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희망으로 띄운 재즈의 섬, 자라섬
[피플]인재진_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인구가 약 6만 명(2012년 4월 기준)인 경기도 가평은 군 전체가 자연보전권역에 속해 있어 주로 관광과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이곳을 대표하는 단어는 ''재즈''가 됐다. 2004년 시작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하 자라섬페스티벌) 때문이다. 9회를 맞은 2012년에는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23만 4천여 명이 페스티벌에 다녀갔고, 이는 지난해 18만 8천여 명보다 24.5%(4만 6천명)가 늘어난 숫자다. 아홉 번의 페스티벌은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페스티벌이 남긴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3일간 가평은 언제 어디서든 재즈가 흐르는 음악의 도시로 변모했고, 전 세계 재즈 뮤지션들은 가평으로 찾아와 그들의 음악에 열광하는 수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 년에 단 한번 떠오르는 재즈의 섬'' 자라섬을 ''재즈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인재진 총감독은 페스티벌의 성공을 이렇게 정의한다. "재즈라는 장르의 세계지도가 있다면 그 지도에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렇지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통해 대한민국의 위치를 그려 넣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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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편집장과 인재진 총감독 |
버려진 땅에서 시작된 페스티벌
자라섬페스티벌의 시작은 소박했다. 가평군의 한 공무원이 인재진 총감독의 문화기획 강의를 듣던 중 ''가평에서 재즈페스티벌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축제를 제안했고, 오랫동안 재즈페스티벌을 꿈꿔왔던 인재진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시작됐다. 그들이 가평 일대를 다니며 어렵게 찾아낸 공간이 현재의 자라섬이다. 사실 자라섬은 사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탓에 이름도 없이 버려진 땅이었다. 1940년대 주인 없는 땅에 중국인들이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중국섬''이라고도 불렸으며 자라처럼 생긴 언덕이 바라보고 있는 섬이라 하여 ''자라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건너편(직선거리 약 800m 정도)에 있는 남이섬은 알아도 자라섬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의 땅을 다지고 무대를 세워 2004년 첫 페스티벌을 열었다. 2004년 9월 12일, 금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만 여명의 관객이 모였다.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튿날 폭우가 내리면서 페스티벌은 ''절반의 성공''의 성공으로 기록됐다. 물론 비가 페스티벌에 실패만 안겨주지는 않았다. 무대 위로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연주하던 뮤지션과 그 비를 맞으면서도 재즈를 즐기던 관객이 하나 되던 모습은, 자라섬페스티벌의 불꽃을 피우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자라섬페스티벌은 ''비''와의 전쟁을 치르며 한해 두해 노하우를 쌓아나갔다. 여기에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재즈''라는 페스티벌의 캐치프레이즈는 때마침 한국에 불어온 여가문화 확산, 오토캠핑 열풍 등과 맞아떨어지면서 자라섬페스티벌은 단순한 음악페스티벌이 아닌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라섬페스티벌을 이끌고 있는 인 감독을 설명하는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적확한 표현은 없다. 인 감독은 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부터 재즈계에 뛰어들었다. 90년대 한국 재즈 열풍과 함께 퓨전재즈밴드 웨이브와 대학로 딸기소극장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재즈 음반 제작과 공연 기획 등으로 무수한 실패도 겪었다. 한때 그의 별명은 ''재즈계의 마이너스 손''이었다. 인 감독이 손대는 것마다 손실을 봤던 탓이다. 현재 호원대학교 공연예술학부에서 기획/제작 전공 교수를 맡고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 "내가 한 것처럼만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멋진 재즈페스티벌을 만들겠다는 오랜 꿈이 있었고, 사업에는 실패해도 사람에는 실패하지 않는 인간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재진 감독은 자라섬페스티벌의 성공을 모두의 공으로 돌렸다. "2004년 페스티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무모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9년을 지나고 10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자라섬은 모두 함께 만든 페스티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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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진_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 |
사람이 만들어낸 페스티벌
자라섬페스티벌의 경영철학도 ''사람''에 있다.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이끈 많은 요소 중에도 지자체 및 지역주민과의 상생, 상시적인 운영조직의 구축, 그리고 안정적인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자라섬페스티벌이 첫 손에 꼽는 자랑거리다. 지자체와의 상생 관계는 페스티벌이 뿌리를 내리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자라섬페스티벌은 지자체의 도움으로 운영되지만 정치적인 관계에서 독립되어 있으며, 지역주민들에게도 큰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인 감독은 특히 "지역주민이 애정을 가지는 행사가 된다는 건 페스티벌 존립에 가장 큰 요소가 된다"고 강조한다. "지역 주민들이, 재즈는 잘 모르지만 우리 동네에 이런 멋진 축제가 있다는 것에 프라이드를 갖게 된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주민들이 페스티벌을 치러낼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애정을 갖는 축제가 되기 때문이지요."
한편 2005년 조직된 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는 페스티벌의 핵심적인 운영을 담당한다. 모든 직원이 가평에 거주하며 페스티벌 기간만이 아닌 일 년 내내 가평군의 문화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재즈의 고향, 가평''은 단순히 페스티벌을 성공리에 치러냈기 때문에 얻어진 별칭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인 감독이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자원봉사자다. "자라섬페스티벌의 자원봉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첫 회부터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이 지금도 참여할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생 때 자원봉사를 시작한 친구들이 군대에 다녀오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해도 일 년에 3일 자라섬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에는 휴가를 내서 옵니다. 자원봉사자로 만나 결혼한 친구도 있어요. 지난 4월에는 이른 나이이지만 제가 주례를 서기도 했죠.(웃음)" 자라섬페스티벌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자원봉사라고 했다. 인 감독은 "자원봉사자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그 축제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다"며 그들이 프라이드를 갖기 위해서는 축제가 좋은 축제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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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맞아 다시 시작하는 페스티벌
페스티벌이 커질수록 고민과 책임감도 커진다. 자국 뮤지션들과의 상생도 그에게는 큰 과제다. 자라섬페스티벌은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재즈는 비주류 음악으로서의 소외감과 장기적인 음반시장의 불황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국재즈에 관심을 갖고 재즈계에서 일해 온 인 감독으로서는 책임감만큼 애정도 크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한국 뮤지션들이 해외 훌륭한 재즈 뮤지션들과 콜라보레이션(협연)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에도 좋은 뮤지션이 있고, 좋은 무대가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기 때문이지요." 이어 그는 "그동안 자라섬페스티벌에서는 베이시스트 서영도, 기타리스트 오정수 등이 해외 뮤지션들과 협연 무대를 펼쳐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는데요, 국내 재즈 뮤지션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프로모션하고 우리(자라섬페스티벌)를 조금 더 이용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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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재즈페스티벌이 그러하듯 ''재즈 없는 재즈페스티벌''에 대한 고민이다. 이미 많은 재즈페스티벌의 메인무대에는 재즈가 아닌 팝과 록 뮤지션들이 선다. 사람들은 재즈페스티벌에서 재즈만 즐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즈페스티벌은 전 세계 5% 미만을 차지하는 소수의 음악이 아닌 다양한 문화현상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9회 페스티벌을 치르면서 대중성이라는 부분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고민을 드러낸 인 감독은 "재즈를 정말 좋아하는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재즈를 잘 모르는 관객들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지금부터 해나가야 할 과제"라고 이야기했다.
올해로 아홉 번의 페스티벌을 치러낸 인 감독은 해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제 10회를 맞이하는 2013년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속적인 페스티벌의 장점은 해마다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도 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노하우는 ''디테일''이 됩니다. 외적으로 규모가 커지는 한편 내적으로 섬세해지는 것이 좋은 페스티벌의 조건이죠. 내년에는 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인 감독은 직면한 문제를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는다. 올해 페스티벌이 끝난 후에도 그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에도 핀란드와 폴란드 등 유럽의 재즈페스티벌에 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해외 유수의 재즈페스티벌을 보며 꿈을 키웠다면 이제는 자라섬페스티벌이 그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올해보다 더 나아질 내년의 페스티벌이 해마다 마음속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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