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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슬라그무일데르 _ 쿤스텐페스티벌 예술감독 2012-03-14

위기를 이기는 신념
[Who&Work] 크리스토프 슬라그무일데르 _ 쿤스텐페스티벌 예술감독
 


세계에서 가장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 축제가 매년 5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열린다. 쿤스텐페스티벌(Kunstenfestivaldesarts: KFDA)이 그것이다. 1994년 처음 열려 20년을 향해가는 이 축제의 설립자는 프리 레이슨(Frie Leysen)관련기사 보기 이다. 통합 유럽의 수도로 자리를 잡아가던 브뤼셀에 문화적 기능을 더하는 데 이 축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정치적 배경을 떠나서도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세상에 선보이는 역할을 해 온 이 축제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5월이면 새로운 예술의 경향을 읽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브뤼셀로 간다. 현재 예술감독은 크리스토프 슬라그무일데르(Christoph Slagmuylder)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축제를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매년 개최되는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전신 동경예술견본시)의 단골 손님이다. 일본 현대연극의 새로운 세대를 연 연출가 오카다 토시키(Okada Toshiki)와 같이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축제를 통해 유럽에 그리고 세계에 소개한 연출가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작년 동일본 대지진과 대형 쓰나미가 휩쓸고 간 여파로 붕괴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 때문에 우울한 분위기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2012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 현장에서 크리스토프를 만났다.

크리스토프 슬라그무일데르

20년의 역사, 그러나 불투명한 미래

KFDA는 30여 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300만 유로(한화 약 44억 원)의 예산으로 3주간 운영한다. 축제 예산의 대부분은 벨기에 있는 두 개의 정부, 그러니까 네덜란드 언어권 정부와 프랑스 언어권 정부, 그리고 유럽연합에서 나온다. 벨기에의 두 개의 정부와 축제는 각각 다년 계약을 하는데 올해, 네덜란드 언어권 정부와 맺었던 4년 계약, 유럽연합과 맺었던 5년 계약이 각각 만료된다. 예전 같으면 벌써 다음 계약을 맺을 시점이지만 아직 새로운 계약을 맺지 못했다. 유럽의 경제위기를 고려하면 새로 계약을 맺게 된다고 하더라도 예년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주 불투명하다.

“내년 예산 규모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내년의 축제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주 어렵다. 민간에서 자금을 충당하라는 조언도 있지만, 공적 영역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민간에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다. 뿐만 아니라 공공지원 축소는 정부가 예술, 특히 현대예술에 대한 지원이라는 역할을 축소하려는 시도이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올해는 축제를 준비하면서 마치 마지막 축제를 준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년 축제는 예산 상의 어려움으로 우리가 이전에 했던 방식이나 규모와는 다른 축제를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예술가들, 그리고 축제 감독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내년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2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축제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느낌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이 밝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축제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올해 축제는 더 힘써 준비한 느낌이었다. 축제의 규모는 한결같다. 이 축제가 에든버러나 아비뇽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들과 크게 다른 점은 휴가 기간이 아니라 도시의 사람들이 한참 일하는 오월에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뤼셀 시민들은 일과 후나 주말에 축제에 참여할 수 있고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들도 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스매치2> (SMATCH[2]) _ 도미니크 루드우프트(Dominique Roodthooft), 2011년 참가작 
ⓒTitanne
<공장2> (Factory2) _ 크리스티앙 루파(Krystian Lupa), 2011년 참가작
ⓒBea Borgers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을 묻다

전세계로부터 몰려오는 기자들이나 공연예술계 인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축제의 한 가지 임무이겠지만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행사가 열리는 브뤼셀의 시민들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안겨주기 위한 기획에 힘을 쏟는다.

“나는 축제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특별한 목표나 방향을 미리 설정해 놓지 않는다. 모든 것을 열어 놓으려고 노력한다. 작가들의 창의적 작업의 결과들을 모았을 때 거기서 생겨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다. 이 지점으로부터 주제를 발전시키고 해석을 더한다.”

올해의 축제기획을 시작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 대답은 이전에 그가 한 인터뷰에서 전 예술감독 프리 레이슨이 축제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자신은 그녀와 달리 미리 계획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 인터뷰를 언급하면서 다시 물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 마음 속에는 주제가 있었다. 이 축제를 통해서 유럽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 유럽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온통 유럽의 경제적 통합과 경제적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나는 문화적으로 유럽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다. 그러한 노력은 유럽의 작품 속에서 읽을 수도 있고, 거꾸로 유럽 바깥의 작업들을 거울 삼아 읽을 수도 있다.”

이 축제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초기에 이 축제가 벨기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유럽 대륙의 중심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벨기에에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사람들과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이 반반씩 살고 각각의 행정부, 교육체계, 문화 등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쪽 정부와 사람들을 묶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 이 축제의 감독은 마음 속에 유럽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유럽에 닥친 위기를 경제적인 위기로만 보지 않는다. 위기의 원인을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찾아보고 싶다. 자기 마을, 자기 영토에 대해서만 너무 많이 생각하고 아낀 것이 이런 문제들을 만들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테두리를 만들려고 할 때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 지역적 특성과 강점을 강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히려 유럽 전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는 걸림돌이 되었다.

내가 작은 나라 벨기에,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브뤼셀에서 살았다는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 이점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 거기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평등의 문제, 문화적 교환의 문제 등,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어야 유럽의 정체성을 찾고 위기를 넘어가는 데 유익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점들을 유럽연합의 정책입안자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도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방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유럽 각국의 축제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그 작품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는 것에 다년간 대규모로 예산을 썼다. 쿤스텐페스티벌도 이 예산을 받아서 다른 나라의 축제들과 공동으로 제작하고 공연하는 프로그램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다. 유럽연합의 정치가들은 이런 과정에서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개별 국가보다 유럽의 정체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지금 유럽연합의 대통령은 벨기에 사람이다. 누군지 아는가? 사람들에게 유럽 대통령이 누군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만약, 강력한 유럽연합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각국의 정부는 각국의 전통과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문화에 돈을 쓰고 유럽연합은 그런 경계를 해체하기 위해서 돈을 쓰는 상황이다.

유럽 각국의 7개 축제가 모여 공동제작을 하고 순회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을 지난 5년간 진행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처음에 이런 일을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기금을 타기 위해서였다.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면 유럽연합이 제공하는 기금을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많이 만났고 배운 것도 많다. 하지만, 7개의 단위가 모여서 회의를 하면 합의에 이르기도 어렵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유럽연합의 지원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공동제작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축제 감독들이 서로 모르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망한 작가를 선정한다. 서로를 배우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공동제작이 시작된다. 그리고 제작이 끝나면 제작에 참여한 축제들을 순회하며 공연을 한다.”


<이것이 중국이다>(C''est du chinois) _ 에디트 칼도어(Edit Kaldor)
쿤스텐페스티벌 외 3개 축제 공동제작 (2011년)
© Luc Vleminckx/Academie Anderlecht
 

국제적인 코스모폴리탄을 꿈꾸며

“지금까지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을 얻은 것도 아니지만 내년에 유럽연합에 제안할 때는 유럽에서도 두 개의 축제를 더 추가하고 유럽 바깥의 축제 네 곳과도 함께 협력하는 방식으로 참가 범위를 확장하려고 한다. 일본의 교토국제공연예술제(Kyoto Experiment)관련기사 보기를 비롯해 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말리 등 서로 다른 대륙의 축제들과 함께하려고 한다. 물론, 유럽 바깥의 축제들과는 공동제작보다 초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 쿤스텐페스티벌에서는 15개의 세계 초연작(world premier)을 선보인다. 그 중에 3개의 작품을 축제가 자체 제작했다. 자체 제작하는 방식은 경우에 따라 다른데, 총 제작비의 일부를 제공하고, 나머지를 공동제작 할 사람도 찾고 기술적 지원, 번역 지원 등을 한다. 장소 특정적 공연들의 경우에는 장소도 섭외하고 사무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한 해 프로그램을 짤 때 1/3은 벨기에에서, 1/3은 유럽 안에서, 그리고 나머지 1/3을 유럽 바깥에서 가져온다. 이 작품들을 직접 선정하기 위해서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두 달에 한번 정도는 해외로 나가서 세계 각지의 작품들을 보고 고른다. 한국에도 4월 초에 방문할 예정이다.

올해 우리가 직접 제작해 선보일 작품들의 최종 결과물은 아직 확인하지 못해 예술적 성취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그 과정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최근에 올해 올릴 작품들에 대한 텍스트 작업을 완료했는데 다시 읽고, 번역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기대되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콩고 안무가의 작업이다. 1920년대 아프리칸 발레 작업인데 입체파의 의상, 밀로의 신고전주의 음악 등이 등장하면서 그 시대의 아프리카에 대한 꿈과 환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 하나 기대되는 작업은 나이지리아와 유럽의 사업가가 만나서 서로 사업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독일 극단의 작업이다.”

올해의 훌륭한 축제 준비를 끝내놓고, 내일의 불투명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내년에 예산이 줄어들면 스태프를 줄이고 다른 쪽에서 아끼더라도 예술적인 질과 깊이는 꼭 유지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특히, 비슷한 축제들이 여기저기 생기는 상황에서 더 날카롭게 작품을 고르고 관객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더욱더 고민이 깊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방향으로 축제는 나아갈 것이다.

벨기에 안의 정체성에서 유럽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축제가 된 쿤스텐페스티벌이 이제 미래에는 좀더 국제적인 코스모폴리탄을 꿈 꿀 것이다. 거기까지 축제를 밀고 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 꿈으로 가는 길에, 지금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앙가주망(engagement), 개입과 참여의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그가 꿈꾸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의 꿈이 완성되지 않을까?

“예술이 직설적으로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연 재난과 인공 재난, 그리고 중동과 그리스 등에서 번지고 있는 집회 같은 문제들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면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이 시대의 예술이 안고 있는 키워드이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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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자

  • 주일우 _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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