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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혼재된,다중적인!-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연극의 개척자들 2013-08-26

현대적인, 혼재된, 다중적인! -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연극의 개척자들
[동향] 말레이시아의 크리셴 짓, 싱가포르의 쿠오 파오 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현대연극은 공연에 쓰이는 연극 언어(performance vocabulary)와 대사(spoken languages)의 다중성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는 풍부한 문화적 다원성을 반영한다. 이 두 나라의 다인종, 다종교, 다언어 국민 구성은 한때 역사를 공유했었기에 두 나라 모두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 정책을 발전시켰고, 다문화의 중요성을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에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극 역시 여기서 발생하는 융합과 긴장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과 접근법(전통적, 현대적, 사실주의적, 비사실주의적, 문화간, 학제 간, 다언어적 등)을 이용하는 한편, 다양한 언어(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의 관습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이러한 문화들의 뒤섞임과 콜라주를 반영해 왔다.

말레이시아의 크리셴 짓(Krishen Jit, 1939-2005)과 싱가포르의 쿠오 파오 쿤(Kuo Pao Kun, 1939-2002)은 콘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학제 간, 다문화적 연극 접근법의 형성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연극인들이다. 이들은 연극계에서 인정받는 원로로서 다양한 문화적 형식과 연극 언어(theatre vocabulary), 스타일(가령, 전통 그림자 인형극, 무술, 메소드 연기, 브레히트적 낯설게하기(Brechtian defamiliarisation) 등)을 실험했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현대 사회의 심오한 표현법을 발전시켰다. 이들의 연극은 다양한 지역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러한 다중적 요소들이 합쳐짐으로써 동시대의 변화에 맞춰 의식적으로 조율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작업은 지역 연극(local theatre)에 대한 새로운 비전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했으며, 차이에 천착하는 연극의 제작과 교육, 연구에 있어 철학적이고 과정중심적(process-based)인 실행을 심화시키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다중성(multiplicity)과 계속되는 변화(ongoing change)라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크리셴 짓 Five Arts Centre 쿠오 파오 쿤 courtesy of Intercultural Theatre Institute

영국령 말레이반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인도 펀자브 출신 이민자 상인이었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크리셴 짓은 문화적 다양성, 변화, 분쟁을 둘러싼 이슈들을 표현하고 탐구하는 연극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했다. 식민지적 대도시 환경의 비즈니스 중심부인 바투 로드(Batu Road)에서 자란 짓은 카바레 공연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공연된 중국 경극, 힌두 영화, 말레이 야외 전통극 방사완(Bansawan)을 보며 매우 다양한 문화적 영향에 노출되었다. 나중에 그의 모교인 빅토리아 연극원(the Drama Society of the Victoria Institution)에 참여하여, 영국의 정통 희곡들을 접하면서 연극에 대한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문화를 구성했던 폭넓은 요소들의 뒤섞임에 관한 인식은 이러한 다양성과 개방성을 허용하는 지역적 연극을 만드려는 그의 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와 같은 사회의 다문화주의는 단지 ‘사회집단간(between bodies)’이 아닌 ‘사회집단들 안에서(within bodies)’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이 점은 문화들 사이의, 그리고 문화들 내의, 미적, 역사적 요소들의 병치를 가능하게 했다.1)

쿠오 파오 쿤도 역시 잦은 변화와 문화적 다중성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그는 중국 허베이(Hebei)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베이징과 홍콩에서 잠시 머문 후, 열 살 난 어린 소년이었을 때 마침내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장성한 후에는 학업과 일을 위해 호주로 갔다가 싱가포르에 돌아와 정착했다. 쿠오는 그 후에도 극작가와 연출가로서 일하며, 세계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그 과정에서 ‘차이’와 계속적으로 직면하며 자신이 문화의 ‘주변부(margins)’에 있다는 강한 인식을 갖게 된다. 이 주변부는 ‘’미지의’ 그리고 ’불가사의한’ 경험들을 표현하기 위한 연극 언어를 발명하고픈 강한 욕망이 항시 존재하는 곳이었다.2) 쿠오는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아시아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사회에 다중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열린 문화(Open Culture)’를 형성하는 과제에 특히 신경을 썼다.

환원주의적(reductive)이고 융통성 없는 규범과 맞서기 위해, 인종, 젠더, 언어, 계층, 종교와 같은 지금까지 인식된 공식적인 문화적 경계들을 가로질러 작업하는 일은 짓과 쿠오가 그들이 처한 환경(contexts)에 대응하여 발전시킨 연극적 비전에서 중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은 문화적 평등의 가능성을 억누르던 선입견과 편견에 저항하며 공존과 상호의존을 강조하고자 다양한 문화사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병치 및 교차시키는 연극적 접근법을 발전시켰다. 여기에는 흔히 서로 상관없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및 서구 문화의 여러 측면들을 콜라주하고 중첩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이들은 공연에서 일상생활의 일부인 상호작용과 뒤섞임을 보여줌으로써 문화를 두서없지만 서로 연관된 것으로서 대안적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했다.


배우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는 다언어극은 뒤섞인 공연 언어를 창조했으며, 다문화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과 소통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들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묘사하는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1988년 초연된 <고양이를 찾고 있는 엄마(Mama looking for Her Cat)>는 쿠오의 주요 작품으로 싱가포르 최초의 다언어극이었으며, 언어의 정치학을 이용하여 근대화의 압력 속에서 증가하는 세대 갈등 문제를 다루었다.3) 이와 비슷하게, 짓이 고안한 다언어극인 <미국: 액션과 이미지(US: Actions and Images)>는 1995년 초연되었으며 현대의 도시화와 인종 간 격차와 씨름하는 말레이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체성과 가족사에 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4) 몇몇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말레이시아인이거나 싱가포르인이라는 사실이 어째서 여러 문화들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인지, 그리고 역사, 문화적 소멸에 대한 두려움 없이 꾸준히 변화에 적응하고, 다른 측면들을 통합할 수 있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인지 표현했다.

쿠오 파오 <고양이를 찾고 있는 엄마> (1988)Copyright The Theatre Practice Ltd.

크리셴 짓 < A Chance Encounter > (1999)Five Arts Centre

짓과 쿠오는 연극을 콘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토착적 문화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창의적이고 권력을 부여하는 공간으로 여겼다. 새롭게 형성된 포스트 민지 국가의 대중 지식인으로서, 이들의 정치는 서구중심적 ’진보’ 개념에서 멀어지고, 대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특수성을 표현하는 지역적 미학과 공연 전통에 관심을 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치, 사회, 교육, 문화적 영역에서 서구가 미친 깊고 중대한 영향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서구 문화의 여러 측면들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압도되지는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통과 현대, 아시아와 서구, 민속과 고전,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양극의 대립축으로서가 아니라 다중적이고 뒤섞이고 현대적인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구체화 및 규정의 방식들을 찾을 수 있는 원천으로서)를 가지고 폭넓은 실험을 했다. 쿠오의 연극 <라오 지우(Lao Jiu)>는 싱가포르에 팽배해진 합리주의적 경제적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실용주의로 인한 중국 인형극 형식의 쇠퇴를 표현했다.5) 마찬가지로 1984년과 1994년 짓이 공연한 K.S. 마니암(K.S.Maniam)의 <끈(The Cord)>은 인종, 계층, 젠더 간 문화적 갈등이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부와 효율화된 문화적 합리주의를 향한 국가 전반의 진보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다루려는 시도였다.6)

짓과 쿠오의 작품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두 사람의 때 이른 죽음이 있을 때까지, 각각의 연극 커뮤니티에서 현대적 실험주의의 관행을 정착시켰고 미래의 연극인들에게 중대한 토대를 마련했다. 대중 지식인으로서 존경받았던 이들의 예술과 사회를 비롯해 더 큰 이슈들과 관련된 견해는 이들이 남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저술은 지속적으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7)



  • 주석

  • 1) 크리셴 짓은 2004년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심지어 인도 은 사회에서도 다문화주의는 사회집단 사이에서가 아니라 사회집단 내에서 경험된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 2) Kuo, P.K.; <주변부에서의 본 이미지: 쿠오 파오 쿤 극 모음집> ’머리말’; (Times Books International, Singapore, 2000); p. 8
  • 3) 싱가포르의 다언어극과 쿠오의 중대한 공헌에 관한 추가적 논의는 다음을 참조한다. Quah, S.R.; ’상상하기, 재현하기, 구성하기: 싱가포르 다언어극 연습’, <현대성과 직면하기: 자아, 정체성, 커뮤니티> (The Esplanade Co. Ltd., Singapore, 2004);p.11-24)
  • 4) 말레이시어 연극에서 문화적 차이에 관한 공연을 하는데 발생하는 문제들에 관한 짓의 접근법에 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한다. Rajendran, C. and Wee, C.J. W-L.; ‘Krishen Jit의 연극: 다문화 국가 말레이시아에서 차이의 공연에 관한 정치학’, < The Drama Review (TDR) Volume 51 Number 2 (T194) Summer 2007 >, (MIT Press, Cambridge MA), p.11-23
  • 5) 현대 싱가포르에 대한 Kuo의 견해의 연극적 표현에 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한다. Wee, C.J. W-L; ‘Kuo Pao Kun의 현대 연극 개론’ < Kuo Pao Kun 전집: 볼륨 4 - 영어 연극 > C.J.W-L. Wee 편역; (The Theatre Practice and Global Publishing, Singapore, 2012) p. xi-xxx
  • 6) 코스모폴리탄 문화와 현대적 변화에 대한 Jit의 연극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한다. Rajendran, C; ‘코스모폴리탄적 충돌과 콜라주를 공연하기: 말레이시아에서 ’이방인’에 관한 Krishen Jit의 공연’ <문명의 교차로에서의 정체성: 아시아의 민족성, 민족주의, 세계화> Erich Kolig, Vivienne SM Angeles and Sam Wong 편역; (Amsterdam University Press, Amsterdam, 2009) p.173-194
  • 7) 짓의 일련의 저작물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한다. Rowland, K. (편저.); 크리셴 짓의 비범한 견해 – 글 모음집; (Contemporary Asian Art Centre, Singapore, 2003). 쿠오의 저작물은 다음을 참조한다. Kuo, P. K., 쿠오 파오 쿤 작품 전집 – 볼륨 7: 비평과 연설, Tan Beng Luan 편집 (World Scientific Publishing, Singapore, 2005)

  • 기고자

  • 샬렌 라젠드란_연극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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