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삶에 대한 믿음 2013-05-28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삶에 대한 믿음
[집중조명_작품] 브라질 쿠리치바 페스티벌 판소리만들기 자 <억척가> 공연


2012년 10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초대를 받아 서울아트마켓에 방문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교류를 진행해 왔고, 여러 차례 서울아트마켓에 초대를 받아왔지만 바쁜 업무 일정과 너무 먼 브라질에서 한국까지의 거리 때문에 이제서야 이 감사한 초대를 수락할 수 있었다. 다문화국가인 브라질에 살고 있음에도, 한국에 도착했을 때 브라질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들에 깜짝 놀랐다. 아시아에 있는 듯 하다가도, 어느 때는 상파울루의 한인타운인 봉헤치로(Bom Retiro)에 있는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삶에 대한 공연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다.

서울아트마켓에서 놀라운 공연들을 많이 관람했다. 그렇지만 ‘판소리만들기 자’의 <판소리브레히트 억척가>에서 이 작품의 소리꾼이자 배우인 이자람을 처음 봤을 때, 그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이 예술가가 지닌 힘, 그리고 한국 전통문화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정교한 작품을 거리낌 없이 조합했다는 사실은 실로 대단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공연에는 연주자 세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함께하고 있었다. 아주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공연이었다. 나는 이 공연을 브라질로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감동을 브라질사람들과 공유해야 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센터스테이지 코리아’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며, 상파울루 세스크(SESC, 상업사회복지센터)와 함께 우리는 쿠리치바 페스티벌(Festival de Curitiba)에 <판소리브레히트 억척가>를 초청하게 되었다.

공연장에서 세트, 조명, 음향이 함께하는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는 서울에서 본 쇼케이스보다 훨씬 더 놀라운 공연이었다. 자신만의 새로운 ‘억척어멈’을 공연하는 2시간 반 동안 소리꾼 이자람은 그야말로 빛나는 존재였다. 관객들 또한 완전히 공연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자람은 내게 특별한 느낌들을 전해주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신념인 삶에 대한 공연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다는 믿음이며, 다른 하나는 내가 아직 이러한 공연들을 찾아내고 대중 앞에 소개하여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를 관람하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판소리만들기 자 <억척가> (사진제공 LG아트센터)

 

판소리만들기 자 <억척가> (사진제공 LG아트센터)

판소리만들기 자 <억척가> (사진제공 LG아트센터)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는 원작인 브레히트의 작품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 번째로, 판소리는 17세기에 한국에서 생겨난 장르로서 노래와 해설로 이루어진 공연으로, 보통 한 명의 고수(북 치는 사람)와 소리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때때로 한 명이 그 두 가지를 함께 하기도 한다.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는 ‘판소리만들기 자’를 위해 한 명의 화자와 세 명의 연주자를 포함하는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두 번째는, 원작의 배경이 ‘30년 전쟁’인 것과 달리 이자람의 버전에서는 중국의 삼국시대(위, 촉, 오)에 일어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은 현재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한국은 남북 대치상황에 있고, 남한은 군사독재를 거쳤다. 브레히트는 전쟁터에서 행상을 하며 살다가 세 자식을 잃고 인생에 환멸을 느낀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자람은 약 15명의 배역을 홀로 연기하며, 한국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한다. 이자람은 북한이 항상 위협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녀와 같은 세대에게 전쟁은 확실한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서른셋의 이자람은 전쟁과 독재를 많이 겪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부모 세대를 통해서 그러한 고통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간접 경험들을 통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해 내는 일, 즉 브레히트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전쟁과 독재가 뚜렷한 기억이 아님에도 이자람은 자신의 방식인 판소리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아가 자신의 소망을 보여주기 원했다. 이로써 원작에는 없었던 ‘희망’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지고, 유머도 가미되었다.

신세대 판소리 소리꾼의 열정

사실 판소리는 (한국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판소리가 지루하고 따분한 장르라고 여기고 있다. 이자람은 판소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언어는 독특하고 특별하고 강하며, 시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어느 짧은 순간, 판소리는 인체의 한계를 시험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또 다음 순간, 몇 시간 동안이나 이러한 상태가 유지되며 호흡 역시 음악의 강약을 따라간다. 이자람은 공연을 할 때면 언제나 응급차가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공연 중에 힘을 전부 모두 쏟아내기 때문이다. 관객석에서도 그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가 ‘판소리만들기 자’와 이자람의 겨우 두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그녀의 전작은 역시 브레히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사천가>라는 작품이다. 이렇게 훌륭한 배우/소리꾼은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했다. 또한 이렇게 놀라운 경험 또한 별로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순히 단어를 말하는 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열정의 호흡 같아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만큼은 현실을 잊은 채 그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게 된다. 이자람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공연에는 마술 같은 것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점이 공연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비슷하게 살아가며,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점이 인생의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서 그녀가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 자신만의 유머를 구성해 내는지를 볼 수 있었다.

공연에 참여한 판소리만들기 자 멤버들과 셀소 큐리

공연에 참여한 판소리만들기 자 멤버들과 셀소 큐리


  • 기고자

  • 셀소 큐리_La RE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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