도입하면서 시리아 극예술이 보다 구체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알 깝바니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장르인 서양 연극을 조부의 집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는데, 아마도 인근 도시인 베이루트에서 순회공연을 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극단의 연극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터키어로 번역된 모빌레르(Mobilere)나 라신(Racine) 등 극작가의 시나리오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깝바니는 서양의 극 형식을 지극히 현지적인 관점으로 각색하는 역량을 발휘해 독창적인 장르를 완성했다. 깝바니가 직접 쓰고 감독한 극들은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로 스토리 구성에 노래와 춤을 가미해 보다 풍부한 오페라타로 재탄생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또 신비로운 무대 연출을 통해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관객들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공연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19세기 아랍 문화에 소개된 근대 연극

당시 관객들은 커피숍 등에서 공연하는 그림자극에 익숙했다. 그러나 막 뒤에서 움직이는 평면적인 인물들이 조명을 통해 등장하는 그림자극과 실제 배우들이 중세시대의 복장을 입고 술탄과 칼리프를 연기하는 연극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깝바니의 연극을 소개한 몇몇 책에서 이미 언급된 것처럼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허구로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이 위험에 빠진 등장인물을 구하기 위해 무대에 뛰어드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깝바니 연극의 대성은 다마스쿠스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오스만제국 정부는 시리아에서 연극 공연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고, 깝바니의 실험적 시도도 막을 내리게 된다. 깝바니 극장은 결국 문을 닫게 되고 예술가들도 새로운 예술 사조에 보다 열려있는 카이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종교 지도자들은 외설로 가득 찬 그림자극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깝바니 연극이 풍기 문란하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깝바니가 무대 위에 실제 배우들을 등장시킨 것이 문제가 된 것일까1 ? 아니면 두 번째 공연에서 칼리프인 하룬 알라시드(Caliph Harun Al-Rashid)를 풍자한 것이 이유가 되었을까? 혹은 새로운 문화예술 장르가 선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연극 금지령으로 인해 시리아에 연극을 도입하려 했던 시도는 그 이후 한동안 실현되지 못했다.

(1초창기 깝바니의 연극에는 대머리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기독교와 유대인 여성들이 직접 여성의 역할을 연기했다.)

한편 그림자극은 실크로드 주변국가들 사이에서 이미 대중화된 극 장르로 시리아의 경우, 집시들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시리아에서 그림자극은 터키어로 검은 눈동자를 의미하는 카라고즈(Karagöz)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검은 눈동자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시리아 시내의 커피숍이나 공중목욕탕에서 그림자공연을 펼치는 집시인형극 예술가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집시들은 중앙아시아 지역 출신들로 수크(souk: 시장)나 크고 작은 행사장에서 주로 공연했다. 집시 그림자극은 시리아에서 수세기 동안 공연되었으나 댄스나 곡예, 복술(卜術), 개나 곰, 원숭이 쇼와 같은 대중문화에 비해 뒤쳐져 있었다. 카라고즈의 구성과 시나리오는 대부분 짧고 단순하며 소극(笑劇) 위주였다. 멍청한 노인과 영악한 하인, 성미가 고약한 아내와 허풍쟁이 군인 등의 캐릭터가 고정적으로 출연했다. 또 즉흥 애드리브는 당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맹렬한 풍자로 사회의 각계각층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한 캐리커처 요소가 많았다. 카라고즈의 관객들은 당시 시리아에 거주했던 다양한 민족과 인종, 즉 카이로, 바그다드, 모로코, 예멘, 수단의 사투리와 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시리아의 전통 그림자극 ‘카라고즈’  

1960년대 이른바 아름다운 문화적 요소들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시리아에 문화부(Ministry of Culture and National Guidance)가 개설되면서, 그림자극도 사라지게 되었다. 관객이 남성에 국한되었던 그림자극의 대사가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점이 이유였다. 그림자극 공연이 금지된 것을 넘어 표현의 외설성 때문에 극의 시나리오조차 보관이 금지되었는데 문화부가 그림자극에 대한 문헌 공개와 관련 서적의 출판을 허용했을 당시, 극의 대본에는 외설스러운 표현들이 이미 많이 삭제된 상태였다. 그러나 카라고즈는 여전히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며 시리아 출신 배우 두라이드 라함(Durayd Lahham)이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출연한 코미디 촌극 <가와르의 속임수(The Tricks of Ghawar)> 창작의 영감이 되었다. 이 촌극은 카라고즈의 구성과 바탕을 각색해 제작된 것으로 그림자극의 평면 인물대신 실제 배우가 등장하는 공연이었다. <가와르의 속임수>는 1970년대 시리아 TV에서 방영되었고 높은 시청률 덕분에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재방송되었다.

<가와르의 속임수(The Tricks of Ghawar)>  

시리아 ‘카라고즈’의 기원

카라고즈와 지역 오락 문화 간 연결 고리를 찾다 보면 카라고즈가 기원전 4세기 그리스희극의 전통,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Plautus)와 테렌스(Terence), 아텔란파르스, 16세기 이탈리아의 가면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the Commedia dell’arte)와 연속선 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리아 카라고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장이 분분하고, 이러한 연결성에 대해 구체적이면서 정확한 연대 파악이 가능한 이렇다 할 증거가 없긴 하지만,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그 기원을 추정해볼 수 있다. 시리아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개 대륙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인종, 종교와 공동체가 다양하다. 또 수마리아인, 이집트인, 히타이트족,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카나안인, 페니키아인, 아람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등이 기원전 3000년부터 줄곧 시리아를 식민지로 삼아왔다. 그래서 시리아는 정복 민족이 도입한 다양한 극 양식에 영향을 받게 되고 대중들도 이에 동화되었다.

보스라(남시리아)의 거대한 로마식 원형극장은 원래의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로마제국 점령기에 이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무려 15,000여 관객석을 보유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형극장인 이곳에서 과연 어떻게 공연이 이루어졌는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원형극장의 무대에 올랐던 공연들이 이교도의 풍습 및 풍년을 기원하는 제천의식과 연관이 있었다는 추측은 가능하다. 로마가 점령한 여타의 지방들과는 달리, 이러한 의식들이 로마극의 형식, 즉, 비극이나 희극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이슬람교의 통치 이후 대중적인 오락 문화의 일부로 점차 자리 잡게 되었다.

시리아의 로마식 원형극장 유적  

그렇다면 이렇듯 중요한 제례 의식이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학계에서는 이교도의 종교의식이 시리아에서 사장된 것은 이슬람교의 통치가 그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시리아의 역사를 보존하는 학계 문헌들에서 대중문화 형식에 대해 다루지 않은 것도 제례 풍습이 사라진 이유일 수 있다. 다만 시리아 대도시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대도시의 생활을 묘사하며 여러 형태의 어릿광대, 마임, 희극공연, 곡예, 역술인, 음유시인들의 모습을 시리아 문화와 타 문화와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중세부터 시작되어 영화와 TV가 대중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1950년대까지 이 지역 사회상의 일부였다.

시리아의 전통극 형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면 바로 스토리텔링(이야기)이다. 스토리텔링은 주로 금식 주간에 커피숍 등에서 공연되었으며, 영웅담이나 기타 민화가 소재가 되었다. 스토리텔러는 청중들 한가운데 놓인 높은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극적인 억양으로 청중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등장인물들의 힘과 기사도 정신, 영예,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청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정의를 위한 고군분투의 정신이 관객들에게 전이될 수 있도록 상황에 따라 이야기의 구성을 각색하기도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이야기 전개 도중 필요한 곳에서 드라마틱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했다.

그림자극과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은 현대 시리아인들에게는 다분히 이국적인 극 장르로 호기심의 대상이다. 시리아의 현대극이 과거의 대중문화 형식으로 다시 회귀한 적은 없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극예술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활용되고 주제도 진화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뿌리와 정체성, 유산은 여전히 많은 작가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 다만 현재 아랍 세계에 불고 있는 급진적인 변화의 바람으로 인해 새로운 현실과 여타 정치 경제적 현안들에 밀려 아직까지 논의가 크게 심화되지는 않고 있다. 오늘날 시리아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며, 이에 극작가와 배우들도 극예술이 무엇을 대변해야 하는지, 대중들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 건설에서 극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있다.

  • 기고자

  • 하난 까삽 핫산_연극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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