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PAMS Choice] 당신도 그녀를 기다립니까? 2013-06-18

당신도 그녀를 기다립니까?
[피플] <오나! Is she coming?>으로 돌아온 안무가 최상철


무대를 꽉 채우는 균일하게 놓여져 있는 수 십 개의 의자가 한치의 벗어남도 허용치 않을 것처럼 차갑다. 사각의 의자가 사방으로 놓여진 틈으로 한 남자가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온다. 그 수 많은 의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 남자와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빈 공간이다. 그는 그곳에서 기다림들과 함께 다시 “그녀가 올까?”를 묻고 또 묻는다. 이내 의자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무대는 흐트러지고 기다림과 간절함이 때론 강하게 때론 촉촉하게 춤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오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그녀는 아름답지만 생생하지 않은 마네킹의 모습으로 남자의 품속에서 온기를 찾지 못한다.

<오나>(2012. 10월 초연)는 안무가 최상철이 보여주는 2년만의 신작이다. 전작인 <논쟁>(2010)이 강렬한 시각적 구도 속에서 집단적이고 대립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오나>는 기다림의 풍경을 마음 깊숙이 들여다 보는 내밀한 작품이다. 베케트의 ‘고도’처럼 ‘그녀’ 역시 대상이라기 보다는 기다리는 자들의 것일 뿐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을 그녀를 기다리며 인간의 시간들은 포기되어지기 보다는 뜨거워 진다. 하지만 ‘고도’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어떻게 드러나는 지를 관객은 볼 수 있다.

<오나!> 최상철현대무용단

한국적 정서를 담은 내러티브와 보편적 설득력

안무가 최상철은 한국적 현대무용을 추구하는 2세대로써 춤에 대한 고민을 안고 7년간 뉴욕에서 유학하였다. 그가 유학을 시작했던 1989년은 특히 미국에서 포스트모던댄스가 왕성하게 펼쳐지던 시간이었고 그 현장에서 최상철은 한국의 안무가로서 세계에서 소통될 현대 춤을 만들고 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성숙시킨다. 1세대의 선배들이 한국춤의 즉흥성과 곡선적 춤사위로 우리의 것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면, 최상철은 거기에 전통적 움직임과 호흡을 보다 적극적으로 뉴욕의 즉흥춤 기법에 융해시켜 현대적이고 “매혹적인 춤꾼”(mesmerizing performer) 이라는 평을 받는 가 하면(1991. 6. NY Times, Jenifer Dunning), 작품에 한국적 정서를 담는 가벼운 내러티브를 포함시킴으로써 보다 보편적 설득력을 갖는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그의 안무적 탐구력은 멈출 줄 모른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이다. 춤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미디어의 접합을 끈질기게 연구하더니, 순수하고 땀냄새 나는 춤의 기본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는 특별히 장식적이거나 기교적인 움직임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의 일상에서의 모습처럼 자연스럽고 진솔하며 소탈한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여 표현하려고 했던 주제의식을 방해하거나 놓치게 되는 것을 조심스레 피한다. 그래서 그는 과도한 무대세트나 조명도 섬세하게 조절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단선적이고 직접적인 화법을 쓴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오나>에서 보여지듯이 그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허무의 빈 공간에 대한 깊은 맛을 본인의 숨결로 울림을 만들어 낼 만큼 진지하고 투철하다. 소탈함과 진지함, 그의 이런 양극적인 성향은 그만의 창작과정에서 균형적으로 작용한다.

“하나의 작품을 준비하다 보면, 다음 작품에 대한 영감과 아이디어가 생겨난다”

즉흥과 상상력으로 작업을 키워가되,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을 다시 본다

그는 한 작품을 만드는 데 6개월의 연습기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모든 일상을 접는다. 평소의 너그럽고 친근하던 모습은 오로지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필요한 집중과 예리함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이전 작품을 하면서 마음속에서 잉태된다. 다음 작품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현재 작품에 충실하게 집중할 수 있는 선물이 된다. 주제에서 제목을 정하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작품들은 대개 무용수들과 긴 시간 동안 주제 탐색과 즉흥훈련을 통해 몸 속으로 녹아 든다. 주제가 충분히 무용수들에게 스민 후에야 나오는 진정한 움직임들을 모아내고 구성하는 과정을 거친 후 그가 마지막으로 하는 중요한 과정이 또 하나 있다.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그는 냉정한 관객의 눈으로 작품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애정이 담긴 것들을 버려야 하는 자신에게는 아픈 과정일 수 있지만 관객에 대한 현대춤 안무가의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진행 한다. 수 많은 현대춤들이 얼마나 관객을 불편하게 하거나 무책임하게 끝내 버리는 지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주제가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고 느끼는 이면에 바로 다시 한번 걸러내는 이 과정이 만들어 낸 안정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무와 상실감에 뚫려 버린 가슴이 고통스러운 존재들이다

<오나>에서는 기다림과 갈망, 그것의 크기만큼 생겨버린 허무의 빈방을 충분히 돌아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실존적인 허무 외에도 극대화 된 물질사회가 조장한 갈망까지 떠안고 매일매일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려도 채워야 할 빈방은 여전히 남아 있는 시지프스의 후손들이다. 시지프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끈임 없이 흘러내리는 바윗돌을 다시 올려야 하는 육체적 고난의 영원한 쳇바퀴뿐 아니라 정신적 허무와 상실감에 뚫려 버린 가슴이 고통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겐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 볼 만큼의 여유조차 쉽지 않다. <오나>에서 안무가 최상철은 뚫려 버린 가슴을 허무의 시선이 아니라 끈질긴 기다림의 중첩으로 허무를 넘어서도록 마음의 온도를 올려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바로 그 뜨거운 마음의 끝이 무엇인지 그녀를 기다리던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관객은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없어도 그녀를 기다릴 그, 그가 없어도 존재할 그녀, 그와 그녀가 사라진 무대에 뜨거워진 시간의 흐름만이 그득하다. 우리의 차갑게 식어가는 빈 가슴을 끈질김과 뜨거운 기다림으로 채우는 <오나>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이런 오래된 지혜의 말씀이 떠올랐다.

“虛卽滿也 是見性 빈 것이 곧 가득찬 것임을 아는 것이 견성이니라”

최상철 안무가
  • 기고자

  • 이지현 _ 춤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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