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몸이 잡답하는 시간은 절대적이다, 안무가 박순호
[Who&Work] 안무가 박순호
안무가마다 작은 설명서가 따라붙지만, 별로 소용 없다. 공연을 보면 말이 필요 없지만, 이번에는 좋은 공연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제롬 벨(Jérôme Bel)도 말하지 않았던가. 현대무용의 90%는 쓰레기의 시간이라고. 날이 갈수록 ‘작가’로서의 젊은 안무가를 만나기란 힘든 만큼 중요한 체험이 되고 있다. 이것은 제도 비평도 아니고 창작 환경에 대한 질타도 아니다. 예술가의 에고를 움틔워 주지 못하고 있다는 오만한 자기변명도 아니다.
이것은 단지 안무가 박순호씨처럼 말이 통하는 ‘작가’, 생각하는 ‘작가’를 만났을 때의 반전 같은 것이다. 젊은 안무가 중에서 안무에 관한 주유천하를 그만큼 폭넓게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눈 앞의 길 위에 숨겨진 함정들마다 족족 빠져주는 센스와 몸으로 겪고 빠져 나오는 방법의 모색 그리고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가는 결단 같은 대목들은 박순호씨의 체험적 영역이다. 타 장르와의 합작 작업, 미디어 아트와 춤의 결합, 레지던시, 외국에서 안무수업 등등 박순호씨가 간 길은 안무가에겐 치열한 자기추구인지라 다음 세대에게 분명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난생 처음이다. 우리는 남현동 예술인마을의 어느 횡단보도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보낸 이후, 거의 6년 만에 재회했다. 그 동안 나는 일종의 외도를 했고,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야전의 사령관처럼 제 갈 길로 지그재그 질주해왔다. 각자 마음의 폭을 개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가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왜? 춤은 춤 아닌 것들로 에워싸여 있어서 꼭 춤-중심주의로 대화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춤을 풍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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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댄스 프로젝트 <人 조화와 불균형> |
Q: 대부도의 경기창작센터에서 8개월간 레지던시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A 박순호(이하 ‘박’) : 나에게 30대는 혈기왕성한 시간이었고, 2년 동안의 레지던시 경험에 관심도 많았고 흥미도 느꼈다. 그러나 아버지가 영종도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대부도를 잘 아는 편인데, 경기창작센터가 멀게 느껴졌다.
Q: 박순호 안무가는 종횡무진이었고, 이고, 일 것이다. 어떤 점에 포커스를 맞추나?
A : 제 자신의 노출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미디어아트까지 섭렵했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보다 ‘작업’의 과정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무용) 안으로 포커스가 맞춰졌다. 내부 동료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가? 이것이 이번 ‘작업’의 첫 단추였다. 공연은 무대화하는 것이지만, 가까운 무용수와 공감하는 것이 보다 중요했다. 무용수로부터의 배움도 있다.
Q: 개념적인 성향이 있지 않나?
A : 물론 작품을 진행할 때는 학문적 접근부터 아이디어의 개방과 확장이 있다.
Q: 과거 인터뷰를 보면, 딱딱한 이력서 타입이 많더라. 가령, EDDC의 안무수업을 받았던 학생 마인드라던가, 스티브 팩스턴 (Steve Paxton)의 접촉즉흥 트레이닝 경력이 훈장처럼 달려 있다. 하지만 안무가란 머무르지 않는 것 아닌가?
A : 그렇다. 사실 몇 년 전 인터뷰를 보면, 스티브 팩스턴의 접촉즉흥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만, 실은 그런 부분은 10년 전 얘기다. 소위 ‘볏집을 깔아둔 후’의 얘기다. 그 후 합기도나 스포츠를 접목한 작품으로 해외의 야외축제에 많이 초청받았고, 차차 보편성과 특수성을 접목하는 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춤은 특수성이며, 타악을 비롯한 우리 전통음악은 보편성이란 발상을 꾸준히 진전시켰다.
안무가 박순호씨는 최근 <人 : 조화와 불균형>에서 타악의 ‘쨍한’ 사운드로부터 전통춤의 형식이 아닌 새로운 정서를 춤으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보편성과 특수성은 그가 국제주의자로서 넓어진 안목의 기준이 될 것 같다. 즉 우리에게 고유한 것과 그들에게 달콤한 것, 그 사이에는 악전고투의 난감한 행로가 깔려 있다.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는 이런 것이고, ‘안무가 박순호’는 이런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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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댄스 프로젝트 <人 조화와 불균형> |
Q: 어떤 악기를 쓰는가. 그리고 음악과의 합작 방식은?
A : 타악은 주로 장구이다. 장구는 즉흥 자체다. 사물놀이 팀으로부터 장단을 비롯해서 다 배웠다. 소위 퓨전이라고 해서 퓨전의 색깔을 의도적으로 내고 싶지 않았다. 물이 빠지는 한때의 유행상품 같은 것이다. 우리의 장단이나 색깔을 변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통춤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Q: 합작에는 익숙하지 않은가. 미디어아트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인상적이었고, 해외 공연도 절찬리에 많이 했다고 들었다.
A : 과거에 합작 형태의 작업에 많이 뛰어들었다. <생명력 Life Force>는 그 한 예가 될 텐데, 그 후로 미디어 작업과는 안 한다. 아시겠지만, 국제적인 평판과 상관없이 합작 형태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이 아직까지 없다. 사실 나도 미디어를 더 배웠어야 하고, 미디어 작가도 춤을 더 감각해야 했다. 우리가 객관적 그림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Q: 생각을 공유한다는 지점에 귀가 쫑긋해진다. 합작의 심도를 말하는 것인가? 또 어떤 것이 의미 있는 결과물인가?
A : 이제는 제3의 것이 나와야 한다. 물리적 만남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통해서. 그래서 음악과의 합작을 시도했는데, 음악은 반응이 빠른 매체다. 그리고 춤추는 몸은 시각적인 소리이다. 비주얼이지만 리듬이 보이는 거 아닌가.
Q: 이번 합작 상대는 마음에 드는가?
A : 음악가 박종호씨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고, 장구 연주자이다. 특이한 소리가 일품이고 매력적이다. 이번에 함께 작업한 것은 <人 : 조화와 불균형>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관계는 순환한다. 그것을 음악과의 조화, 소리와의 조화를 통해 추구한다. 판소리는 음악적 차원에서 사용한다. 박종호씨는 장구 연주자임에도 소리가 좋다. 보이스의 톤과 음색, 언어가 남다르다. 특히 외국에서 인정받는다. 거의 소리극 차원이라고 봐도 좋다. <수궁가>에서 호랑이 묘사하는 장면을 사용한다.
Q: 제목의 ‘불균형’에 끌린다. 달리 말하면, ‘비결정성’ 혹은 ‘변동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조화’는 ‘기우뚱거리는 불균형’의 몸짓에서 순간적으로 가능한 것 아닌가? ‘불균형’은 어떤 의미인가?
A : 제목에서 ‘불균형’이란 그것을 통해 캐릭터를 창조한다. 우리는 사실적 차원과 추상적 차원을 마주하게 된다. 움직임 방법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그럴 때마다 두 개 차원의 경계 안에서 왔다갔다 한다. 모든 안무가가 모두 그럴 것이다. 나는 이 호랑이 묘사 장면에서 호랑이 캐릭터를 ‘복어’로 그려냈다. ‘복어’의 움직임이 혼돈의 시대를 보여준다고 직감하고 흥미를 느꼈다.
Q: ‘복어’라...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 몰라도. 호랑이와 복어 사이의 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A : 시선이 중요하다. 경험과 교육과 직감은 시선의 이동을 가져온다. 예전에 레지던시할 때, <서울을 담다>라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기본 발상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서울에서 발견되지 않은 일상을 포착하고 맵 (Map)을 다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체험의 영역으로 몰아갔다. 가령, 길이라고 하면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식이었다. 참여한 외국인 작가들은 불평이 대단했다. 나는 모른 척했다. 육체적 한계체험을 거쳐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이 합체되는 순간을 맛보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템플 스테이까지 가서 좌선까지 함께 했다. 이것이 아이디어를 육화하는 방법으로서 시선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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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댄스 프로젝트 <人 조화와 불균형> |
‘육화’라는 표현은 안무에서 특별한 것이다. 안무가의 몸에서 조갯살이 비어져 나오고, 세계의 몸에서도 조갯살이 비어져 나와 그 조갯살들끼리 새로운 살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육화’에 근사할까. 안무가 박순호씨는 한계체험 속에서만 “체험을 사랑하는 체험”의 강도를 ‘육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Q: 외국인들이 욕봤겠다. 하지만 투덜대다가 어느 순간에는 눈빛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A : 바로 그렇다. 노골적으로 불평해도 끝까지 밀어붙였고, 나중에는 그 고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우리는 항상 그런 역설을 알면서도 그 고생을 생략하려고 그런다.
Q: 춤이란 무엇인가. 안무가 박순호에게 춤은 왜 위대한 것인가?
A : <휴식>이란 작품에서는 무대미술, 미디어, 무용 등을 무대 위에 설치 작업했다. 미디어란 내부의 모호함, 불확실성을 매체를 통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타남의 사건으로서 춤이 가능하고 거기 있다. 춤의 접촉은 존중과 환대의 시작이다. 이것은 이미 예술 안에 있던 것인데, 제도가 이끌어낸 부분이다. 여기에 춤의 위대함이 있다.
Q: 리얼리티가 장르마다 다르지 않나?
A : 물론 장르마다 소통 방식이 다 다르다. 하지만 말하는 언어가 다를 뿐 똑같은 사람이다. 다른 방법으로 소통한다. 감정의 기복이나 불안정도 있지만,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사람이다.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혼자 다 채울 수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몫이다. 다만 본질적인 가치나 영향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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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호 댄스 프로젝트 <人 조화와 불균형> |
Q: : 워크숍 꽤 즐길 것 같다. 그런 마인드라면, 무용가 아닌 이들의 몸짓도 받아줄 것 같다.
A : 작가들은 몸 움직이면서 각자 다르게 해석한다. 이해의 폭도 다르고, 경험도 색다르다. 이런 재미 때문에 해외에서 머물며 워크숍을 많이 했다.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어떤 남자가 워크숍에서 춤추는데 어설프면서 자연스러웠다. 그 묘한 매력 때문에 커피 한잔의 대화를 가졌는데 알고 보니 무대미술 전공자였다. 춤에 관심이 지대했고 경험도 있었지만, 아직 덜 배워서 가진 매력이었다. 그러나 팔다리 잘 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표현은 다양하게 하는 것보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떨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Q: 묘한 매력, 덜 익은 매력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또 배움이란 것이 그에 상충한다고 생각된다. 어떤가?
A : 그래서 모순어법을 간혹 쓸 수밖에 없다. 가령, ’움직임이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다.’ 같은 것. 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 순간이 있다. 침묵과 여백뿐만이 아니라 다른 공연언어가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무용수는 끝없이 춤추고자 하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힘든 점도 있고, 나 자신부터가 그렇다.
Q: ‘작업’ 중심이긴 하지만, ‘작품’은 어떤가. 박순호씨 얘길 들으니, 꼭 보고 싶다.
A : 이번 작업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아직 음악이 모자라다고 시인하지만 채워서 만드는 타입이 아니다. 다만 전막 공연을 만들어서 내년에 외국 투어공연을 다닐 때 보완하려고 한다. 전통음악은 판소리, 사물놀이, 민요 등인데, 철저히 타악 중심이다.
Q: 타악의 울림은 ‘쨍하다’. 이것이 우리의 싱코페이션(Syncopation)이 있는 3박자의 리듬과 함께 간다. 그런데 그러한 타악의 음색을 갖고 안무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 스타일이라 더 그렇다. 또한 현재 안무가로서 느끼는 가장 래디컬한 질문은 무엇인가?
A : 서로 몸으로 잡담을 떨어야 한다. 그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당연히 처음엔 어렵다. 자연스러워지는 과정은 그 끝에 있다. 유능한 무용수보다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생각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를 바란다. 사실 정체성의 사춘기가 있다. 나는 다국적/다장르/레지던시를 체험했지만, 사춘기를 느낀다. 이 땅의 문화와 서구식 교육 사이에서 교차점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럼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유니크함은 무엇인가?’ ‘독창성은 무엇인가?’ 외국에 자주 팔려나가던 현상은 우리 음악으로 만들어서 외국에서 ‘문화의 엮음’이란 부분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현재는 무엇이고 미래는 무엇인가? 과거의 부끄러운 부분을 다시 반복하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