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한 명도 ‘아니다’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 2013-09-16

한 명도 ‘아니다’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
[집중조명-축제/마켓] 브레시트 무용단의 브라질 세나현대공연예술제 참가기


정치적이었던 천재 건축가 오스카 르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의 역작들 사이로 젊은이의 건강하게 달아오른 볼처럼 붉은 토양이 널브러졌다. ‘여백의 미’라고 해야 할까, 짧은 기간 이뤄낸 ‘인공조성의 부작용’이라 해야 할까? 남미대륙의 절반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큰 나라 브라질.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 주민들도 주말이면 황량함에 도시를 비우는 수도 브라질리아. 2014 FIFA 월드컵 주최를 앞둔 이 도시의 시계는 1957년 설계에서 1960년 이주 시작까지 숨가쁘게 뛰었던 그들의 50여 년 전과 달리 매우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고도 1,100m. 겨울이라고는 하나 대낮에는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저녁나절부터 아침까지는 솜옷을 꺼내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 그리고 겨우내 메말랐던 도시는 여름이면 심장을 멎게 하는 폭음과 함께 몇 날이고 쏟아 붓는 장대비를 만난다. 수도라고는 하나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를 경험하지 못한 이방인에게 이 도시는 일교차만큼이나 선명한 명암을 던진다.

총 38시간, 12시간 너머로 가는데 걸린 시간이다. 항공권을 발권하며 알았으니 망정이지 미리 알았더라면 눈덩이처럼 부푼 공포에 몸져눕기부터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온몸이 헝겊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던 내가 만난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 따뜻한 갈색 눈은 마치 상쾌한 아침을 맞은 듯 반짝거린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브라질리아사람들 모두 객을 극진히 보살피고 마음 활짝 열어 환대한다는 것을.

한창공사중인 FIFA 월드컵 경기장 박물관 옆 축제의 가설무대, 주로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다. 이제 주어진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유럽에서 아시아 그리고 남미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항상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고, 한국 타악에 반해서건 춤이 좋아서건 모두 환호했다. “한국 전통음악과 현대무용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다”라고 주 브라질 대한민국 구본우 대사의 언급처럼 이 작품의 생명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같은 시도를 한 예술가와 작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작품은 처음부터 주목 받았고 4년 동안 비행기로 실어 나르며 꾸준히 실적을 쌓아 가고 있다.

어지간한 일들은 다 겪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는 복병. 비행기 연착으로 공연 3시간 전에 도착도 해봤고, 정성스레 만들어 놓았으나 엉뚱한 매트 때문에 포기한 레퍼토리를 대신해 쥐어짜낸 순발력으로 메꿔보기도 했다. 음악이 차지하는 자리가 워낙 큰 작품, 이번에는 악사전원 교체다. 덕분에 더웠던 올 여름, 바다로 나가기도 전에 눅눅히 달라붙은 땀과 습기로 늪을 하나 더 건너야 했다.

브라질 세나국제현대예술제(CenaContemporânea Festival Internacional de Teatro de Brasília, 이하 세나)는 처음부터 매우 호의적이었다. 다양한 색깔매트 중 원하는 것을 고르란다. 조명감독은 작정하고 필요한 모든 장비를 요청했는데 다 주겠단다. 후에 축제예술감독이 “장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공연”이라고 콕 집어 얘기했으니 축제가 보여준 호의가 어쩌면 ‘특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출국 전날 밤, 남미를 적잖이 겪어본 무대감독의 걱정에 딱 한마디 했다. “충분히 했다. 다 잊고 이제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 최선을 다하자”

<패턴과 변수> <人_조화와 불균형>

“한국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우수한 한국팀을 계속 초청하고 싶다”

도착 바로 다음날 축제 지정 식당에서 어깨부터 끌어안고 이름을 불러주며 웃는 사람이 있었다. 길레헤미 레이스(Guilherme Reis, 57세). 당연히 커뮤니케이션 했던 스태프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 다가와 그가 예술감독이라고 소개한다. 축제 창설자이기도 한 그는 매회 폐막 후에는 연출가와 배우로 돌아간다. 지금은 공연을 올리지 않지만 축제사무국 겸 소품제작소로 사용하는 작은 극장의 주인이기도 하다. 예산운영담당자를 제외하면 감독이고 직원이고 따로 방하나 없이 길지도 않은 복도에 조그마한 간이책상과 컴퓨터를 다닥다닥 늘어놓고 축제를 치러내는 그가 궁금했다. “나누고 소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술감독 길레헤미 레이스

그래서 축제에 모인 예술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나눠 갖고, 그것으로 관객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브라질리아 시민들 상당수가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1995년 창설해 올해 14회를 맞은 축제, 그간 예산이 없어 한두 해 축제를 거르기도 했다. 우리 돈으로 7억이 조금 넘는 예산. 그 중 공공지원금으로 20%를 조달하고 나머지의 99%는 협찬에 의지해야 한다니 민간축제를 십 수년 겪으며 느꼈던 그 절절한 고단함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밝게 웃는 눈이 가려주었던 주름은 앵글에 담기자 57세라는 나이를 의심케 할 정도로 깊게 그리고 많이 드러난다.

“한국공연예술이 매우 우수하다”고 말하는 그는 13회이던 2011년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김재덕)과 들소리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브레시트무용단과 잠비나이를 초청했다. 그는 박물관 옆에 음악공연용으로 세워 놓은 가설무대를 두고 광장을 누비던 들소리의 길놀이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올해 브레시트무용단 공연은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는 완벽한 성공”이란다. 그래서 매해는 아니더라도 한국팀을 계속 부르고 싶단다.

Arts Management…? 세상 어디에서도 그들을 찾을 수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어디도 쉽게 갈수 없다. 축제가 끝나면 무대로 돌아가거나 협찬을 따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초대를 해준다 해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던 그가 귀국 전날 다가오더니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웃음기도 뺀 채 진지하게 얘기한다. 그리고 세상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다고 많은 지인들이 얘기하는 KAMS가 궁금하단다. 한국공연에 관한 정보를 친구가 건네준 KAMS 자료에서 얻었고 또 다른 친구가 전해준 공연단 DVD를 보고 초청을 확정했다는 그에게 전날 설명해준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람을 사귀고 싶다는 것이다.

서울아트마켓(PAMS)을 통해 국제교류를 열병처럼 번지게 했고 국제무대에서 한국공연의 위상 확보를 위해 전투적이다 싶으리만치 집중적으로 들인 (재)예술경영지원센터(KAMS)의 노력과 공이 열매를 맺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인사교류 프로그램인 Cena Meeting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PAMS에서 만났거나 들어본 사람 혹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고 시행착오나 약간의 부작용이 따랐다 해도 집중적인 장기투자가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 앞에서는 그저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와서 하고 싶은 어떤 얘기도 할 수 있는 열린 축제”

각 참가팀을 주제로 만든 축제 기념품, 사진은 브레시트 무용단을 주제로 만든 기념품 티셔츠

예술감독이 희망했고 자랑스레 얘기하는 것처럼 세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각국 축제감독, 극장장 및 자국예술계 인사의 발제로“도시공간: 창작을 위한 토양”, “커뮤니티개발: 시민들의 역할”, “변화를 주도하는 창작자” 등, 공연예술 현황을 얘기하려던 미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열심히 발표를 듣고 있던 여성이 느닷없이 열변을 토한다. “브라질은 병들어 있습니다. 부는 분배되지 않고 범죄에 시달리는 시민들은 예술 따위를 논할 이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이 발언에 열렬히 환호하는 참가자들 때문에 재미도 없고 지루하던 자리가 갑자기 흥미로워진다. 강사로 초청받은 발표자들의 황당해하는 표정에 당황한 주최측 담당자가 “그럼 시민들을 위해 공연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상황을 수습해 보려 애쓰지만 젊은 여성이 “공연예술 자체에 관심도 없고 모르는데 뭘 할 수 있겠느냐”며 꿋꿋하게 삼천포로 키를 돌린다. 재미있는 것은 동원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다양한 연령층의 적잖은 시민들이 대화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끄는데도, 기꺼이 박수치고 경청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미팅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서 듣거나 말거나 스페인어는 통역도 해주지 않는다. 포르투갈어는 통역이 옆에 있었지만 자막이나 발표원고를 정리한 자료집도 없으니 영어발제가 고맙기까지 하다. 우리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어느 국제행사에서도 찾기 힘든 진행방식이다. 그러나 세나에서는 가능했다. 진행은 좀 어설펐지만 누구나 와서 하고 싶은 어떤 얘기도 할 수 있고 시민들이 박수 받는 열린 축제, 그것이 바로 세나였다.

“세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 따뜻한 축제”

차문을 열어놓고 운전을 하면 총구가 머리를 겨누고 가방도 카메라도 걸고 다니지 말아야 하며 경찰도 차라리 손을 놔버린다는 리우와 상파울루의 치안이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브라질리아였지만 5~10분 거리도 차를 타고 이동했다. 처음에는 극진한 친절이라 생각했는데 거리에 행인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고 필요한 선택이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예술가 입장에서 섬세하게 배려하며 “내가 마음을 열어 환대하면 다시 찾아 올 것”이라던 축제의 담당자와 우리의 입과 귀가 되어준 것도 모자라 직접 장만한 한국음식으로 향수를 달래준 벗의 얼굴에 공연 후 자랑스러움이 번지는 것을 보며 브라질리아 그리고 축제는 매우 정겨웠다고 추억한다. 예술 애호가로 유명한 구본우 대사와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이름을 기억하는 권영대 참사관을 그곳에서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세나를 찾을 우리 예술가들에게 “세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따뜻한 축제”라 말해주고 싶다.


예술 애호가 구본우 대사 부부, 국내 많은 예술가들이 기억하는 권영대 참사관과 함께


극장과 브라질 예술가들에 대한 사진과 자료들이 상시 전시되어 있는 공연장


브레시트무용단 공연이 있던 Teatro Funarte 전경


브라질리아연방대학 (UNB)을 대상으로 진행한 안무 워크숍
  • 기고자

  • 김신아_아트프로듀서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