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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이함을 말하다 2012-10-26

시대의 기이함을 말하다
[Who&Work] 박찬경_시각예술작가, 영화감독, 평론가


대게 옛 성인들은 예(禮)와 악(樂)으로써 나라를 일으키고, 인(仁)과 의(義)로 가르치을 베풀되,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다. 하지만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符命)을 얻고 도록(圖籙)을 받게 된다. 때문에 보통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뒤에라야 그 변화의 틈을 타서 대기(大器)를 잡아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러하니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으랴. 이 기이(紀異)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식는 것은 그 뜻이 실로 여기에 있다. - 일연, 삼국유사 기이 권 제1

인터뷰를 마치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위해 자리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박찬경 감독에게 “왜 ‘기이함’인가, ‘기이함’이란 미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물었을 때, 박찬경 감독은 <삼국유사>의 첫 편 <기이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 기이편에는 사람들이 왜 이야기가 기이한가를 묻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작가는 왜 기이하면 안되는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지요.”

비행(Flying (2005)

Q : 안녕하세요. ‘박찬경 감독‘은 시각예술작가로서, 영화감독으로서, 평론가로서 공연예술계에서는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많은 분들게 아직은 생소한 이름입니다. 시각예술 작품을 포함해서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 네. 저는 미술대학을 다녔지만 창작에 흥미를 잃어서 졸업이후에는 주로 미술 평론을 했습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아직 ‘민중미술’이 남아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민중미술’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했습니다. 1993년 이후 평론을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창작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영화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는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갤러리(시각예술) 맥락에서 작업해왔습니다. 1997년 첫 개인전으로 금호미술관에서 냉전, 분단을 중심으로 한 설치, 슬라이드, 사진전을 개최했습니다. 일종의 데뷔전이었습니다. <1997년 블랙박스 : 냉전 이미지의 기억> 이후로 비디오를 계속 작업해 왔습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신도안’이라는 작품이며, 2007년 혹은 2008년에 만든 작품입니다. 그 전까지는 주로 ‘분단, 냉전’에 관련된 주제로 작업을 했고, 그 때부터 종교, 특히 민간신앙, 무속, 한국적인 컬트, 신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래 제자신이 종교적인 색채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의 종교사를 보다 보니, 1980년대에 사람들이 ‘민중, 민중’을 말해왔는데, 정말 밑바닥 정신, 혹은 삶이 근대화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고, 사라지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과 근대화에 대해 가장 잘 보여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신도안>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속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김금화 선생님의 작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A : 저는 사실 페스티벌 봄에서 <갈림길+아시안 고딕>이라는 제목으로 영상 상영과 강연를 보았습니다. ‘아시안 고딕’이라는 강연에서 김금화 선생님이 6.25 전쟁통의 갈림길 위에서 인천의 섬으로 피난 가실 때의 장면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서양 화가의 중세적 그림을 함께 보여주시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할 때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제까지 박찬경 작가는 ‘분단, 냉전’등의 현실적 참여 작가로서 현실과 미학면에서 독특한 위상이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서구 화가의 작품과 <갈림길>의 작품의 이미지와 미학적 연결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스스로 ‘아시안 고딕’이라고 명명할 때, 엄숙함과 두려움을 표상으로 하는 중세적 이미지가 강하게 표출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 한국의 민간신앙을 다루는 <신도안>의 작품에서는 강하게 드러나는 듯 하지만, 작품 <갈림길>과는 무언가 다른 지점일 수도 습니다. ‘아시안 고딕’을 중세로만 표현해버리면 어쩐지 서구 프레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위해서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1997년 첫 개인전 <블랙박스 : 냉전 이미지의 기억>의 사진 자료를 하나 찾게 되었는데요.

 

갈림길 (2012) 블랙박스 : 냉전 이미지의 기억 (1997)

A : (웃음) 작품을 할 때는 과거의 작품과 다르고 새롭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보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듯도 합니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니고, 관련이 없지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의 박만우 관장이 평론가로서 박찬경의 개인전 <신도안>의 평론글 ‘범속한 트임’에서 쓴 첫 문장이 ‘박찬경은 쉽게 변하지 않는 작가라는 점이다’이다.)

Q : 작품 <만신>은 ‘판타지 다큐멘터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일부로서 <갈림길>에서도 다큐멘터리와 재현이 합쳐지면서, 사회적, 미학적 메시지가 함께 들어가는데 기존의 작업과는 다르게 ‘갈림길’만의 다른 미학적 ‘갈림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신도안>에서는 전문 배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안양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약 70%가 되고,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로 전문 배우가 등장합니다. 때문에 전 작품에서는 영화의 연기, 배우들의 연기가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주가 되는 영화를 주로 찍다가, 형인 박찬욱 감독과 공동감독을 맡은 <파란만장>에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를 바탕으로 짧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영화 <갈림길>은 50%이상이 드라마화 된 재현영화의 성격이 강합니다. 일종의 배우는 과정입니다. 시각예술을 주로하면서 전문배우들과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배우들과 어떻게 작업할 것인가, 연기 연출에는 이러한 점이 있구나 생각합니다. 연극을 해본 적도 없고, 아직도 낯섭니다.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Q : 이 작품이 광주아시아예술극장의 사전프로그램으로 제작되면서 이 작품의 모양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합니다. 아까 상영 이후에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때, 원래 이 작품은 6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하셨습니다. 첫 편이 <그 날>, 두 번째 편이 <갈림길> 일텐데요. 앞으로 이 작품 <만신>은 어떤 과정으로 제작하게 되는 건지요?

A : 원래는 6개 정도의 에피소드가 연결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펀딩이 되어야만 가능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이 누가 이런 영화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공동기금이나 개인적인 조달이 절실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라서 찍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편을 만들면서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펀딩 상황에 따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요. 해서 어떻게든 2년 안에는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무리를 하면서 3, 4편을 하는게 아니라, 한 번에 다시 찍으려고 하고 있으며, 전체의 각본을 통해 영화를 찍으려고 하고 있고, 현재 촬영 중에 있습니다. 물론 5~6편의 에피소드 식의 구성되어 있지만, 단편을 이어 붙여서 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편집, 재궁성해서 찍을 계획입니다. 다 헤쳐모여 하는 방식으로 다시 제작하고 있습니다.

Q : 연극 연출가이자 이론가 아르또의 ’연극과 이중’을 두고 생각해 본 것이었는데요. 박찬경 작가는 ‘냉전, 분단’ 등 ‘억압된 것의 귀환’을 다루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고, 또 현재는 <신도안>을 비롯 ‘민속신앙’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독특한 균열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긴장 관계가 있기에 그 둘 간의 관계가 어떨 것인가 생각해 본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갈림길>을 보면서 에피소드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김금화 선생님이 대상화되는 것은 아닐까, 김금화 선생님 그 자체만으로도 무언가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김금화 선생님의 ‘굿’은 살아있지만, 김금화 선생님의 ‘삶’은 영화 속에서 재현되면서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이중’의 관계를 꼭 여쭈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 : 어쩌면 이 부분이 제일 어려운 점입니다. 개인사이면서 전기영화이지만, 영화를 통해서 근대사를 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와 개인사를 조화있게, 재미있게 상승작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숙제입니다. 특히 <갈림길>은 ‘남북 분단’의 문제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개인사’ 부분이 많이 뭍이는 것 같습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김금화 선생님의 미시적인 개인사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1970년에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새마을 운동’ 등과 함께 미신이 배척되면서 좀더 김금화 선생님의 미시적인 개인사와 거시적인 역사가 구체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진오귀굿 장면 남북대결의 재현

Q : 박찬경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방법론으로서 ‘장소 특정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안양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작품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요.

A : 저의 작품은 ‘장소 특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안양에 살고 싶어요>는 안양의 공공공미술프로젝트 APAP의 의뢰를 받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 지역의 역사라든가, 공간 구성이라든가, 지역의 분위기라든가 전통이라든가, 교통이라든가 등등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영화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건축교통영화’라고 봅니다. 도시의 공간을 건축적인 구성도 보여주지만, 도시에서 걸어 다니면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심지어 배를 타고 볼 수 있게 복잡하게 구성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도시를 닮은 것’의 도시의 역사, 주로 억압된 역사를 다루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소특정성’은 있습니다. 건축, 장소와 사람의 관계성을 주제로 한 ‘장소특정성’이라기보다는 ‘장소특정적 반응’이라고 하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파워통로(Power Passage) (2004) 신도안 (Sindoan) 2008, 2009

Q : 저는 박찬경 작가의 작품에는 ‘생경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이 아닌 것, 작가들이 배치하는 감각들, 관객의 감각으로서의 장소성과는 다른 장소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도안>에서 보여주는 계룡산의 모습이 그렇고요.

A : 어떤 장소든 간에 익숙하게 되면 잘 안보여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미술, 사진 등을 통해 장소를 재정의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낯설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게 되지요.

미술, 디자인 비평가 임근준은 그의 글 <냉전의 바다를 방황하는 한국인>에서 박찬경을 ‘민중미술에서의 생존자’라고 표현했다. 민중미술이 사회적 목소리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새로운 미학적 성과를 논하는 ‘갈림길’에서 민중미술이 몰락했다고 판단된 시점에 모두 떠나버린 그 현장에 (떠났던 그들은 다시 현장에 귀환하였다) 어쩌면 전업작가로서 유일하게 생존하여 지금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이제 젊다고 표현하기에는 또 중견이 되어가는 작가그룹들과 함께) 목소리와 미학을 성취해가는 새로운 포스트-민중미술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박찬경 작가의 작품이 ‘갤러리’의 맥락을 벗어나 ‘LIG아트홀’이나 ‘페스티벌 봄’, ‘광주아시아예술극장’과 같은 ‘영화나 공연’의 맥락에서 수용되는 것은 ‘포스트-민중미술’의 새로운 장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수 있고, ‘공연의 장’에서는 ‘재현’의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맥락과 재현’의 문제, ‘아시아’라고 하는 정체성과 대칭적 시각의 문제, 또한 ‘억업된 기억들의 귀환’을 통해 바라보는 ‘시대’ 즉 ‘동시대’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선들이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는 현실의 반증일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열망,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이 ‘이성적 합리’나 ‘첩자의 귀’가 아닌 ‘기이한’ 무엇인가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상상을 자극하는 비판이자 새로운 예술언어의 장으로서 교차하고 승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기고자

  • 임인자_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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